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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가끔가다가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을 하기도 하지만, 어떤 분들은 아쉬워하며 후회스러워하기도 합니다.

호주에서 노인분들을 간호하는 일을 하는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죽음 전의 양로원 노인들과 많은 대화를 하면서 그분들이 살아오면서 후회했던 일들에 관한 말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기록해서 간추려 보니까 다섯 가지로 압축이 되더랍니다.

먼저, 주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살다보니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해 후회스럽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는데 일하다가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어색한 관계가 되어 후회스럽다. 내 감정을 주위에 솔직하게 표현하며 살지 못해서 후회스럽다. 친구를 좀 봤으면 좋겠는데, 친구들과 연락하지 못하고 산 것이 후회스럽다훨씬 더 행복한 삶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후회스럽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분들과 대화를 했지만, "돈을 더 벌어야 했는데, 좋은 집, 고급차 한번 타 봤어야 하는데, 애들을 더 엄하게 키웠어야 했는데"라고 말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았다고 할지라도 후회가 많은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자신이 살아 온 삶에 대해서 후회보다는, 잘 살았다고 확신하며, 죽음 이후에 있을 일에 대해서 기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도 자신과 같은 삶을 살아가라고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동안 살아 온 삶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 것은, 그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살아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보다는 자신이 죽은 후에, 의의 재판장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기 위해 예비한 "의의 면류관"이 있음을 믿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죽음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지만, 기독교 역사에 따르면,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의 네로 황제 때에 목이 잘려서 순교를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비참한 죽음을 당하지만, 그의 삶이 후회스럽지 않았던 것은, 세상 사람들이 주는 어떠한 상보다 더 귀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의 면류관이 있음을 알고, 그것을 위해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죽어서 허무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받을 상을 기대하게 되니까 죽음 앞에서도 기뻐할 수 있고, 기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기대하는 상은, "의의 면류관"입니다. 그 의의 면류관을 의로우신 재판장,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비하셨다가, '의로운 자'라고 인정하시는 자에게 그 면류관을 머리에 씌워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을 때의 가장 큰 변화는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죄 씻음을 받아 의롭다고 인정받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의롭지는 않지만, 의롭게 여겨주셔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을 얻은 성도의 삶은 의롭게 여김을 받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의를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성도가 되기를 예수님은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6:33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의롭다고 인정받은 성도들은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하나님의 의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만들고자 원하는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서,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사업, 이 사회가운데서 이루고자 원하시는 나라를 꿈꾸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꿈꾸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이번에 대통령으로 선출된 미국의 45번째 대통령, Donald Trump 대통령은 이번 대통령 취임식에서 자신이 꿈꾸는 나라를 강력하게 드러냈습니다. “America First and only America first” 어떤 사람은 그가 꿈꾸는 나라에 대해서 지지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우려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드러내야 할 나라는, 바로 하나님이 의가 드러나는 하나님의 나라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의 법이 되어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내 자신 가운데서 먼저 이루어지고, 우리 가정과 이 땅 가운데서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의의 면류관'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이 땅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이루게 되면 상들을 많이 받습니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여러가지 상들이 주어집니다. 그러한 것들이 이 땅에서 화려하고 영광스러울지 모르지만 죽음 앞에서는 모두 부질없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그 죽음 앞에서 가장 가치있고 영원한 것은 "의의 면류관"이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시는 영원한 가치의 상은, 이 땅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로우신 재판장 앞에 갔을 때에 주어지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의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서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시면서, 우리가 '의의 면류관'을 받기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먼저, 제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라고 여기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떠날 시각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면서 표현하기를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제'라고 하는 것은 제사를 드릴 때에, 포도주를 부어서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양을 잡아서 희생제사를 드리거나, 곡식을 제물로 드리는 소제를 드릴 때에, 그 제사 제물에 포도주를 붇고, 태움으로 향기로운 냄새를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게 됩니다.

빌립보서 2:17절에서도,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삶을 제사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전제는 제사의 마지막에 치러지는 의식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전제로서 벌써 부어졌다는 것은, 이제 곧 제사가 마쳐질 것이고, 자신의 삶도 마쳐질 것임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제물이 되어 제사드리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 전에,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삶으로 드리신 분, 사도 바울의 삶에 모범이 되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포도주를 마시면서, 자신의 피가 제사의 포도주와 같이 부어질 것을 묘사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20절에,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새 언약을 위해 부어지는 피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전제로 부어지시면서 제사의 삶을 마치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을 제사로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로마교회 교인들에게도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영적 예배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이제는 우리의 몸,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로 드리자고 하는 것입니다. 제단 위의 제물은 산 채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제물이 될 짐승은 죽어야 합니다. 죽을 뿐만 아니라, 갈기갈기 각을 떠서 하나님께 드려지게 됩니다.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도 그렇습니다. 통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아주 곱게 갈아서 고운 가루로 해서 드려지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죽어지고 부인될 때에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제사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바울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삶으로 사셨던 것입니다.

 

2. 이제 사도바울은 자신이 제사로 주님께 드려지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내 자신이 제사가 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저절로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제사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1) 사도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운 사람입니다.

믿음생활은 선한 싸움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선한 싸움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싸움의 상대를 제대로 알고 싸울 때에 가능합니다.

