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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도 자신 나름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4절에 보면,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탄생이, 이 땅에 생명의 빛이 온 사건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빛으로 임하게 되니까,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고, 14 절에 보니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졌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탄생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이 땅에 충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충만이라고 하는 것은, 차고 넘친다는 의미입니다. 쓰고도 남는 것입니다.

가뭄으로 인해서 메말라가던 호수에, 폭우가 쏟아져서 호수에 물이 차고 넘치는 것이 충만입니다. 어둠속에서 조그마한 촛불을 가지고서 간신히 가고 있는데, 태양이 온 세상을 빛으로 비치는 것이 충만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 땅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됐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삶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여 임하였고, 이제는 이 세상에 넘쳐 흐르는 삶을 살아가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임한 이 땅의 충만한 은혜와 진리가 무엇이며, 또한 저와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를 어떠한 모습으로 경험하고 있는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생명의 빛으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이 땅은 생명의 빛으로 충만했던 것이 아니라, 죽음과 어둠으로 충만했었음을 의미합니다.

세상이 어둠 속에 있었던 모습은 창세기 1장에 천지창조 때에 빛을 주시기 전에 모습이 그랬습니다.

창세기 1: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고 했습니다. 흑암 가운데 있다는 것은, 이 땅에 질서도 없고, 존재의 목적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생명의 빛으로 오시기 전에, 이 땅의 영적인 상태가 빛이 지어지기 전, 땅의 모습과 같았던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영적 어둠과 죽음의 상태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이 땅도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자신의 땅과 사람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나의 주인이신 주님을 기쁨으로 영접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영적인 어둠 가운데서, 이 땅이 누구의 것인지, 자신이 누구의 것인지를 잃어 버리고 살았습니다. 내 자신이 내 삶의 주인이라고 여기며 내 뜻대로 살아가는 삶이 되었습니다. 이 땅의 것들을 내 것이라고 여기며 주인행세를 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참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오시니, 그것이 인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할 수가 없었기에, 예수님을 죽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아직도 영적 어둠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여깁니다. 내 생명, 내 시간, 내 물질, 내 가족, 내 교회, 내 형편, 내 생각,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여기기에, 내 계획대로 살다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해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생명의 빛으로 이 땅에 오시고, 그분을 우리의 삶에 모실 때에 깨닫게 되는 것이,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이시며 나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소유권이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나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내가 누리는 생명, 물질, 시간, 나의 모든 미래까지도 주님의 것임을 깨닫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헌신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내 자신을 하나님의 것으로 여기지 못하고, 자꾸 내 것으로 주장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직도 내 심령에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사람들을 어둠 충만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생명으로 이끌고자 오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빛을 깨닫지 못하고 거부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요한복음 3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자신들의 죄가 드러날까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에, 베드로의 반응이 그랬습니다. 어느 날 밤, 어부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던졌어도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아침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제 고기잡는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가려 하는데, 생전 처음 보는 젊은 사람이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시오."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베드로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많은 물고기를 잡습니다. 베드로의 어부 경험을 통해서 볼 때에 있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그 청년이 신적인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청년인 예수님 앞에 달려가서 무릎을 꿇고서 부탁을 드리기를 "주여, 나를 떠나소서.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한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니까 자신의 죄가 깨달아집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몸이 지저분하고 더러우면 빛 가운데로 드러내려고 하지 않고 자꾸 감추려고 합니다.

전에 어느 가정에 심방할 때의 일입니다. 외출을 하기 위해서 몸을 깨끗하게 닦고 머리를 손질했습니다. 그리고 심방을 갔습니다. 심방 가서, 교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제 손을 보게 되었는데, 손 톱 사이에 때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외출하기 전에 마당 일을 했는데, 미쳐 손톱에 흙이 들어간 것이 빠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을 안 다음부터는 저도 모르게 자꾸 손을 감추게 되었습니다. 손 가락을 괜히 웅크리기도 하고, 손을 뒤로하면서 손톱의 때가 보이지 않도록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생명의 빛으로 우리 가운데 오실 때에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이 우리의 어둡고 더러운 죄의 모습인 것입니다. 나의 부족함과 악함이 드러납니다. 내 스스로를 주인으로 하며 살았던 일들에 대해서, 이것이 죄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기에 내가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빛의 삶을 살아가게 될 때에, 우리의 죄가 더욱 발견되게 됩니다. 전에는 죄라고 여기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내 속의 깊이 숨겨진 어둠들까지도 깨닫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콜로라도, 덴버에 있는 미국 공군사관학교 예배당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들어가면 눈에 확들어 오는 것 중에 하나가 스태인 글라스입니다. 스태인 글라스 창문이 들어가면서부터 제단까지 있는데, 처음에는 어두운 색의 스태인 글라스로 시작해서 제단으로 갈수록 점점 그 색깔이 밝아집니다. 제단으로 갈 수록 내 모습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으로 나아갈 때에 우리 자신의 모습을 더 정확히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 감추어진 죄가 더욱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내 죄가 드러날 때에 주님이 내 가운데 더 가까이 임재하셨음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죄의 내용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오는 것이 주님을 주인으로 하고 모시는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오시게 되면, 우리의 죄의 내용은 자연스럽게 발견되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2. 또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어떠한 충만이 있습니까? 이 땅에 은혜가 충만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곧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이 땅에 은혜가 충만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빛으로 온갖 더러운 죄악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드러내신 것은, 그들의 죄를 정죄하시고자 하심이 아닌 것입니다.

