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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상대방에게 들을 때에 듣기 좋은 말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정말 똑똑해, 지혜로워보여"라고 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똑똑해지기 위해 열심히 공부도 하고, 그것도 안되면, 지적으로 보이려고 고상해 보이는 안경을 쓰고 다니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나를 보고, "넌 정말 미련해 보여, 넌 왜 하는 짓이 그렇게 미련 곰탱이 같니..."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싸움 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기를 꺼려 합니다.

성경에서도 보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잠언의 말씀을 보면, 지혜로운 사람은 어떻게 행하고, 어리석은 자는 어떤지를 서로 비교하면서 지혜로운 사람의 모습으로 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에도 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읽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라고 합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말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 한다니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지혜로운 자세는 무엇이고, 성도는 어떠한 면에서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 할 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먼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지혜롭다고 여겨질 때에, 도리어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아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을 향해서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합니다. 고린도교인들 중에는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이 세상에서 자신이 지혜있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들에 대해서 어리석은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으로서 아무리 똑똑해서 이 세상의 사는 이치를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사실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에 그것은 하늘의 이치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겨질 때에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의 어리석음을 살피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맹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잠언 13:1절에서도,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리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내가 다 알고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배울 것도 없고, 들을 만한 것도 없다고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한 사람은 거만한 사람이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다른 사람의 훈계를 경청하여 듣는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스스로가 지혜로운 사람인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는 스스로가 지혜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다른 이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안에는 자신들이 추종하는 사람들로 당파가 생겼는데 서로에 대해서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은사들이 많이 있었는데 자신이 가진 은사가 최고라며 서로에 대해서 경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교회 안에 분열이 생기고, 관계가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지혜로움을 주장하다가 갈등과 분열을 가지고 온다면 그 자체가 지혜로운 처사가 아닙니다.

 

미국의 34대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가 사관학교 2학년이었을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사관학교에서는 신입생들을 상급생들이 붙잡고 기합을 넣고 호통치며 군기를 잡곤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신입생 한 명이 뛰어가다가 아이젠하워를 들이받았습니다. 아이젠하워 역시 잘됐다 생각하고 그를 세워놓고 윽박을 지릅니다. "너의 이처럼 부주의한 모습은 명예로운 사관생도가 아니라, 겨우 시시한 이발장이 같은 행동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부주의 할 수 있는가?”그러자 그 신입생은 어깨를 탁 펴더니 큰 소리로 당당하게 말하더랍니다. ", 선배님! 저는 이발사였습니다. 저는 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이발사로서 가족들을 부양해 왔습니다!" 아이젠하워는 갑자기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가 설마 이발사였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부주의한 말과 행동으로,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 헌신한 후배의 삶을 무시하고 모욕한 것 같아서 후회가 막급하였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아이젠하워는, 다시는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언행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지혜있는 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까지 알기에 교만해질 수 없고, 자신의 약함을 알기에 강함을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미련함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정말로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사람이 지혜로운 자인가 하면, 자신의 강점, 잘아는 것들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아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무엇을 잘 알지 못하는지, 약한지를 알게 되면, 그것을 채우게 되고, 그래서 더 지혜로워지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지혜라고 해서 다 같은 지혜가 아닙니다. 세상의 지혜가 있고 하나님의 지혜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깨닫게 되는 것은, 세상적인 지혜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5절에,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하였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많이 알고 강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한없이 미련하고 약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들이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게 하시고자 그들의 어리석음을 드러내기도 하십니다.

그 방법 중에서 하나가 그들의 꾀에 그들이 빠지게 하시는 일입니다. 19절에 보면, "하나님은 지혜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고 하였습니다. 스스로의 꾀에 빠지게 하셔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닫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경, 에스더서에 보면, 하만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페르샤제국의 총리대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페르샤 제국의 왕인 아하수에로 왕에 이어, 그 나라 서열 두번째인 사람입니다. 하만은 백성들이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고 받들어 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실제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며 보는 이들마다 절을 하고 그 앞에서 굽신거렸는데, 유독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 모르드개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만은 그러한 모르드개에 대해 악한 감정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를 죽일 계획을 하고,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모든 유대인들도 함께 죽일 방도를 계획했습니다. 하만은 왕에게 유대인들이 나라에 위협이 된다고 거짓으로 일러서 유대인들을 죽일 조서를 받습니다. 그리고 하만은 모르드개를 직접 잡아 죽일 높은 장대를 마당에다가 세웠습니다.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어 보였습니다. 자신이 참 능력있고 지혜가 있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를 틀어 버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만이 죽이려고 하는 모르드개를 갑자기 높여 주십니다. 그리고 하만의 계획이 악한 음모라는 것을 왕으로 알게 하십니다. 결국 왕은 하만의 악함을 알고,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운 그 장대에 하만이 매달아 죽이고, 유대인들을 미워하며 죽이려고 했던 이들을 도리어 살육당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지혜있다고 여기는 자를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심으로, 그들의 어리석음을 확인케 하십니다.