에베소서 6:12절에, 사도바울은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우리의 상대가 악한 영에 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악한 영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선한 싸움인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상황들이 우리가 싸워야 할 대적이라고 여길 때가 있습니다. 내 주변에 있는 나의 배우자가, 자녀들이, 내 이웃들이 싸움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여겨서 싸우다가, 결국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지 못하고, 그 영광을 가릴 때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악한 싸움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유기성 목사님께서 쓰신 제자훈련 교재에 이러할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남자가 결혼 30주년을 맞아, 아내 생일이 되었을 때,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다른 선물은 필요 없으니, 그 날 남편의 하루 중 두 시간만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요청이 별로 탐탁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생일날 저녁, 아내는 남편을 거실 소파에 앉히고 말했습니다. “여보, 제가 이제 두 시간 동안 당신한테 얘기할 텐데, 제가 무슨 말을 하든지 당신은맞아, 옳아, 그렇지!’ 그 말만 해 주세요” 그러고 나서 아내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가 듣다가 보니 자신이 생각하기에 사실이 아닌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중간 중간아내, 여보 그건…”하고 말을 끊으려니까, 아내는 이에 질세라여보, 두 시간만, 두 시간만…”하며 듣기만 해 달라고 애원하기에, 어쩔 수 없이 듣고만 있었습니다. 아내의 말을 듣기만 하는데, 10분이 지나자 속이 뒤틀리고, 20분이 지나자 화가 치밀어 오르고, 30분이 지나가 조금만 더 들으면 억울하고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은 아내가 지난 30년간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30년 동안 같이 살아왔는데, 어떻게 아내의 마음과 생각을 이다지도 달랐단 말인가!’ 한 시간을 계속 이야기하는 아내를 보면서, 남편은 급기야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습니다. 결혼 이후 그때껏 아내가 겪은 아픔과 상처를 너무나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약속된 두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남편은 아내의 무릎을 붙잡고 한참 울었다고 합니다.

성도는 선한 싸움을 싸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탄은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살아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악한 싸움을 만들어 냅니다. 사탄은 우리 가정과 교회, 이 사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내 사랑하는 사람, 가까운 사람과 싸우게 해서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지 못하게 해서, 하나님의 나를 빼앗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들은 혈과 육의 싸움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악한 영의 세력과 맞서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며 싸우고, 사랑으로 싸우는 사람인 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내가 승리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나는 죽고 하나님께서 승리하시는 싸움이 선한 싸움인 줄로 믿습니다.

2) 그리고 사도바울은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쳤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삶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토록 열심히 살았던 삶도 마감할 때가 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도 자신의 삶의 끝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그 길을 다 마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나의 달려 갈 길"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나의 달려 갈 길은 자신이 정한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 사도바울의 달려가던 길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자신의 공로와 성공을 위해서 살았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제자와 선교의 길을 자신의 길로 삼고,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죽을 때까지 그 길을 고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도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참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길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길을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지금 계획하며 달려 가고 있는 그 길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달려가라고 원하시는 길이십니까? 아니면 하나님과 상관없이 그저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길입니까?”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도 내 길의 방향이 바뀌지 않고, 열심히 달리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그 길은 나에게 사명이 됩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내 길로 받아서 달려가는 그 삶의 끝에 의의 면류관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3) 마지막으로 사도바울은 믿음을 끝까지 지켰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곧 우리로 믿음을 지키지 못하도록 하는 많은 도전과 시험들이, 우리의 삶 속에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나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날마다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과 같이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그 달려 갈 길을 다간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10절에 나오는 데마라는 사람은, 바울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했습니다. 데마도 예수님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사도바울과 같이 가까이서 사역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편지 중 골로새서나, 빌레몬서에 보면 다른 사람에게 데마의 안부를 전하기도 합니다. 그런 데마가 그 믿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세상으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데마는 하나님보다는 세상을 더욱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15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들을 더 사랑하게 되면 그 믿음을 지키기가 힘이 듭니다. 선한 싸움을 하기가 힘이 듭니다. 달려갈 길을 제대로 마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비록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을 더욱 사랑했기 때문에 모든 고난과 유혹을 이기고 믿음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데마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함으로,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 믿음을 져 버렸던 것입니다. 세상적인 관심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고 있습니까? 세상적인 열심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식어지고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할 때에, 그 믿음을 지키게 되고, 선한 싸움을 싸우게 되고, 달려 갈 길을 가게 마련인 것입니다. 의의 면류관을 받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올 해 우리교회의 제목이 "예수를 바라보자"인데,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사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서 예비하고 계신 '의의 면류관'이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에게 예비되어 있는 의의 면류관이 자신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의의 면류관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재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된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한평생 살아온 성도들에게, 의의 면류관을 씌워주시고자, 예비하시고 기다려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사도바울은 그 의의 면류관을 위해, 자신의 삶을 제사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뜻을 위해서 내가 죽어지고 헌신되어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내가 죽어지고 부서지는 제물의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의 죄악과 더러움은 감추어지고, 하나님의 의로움이 드러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의의 면류관을 위해 잘 싸워야 합니다. 사탄의 권세를 이기며,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 달려가야 합니다. 내가 달리고 싶은 인생길을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나의 달려갈 길로 여기고, 평생을 달려야 합니다.

그렇게 사도바울은 그렇게 싸우며, 열심히 달려가며 믿음을 지킬 때에 의의 면류관이 우리에게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 '의의 면류관'을 준비하고 기다리십니다. 올 해는 의의 면류관을 더욱 바라보는 한 해요, 이 세상에서 다른 상은 못 받아도, 의의 재판장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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