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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는 240여 개의 나라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나라 중에서 자신의 나라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국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가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중화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넓은 영토를 가졌기 때문에 대국으로서의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서방의 많은 선진국이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중국인의 사고속에서는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긴다고 합니다.

중국이 큰 대륙을 가지고 세상의 중심이라는 사상을 가진데 반해, 작은 나라이면서 그러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입니다. 세계지도에서 이스라엘의 지도를 보게 되면 나라이름인, ISRAEL 을 쓰기에도 좁아 보이는 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마음속에는 세계의 중심이 자신의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많은 민족들이 있지만, 특별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해주셨다는 선민사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상의 중심으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중에서도 중심은 예루살렘이고, 예루살렘의 중심은 성전이고, 성전의 중심은 지성소이고, 지성소의 중심은 언약궤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바로 그곳이 세상의 중심이고, 이것이 이스라엘에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세계 중심의 나라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짓도록 하셨던 성막과 함께 지어진 상자입니다. 언약궤는 조각목으로 만들고, 겉은 금으로 씌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하나님의 법이 쓰여진 십계명 돌판이 들어 있고,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언약궤가 그토록 중요한 것은, 그 언약궤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성막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없다면 다른 성물이나 건축물들은 큰 의미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가 있음으로 해서 다른 모든 것들이 의미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여호와의 언약궤를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빼앗깁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언약궤를 가지고 전쟁에 참여했는데 이기지도 못하고 그 귀한 언약궤를 빼앗긴 것입니다.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커다란 비극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언약궤에 대한 믿음이, 언약궤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겼던 믿음이 흔들리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를 빼앗기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깨닫고 바로 잡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를 알고서 이스라엘이 블레셋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바로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전심으로 나아가는 구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말씀을 통해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우리가 언약궤를 빼앗긴 사건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은 언약궤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에 나타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역사상 이스라엘을 힘들게 만들었던 민족들 중에 하나가 블레셋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과의 전쟁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 무기에서도 차이가 났습니다. 이스라엘은 구리와 주석으로 만든 합금인 청동을 가지고 무기를 만들었는데, 블레셋 사람들은 청동보다 훨씬 튼튼하고 강한 철로 만든 무기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무기의 차이를 가지고 전쟁이 치르려 하니 불리했습니다.

언약궤를 빼앗기기 전에 치렀던 전쟁에서도 역시나 무기가 강한 블레셋이 우세했습니다. 그래서 일차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졌습니다. 이 전쟁으로 사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도 대책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인 장로들이 모여 앞으로 어떻게 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 의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졌습니다. “우리가 언약궤를 실로에서 가지고 와서 우리 중에 있게 하면 원수들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그렇게 했습니다. 실로에 있던 언약궤를 전쟁터로 옮겨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할 때에 언약궤를 전쟁터에 옮김으로, 당연히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언약궤를 본 이스라엘 군사들은 사기가 충천해서 큰 소리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얼마나 소리가 크던지 땅이 울렸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함성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사기가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블레셋 사람들도 언약궤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더욱 낙심이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말합니다. “우리에게 화로다. 애굽을 재앙으로 치신 신이 이르렀으니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랴하면서 낙망을 했습니다. 그래도 한편으로어찌 히브리 사람들의 종이 될 수 있겠느냐? 대장부같이 싸우자고 격려하며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것과 정반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크게 패해서 삼만명이나 죽었습니다. 그리고 전사한 삼만명 중에는 그 당시 영적인 지도자인 엘리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제사장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것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긴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언약궤는 패배와 사망의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의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이를 경험했었습니다. 언약궤를 가지고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들어갈 때에 물이 가득 흐르고 있는 요단강이 그들의 앞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이때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강물에 첫발을 내 디뎠을 때에 요단강 물이 갈라지고 그 사이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넜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들어갈 때에 그 앞 길을 가로막는 막강한 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여리고성이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그 성을 무너뜨릴 수도 없었고, 그 성안에 있는 여리고성 사람들과 대면해서 제대로 싸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언약궤를 앞에 세우고 7일 동안 여리고성을 돌 때에 그 성이 무너져 내리고 큰 승리를 가져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들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언약궤를 메고 진중에 들어갔을 때에는 어떠한 능력과 변화도 없었습니다. 도리어 전쟁에서 철저하게 폐하였고 언약궤를 빼앗겼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서 패 한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약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으로 착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언약궤 자체가 능력이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통해서 나타났던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들이 소유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강한 블레셋을 이길만한 히든 카드로 언약궤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곧 하나님은 없어도 하나님의 능력은 언약궤를 통해서 소유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옮겨다니는 대로 그 역할을 잘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언약궤를 소유함에 있지 않습니다. 언약궤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언약궤는 사실 없어도 되는 것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언약궤는 마치 우상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소유하는데는 성공했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데는 실패했습니다.

