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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교회창립 32주년 기념주일이 한 주간 남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삼 년 간 창립주일 전 한 주간을 '회개와 화해의 주간'으로 지냈습니다. 교회가 창립된 그 첫 시작을 생각하면서, 교회의 새로운 출발이라고 의미할 수 있는 창립주일을 보다 깨끗한 모습으로 지내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잘못된 일들은 돌이켜 회개하고, 그리고 이웃과는 불화하고 잘못했던 일들을 돌아보고 서로 용서하며 화해하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웃과의 온전한 관계속에서 하나님께서 기뻐 받아주시는 창립감사예배를 드리고자 함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오늘 말씀은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는 로마서 12:18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에서 핵심되는 내용은 믿음을 통한 구원입니다. 비록 모든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이지만,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신, 나의 구세주가 되심을 고백하며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인이 아닌 의인으로 여겨주시고 구원에 이르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그 다음 단계는 변화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2절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전에는 세상의 유행과 풍조들에 민감하게 살아갔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무엇을 입고, 먹고, 어떤 차를 운전하고 다니는지,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관심하면서 살아갔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서 살아갔습니다. 그것을 따르기 위해서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은 그러한 것을 본받아 살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민감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뭘 좋아하실까? 뭘 기뻐하실까? 예수님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사셨는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하면서 살아갑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그리고 기뻐하시는 변화된 삶 중에서 하나입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모든 사람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사회가 개인주의화 되었지만, 평생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화목하면 그 삶도 평안합니다. 그렇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처럼 힘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급적이면 서로 평화를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이 땅에는 사람의 바램과는 다르게 불화하고 다툼이 많이 있습니다. 나라간에도 전쟁이 있습니다. 작게는 가정 안에도 다툼이 있고, 이웃과 교회 안에도 불화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죄된 성품, 옛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서는 모든 사람들과 평화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사람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이 세대를 본받아 살다 보면, 평화보다는 싸움이 있고, 사랑보다는 미움이 있는 것입니다. 도처에 다투고 싸울 일 투성이 입니다.

부모와 자녀 간에 불화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교회안에서 마음 불편해 하면서 신앙생활하고 싶은 분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웃 간에 원수처럼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과 평화하며 화목하게 지내고자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할 때에 화목할 수 있는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우리의 삶을 통해서 평화를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먼저,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기 위해서는 축복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나에게 어려움을 주고 핍박하는 사람을 향해서 도리어 축복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이지만 때로는 서로에게 핍박과 고통을 주고 받는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가정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자녀를 학대하고, 부부간에도 여러 가지 형태의 폭력이 오고 갈 때도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학원폭력으로 핍박을 받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있고, 직장에서도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필요한 존재이지만 그 만큼 관계의 위험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에 사람들은 그 받은 대로 똑같이 갚아주는 것을 정당하다고 말들을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가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17절에,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행하는 일이 분명 악한 일인 것을 알지만, 그것을 악으로 갚은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속이 후련해 지고, 마음이 편안할 것 같이 생각되지만 그것은 거짓된 생각입니다. 평화를 빼앗아 가려는 사탄의 거짓입니다.

성경은 도리어 그들을 향해서 축복하라고 하십니다. 나를 괴롭히고 핍박하는 이를 축복하려고 하면 억울하게 느껴집니다. 뭔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는 것은 나에게는 손해가 되고, 상대방에게는 축복을 받는 상대방에게는 큰 유익이 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저주받을 자를 축복하는 것은 도리어 나를 축복하는 일이 됩니다.

