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1153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지난 11 1, 온라인 미디어 래드바이블이 공개한 사진이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브라질의 한 거리에서 촬영된 것인데 탯줄도 안 잘린 신생아이를 강아지가 조심스럽게 물고서 어디론가 가고 있는 사진입니다. 이 강아지는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 통을 뒤지다가 탯줄도 안 잘린 채 버려진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강아지는 그 버려진 신생아를 조심스럽게 물고 바로 병원으로 갔습니다. 무사히 병원에 도착한 아기는 의료진들의 돌봄을 받았고 감사하게도 몸에 별 이상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아기를 병원까지 데리고 간 강아지는 그 이후에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쓰레기 통에 버려진 채 죽어가는 그 아기를 불쌍히 여기는 강아지의 따뜻한 마음을 읽으면서 흐뭇하기는 하지만, 반대로 갓 나은 아이를 쓰레기 통에 버린 엄마의 매정함을 함께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오죽 형편이 좋지 않았으면 어머니로서 그렇게 했겠는가 하는 측은한 마음도 생깁니다.

오늘날, 사회가 현대화 되면서 사람과 사람간의 정이나 측은히 보는 마음들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힘들게 살 때에는 서로를 의지하면서 정을 나누면서 살았습니다. 함께 협력해야지 살 수가 있었고 그러기에 서로의 힘듬에 대해서 잘 알았습니다. 그러하다가 보니 서로의 사정에 대해서 측은한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현대화되고 개인주의화 되면서, 사람들이 서로를 사무적으로 대하고, 경쟁상대로 여기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당해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매정하게 살아가는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러한 사회적인 변화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요, 그러한 사회가 복된 사회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기독교인은 이 땅에 긍휼함의 가치를 몸소 실천하며, 이 땅을 복되게 하는 사명이 있을 깨닫게 됩니다. 긍휼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에 대해서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는 서로를 긍휼히 여겨야 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의 긍휼의 대상이 되는 것을 싫어할 것입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불쌍하게 보이는 형편에 있는 것이 무엇이 좋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긍휼히 여김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다지 완벽하지 못하고, 연약하고 무지하고 죄가 많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몸이 병들어서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 신경성으로 인해서 몸에 이상이 생기는데도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고민을 합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여러가지 문제들로 인해서 힘들어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형편들을 지내면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한 환경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보기에도 내 자신이 불쌍해 보일 때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편 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면서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참 복된 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의 연약함과 무지함, 죄됨을 긍휼하게 여겨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서는 53:6절에,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양과 같이 어리석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길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죄를 지어도 그것이 죽을 일인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 살고 똑똑하게 산다고 하더라도 하나님보시기에는 어리석은 양과 같은 존재가 사람입니다. 목자가 없으면 금방 다치고 죽게 되는 연약하고 무지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형편을 하나님께서는 긍휼하게 보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사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 주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많은 일들 중에서 병을 고치고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시는 일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들을 고치실 때에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서 고쳐주셨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바라보시면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때로 믿음이 없음을 보시고 꾸짖기도 하셨습니다.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고 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아버지를 꾸짖으면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떨 때는 그들의 믿음을 묻지도 않고 고쳐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보시고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함을 받은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잘 하고 자격이 있어서가 결코 아닙니다. 도리어 더 무지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정도까지 죄인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셨냐 하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저주하는 사람들까지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던 사람들을 보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학대하고 죽음의 자리까지 몰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긍휼이 저희들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셨고, 나아가서 그들을 구원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아서 구원함을 받았고 이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다른 이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다른 이들을 복되게 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예수님은 원하십니다.

사람을 긍휼히 여길 때에 받는 복은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이 복이 됩니다. 그런데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이 사람으로부터도 받지만 하나님으로부터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이들을 긍휼히 여기고 행하는 모습을 보시고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잠언 19:17절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하였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단순히 감정적으로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그를 도와 주는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때에 이는 여호와께 꾸어드리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의 선행을 갚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긍휼히 여기며 행하는 선한 일을 하나님께 보시는 것입니다. 그 선한 일들을 보시고서 하나님께서 그 도와 준 것에 대해서 여러가지 모습으로 갚아주십니다.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었는데, 그 보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다른 이들을 긍휼히 여겨서 행하는 일들은 손해가 아닙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김으로 베푸는 애정 어린 조언과 격려, 시간, 금전, 노력, 여러가지 수고들은 손해가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을 꾸어드리고,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고 복을 받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이들을 긍휼히 여기는 것은 복이 되지만, 그렇지 않고 긍휼히 없이 대하는 것은 도리어 복이 아니라 화가 되기가 쉽습니다.

누가복음 6:37,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긍휼히 여김을 받고 용서함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자꾸 비판과 정죄함을 받아서 속상한 일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자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모습은 없는지에 대해서 살펴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다른 이들을 정죄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정죄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긍휼을 베푼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긍휼을 베푸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비판하는 일은 다른 이들을 비판하는 일도 되지만, 자기 자신이 비판의 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뉴욕에 있는 공항 중에, 라구아디아(LaGuardia)라는 공항이 있습니다. 그 공항은 라구아디아라는 뉴욕시장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Fieorello LaGuardia 는 미국의 경제공항과 세계 제2차 대전과 같은 험악한 시기에 뉴욕시장을 했던 사람입니다.