요한은 특별히 16절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전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요한은 모세의 율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 율법도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였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알려 주셔서, 그들에게 죄가 무엇인지를 알고서, 죄를 행하지 못하도록 하신 은혜의 도구인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지 못하였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도리어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악을 더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주로 다른 이들의 죄를 들추어내는 것을 보면, 그것으로 인해서 사람을 정죄하고 공격하려고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그전에 없었던 인신공격으로 인해서 대선 주자들에 대한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를 드러내시고자 하셨던 것은 그 죄를 드러내시고, 그것을 치료하셔서 고쳐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병원에 있는 수술실을 보면, 수술대 위에 커다랗고 밝은 등이 있습니다. 몸을 가르고 수술을 할 때에 그 뱃속에 있는 암덩어리나 상처들, 부러진 것들, 더러운 것들을 낱낱이 보고 조치를 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더러운 것은 제거하고, 잘못된 것은 제대로 잡아주는 것입니다. 작은 촛불 하나로 그 일들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의 병을 밝혀 보여주시는 생명의 빛입니다. 그 빛으로 나올 때에 죽을 사람이 죄를 깨닫고 고침을 받아서 영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 죄를 주님께로 가지고 오는 것은 사람들의 몫입니다. 그리고 고쳐주실 것을 믿고 맡겨드리는 것은 사람의 몫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고쳐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몫인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죽을 병에서 고치시기 위해서 자신이 대신 그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의 병을 고쳐주시고 구원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 은혜의 충만합니다.

그런데, 은혜의 충만함이 없는 세상을 어떠한지 아십니까? 이 세상에 죄로 인한 정죄함으로 충만했던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로 죄를 짓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지은 죄를 가지고 정죄를 합니다. 죄를 지었으니 죽어야 될 존재라고 사람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임하심이 있는 곳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서로의 부족하고 죄 된 부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비판하고 정죄함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용서하고 기도하며 품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 안에 예수님의 은혜가 더욱 충만케 되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사도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통해서 이 땅 가운데 진리가 충만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곧 이 땅 가운데 진리가 아니라, 거짓가운데 있었음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진리를 말씀하셨지만 안타까운 것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말씀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8:45절에 보면,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거짓이라서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8:44절에 보면, 마귀의 거짓에 속아서, 거짓을 진리로 믿고, 진리를 거짓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어음이니라" 하였습니다.

마귀의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고, 두번째는 진리가 없는 거짓말장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도 알게 모르게 거짓말을 하면서 삽니다.

교실에서 두 소년이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무엇때문에 다투고 있니?" 한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저희가 10달러짜리 지폐를 동시에 한 장 주웠는데요, 그런데 누구든지 가장 심한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주기로 했거든요" 이 말을 듣고 선생님이 꾸짖습니다. "누가 거짓말을 잘하는지 내기를 한다고? 창피한 줄 알아라, 내가 너희들 만할 때에는 거짓말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선생님의 말을 들은 아이들이 동시에 말합니다. "선생님이 가지세요"

사람의 거짓말은 웃어 넘길 수 있지만, 사탄의 거짓말은 차원이 다릅니다.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사탄의 말은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성경에 처음 등장할 때에도 거짓말장이로 등장했습니다.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아지고,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의 말이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죄가 들어왔고, 이 세상은 죄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사탄의 거짓말은 죽음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래서 사탄을 살인지요, 거짓말 장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사탄의 거짓말이 세련되어졌다고 합니다. 사탄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라고 격려한다고 합니다. 열심히 봉사와 헌금도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예수는 믿지 말라고 한답니다. 신앙생활을 교양을 위한 취미생활 정도로 하라고 합니다. 십자가의 보혈은 생각하지 말고, 십자가를 장식용 정도의 의미로 사용하라고 합니다. 교인은 많아도 좋으니, 그리스도인을 증가시키지 않도록 마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땅에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사탄의 거짓의 말이 공존합니다. 사탄의 거짓의 말은 세상적으로 그럴싸하게 들리지 모르지만 결국 사람을 멸망길로 이끕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요, 믿는 사람들이 믿고 따라야 할 생명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구원의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제 무엇이 진리인지를 깨달아서 거짓 가운데서, 다시 죄인의 삶을 살아가지 않도록 진리를 이 땅에 충만케 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충만함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진리의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생명의 빛으로 이 땅에 임하신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충만케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우리의 더러운 어둠의 죄들이 드러남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더 가까이 갈 때에, 우리의 죄는 더욱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자신이 더욱 의롭고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진다면 문제입니다. 도리어 더욱 죄가 드러나고 회개하고 온전케 되어지는 것이, 우리 가운데 생명의 빛된 주님이 더욱 가까이 할 때에 경험되어지는 것입니다.그러기에 숨겨진 죄가 드러나고 마음이 괴롭습니까? 기뻐하십시요. 생명의 빛되신 주님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역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빛되신 주님은, 이 땅에 은혜를 충만케 하신 분입니다. 드러난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죽으시면서 까지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 또한 은혜의 충만함 가운데서, 상대방에 대해서 정죄하며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참고 인내하며 품어주는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진리의 충만함을 주셨습니다. 사탄의 거짓은 세상을 죽음으로 몰아가지만, 오로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만이 우리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가운데, 사탄의 거짓을 분별하고, 진리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던 것과 같이,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여서, 그 은혜와 진리가 다른 이에게로 넘쳐 흐를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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