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동네에 들어가는 길 옆에는 마을의 소식을 알려 주는 게시판이 있습니다. 마을에 알릴 소식이 없으면, 게시판을 그냥 비워두는 것이 아니라, ‘Fun Fact’ 라고 해서 세상에 있는 흥미로운 상식
이야기를 게시해 놓습니다. 그래서 게시판 옆을 지날 때면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하고 눈길을 주곤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이러한 내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평생 60년을 사는 사람들은 뭔가를
기다리면서 5년의 시간을 보낸다.” 인생의 1/12을 뭔가를 기다리면서
쓴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을 기다리기도 하고, 신호등 앞에서, 쇼핑을 한 후
계산대에서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립니다. 병원이나 관공소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것은 이제 일반적인
일입니다. 지난
주간에 ‘블렉 프라이데이’가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서 나갈 일이
있어서 밤에 상점이 모여있는 몰 주변을 둘러 보았더니, 사람들이 한 가게 앞에 담요를 쓰고 길게 늘여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가게인가 보니까 “Game Stop”이라는 전자 오락과 관련된 가게였습니다.
그분들은 상점이 열리는 밤 12시, 그 첫
시간을 기다리면서 거기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은 얼마나 가치있는 것들을 기다리며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그 삶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인 저와 여러분들은,
어떠한 가치있는 것들을 기다리며 인생의 1/12을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가치있는 기다림은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한 평생을 한 사람만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렸던 세례요한이라는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 보면, 요한의 부모는 요한이 이미 출생하기 이전에 이미 그가 앞으로 오실
주이신, 메시야의 길을 앞서 예비할 사람으로 지목 받았음을 천사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이 성장하면서 늘 사모하며 기다렸던 분은 바로 메시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실 구원자,
메시야를 늘 고대하며 기대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대림절 기간 우리가 어떠한 심령으로 기다리며 맞을 수 있는가를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기독교인은 늘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소망하며 기다리고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을 당할 때마다 기다리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 고난 가운데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 히브리 말로,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살았습니다.
애굽
땅에서 노예로 학대를 받을 때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유다왕국이 망해서 포로로 잡혀 갔을 때에도 메시야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제국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에도 이스라엘은
메시야를 기다리며 자신들을 적국의 통치에서 구원해 주실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구하고 기다렸습니다. 세례요한은
그 누구보다 간절히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로마로부터 해방되어 구원받을 것을 바라며 메시야를 기다렸지만, 세례요한은 달랐습니다. 메시야의 오심을 예비하기 위해서 세례요한은 세상을 향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면서 사람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요단강에서 죄사함의 물세례를 베풀기도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이스라엘의 구원이 로마의
속국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죄로부터의 구원이어야 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세례요한에게 예수님의 소문이 들려 옵니다.
예수라는 사람을 통해서 굉장한 일들이 일어난 다는 것입니다. 죽을
병에든 백부장의 종을, 백부장의 믿음만을 보시고, 환자는 보지도 않으신 체 말씀만으로 고쳐주셨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렸다는 살렸다는 소문도 들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성을 가실 때에 한 장례행렬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한 과부의
독자아들이 죽은 것입니다. 남편도 없이 힘들게 키운 하나밖에 없는 젊은 아들이 그 어머니보다 먼저 죽었으니
그 과부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 그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어머니에게 '울지 말라' 하시고,
그 행렬을 세우시더니, 관에 죽어 누워있는 그 아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죽었던 그 아들이 일어나 앉고 말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아들을 그 과부에게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를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소문은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졌습니다. 세례요한이
그러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흥분이 되었고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시켜서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20절에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세례요한은
그 누구보다 이 땅을 구원할 메시야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소망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가운데서는 세례요한과 같이 이 땅에 메시야의 대망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대망하는 자가 많이 줄어 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가 아니라, 사람들 스스로가 세운 구원자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질을 나의 구원자로 세워놓고 그것을
기다리며 목놓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라스베가스 도박장에서 대박이 터지기를 기다리며 인생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회의 유력가들을 구원자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내 스스로가 구원자가 되어서 가정을, 사회를 구원해 보겠다고 열심히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관심하지 않으며 메시야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땅의 진정한 구원은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25:9,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우리
믿는 자들은 이 땅에 있는 죄의 현상들,
각종 문제들을 해결하시고 구원하실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며 기다리는 자들인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며 기다리는 자에게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응답해 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구원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오실 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질문을 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22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뭉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서 35장에 기록되어 있는 메시야가 하실 일들에 대한 부분적인 묘사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가 오셔서 하시는 일이었고, 지금 그 일이 자신을 통해서 성취되고 있으니,
예수님께서 그 메시야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1절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육신으로 몸소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 가운데서 하신 일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그 말씀을 증거하시고, 그 말씀을 그 삶을 통해서 그대로
행하셔서 성취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임재인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편 130:5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임재, 구원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떠한 신비적인 체험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말씀을 바라고 구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삶을 통해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를 소망하면서 그 말씀에 더욱 충성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대림절의 성도의 기다림의 자세가 되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기다리심을 기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탄생을 소망하며,
이 땅의 구원을 소망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23절에는
“보라 처녀가 잉탱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 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이 땅의 구원을 기대하면서 세례요한과 같이 하나님의 구원, 메시야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들보다 먼저 더욱 애타게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죄의 권세 가운데서 전쟁하며 싸우며,
하나님과 대적하며 살아가는 이 땅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외면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모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을
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에서 종이 되어 고생을 받기 전에는 하나님에 대한 부르짖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사는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들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고난이 없고 삶이 안정적이 되어도 하나님의 임재를 늘 기다리고 사모하면서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러한 생활이
되면 더 이상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소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생명의 삶으로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간구함으로 하나님을 구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심을 기대하고 소망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사람들의 기다림보다도 하나님의 기다림이 간절했던 기간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 땅에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위하여서 그 때를 기다리며 계셨던 주님의 모습입니다. 마리아가
배속에서 아기 예수가 탄생하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그러한 마리아를 보면서 손 꼽아 그 날을 기다렸던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산타
크로스에게 밀려서 소외된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서 구원자로 통치자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이 땅 가운데서 더욱 하나님의 강력하신 말씀의 지배와 통치가 있음을 우리는 위해서 기도하며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대림절은
분명,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는 메시야의 오심을 기대하고 사모하면서 지내는 기간입니다. 오늘날, 이 땅은 하나님의 구원을
더욱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간구할 사람들은,
우리 기독교인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그
어떤 사람을 기다리거나 물건을 기다리는 것보다 세례요한과 같이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더욱 사모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기독교인입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심을 우리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삶 속에서 구원자로 인정하고,
그분을 사모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주님의 임재가 말씀을 통해서 체험되는 대림절기라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