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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마다 무엇인가를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하루하루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그 목적한 바를 얻어자 열심을 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구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냐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자신의 스승에게 무엇인가를 구하기 위해서 끝까지 열심으로 따라 다녔던 사람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구하는 바를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받은 사람입니다. 바로 엘리사입니다.

엘리사는 원래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습니다. 스승 엘리야를 만났을 때에도 소 열두겨리, 곧 소 열두쌍인 24마리를 가지고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자신을 제자로서 부를 때에, 엘리사는 즉시 소 한쌍을 잡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다음에 엘리야를 따라서 선지자 생도로 입문을 하게 됩니다.

엘리야는 당시에 크게 쓰임받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지역에 제자들이 있었고, 그들을 일들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사에게는 대 스승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엘리야 선지자를 따라다니면서, 그 스승에게 구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감이었습니다. 스승 엘리사의 영적인 능력을 간구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엘리사가 그 스승에게 구한 것과 그 이유를 함께 나누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예수님의 제자된 기독교인으로서 이 시대에 어떠한 것을 구하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시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부르신 것을 엘리사는 물론 엘리야 선지자를 따르는 다른 제자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길갈에서 엘리사와 함께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벧엘로 부르셨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그곳에 남으라고 하고서 혼자 떠나려고 합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스승과 함께 가겠다고 맹세까지 하면서 고집을 피웁니다. 그렇게 해서 엘리사는 스승과 함께 벧엘에 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또 다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여리고로 부르셨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가 벧엘에 머물기를 원했지만, 또 다시 엘리사는 스승을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여리고까지 따라갑니다. 여리고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요단으로 오라고 하십니다. 역시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를 따라 요단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스승 엘리야 선지자가 하늘로 들려 올라가기 직전까지 따라 오게 된 것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이토록 끝까지 따라다녔던 것은 단순히 석별의 정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함께 지내다가 헤어지는 것이 아쉽고 서운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엘리사에게는 더 중요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도 엘리사가 자신을 계속 따로 오는 무슨 이유가 있음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묻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주기를 원하느냐?”라는 것입니다.

이 때에 엘리사는 그 질문을 듣고, 주저하지 않고 자신이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합니다. "스승님, 당신의 영적인 능력이 나에게 갑절이나 임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 엘리야는 여러가지 영적인 능력을 행했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850 1로 영적인 전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요단강을 건너올 때에도 엘리야는 자신의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쳐서 물을 갈라지게 한 후에 그 갈라진 마른 땅을 건너서 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구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엘리사는 단순히 스승이 소유했던 영적인 능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엘리야 선지자를 잇는 후계자로 삼아줄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공동번역에 보면, “스승님, 남기실 영검에서 두 몫을 물려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현대어 성경에서는선생님께서 에언자들에게 남겨주실 영력 가운데서 제게는 두 몫을 물려 주셔서 제가 맏아들처럼 스승님의 남은 사역을 수행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해석되어 있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구하는 것은, 아버지의 후계자인 장자들에게 주는 상속권과 관련이 있습니다.

신명기 21:17절에 보면,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하였습니다.

엘리야에게 많은 제자들이 있었지만, 스승의 뒤를 이어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로서 세움을 받고자 스승에게 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스승을 찾아서 배우며 구하려고 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세상적인 출세와 성공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하여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서 노하우를 배웁니다. 자신을 성공하게 해 줄 것 같은 사람들을 자신의 멘토로 삼으면서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기도 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합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했던 질문을 예수님께서도 똑같이 두 제자에게 하십니다. 이 때 두 제자가 말합니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간구합니다. 그들은 사실 주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그 때까지만 해도 잘 알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것 정도로 알았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야고보와 요한의 간구하는 소리를 듣고 화를 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도 그 자리를 원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먼저 그 자리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엘리사처럼, 영적인 능력을 간구하고, 그 상속권을 주장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겠습니까? 세상적인 물질과 명예들, 권력들을 주장하며 간구하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스승이 소유한 하나님의 영적인 능력을 간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참 드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조차도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할 영적인 것들에 대해서 소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악한 영의 역사가 만연한 사회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달랐습니다. 그가 부르심을 받을 때에 소 열두겨리를 가지고 밭을 갈았는데 그것은 24마리의 소입니다. 그는 이미 물질적으로는 풍요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고, 영적인 능력 가운데 살아가기를 소원했던 것입니다. 엘리사는 적어도 세상의 풍요함 가운데서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영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들을 하는 것에 대해 더 가치있게 여겼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스승을 향하여서, 스승이 소유한 영권을 구하고, 또한 자신도 스승과 같이 선지자로서 살아갈 것을 구했던 것입니다.

 

2. 그런데 이러한 엘리사의 간구함을 들은 엘리야는 말합니다.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 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이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스승이 무엇을 구하냐고 물어서 대답을 했는데, 기껏 대답을 들은 스승이 어려운 일을 구한다고 말하면서 난색을 표합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두 가지 의미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엘리사가 구하는 선지자로서의 삶이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 동안 엘리야 선지자는 수 많은 어려움과 죽음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혼자서 이방의 선지자들과 맞서야 했고, 아합왕과 이세벨의 공격을 피해서 절망 가운데서 있기도 했습니다. 이 때에 얼마나 절망스러운지,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제발 나를 죽여주세요"라고 말할 때도 있었습니다.