라구아디아가 판사로 있을 때에 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1935 1월 추운 겨울 저녁, 라구아디아가 판사로 법정에 있었을 때에, 가게에서 빵을 훔치다가 붙잡혀온 할머니가 재판을 받기 위해서 들어왔습니다. 그 할머니는 자신이 왜 빵을 훔쳐야만 됐는지 자신의 어려운 형편을 판사에게 말했습니다. 그녀의 딸은 병들었고, 사위는 자신의 병든 딸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 와 중에 두 손주는 먹지 못해 굶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눈물로 자신의 형편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딱한 형편을 들은 가게 주인은 자신의 고소를 철회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말하기를, 그 할머니는 범죄자고, 그녀를 벌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교훈을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라구아디아는 한숨을 쉬며 그 할머니를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을 벌해야겠습니다. 법에는 예외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십달러 벌금이나 십일동안 구금에 처하겠습니다.” 그렇게 재판을 한 후 라구아디아는 자기 주머니에서 10달러를 꺼내 들고는 법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이 할머니의 벌금 10불은 제가 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법정 안에 있는 모든 분들께 50센트의 벌금을 부과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손주를 먹이기 위해서 빵을 훔쳐야만 하는 이 도시에 저와 여러분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법정에 있는 사람들이 오십센트씩을 거두게 되고 총 $47.50가 모아졌습니다. 라구아디아는 그 모아진 돈을 그 할머니에게 주면서, 굶고 있는 손주들에게 먹을 것을 사주라고 주었습니다. 그 다음날 뉴욕시 신문에 그 사건이 널리 보도되었고, 그 이후 라구아판사는 뉴욕의 시장이 되었고, 뉴욕 시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면서 3번씩이나 시장을 역임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을 긍휼한 마음으로 섬길 때에 다른 이들을 복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로 대해 주십니다. 곧 다른 이들을 긍휼히 여기고 섬기는 일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며, 또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는 복된 일인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었기에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가지고 비판하고 정죄하고 심판하신다고 한다면, 저와 여러분은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왕에게 쫓기는 형편속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노래하며 의지하고 있습니다.

시편 59:17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다윗은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 없이는 자신이 더 이상 살 수 없음을 잘 알았기에 하나님을 향해서 긍휼을 간구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이 행함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제 이러한 긍휼의 마음이 긍휼함을 받은 우리에게 전달되었고, 그 긍휼함을 품고서 살아가는 것이 성도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는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가지신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의 자녀와 배우자를 볼 때에 긍휼한 마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가깝게는 우리 옆에 계신 분들을 볼 때에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긍휼한 형편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형편이 도리어 복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로를 긍휼히 여김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그 문제가 해결되고 극복되어지는 복이 경험되는 줄로 믿습니다. 다른 이들을 긍휼히 보는 성도요, 교회요,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는 복이 누려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샘터질문

1.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긍휼하게 여기셔서 어떠한 일들을 하셨습니까? 

2 당신은 어떠한 사람을 볼 때에 긍휼한 마음이 생깁니까? 

3. 우리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도와 줄 수가 있겠습니까? 

4. 자신이 힘들 때에 긍휼히 여김을 받았던 적은 언제였습니까? 그 때의 느낌은 어떠했습니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실시간 인터넷 예배 접속 Rejoice 2020.03.21 6329
465 05/01/2022 - 하나님이 주인이신 가정 [사무엘상 8:1-5] Rejoice 2022.05.03 968
464 04/24/2022 - 부활을 믿고 복음을 전파하라 [마가복음 16:9-16] Rejoice 2022.05.03 587
463 04/17/2022 - 예수 부활의 큰 기쁨 [마태복음 28:1-10] - 부활주일 Rejoice 2022.05.03 537
462 04/10/2022 - 주가 쓰시겠다 하라 [마태복음 21:1-11] - 종려주일 Rejoice 2022.05.03 859
461 04/03/2022 -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에베소서 5:15-21] Rejoice 2022.04.05 1199
460 03/27/2022 -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로마서 2:1-5] Rejoice 2022.04.05 794
459 03/20/2022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고린도후서 7:5-11] Rejoice 2022.04.05 944
458 03/13/2022 - 재앙을 모면한 자들 [출애굽기 9:13-22] Rejoice 2022.04.05 692
457 03/06/2022 - 당신은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누가복음 5:27-32] Rejoice 2022.03.08 872
456 02/27/2022 - 나는 어떤 자루인가? [마태복음 9:14-17] Rejoice 2022.03.08 1209
455 02/20/2022 - 에덴동산에서 살기 [창세기 3:1-6] Rejoice 2022.03.08 687
454 02/13/2022 -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1-5, 31] Rejoice 2022.03.08 743
453 02/06/2022 - 농부의 마음을 품은 밭 만들기 [마태복음 13:3-9] Rejoice 2022.03.08 673
452 01/30/2022 - 내 마음이 주께 열납 되기를 원합니다. [시편 19:7-14] Rejoice 2022.03.08 985
451 01/23/2022 -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세아 6:1-6,] Rejoice 2022.01.22 1902
450 01/09/2022 -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됩시다. [요한복음 4:19-24] Rejoice 2022.01.22 1287
449 01/02/2022 -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3] Rejoice 2022.01.22 938
448 12/26/2021 -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합시다 [마태복음 25:14-30] Rejoice 2021.12.26 1067
447 12/19/2021 -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마태복음 2:1-12] Rejoice 2021.12.26 838
446 12/12/2021 - 하나님의 열심, 예수 그리스도 [이사야 9:1-7] Rejoice 2021.12.14 1226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29 Next ›
/ 2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샌안토니오 한인연합감리교회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of San Antonio

Tel: 210-341-8706 / Add: 5705 Blanco Rd. San Antonio TX 78216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샌안토니오 한인감리교회 Korean Global Methodist Church of San Antonio Tel: 210-341-8706 / Add: 5705 Blanco Rd. San Antonio TX 78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