하만과 주위 사람들은 모르드개가 어리석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만에게 비위를 맞추고 인정해주면 미움을 사지 않고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텐데 그렇지 못한 모르드개의 모습이 한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불의하고 교만한 자에게 편승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모르드개가 지혜있는 자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지혜를 의지했던 하만을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심으로 이를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결국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의 지혜와 생각이 헛되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사도바울은 시편 94:11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허무한 지를 아시는데, 문제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니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대로 살다가 허무하게 인생을 마치니 말입니다.

 

3.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지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24절에 보면,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알려주신 가장 큰 지혜 가운데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사람의 지혜로는 생각할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인 줄로 믿습니다.

사실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세상적인 지혜에 사로 잡혀서, 스스로 자신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그는 지혜롭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을 잡아 괴롭히고 죽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구원하는 능력이 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았을 때에, 사도바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2:2절에 말합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사도바울은 더 이상 세상의 지혜에 얽매여, 자신이 스스로 지혜롭다며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가치가 있고 고귀함을 알았기에, 그 동안 자신이 의지했던 세상적인 지혜는 분토와 같이 버렸습니다. 그 이후에 사도바울은 사람으로부터 난 지혜를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열심을 냈던 것입니다.

 

4. 그리고,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지혜요 능력으로 믿게 되니까 깨닫게 되어진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인에게 말합니다. "사람을 자랑하지 말아라." 고린도교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적인 스승인 바울, 아볼로, 게바를 자랑하면서 당파를 만들고 서로 시기하며 갈등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속하였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속한 지도자를 자랑하며, 그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너희들은 사람에게 속한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들이 자랑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려주라고 보내주신 사람이고, 너희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사람을 놓고서 자랑하며 분열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고린도교인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사람의 죄를 대속해 죽으셔서 사람들의 죄의 값을 대신 치르셨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사람들은 예수님의 것이 되었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너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대신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인 줄로 믿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에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지게 되면 그 신앙이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떠한 사람이던지 간에 죄가 있고 연약하기 때문에, 사람이 요동함에 따라 그 신앙도 요동하고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궁극적인 그리스도인의 자랑은, 하나님의 지혜요,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6:14절에서,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였으며 그것이 곧 그의 전도의 내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그러기에 이를 깨달은 사도바울과 같은 사람은, 세상의 지혜자를 자랑하고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임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며, 높이는 사람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세상에 과학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세상의 지식과 지혜가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여기고, 세상의 지혜를 추구하면서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에 따르면, 이 사회는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8절에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에게 하나님의 지혜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으로 살다보면, 세상적으로 볼 때에 어리석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초대교인들도 세상사람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박해를 받고 핍박을 받는데도, 세상 사람들을 피해 땅속 깊이 굴을 파고 그곳에 들어가서 믿음을 지켰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지만, 하나님보시기에는 누구보다 지혜로웠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갈 때에,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게 보기도 합니다. "네가 지금 어떤 형편인데 한가하게 예배나 드리고 있냐?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정직하게 사업을 하고 손해를 감수하려고 하느냐?" 어떨 때는 그러한 말이 일리가 있고 자신이 어리석어 보일 때도 있지만, 사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어리석다라는 말을 듣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 지혜로운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좀 어리석다는 말을 들으며 살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를 추구하다가 하나님의 지혜를 소홀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대해서는 조금 어리석어도 좋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서 더욱 알고자 힘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알아야 하나님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에 어느 지혜자도 사람을 구원할 만한 지혜를 가진 자가 없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구원할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도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죄로 인해 죽어가는데, 그것도 알지 못하고 살아갔던 사람에게 진정한 지혜가 있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죄를 담당케 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구원받게 되는 능력을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삶을 따라감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은 세상 지혜에 대해서는 좀 어리석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신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말씀을 알기에 더욱 힘쓸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세상의 허망한 것들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역사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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