선지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과 대적하는 자들을 향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 일이 쉽지 않기에 엘리야는 엘리사가 구하는 것에 대해서,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한다고 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는, 이러한 선지자의 뒤를 잇는 일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일입니다. 마치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여호와를 모세에게 지명하셨고 그를 세우도록 하셨던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결정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기를,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엘리사를 떼어 놓고서 가려고 했던 엘리야가, 이제는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승천하는 것을 끝까지 볼 때에 네 소원하는 것이 이루어 질것이라고 말합니다. 끝까지 그 간구함을 붙잡고 있을 때에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지간에, 엘리사가 스승의 영적인 능력을 구하는 것은, 앞으로 자신도 스승의 뒤를 이어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결단과 헌신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여러가지 일들을 구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많은 부분들은 가급적이면 편하고 쉬운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꼭 편하고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도리어 세상의 편함과 성공을 부정해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엘리사와 같이 때로는 불편하고 힘든 일이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간구하는 삶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하나님을 위하여서 어려운 일도 좀 간구하면서 살았으면 합니다. 엘리사가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스승에게 있었던 하나님의 영적인 능력이 없으면 안되기에 이를 구했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어렵고 힘들 일들을 구하며 이를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의 영적인 능력과 권세를 더욱 간구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그리고 둘이 길을 갈 때에,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 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렇게 엘리야와 엘리사는 헤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승천하고 갈 때에, 엘리야의 몸에서 겉옷이 떨어지게 되고, 엘리사는 그 옷을 취합니다. 그리고, 요단강을 그 옷으로 치면서 말하기를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넙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이제 엘리야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 엘리사의 하나님이 되었음을 요단강을 가르는 사건을 통해서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가 주신 스승의 영적인 능력이 엘리사에게 임하였고, 스승의 하나님이 자신의 능력이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이제 엘리사도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어서 세상으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엘리사와 대조적인 사람들이 나옵니다.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엘리야의 제자들입니다. 엘리야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길갈에도, 벧엘에도, 여리고에도 그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엘리사에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하니, "나도 안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들은 스승이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스승을 따라서 가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스승이 떠날 것이라는 불안함을 가지고 엘리사에게 물어보지만, 스승이 떠나면 자신들은 무엇을 해야할지 알지 못한채, 멀리서 스승 엘리야와 엘리사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면서, 흩어졌던 모습과 같이, 자신들이 어떠한 일들을 해야할지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스승의 떠남을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스승이 사역했던 그 시대,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시대를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영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잡아 죽이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자신의 민족들을 향해서 그 스승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사람이 필요함을 깨닫고, 자신이 그 스승의 역할을 감당하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단순히 스승의 후계자가 아니라, 당시에 영적으로 악한 세대를 바라보면서, 스승과 같은 거룩한 하나님의 영감에 사로 잡혀 하나님의 거룩한 일들을 하기를 소망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결단의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능력을 주시고, 그를 그 이후에 귀하게 쓰시는 것을 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이 땅을 바라볼 때에, 우리도 엘리사와 동일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영에 의해서 사람들의 사탄의 거짓 가운데서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물질과 권력, 허황된 것을 따라 사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며, 사람이 만들어 놓은 법으로 하나님의 법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세대를 살아가면서, 믿는 자들이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의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서 사용되고자 하는 엘리사와 같은 구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그의 시대, 그 세대가 마감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나타나야 하는 것은, 엘리야가 담당했던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할 차기 세대가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때 등장한 사람이, 엘리사였습니다. 당시의 영적인 어둠을 바라보면서, 그 시대를 향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사명감을 가지고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능력으로 스승과 같이 그 일들을 감당하기를 소망하면서 스승을 끝까지 따라갔던 것입니다.

그러한 그에게 하나님의 영적인 능력이 주어지게 되고, 이제 엘리야의 하나님이, 엘리사의 하나님이 되는 영광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엘리사와 같은 믿음의 후계자들이 꼭 필요한 시대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죽어가는 이 시대를 향하여서 복음을 전할 엘리사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편하고 쉽고 영광된 일들을 찾아 믿음을 저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힘들고 어렵지만, 그러기에 더욱 하나님의 영적인 능력을 간구하며, 사명을 감당할 엘리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의 영광의 보좌 양 옆에 앉게 해달라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들이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는데, 누가 보좌에 앉을 것인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것이고, 너희는 내가 받는 잔과 세례를 받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곧 고난의 잔과 세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가 받은 고난과 죽음을 경험하는, 지극히 어렵고 힘든 길을 예수님께서 가셨듯이 끝까지 따라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능력,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고, 이를 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엘리사처럼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그 어려운 일을 감당하기로 결단하는 기독교인들은 또한 하나님의 영적인 능력을 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교회에 영적인 능력을 서로 공유하며 유산으로 물려 줄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엘리야와 같은 스승, 엘리사와 같은 제자들이 세대를 이어서 나타나며, 이 시대를 향해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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