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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환영했던 것에서 유래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하실 때에는 이스라엘의 큰 명절인 유월절이었고, 명절을 지키려고 수 많은 사람들이 사방에서 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나귀를 타고서 들어오실 때에, 예수님을 보며, 기뻐하며 환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하여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겉옷을 길에 깔고서 환영하는 것은, 그 당시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과 군사들이 입성할 때에 환호하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승리한 장군과 같이 자신들에게 큰 승리를 안겨 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는 그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소리지르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큰 무리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호산나' 라고 외칩니다. "호산나" 히브리어로 시편 118:25절에 나오는 "호쉬아 나"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입니다. ‘호쉬아구원이라는 의미고, ‘지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호산나는,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호산나라고 외쳤던 이유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서, 자신들을 로마제국의 압박으로부터 구원하실 메시야 임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의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호산나를 외쳤던 사람들은 크게 실망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대와 정 반대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지 얼마 후에 로마병정에게 잡히시고, 그리고 로마의 총독 앞에 재판을 받기 위해 서셨습니다. 이를 본 무리들은  무기력한 예수를 향해서호산나가 아니라,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외쳤던호산나의 구원이 그들의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성취되었고, 지금도 그 믿음으로 과거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이, 현재 우리 가운데서 계속되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사도신경, “그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는 내용을 보면,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생애를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생애를 묘사할 여러가지 사건들이 많지만, 간단하게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고난 받으시고, 죽으셨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록 예수님의 생애가 간략하게 묘사되었는지 모르지만, 이 고백 속에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구원의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 그 의미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1. 먼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고백을 보면, "그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특별합니다.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지 않은 동정녀, 처녀에게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께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은 이사야 7:14절에 이미 예언된 징조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런데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동정녀에게서 나셨다는 말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믿지 못하고, 꾸며낸 말로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 논쟁을 일으킵니다.

한국에 구봉서장로라는 연로하신 코메디언이 계십니다. 그분이 젊어서 연예인 교회를 다닐 때에, 하용조 목사님과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공부하던 연예인 중에서 예수님께서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던 것을 믿지 못하더랍니다. 이를 답답하게 여긴 구봉서 장로님께서는 말하기를 "아니, 마리아의 남편 요셉도 믿었는데, 당신이 뭔데 그걸 믿지 못하겠다는 거야?" 라고 하더랍니다. 약혼자의 입장에서 자기의 약혼녀가 임신한 몸으로 와서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하면 그것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요셉도 이 사실이 안 믿어져서 조용히 헤어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꿈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이를 알려 주었을 때에 비로서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도 간신히 처녀인 마리아가 성령님에 의해서 잉태된 것임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비상식적인 일들, 믿기 힘든 일을 통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야 할 이유가 있으셨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신비감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동정녀의 몸에서 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으로 이 땅에 오셨는지를 명시하는 말씀입니다. 바로 사람을 구원하신 속죄제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제정하신 것이 속죄제사입니다. 죄를 지은 더러운 죄인이, 흠이 없는 깨끗한 짐승에다가 자신의 죄를 대신 지게 한 후, 제단에서 잡아 하나님께 드리면 그 죄인을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사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된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그 죄를 용서해 주시고 싶으셨습니다. 그런데 사랑한다고 해서 무조건의 용서하는 것은 공의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담당할 공의의 길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대신 속죄짐승이 죽어서 사람의 죄가 공의롭게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죄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죄용서함을 받고 구원함을 받을 제사를 사랑으로 계획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사람의 죄를 대신할 속죄물이 없는 것입니다. 속죄짐승의 조건은 흠이 없어야 하는데, 사람 중에는 흠없는 사람이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성자라고 불려지는 사람도, 존경을 받는 사람도 죄가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죄인이 죄인을 대속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흠 없는 존재는 하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스로 세상 사람들을 구원할 속죄의 제물이 되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없으신 성자 하나님은 사람의 씨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사람의 죄를 지시고 죽으시기 위해서는, 사람의 몸을 입으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똑같이 고난도 당하고, 죽기셔야 하셨기에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죄 없는 참 하나님모습으로, 그리고 마리아에게 태어나심으로 고난과 죽음을 당하실 참 인간의 모습을 지니게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특징은 사람의 몸을 가지고 계시지만, 죄는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잉태하셔서, 동정녀에게 태어나심으로,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실, 흠없는 속죄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 믿음의 고백속에는 예수님이 호산나 하시기 위해서, 흠이 없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죽임을 당할 분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할 속죄의 제물로 예수님이 탄생하셨음을 우리는 고백하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은 곧바로, 고난의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호산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과 천국의 도래가 있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이, 바로 속죄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입니다.

