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582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지난 주일에, 사도신경에 고백되어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그 전능하심으로 하늘과 땅을 만드셨다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러니 하늘과 땅을 볼 때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을 때에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전능하심으로 만드신, 당신의 피조물을 통하여, 당신이 계획하고 뜻하신 바를 이루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주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만드신 후에,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습니다. 사람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기를 바라시며 만드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은, 내 자신과 사람들을 좋게 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늘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그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성도의 자세인 줄로 믿습니다.

 

사도신경에는 하나님에 대한 또 다른 우리의 믿음이 나와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과 우리가 무슨 관계인지를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하나님께 아버지 되어달라고 간청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그 권세를 허락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허균이 지은 한국의 고전소설인 홍길동전에 보면, 주인공 홍길동이 한탄하면서 자신의 집을 떠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때 말하기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제가 어찌 떠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나게 됩니다. 홍길동의 아버지는 조선 세종 때 좌의정인 홍상직이였지만, 그의 어머니가 첩이었기 때문에 서자였습니다. 그래서 첩의 아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를 두고서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한을 가지고서 아버지의 집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반대이십니다. 도리어, 죄인된 사람들을 부르셔서 아버지로 부르도록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피조물인 사람에게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이 땅의 어떠한 종교도 그들이 믿는 신에 대해서 아버지라고 말하는 종교는 없을 것입니다. 불교에서 '석가모니'를 아버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슬람교에서 '알라' '"알라 아버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믿는 신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믿음의 대상으로 숭배하거나 그 가르침을 따라야 할 의무를 가질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입니다.

갈라디아서 3:26절에 보면,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다고 믿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죄로 인해서 불화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까지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긴밀한 관계로 불러 주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버지'도 아니고, '아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아빠를 부르듯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친밀함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왜 하나님은 우리를 그토록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는지, 그 믿음의 의미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우리를 책임져 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육신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늘 그 자녀에게 관심하시며 돌보십니다. 자녀의 필요를 알고 그것을 채우시고자 열심히 일을 하시고, 좋은 것으로 공급해 주시고자 하십니다.

저는 제 아버지를 기억하며 자녀들을 돌보기 위해 힘쓰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봅니다. 저희 아버지는 가족을 책임지시기 위해서 해외 근로자로 10년 동안, 가족과 떨어져 그 뜨거운 중동의 사막에서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자식의 일이라면 큰 관심을 가지시고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시려고 애를 쓰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를 관심하시고 돌보시고 책임져 주심을 우리로 믿게 하심인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육신적인 필요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상태와 필요를 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필요하심으로 공급하시며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공급하심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질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된 저와 여러분에게 좋은 것으로 공급해 주시는 분인 줄로 믿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실 만큼 전능하신 분이시고, 우리에게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실 만큼 친밀하신 분인 것입니다. 우리가 할 것은, 우리가 아빠라고 부르며,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을 의지하는 일입니다.

 

'썬데이 스쿨 타임지'라는 책에 실린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어린 아들이 오래 묵은 사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아버지는 나무아래에서 아들이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래된 그 나무가지는 아들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어져 부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비키라고 소리쳤고 사람들은 나무 곁에서 멀리 피했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아들이 곤경에 빠진 것을 보고 두 팔을 벌리며 소리쳤습니다. "얘야, 어서 뛰어내려라. 아빠가 받을 테니 걱정 말고 뛰어내려라." 아들은 잠시 아래를 쳐다보더니 자신있게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아빠,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요. 그렇죠? 아빠! 나는 아빠를 믿어요." 그리고 난 후 아들은 안전하게 아버지의 두 팔로 뛰어 내렸습니다. 그러한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아버지는 가슴이 뭉클해지며 마음에 깨닫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저는 하나님만을 믿습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어 주었듯이, 하나님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돌보아 주시고 책임져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과 육의 필요를 아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공급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됨을 믿고,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가서 그 분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녀된 성도들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것 중에서 하나가 징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되심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분이 되신 것으로도 드러납니다.

히브리서 12:6-8,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아버지의 많은 역할 중에서, 중요한 역할은 징계입니다. 사실 내 자식이 아니더라도, 다른 아이들의 삶에 관심하며, 그 필요를 공급하며 돌보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자식이 아닌 남의 자식의 잘못에 대해서 가르치고 징계하는 일은 또 다른 일입니다. 아무리 다른 집 아이를 좋아해도, 그 아이의 잘못에 대해서 꾸짖거나 징계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학교의 교사도 학생들을 제 자식처럼 징계하다가는 큰 일 납니다. 제가 여러분의 자녀를 징계한다면 큰 시험에 들 것입니다. 더군다나 오늘날에는 자기 자식도 징계하지 못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미국과 같은 곳에서는 아이를 징계하다가 아동학대라고 해서, 아버지가 도리어 징계를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심의 증거 중에서 하나가 자녀를 징계하는 것입니다.

"장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곧 모든 사람들이 징계를 받을 만한 일들을 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자라나면서 부모님께 꾸지람을 듣거나 매맞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어린 자녀가 아무리 똑똑하고 잘 하려고 하더라도 완벽한 아이가 없습니다. 부모가 보기에는 훈계가 필요하고 징계가 필요한 무지함과 연약함이 있는 것이 자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모님의 꾸지람을 통해서 잘못된 것을 깨닫게 되고, 매를 통해서 그 길에서 돌이키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완벽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라도 하나님 아버지 보시기에는 하나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살아가기에는 무지하며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악한 길로 접어들 때에 우리를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셔서, 우리로 바로 잡으시는 분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책망과 징계에 대해서 학대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도리어 그것은 우리로 바른 길로 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줄로 믿습니다. 도리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된 길로 갈 때에 징계를 멈추지 마시고, 나로 당신의 자녀임을 드러내 주십시오."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갈 때에, 하나님의 징계를 구하며, 그것을 감사하게 여기는 성도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살아가는 성숙한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되시는 것은 우리로 당신의 유업을 상속케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갑부라고 널리 알려진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부자가 호텔에 가서 방을 찾았습니다. "여보시오, 이 호텔에서 가장 싼 방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이에 호텔 매니저가 말합니다. "아니 당신은 부자가 아닙니까? 당신의 아들은 늘 가장 비싼 방을 이용하는데, 당신은 왜 싼 방을 구하십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때 이 부자는 농담 삼아 말합니다. "내 아들에겐 나 같은 부자 아버지가 있지만, 나에게는 그러한 아버지가 없다오."

