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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새해 첫날이고 주일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한 해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우리 함께 인사하실 때에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인사를 하신 다음에, 상대방을 보시면서, 구체적으로 덕담을 한 마디씩 해 주셨으면 합니다.

오늘은, 2017년도 우리교회 표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구름과 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도 성도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히브리서 11장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아벨을 비롯한 믿음의 선진들이 열거되어져 있고, 그들을 비롯한 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허다한 증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선진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니까,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자"고 합니다. 곧 성도들을 인내로서 달리기 경기, 경주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경주는 어떤 경주를 의미합니까? 이는 믿음의 선진들이 이미 달려간 믿음의 경주를 의미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믿음의 경주자로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해서 이미 믿음의 경주를 시작한 것이고, 이 믿음의 경주는 우리가 죽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기까지 지속되어야 할 인생에서 가장 길고, 흥분되는 경기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주를 보면서, 이미 이 모든 경주를 마친, 믿음의 사람들이 우리의 경주를 보면서 응원하고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적으로 보면, 이 땅에는 가장 규모가 크고, 긴 믿음의 경주가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가운데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믿음의 경주를 어떠한 자세로 완주할 수 있을지를 우리에게 코치를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달리는 믿음의 경주는 어떠한 성격의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경주에 임해야 하는지를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히브리서 기자는 이 믿음의 경주에 임하면서,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의 경주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경주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경주를 해야 할 이유는,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곧 예수님은 믿음을 시작하신 분이고, 믿음을 완성하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 믿음의 경주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경주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에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의 경주 내내 우리가 주시해야 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우리가 바라봐야 할 예수님이 경험하신 믿음의 경주를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에,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참으사,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가 됩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부끄러움과 고난을 당할지 모르지만, 이 땅에서의 고난과 어려움은 장차 있을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보며 알게 됩니다.

로마서 8:18절에,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 믿음의 경주를 할 때에 반드시 동반되는 것이 고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영광의 자리,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장차 저와 여러분들이 이 믿음의 경주를 다 마치고 누리게 될 영광인 줄로 믿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경주를 하다가 보면, 예수님이 아니라 다른 것들에게 시선을 빼앗길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보이게 되고, 내가 처한 환경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방해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믿음의 경주가 힘이 듭니다.

마태복음 14장에는,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있었는데 바람으로 인해서 항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해저물 때에 출발을 했는데 새벽이 다 되도록 바다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올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유령이라며 두려워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키셨습니다. 이 때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이 때 베드로의 시선은 예수님께 고정되어서 예수님께로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곧 이어 예수님을 바라보던 시선이 다른 것에 빼앗깁니다. 14:30절에,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아닌 바람을 보게 되니까 두려움에 빠지게 되고, 물에 빠지게 되고, 믿음의 경주를 이탈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에 믿음이 온전해 집니다. 다른 것을 바라보면서 그 마음이 빼앗기게 됩니다. 경제적인 염려, 미래에 대한 불안함, 눈에 보이는 비바람에 시선을 빼앗기면,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두려움속에 있을 때에, 더욱 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상황이나 사람들이 있습니까? 믿음의 경주자는 그러한 두려움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나를 도우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더욱 담대하게 믿음의 경주를 감당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또한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도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지만, 여러가지 유혹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물질로 유혹을 하고, 이성으로 유혹을 합니다. 세상의 명예와 인기를 바라보게 하면서 예수님께는 시선을 두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버마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메이슨 의사는, 호전적인 부족들 사이에서 사역할 교사 하 사람이 꼭 필요해서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한 뱃사공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메이슨 선교사는 그 뱃사공에게 그 부족에게 가서 선교의 일을 도울 수 있을지를 물었습니다. 그곳에 가게 되면, 매달 4루피의 월급이 임금이 주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메이슨 선교사는 이 말을 하면서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뱃사공은 그 일로 15루피를 받고 있었기 떄문입니다. 며칠 간 그 문제에 대해서 기도한 후에 그 뱃사공이 선교사에게 왔습니다선교사는 급한 마음에 뱃사공에게 묻습니다. "그래, 어떻게 결정을 했는가? 한 달에 4루피씩 받고 그대는 가겠는가?"  그 때에 그 뱃사공은 말합니다. "아닙니다. 선교사님, 저는 한 달에 4루피를 위하여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가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경주는 돈을 바라보고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명예와 자랑을 위해서 달리는 것이 믿음의 경주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달리는 것이 믿음의 경주입니다. 이 땅에 우리의 시선을 뺏는 것이 많지만, 그 뒤에서 역사하시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서 달리는 경주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 때의 이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믿음의 경주는 인내하는 경주입니다.