사도신경은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그 당시에 유대의 총독이었습니다. 당시 로마황제인 티베리우스가 빌라도를 유대지역의 총독으로 임명해서, 빌라도는 26년부터 36년까지 10년간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을 다스리게 됩니다.

이러한 빌라도가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에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끌고 온 예수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죽을 죄를 지은 것이 없음을 알기에 놓아주고 싶었지만, 유대 사람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강력하게 외치는 바람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도록 선고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예수님의 피와 무관하다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외친 유대인들이 예수의 피의 대가를 책임지라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손까지 씻어 보입니다.

하지만, 빌라도의 바램과는 다르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내어 준 그의 죄로 인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다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독일, 나치정권 때에 활동하던 신학자였던 본 회퍼 목사님이 계십니다. 미국에서 편한 여생을 보낼 수 있었으나 독일로 건너가 반나치 활동을 벌이다가 1945년 수용소에서 처형됩니다. 돌아가시기 전 옥중생활의 고통 가운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명령에 따라 고통받는 것은 자의로 고통받는 것보다 쉽다. 여럿이 함께 고통 받는 것은 혼자 고통받는 것보다 쉽다.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것은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것보다 쉽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의로,혼자서,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모두 선택했다.”

본 훼퍼 목사님은 자신의 고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며, 예수님의 고난이 얼마나 심하였는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은혜로 그 고난을 이겨나갔던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못에 박혀서 손과 발의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시고 고난 가운데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은, 비록 빌라도의 선고를 통해서 이루어졌으나, 궁극적으로는 저와 여러분들의 죄로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죄인된 우리가 십자가에서 찢기고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저는 새벽기도회 때에 자리에 앉아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고백하며 감사해 합니다. “저 십자가는 원래 제가 달려야 하는 예수님께서 대신 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이 없으셨다면, 저와 여러분이 그 십자가에 달려 죽었어야 하고, 우리는 구원함을 받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초기에 한 이단 가운데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잘못된 믿음을 가진 집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지주의인데,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신 것이, 실제 사람의 몸을 입고서 그 고통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 눈에 환상으로 보인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고속에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있었습니다. 영인 것은 거룩하고, 물질적인 것은 더럽고 죄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더러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실 수가 있냐고 생각해서, 예수님께서는 실제 사람의 몸을 입고서 출생하신 것이 아니라, 영의 모습으로 오셨고,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모든 사역과 고난, 심지어 죽으심도 눈에 보이는 환상이지, 실제적인 고난과 죽음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은 이 땅에서 우리의 죄로 인해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십자가에서 구원을 이루신 줄로 믿습니다.

 

4.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볼 때에, 동시에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어야 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바로 죄인인 저와 여러분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의 주인은 예수님이 아니라, 나여야 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9:23절에 당신을 따르는 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고 살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된 성정, 육신의 소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골로새서 1:24절에 고백하기를,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통해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고난을 받는 것, 그리고 내 죄의 모습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에 대해서 기뻐하며,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많은 무리들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서,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호산나,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외침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과 거짓, 미움과 증오 등을 보면서 성도들은예수님이 이 땅을 지금 구원하실 분입니다.”라는 호산나의 믿음을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가정을, 교회를, 사회를, 나라를, 지금 구원해 주십시오.”

하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실 때에,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법으로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의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셨고, 고난받으셨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람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전적으로 죄인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생애였습니다. 흠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불편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태어나신 것도, 흠없는 속죄제물이 되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당해야 하는 그고난과 아픔을 똑같이 경험하셔야 하겠기에, 사람의 몸을 입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못 박혀 죽으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성경은 말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차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지고,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럴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구원의 삶을 우리가 살아가는 줄로 믿습니다.

이제 오늘 종려주일을 지나고 고난주간을 한 주간 맞이하게 됩니다. 한 주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묵상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깊이 깨닫고, 그것을 체험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십자가를 지는 자기 부인과 죽음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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