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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을 맞습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 주일을 뺀 사십일을 뜻하며, 이를 절기로 지키는 것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셨던 그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우리의 삶 속에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상기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바라기는 이 기간 동안에 우리가 믿는 믿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 사순절 기간 동안에, 사도신경 Apostles Creed 의 내용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경, Creed’, 은 라틴어로 크레도Credo 이고, 그 뜻은 "나는 믿는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인이 믿는 믿음을 요약한 대표적인 신앙고백문이고, 우리교회에서도 매주일예배와 새벽기도회 때마다 사용하고 있습니다.

 

G. Shane Morris 라는 사람이 쓴, 특이한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Christians are Actually Heretics, 이단자들과 같은 기독교인들" 이 글을 많은 기독교인들의 믿음 속에 얼마나 많은 이단적인 요소들이 있는지를 지적하는 글입니다. 저자 모리스는 이 글에서 LifeWay Research 에서 실시한 한 설문조사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미국의 3000명의 사람들이 이 설문조사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 설문조사에서는 아주 기본적인 믿음에 대한 문제를 질문하고 그것에 대한 답을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의 대답 속에는 성서적이지 못한, 잘못된 믿음의 고백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70퍼센트가 오직 참된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 말하면서도, 64퍼센트는 그 하나님은 우상을 포함한, 다른 종교의 예배를 받으신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신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최초의, 그리고 가장 위대한 창조물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50퍼센트 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였고, 많은 응답자들이 모든 사람이 결국에는 천국에 간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대답들은 성서적에 근거한 대답이 아니라, 개인의 생각에 근거한 잘못된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 믿음의 근거가 하나님으로부터 성서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있는 가치에서 온다고 한다면 그것은 기독교인의 바른 믿음이 아니라, 인간적인 신념이요, 이단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도신경은 우리의 믿음을 성서에 근거해서 잘 정리된 신앙고백문입니다. 사도신경은 2세기 말, 로마교회에서 사용되었던 신앙고백문인 '로마신조'가 그 유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 조금 더 다듬어진 사도신경은 주로 세례식 때 세례받는 사람이 교인들 앞에서 암송하면서 그 믿음을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고백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교회에 침투한 이단사상들을 분별하는데 중요한 척도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주일오전예배와 새벽기도회를 시작할 때에 사도신경을 낭독하는데, 이는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또한 스스로 확증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번 사도신경 강해 설교를 통해서, 사도신경으로 고백되어지는 우리의 믿음의 고백을 다시 한번 점검할 수 있고, 그 의미에 대해서 재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먼저, 사도신경에는 여러가지 믿음의 대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전능하다는 것은 무한하신 능력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7:1절에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말합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엘 솨다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고백은, 곧 이어서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믿음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전능하심으로 이 천지를 만드셨고, 우리는 이 천지만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이 아덴, 지금의 아테네를 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도시를 가보니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수 많은 신들을 세워놓고 섬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알지 못하는 신"이라고 새겨진 단도 있었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수 많은 신들을 섬기지만, 혹시라도 자신들이 알지 못해서 빠뜨린 신이 있을까봐,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신에 대해서 섬기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한계인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지혜롭고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무한하신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아테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죄로 인해서 희미해지고 왜곡되어져서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고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기에는, 사람의 지혜와 경험이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직접 나타나셨고,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드러난 모습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서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고, 그 믿음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내가 그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해서 알려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전하는데 "바로 그 신은 천지의 주재이시고,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그 만드신 것을 친히 주시는 창조의 하나님 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천지만물을 볼 때에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다윗은 시편 8:3-4절에서 이 세상을 보면서 노래합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하나님은 우리가 이 천지만물을 보면서, 다윈의 진화론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과 같이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찬양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우리가 매일 보고 있는 이 천지만물의 모습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2.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말할 때에 가져야 할 믿음 중에서 하나는, 또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대한 고백이 따라야 합니다.