본문은 성도들에게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경주는 잠깐 뛰었다가 마치는 100미터 경주와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 앞에 서기까지 평생을 달려야 하는 경주입니다. 예수님 앞에 서기까지 쉬운 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파른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습니다. 좋은 길도 있지만, 거친 길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내가 없으면, 중간에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191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올림픽 경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경기인 마라톤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마라톤은 뜨거운 날씨 속에서 치러졌고, 34명의 선수들이 레이스를 도중에 포기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선수들을 체크하던 경기 진행요원이 커다란 의문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일본선수로 유일하게 대회에 참가한 마라톤 선수인 시소 카니쿠리가 없어졌던 것입니다. 경찰까지 동원되었지만 선수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고, 결국 그를 실종 처리했습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1962년에, 스웨덴의 한 신문사에서 올림픽 50주년 기념으로, 실종된 일본인 마라톤 선수의 행방을 추적하였고, 일본에 살고 있는 당사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50년간 의문에 싸였던 실종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마라톤 코스에서 뛰던 카니쿠리 선수는 레이스 중간지점을 돌고 있을 때에 도저히 더위를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길가에 있던 어느 집의 정원에 쓰러졌고, 이를 딱하게 본 집주인은 딸기 주스를 주며 집에 들어와 잠시 쉬라고 권했습니다. 그 선수는 그 집으로 들어갔다가 졸음을 참지 못하고 깊은 낮잠에 빠졌습니다. 한참을 자고서 일어나 보니 해가 질 무렵이었습니다. 이에 당황한 그는 마라톤 레이스를 포기하고 몰래 일본 행 배편으로 일본에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더위와 고단함, 졸음을 인내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의 마라톤 경주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76세에 스웨덴에 방문하였을 때에 올림픽 위원회에서는 그에게 다시 한번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가 실격이 아니라 실종으로 되었기 때문에 선수의 자격이 아직 유효한 상태였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올림픽 스테디움을 한 바퀴 돌고 결승점을 통과토록 해서 마라톤을 완주한 것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기록상의 마라톤 최장기록 548개월 6, 5시간32, 20.3초라고 합니다. 기네스북에도 올라왔다고 합니다.

믿음의 경주에 뜨거움 만이 있겠습니까? 추위와 굶주림, 가난과 유혹들과 같은 수 많은 방해물들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고, 인내함으로 그 길을 갈 때에 우리는 믿음의 경주에서 완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믿음의 경주는 벗어 버리는 경주입니다.

달리기 경주를 하는 사람은 상식적으로 몸을 가볍게 합니다. 먼저 자신의 몸을 가볍게 합니다. 그리고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옷도 경기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벗어 버립니다. 몸에 액쎄사리도 벗어 버리고 경기에 임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경주하는 사람이 긴 코트를 입고, 이것저것 치장을 하고 경기에 임한다고 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경주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경주에 최적화하기 위해서는, 벗어 버려야 할 것은 벗어 버리고 경주에 임해야 합니다.

본문 말씀에, "모든 무거운 짐들"을 벗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믿음생활을 하면서 자꾸 내 신앙의 무거운 짐과 같은 일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세상적인 즐거움과 자랑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그것을 짊어지고 믿음의 경주를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떤 분들은 사람이 무거운 짐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향한 미움과 쓴 뿌리를 품고서 경주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로 인해서 믿음의 경주에 제동이 걸리는데도 그것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달려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을 다 벗어버리고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가볍게 경기에 임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이순간에 내 믿음의 경주를 누르고 있는 무거운 방해물들이 있으면 그것을 벗어 버리고, 자유케 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리고, 또 벗어버려야 할 것은, 얽매이기 쉬운 죄입니다. 경주하는 사람이 자신의 손과 발을 묶고 있다면, 제대로 달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얽매는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제대로 완주하기 위해서는 그 정해진 법대로 경주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면 실격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경주에서의 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서 살아간다면, 그것이 죄가 되어서 우리의 손과 발을 매어서 제대로 달릴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죄에 얽매이지 않고, 제대로 경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무거운 짐 같고, 나를 얽매는 것 같지만, 도리어 그것이 우리의 믿음의 경주를 바른 길로 이끌어 주며, 우리의 믿음의 삶을 가볍고 힘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말씀대로 경주하기 위해,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날마다 벗어버리는 것이 믿음의 경주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믿음의 경주를 잘 마치고 주님께로 간 스데반 집사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성령 충만한 가운데 사람들 앞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그 때에 유대인들이 그것으로 인해서 스데반 집사님을 잡아서 돌로 칩니다. 사람들로부로부터 돌을 맞아 죽어가면서 스데반은 어디를 바라봤는지 아십니까? 사도행전 7:55절에,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스데반은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질 때에, 어떻게 돌을 피할까 돌을 바라보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쳐다 보며 증오했던 것도 아니고, 피투성이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한탄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는 그 고난의 상황을 인내하면서 하늘을 우러러 주목했다고 했습니다. 그냥 하늘을 본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기 위해서 주목했던 것입니다.

그 때에 스데반 집사님은 두 가지를 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봅니다.

이 땅에서는 영광스럽게 죽지 못했지만, 이 땅에서 사람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이 고난 뒤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도 자신과 같은 고난의 길을 겪으셨고, 모든 경주를 마친 후에 하나님 우편에 계신 것입니다. 이제는 앉아 계시는 것이 아니라, 스데반을 맞이하기 위해서 서서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그 고난 중에서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그 믿음의 경주의 가장 어려운 부분에서,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고, 그 믿음의 경주를 완주했던 것입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올 한해 믿음의 경주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많이 볼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탄이 사자와 같이 두렵게 덤벼들고 때로는 광명한 천사와 같이 미혹한다고 할지라도,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인내하면 믿음의 경주를 지속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또한 지금도 우리를 둘러싼 구름과 같이 허당한 증인들이 우리의 경주를 응원하고 있음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만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더 간절하고 애정어린 눈길로 우리를 주시하고 계시고, 또한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이 우리를 응원하고 계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올 한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기쁘고 힘찬 믿음의 경주를 치르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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