'나는 악마를 보았다'라는 한국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에는 자신의 사랑하는 약혼녀를 잔인하게 죽인 악마와 같은 살인자에게 복수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처음에는 남자의 약혼녀를 죽인 살인자가 악마와 같은 존재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살인자에게 처절하게 복수하는 그 남자가 악마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악을 악으로 갚기 위해서는 나도 악한 자가 되게 마련입니다. 나도 다른 이를 핍박하는 자가 되기 마련입니다. 나도 저주받아야 할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러한 악한 자의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평화를 잃어 버리고, 악한 자와 같은 자로 전락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탄의 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축복할 때에 우리의 악함을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죄된 본성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종종 듣습니다. 평생 아버지를 증오하며 살아온 여자가 있었습니다. 어릴 때에 아버지로부터 받은 학대가 상처가 되어 아버지를 저주하면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성장하여 결혼할 나이가 되었지만 남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고, 도리어 더 많은 상처들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럴 수록 이렇게 자신을 만들어 버린 아버지를 더욱 원망하고 저주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여인이 언제 그러한 얽매임에서 해방되었는지 아십니까? 그녀가 예수님을 믿은 후 자신도 아버지와 같은 죄인 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저주하던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며 축복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평생 저주하던 아버지를 용서하고 축복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말이 떨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도 죽을 힘을 다해 믿음을 가지고 "아버지를 용서하고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하였습니다. 그 때에 평생 그녀의 삶을 쥐고 있었던 아픔과 상처의 응어리가 씻겨 내려감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삶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찾아 오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저주받을 자를 저주하게 하고, 악하게 행한 자에게 악으로 갚게 함으로 우리의 마음도 그들과 같이 악해 지게끔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의 존귀하고 축복받을 자녀로 끝까지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저주받을 자를 축복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 선으로 갚게 하심으로 우리의 마음과 심령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지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대신 19절에 보면, 친히 하나님께서 그 원수를 갚아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나를 핍박하고 저주받아야 될 자들에게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원수를 갚아 주신다고 하십니다. 나를 핍박하는 사람, 나와 원수된 사람은 이제 내가 담당할 몫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상대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그들을 처리해 주실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다만,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선한 일을 도모하며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선하고 존귀한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고 평생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2. 또한 모두와 평화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마음을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의 형편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간에 육체적인 가까움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을 같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15절에,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게 울 수 있는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즐거워하는 것이 나에게는 슬프고, 상대방이 울 때에 나는 웃음이 나고 기쁘다고 한다면 그것은 화목한 삶이 아닙니다.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자성어에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은 서로의 처지를 걱정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병을 앓다 보니까 그 마음도 서로 같아지는 것입니다.

암을 치료받으시는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정기적으로 같은 암수술을 받은 사람들끼리 모이는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함께 모여서 하는 말은, 자신은 어떻게 수술을 받았는지, 어떻게 지금 생활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를 서로 나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한 사람이 자신이 힘들어 하는 마음을 이야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운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즐거웠던 마음을 이야기를 하면 함께 웃고 즐거워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울고 함께 슬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화목하기 위해서는 그 마음을 같이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는 16절에,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상대방과 함께 마음을 같이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 마음을 내려 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과 마음을 같이 하기 위해서는 나의 마음을 낮은데 두어야 합니다. 내가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자기 자신의 마음을 높이고 고집해서는 상대방과 함께 마음을 나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과 같이 하시기 위해서 그 마음을 낮은 곳에 두시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집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낮아지셔서 사람의 몸을 입고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의 마음과 생각을 사람들의 형편에 맞추셨습니다.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셨습니다. 병 든자, 귀신들린 자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결국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평화롭게 하셨습니다.

몸을 같이 한다고 해서 진정한 부부가 아닙니다. 마음을 같이 할 때에 부부인 것입니다. 한 솥밥을 먹는 것이 식구가 아닙니다. 한 마음을 품을 때에 한 식구가 되는 것입니다. 한 교회에 있다고 믿음의 가족이 아닙니다. 서로의 마음을 함께 할 때에 믿음의 가족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먼저 서로의 마음을 같이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낮출 때에 마음을 같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함께 즐거워 할 수가 있고, 함께 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서로 평화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18절에, 사람으로서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하십니다.

평화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평화하려고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상대방을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나만이라도 평화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그렇게 하지 못해도, 나만이라도 마음을 같이하며, 축복하며, 선한 일을 도모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절에 원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원수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공급해 주고, 선하게 대하라고 하십니다.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하였습니다. 실제 숯불을 머리에 쌓아 놓으라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면 진짜 원수 됩니다.

그것이 아니라, 숯불을 머리에 쌓아 놓으면 머리가 화끈거리고 얼굴이 화끈 거립니다. 곧 자신의 행동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인도하도록 하라는 말씀이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임을 지켜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5:9절에는 화목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하셨습니다.

특별히 이번 한 주간, 서로를 더욱 축복할 수 있고, 마음을 같이 할 수 있고, 악에 대하여 선하게 갚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과 성정으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우리에게 속한 관계들이, 모두 평화로 울 수 있고, 하나님의 충만한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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