신약에서 '전능자'로 번역된 '판토크라토르' "모든 능력이 있으며,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천지를 창조하신 것으로부터 확인이 되지만, 동시에 그 전능하심으로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하나님의 사자와 아브라함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99세된 아브라함에게 내년 이 맘 쯤에 내가 다시 돌아올텐데, 그 때에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를 사라가 장막 문에서 듣고서 속으로 웃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늙고 노쇠하여서 아이를 낫는 것은 그 동안의 경험상으로나 상식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기 계신 분 중에서 60세 이상되신 분께 내년 이맘 쯤에 임신할 것이라고 한다면 웃지 않으실 분이 있으시겠습니까? 농담으로 여길 것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사라가 속으로 웃으시는 것까지 들으시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천지뿐만 아니라,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아이 낫지 못하는 여인에게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인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문제가 전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쉽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라와 같은 믿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일은 안 될 것 같다고 여기니까 하나님도 하실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에 경험으로 보았을 때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의 한계로 여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그러신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하나님의 주권과 함께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셔서 사람의 상식으로는 잉태하지 못하는 사라를 잉태케 하실 수도 있지만, 또한 반대로 잉태를 할 수 없도록 하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나에게 임하기를 기대하지만,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사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시기 위해서 가지신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시기 위한 주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를 이루시기 위해서 그 능력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중동의 민속 설화인 "알라딘" 이라는 이야기에는 지니라는 정령이 나옵니다. 지니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 줄 만큼 막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램프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그 램프를 문지르면 램프에서 나와서 그 램프를 문지른 사람에게 하는 말이 이것입니다. "주인님,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 능력의 지니는, 자신을 밖으로 나오게 한 사람을 주인이라고 부르면서 소원을 이루어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때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하면서 왜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시지 않느냐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 되시며, 당신이 시작하신 선한 일들을 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하나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믿고, 그 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우리가 포함되어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3. 이제, 하나님이 전능하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임을 믿고, 그 주권을 믿는다면, 이제 그 믿음의 고백은 나를 만드신 창조의 목적에 관심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심으로 천지를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각 사람을 만드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실 때에는 목적이 있으십니다.

성경에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시고, 창조를 모두 마치신 후에는 1:31절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물을 보시고, 좋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조물로 즐거운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고 마음에 근심하시는 일이 창세기 6장에 나옵니다.

창세기 6:5-6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만드신 사람들이 더 이상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과 생각, 계획이 모두 악할 뿐이었습니다. 곧 그들의 마음과 생각, 계획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과는 동떨어져서, 자신들의 생각과 계획, 목적대로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번창하고 잘 산다고 하지만, 그들이 잊어버린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들이 악하다는 것은 비윤리적이고, 범죄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러한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살아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창조물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창조하신 목적을 구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그 전능하심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창조하신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이 우연하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우연한 존재에게는 그 존재의 목적이 없거나, 자신에게로부터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지음받은 사람들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10:31절에 사도바울은 사람이 먹고 사는 이유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합니다. 곧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은, 살기 위한 수단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이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을 보시면서 세상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와 같이,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다."라는 그 모습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것을 합니다. 내가 보기에 심히 좋은 것은, 아주 중독이 되어서 하게 됩니다. 그렇게 살게 되면, 하나님의 주권을 잃어 버리게 되고,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지 않은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신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떠하겠습니까? 내가 하는 일들이 나를 의식하고, 다른 사람보기에 좋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 위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열심이어야 합니다. 자녀를 양육하고, 가정은 운영하고, 사업과 직장 생활을 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그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공부하고 열심히 수고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성공해서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하고, 자신을 높이고자 한다면 그 목적이 잘못된 것입니다. 나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려고 이곳에 와 있다면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의 고백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천지를 만드시고, 나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는 것은,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이 곳에서 살게 하시고, 일하게 하시는 그 목적을 깨달아, 매 순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함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에 고백을 살펴 보았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인 줄로 믿습니다. 그 전능하심으로 이 천지만물을 지으셨고, 또한 모든 사람들을 지으신 창조주가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그 전능하심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을 주장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 통치가운데 있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능력으로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이루고자 하신 당신의 선한 계획을 이루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창조가운데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전능하신 창조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분이 우리를 만드신 그분의 계획을 따라서, 그 다스림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좋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나의 계획과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을 깨닫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능력 안으로 들어가서, 그 능력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신 원래 창조의 목적을 이루어나가는 성도의 삶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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