사무엘상 3:1절에 보면, 그 당시의 영적인 상태를 말해주고 있는데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영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있던 상태가 이스라엘의 상태였고,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에게 중대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언약궤는 있는데 정작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상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곳입니다. 교회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 있고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곳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사라진 교회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외형적으로는 언약궤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원수를 물리친 여리고성의 경험과 약속의 땅을 가로 막은 요단강을 가르는 능력은 상실한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언약궤를 소유함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믿음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외형적 교회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때에 교회 안에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나타나며 성도들은 이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약궤만 소유하고, 하나님과 함께 함을 잃어 버린 교회와 성도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2. 사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블레셋과의 첫번째 전쟁에서의 패배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각성의 때였습니다.

일차 전쟁에서 패한 후 장로들이 모일 때에 궁금해 했던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전쟁에 패배한 원인을 제대로 알고서 그 중심을 바로 잡을 때였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무기나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언약궤의 등장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번째의 패배를 통해서, 제대로 된 질문을 했지만 어리석은 답을 가지고 행동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었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했고, 그 다음 전쟁에서 승리할 하나님의 개입과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약궤를 메고 전쟁터로 뛰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는 무기가 약하거나 언약궤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가 그 가운데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문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게 되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먼저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마음이 예전과 같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무엘은 여호와께 돌아오는데 전심으로 돌아올 것을 말했습니다. 즉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온전히 가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전에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섬기면서 살았는데, 가나안에 들어오면서 하나님을 향한 전심의 마음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중에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던 이유 중에 하나가 그들이 섬기는 다른 이방의 신들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광야생활 중에는 하나님만 보였는데,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살다가 보니까 가나안에 있던 우상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곧 세상의 우상에게도 그 마음이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고도, 바알이나 아스다롯도 자신들을 복 되게 할 것 같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전심을 드리지 못하고, 다른 우상들과 같이 그 마음을 나누어서 섬겼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위상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바알과 아스다롯과 같은 우상과 같은 선상에서 취급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어도 언약궤만 가지고 가면 승리가 있을 것이라는 우상을 대하는 태도로 언약궤를 취급했던 것입니다.

어떤 결혼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자신의 아내를 아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도 아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 남자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전심으로 아내를 사랑하지 못한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심을 원하셨습니다. 다른 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그 마음이 빼앗기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이방신들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을 제거할 때에 하나님께 전심을 드릴 수 있고, 그분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전심을 원하십니다.

전심을 드리기 위해서는 나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하나님 이외의 것들을 제거하는 일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돈도 믿고, 세상 사람들도 좀 믿고, 세상의 풍습들도 좀 믿고 하면서, 하나님 말씀도 믿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심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우상들과 함께 우리의 마음을 나누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전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전심인지, 반심인지, 아니면 마음이 전혀 없는지를 누구보다 확실하게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다른 것에 빼앗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떨 때는 예배를 드릴 때에도 우리가 전심을 드리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몸은 와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빼앗겨 있을 때에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보다는 세상적인 방법을 더욱 의지하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언약궤만 매고 다니는 격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신명기 6: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은, 전심으로, 전 성품을 다해, 전 힘을 다해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 언약궤만 들고 다니는 삶이 아니라, 전심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전심을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전심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죄인된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독생자, 자신보다 더 귀하다고 여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사랑함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전심으로 사람들을 찾아오셨고, 전심으로 사랑해 주셔서 저와 여러분이 구원함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능력이 언약궤를 가지고 다니는 것에 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외형적인 교회 안에 머물러 있고, 외형적인 신앙생활을 반복한다고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때에 그 능력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빼앗겼던 마음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전심으로 나아가고 섬길 때에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나타나는 줄로 믿습니다. 날마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섬김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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