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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가 부르셔서 이곳에 와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기에 지금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있게 된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기독교인이 된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시간, 우리가 관심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일을 하시고자 우리를 부르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8절을 보게 되면, 사도바울은 로마교인들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로마교인이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이유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이를 다시 한번 그들에게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께서 로마교인들을 부르신 이유는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신 일들을 이루고자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로마교인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선하신 일들을 이루고자 하시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셔서 당신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 삼으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시고자 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이 뜻하시는 선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합력하도록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것들 중에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때로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고난과 환란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보기에 좋아하지 않고 악하게 여기는 것 조차도 합력하여서, 당신의 선을 이루도록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서 이루시고자 원하시는 선하신 목적이 있었습니다. 가나안과 애굽 땅에서 발생할 극심한 기근으로부터 아버지 야곱의 가족을 구원하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시고자 사용하시는 방법은 참 고통스러웠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시기를 받고 버림을 받아서 종으로 애굽에 팔려갔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는 자신이 충성했던 주인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버림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모든 것들을 통해서 결국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고, 그로 아버지의 가족과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는 선한 일들을 감당하도록 했습니다. 요셉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드러내는 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모든 것들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은 선하신 목적을 가지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때로 그 선함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가 보기에 좋은 것을 사용하기도 하시지만, 때로는 내가 힘들어하는 사람과 환경, 고난을 사용하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기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부르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모든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한 일들을 이루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셔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선한 일들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사도바울은 29절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그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시고자 미리 정하셨다가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다른 피조물과는 다르게 사람을 지으실 떄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면, 그들을 만드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느끼고 연상케 하는 그런 형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닮아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있을 때에, 부목사로 서울에 있는 한 교회에 부임한 적이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저는 교인들에게 소개가 되었지만, 제 아내와 아이들은 소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제 아내를 보더니, '새로 오신 목사님의 사모님 아니냐?'면서 알아봐 주더랍니다. 그래서 '어떻게 아셨냐'고 하니까 제 아내가 업고 있던 하준이의 모습을 보니까 목사님과 꼭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 때 그 말을 아내에게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등에 업혀있는 아기인데도 제 모습이 그 아이속에 있다니 말입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그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겨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시면서, 세상의 피조물들이 아담과 하와를 보면서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세상을 다스리라고 그 통치권을 위임하셨을 때에는, 아담과 하와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을 대신해서 세상을 잘 다스릴 것이라고 믿고 맡기시고 기대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면서, 하나님의 형상은 점차 퇴색하게 되고, 더 이상 하나님을 드러내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6:5절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이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존재가 아니라, 악한 사탄의 죄악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비록 노아의 홍수를 통해서 세상의 죄악을 제거하셨지만, 또 다시 세상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버린 사람들로 가득차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에 관심하기보다는, 세상을 닮아가기에 바빴던 것입니다.

이러한 로마교인들을 향해서 사도바울은 로마서 12: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교인들이 예수님을 본받고자 원하지만, 그 세대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로마에 있는 여러 우상들과 향략적인 문화들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것들을 본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성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인지, 아니면 세상 사람인지가 구분이 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닮은 모습이 많이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적인 것을 더 많이 닮아가고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이러한 성도들을 향해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이 세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 받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동원하셨습니다.

때로는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과 어려움의 과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 받는 것은 단순히 외형적인 모습을 본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을 본 받을 때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2:5절에서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하면서, 6-8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스스로 낮아지시고 복종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 받음으로, 우리의 외형적인 겸손의 삶이 나타나고, 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을 본 받을 때에, 우리의 삶을 통해서 사랑의 예수님의 형상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본 받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본 받기 위해서는, 나도 예수님처럼 내가 죽는 고통과 자기 부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고난과 환난에 처하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우리의 삶을 통해서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된 우리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 받아, 우리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나게 하시고자 하시는, 지극히 선하신 일을 이루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2. 또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우리로 하나님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신 것은, "이로서 그로 많은 형제들 중에 맏아들이 되게 하려고 하시는 것" 입니다.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맏아들로 깨닫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요한복음 1:12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믿음으로는 모두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가족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다 한 형제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가족을 이루는 믿음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맏아들로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그렇다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한 자격의 자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로서의 고유한 위치를 가지고 계심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아들에게 끈질기게 전도를 받은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는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아들의 인도로 막상 교회에 갔지만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기만 했습니다. 이러한 아버지를 보고 있는 아들은 아버지를 전도한 것이 너무 기뻐서 아버지를 끌어안고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의 육신의 아버지를 예수 믿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들의 기도를 듣고 아버지도 따라서 기도합니다. ", 하나님! 나의 형님이시여..." 아들이 깜짝 놀라서, 왜 그렇게 기도하느냐고 아버지에게 물으니까 아버지가 대답하기를, ", 이 녀석아. 네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으니까 내게는 형님 뻘 정도 되지 않겠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함을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함을 받은 것은, 원래 하나님의 자녀여서가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자로 자녀 삼아주셔서 자녀의 권세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양자로서의 아들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동격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맏아들로 믿고 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에게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맏아들은 독특한 위치입니다. 맏아들은 여러 형제 중에 제일 첫번째라는 뜻만 가진 것이 아니라, 그 가문을 잇는 대표요, 어떤 의미에서는 부모와 동격의 의미를 가집니다.

골로새서 1장을 보면,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하나님의 맏아들 되심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15-18,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예수님은 맏아들의 수준이 아니라, 모든 만물의 으뜸이 되시는 하나님이시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경배하는 삶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머리로서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높여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선하신 목적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선한 일인 줄로 믿습니다.

 

3. 마지막으로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신 것은, 의롭다고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3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 인정함을 받았습니다. 죄인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씻어 주시고, 이제는 구원받아 영생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우리가 비록 이 땅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루기 위해서 고난과 고통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결국 우리를 영화롭게 높여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삶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스럽게 하는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형상을 본받음으로, 하나님을 드러냄으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 안에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드러내지 못하고, 닮지 못하고 세상적으로 살아갈 때에,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다가, 예수그리스도께서 영화롭게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해 주시고자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우리를 부르셔서,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영화롭게 해 주시고자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모든 부르심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는 우리로 하나님의 선한 일을 이루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악한 목적을 가지고서 자신이 이루어 놓은 이 세대를 본받아 살다가 멸망하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로 의롭다고 여겨주시고, 영화롭게 하시고자 저와 여러분을 불러 주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 받아 살도록 하시는 선한 이유가 있으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사용하십니다. 때로 고난과 환난의 환경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겸손하게 만들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사랑할 수 없는 이들을 두시어서, 우리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본 받도록 하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든 것들을 합력하게 하셔서, 결국으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 받는 선하심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맏아들이라고 깨닫고 주님을 예배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시는 선한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아서 이 자리에 모여서 우리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예배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죄인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결국 영화롭게 세워주시고자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꼭 필요한 세대입니다. 우리의 가정 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지닌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습이 이러하겠구나'라고 느끼게 하는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다른 이들이 아니라, 바로 각자 자신들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선하신 뜻을 잘 이루어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고, 또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영화롭게 세움받는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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