자녀에게 가진 권세 중에서 하나가, 아버지의 것을 내 것으로 물려받는 상속권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단지 아버지의 자녀라는 이유 때문에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것을 물려 받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땅 사는데 한 푼도 보태 준 것도 없고, 집을 짓는데 벽돌 한 장 날라 준 것 없지만, 도리어 아버지께서 버신 돈을 쓰기만 했는데도, 그것을 아들에게 상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그 상속권을 주장을 합니다. 만약 아버지가 그 상속을 자식에게 불공평하게 했다고 생각하면, 아버지를 욕하고 그 인연을 끊는 일까지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것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처분하는 것인데, 자식은 마치 자신의 것 인양 그 상속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17절에도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도 하나님께 상속받을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먼저 경험해야 할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고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된 상속자로서 당하신 고난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셨던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된 저와 여러분들도 이 땅에서 살 동안 고난을 받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상속자로서의 고난은, 그 고난 이후의 있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곧 영광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물려 받는 것은 아들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양자 삼으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로 하나님의 나라, 하늘나라를 주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구원에 이르게 하시고,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사시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자녀로, 상속자로 삼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 땅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상속이 없다고 하더라도 너무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가장 영원하고, 가장 소중한 하나님의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녀들에게 물려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때로는 세상적으로 유능한 아버지가 계시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소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자녀들은 아버지가 가진 물질과 명예, 권세를 상속받아 누리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렇지 못한 자녀들은 때로 금수저 물고 태어난 이들을 부러워하며 동경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고 고백하는 우리 자신을 생각할 때에, 세상의 어떠한 유능한 아버지를 둔 자녀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셔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공급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때로 환란과 고난을 통해서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선하게 사용하시기도 하십니다.

또한 우리를 사랑으로 징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자녀의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징계하시며, 양육하십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은 우리로 당신의 나라를 상속할 수 있도록 하시고자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줄로 믿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고난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능력있고, 책임져 주시고자 하시는 아버지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분에게 가까이 가지 않고 의지하지 않으면 다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주님께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버지 된 권세를 우리가 누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도,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임을 영광스럽게 여기며 자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물려 주시고자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더욱 소망하며, 결국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면서 그 유업을 누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실시간 인터넷 예배 접속 Rejoice 2020.03.21 6328
525 06/25/2023 -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로마서 13:8-10] Rejoice 2023.08.10 331
524 06/18/2023 - 사는 이유 [고린도전서 10:31-33] Rejoice 2023.06.20 1259
523 06/11/2023 - 하나님의 꿈 [잠언 29:18] Rejoice 2023.06.20 937
522 06/04/2023 - 성령님의 책망 [요한복음 16:1-4] Rejoice 2023.06.20 525
521 05/28/2023 - 결정적인 만남 [누가복음 5:1-11] - 정병화목사 Rejoice 2023.06.20 521
520 05/21/2023 - 사명 받아 들이기 [에베소서 2:6-10] - 한대섭 목사 Rejoice 2023.06.20 406
519 05/14/2023 - 누가 예수님의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인가? [마가복음 3:31-35] Rejoice 2023.06.20 384
518 05/07/2023 - 주님을 얼만큼 사랑하십니까? [요한복음 21:13-19] Rejoice 2023.05.11 987
517 04/30/2023 - First Things [Acts 2:42-47] - Greg Hackett 감리사 Rejoice 2023.05.11 325
516 04/23/2023 -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 되도다 [요한복음 20:24-31] Rejoice 2023.05.11 732
515 04/16/2023 - 나도 너를 보낸다 [요한복음 20:19-23] Rejoice 2023.04.18 826
514 04/09/2023 -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마가복음 16:1-11] Rejoice 2023.04.18 439
513 04/02/2023 - 나귀에 오르신 예수님 [마태복음 21:1-11] Rejoice 2023.04.18 288
512 03/26/2023 -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한복음 8:1-11] Rejoice 2023.04.18 461
511 03/19/2023 - 당신은 복있는 사람입니까? [누가복음 6:20-26] Rejoice 2023.04.18 766
510 03/12/2023 -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가복음 2:13-17] Rejoice 2023.04.18 442
509 03/05/2023 -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누가복음 3:7-9, 15-17] Rejoice 2023.04.18 421
508 02/26/2023 - 회개 위에 임하는 은혜 [요나 3:3-10] Rejoice 2023.02.28 948
507 02/19/2023 - 백성이 너무 많다 [사사기 7:1-8] Rejoice 2023.02.28 723
506 02/12/2023 -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로마서 2:25-29] Rejoice 2023.02.28 589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29 Next ›
/ 2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샌안토니오 한인연합감리교회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of San Antonio

Tel: 210-341-8706 / Add: 5705 Blanco Rd. San Antonio TX 78216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샌안토니오 한인감리교회 Korean Global Methodist Church of San Antonio Tel: 210-341-8706 / Add: 5705 Blanco Rd. San Antonio TX 78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