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구분 되어지는 특징 중에 하나가 하나님께 예배 드린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시간만 있으면
세상으로 나아가려고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시간만 나면 하나님 앞으로 나와 예배드리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세상의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특권임을 우리는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아무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에서 구원함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며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죄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을 믿는 사람만이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릴까 하는 것이 예배자인 저와 여러분들의 관심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가셨다가 우물 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만나 대화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유대시간으로 육시되었을 때에 우물에 물을 기르러 왔습니다. 유대시간으로 육시라고 하면,
오늘날 시각으로 대낮인 정오를 말합니다. 그 여인이 아무도 오지 않는 그 뜨거운
시간에 물을 기르러 온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전에 여러 명의 남편이 있었고 그들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흉이 되어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그 뜨거운 정오 시간에 물을 길으러 왔던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과의 대화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관심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예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어디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냐고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가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어떠한 예배가 되어야 할지 다시 한번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예배의 장소가 아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할 때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어디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조상 사마리아사람들은 그리심산 정상에
성전을 지어 놓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했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곳 중에서 진정한 하나님을 예배하기에 합당한 곳은 어디냐는 질문입니다. 이렇게
두 곳에 성전이 세워지게 된 데에는 아픈 이스라엘의 역사가 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의 열두지파가 갈라지기 전에는 솔로몬이 지었던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에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리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왕국은 209년간 존속하다가
주전 722년에 앗수르의 침략으로 멸망했습니다. 이 때 앗수르 사람들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이스라엘 왕국으로
이주시켰고 이로 인해서 북이스라엘의 후손들은 이방민족과 혼혈이 되었습니다. 남유다왕국도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갔지만 그들은 그들의 혈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에 왔을 때에 남유다 사람들이 한 일은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을 본 사마리아 사람들이 함께 동참하기를 원했지만, 남유다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민족과 혼혈되었기에 부정하다고 여겨서 그들의 제의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축복의 산’으로 불리는 그리심산 정상에 ‘사마리아인 성전(Samaritan Temple)’을 세우고 하나님을 예배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주전 2세기 말, 유대인들이 그리심산을
공격해서 그리심산에 있던 사마리아인 성전과 마을들이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여인은 어디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장소임을 여쭙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그리심산도 말고 예루살렘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장소에
제약을 받지 않고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할 때가 오는데 바로 '이때'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은혜 가운데 예배할 때가 이르게 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전에는
성전에서 속죄의 제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성전마당에서 속죄제물이 죽고 그곳 번제단에서 태워짐으로 사람이 죄로부터 속죄되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할 수 없었고 성전마당에서만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곳에 죄사함이 있었고 구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곳이면 장소에 상관없이 일어나고, 누구든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때가 이르렀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 어느 때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할 때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예배할
그 때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예배드려야 하는때가 바로
'지금'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때에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찾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예배자를 하나님께서는 찾고 계십니까?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하셨습니다. 2. 먼저, 하나님께서는
신령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계십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나오지만,
하나님께서 받으시고자 원하시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예배가 그렇게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24절에 보면, 먼저 영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의 대상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배하는 자들은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짐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계시는
하나님, 십자가에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시며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 우리를 불러 주셔서 천국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드려서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성품과 행하신 일들을 찬양하며 기뻐하며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찬양으로,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는 기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서 듣는 겸손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내 자신이 예배의 중심이 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내가 편히 예배드릴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진 곳, 듣기만 해도 내 마음에 감동이 되는 성가대의 찬양, 내가 듣고 싶어하는 성향의 설교가 있는 곳, 때로는 내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가 아니라,
그러한 예배를 즐기는 자로 변하기가 쉽습니다. 장소와 환경이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이 예배의 대상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는 우리 각자가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하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진정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신령으로 예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는 신령으로 예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령으로’라는
말씀을 헬라어로 보면, ‘엔 프뉴마티’ 곧 ‘성령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예배는 성령 안에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성령 안에서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인 것입니다. 이
시간에 성령님이 우리가운데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성령 안으로 우리가 들어가 성령님의 주장하심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찬양케 하십니다.
기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참 예배인 것입니다. 어느
카톨릭 신부님께서 운영하시는 인터넷 카페에 실린 유머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모여서 하늘나라에서 이 땅으로 여행을 가기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여행을 떠나려 하니 어디로 갈지가 관건이었습니다. 미국에 가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랬더니 성부 하나님께서 반대하셨습니다. 전에 미국에 가봤더니 미국에서는 도통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예루살렘에 가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성자 예수님께서 싫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십자가를 지고 처참할
모습으로 죽었었는데 또 다시 그 기억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로마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시티에 가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나오자 마자 성령 하나님께서 신이 나셔서 짐을 꾸리며 꼭
그곳에 가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부와 성자하나님께서 그 이유를 물으시니, “그곳은 한번도 가본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에 꼭 구경하고 싶다.”고 하더랍니다.
아무리 크고 웅장한 성당과 교회가 지어지고 예배를 드린다고 할지라도, 성령님이 안 계신 예배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성령 안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
성령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구하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3. 또한 하나님은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예수님은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는데,
이는 헬라어로 ‘엔 알레떼이아’입니다.
이것은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진리에 기초해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곧 많은 사람들이 진리가 아닌 거짓된 것에 근거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단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신령하다고 이야기하지만, 거짓된 영에 사로잡혀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사탄을 숭배하는 자들도 거짓된 사탄의 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엉뚱한 존재에게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안에서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진리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6:13절에 보면,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요한1서 5:7절에는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진리에 근거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성령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고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참된 예배자로 이끌어 주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예배드릴 때에 단순히
육신적인 차원에서 예배를 드리고 마쳐지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육신은 와서 예배를 드렸다고 하지만 우리의
영이 하나님께 반응하지 않고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오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입니다. 아무리 맛이 있는 음식이 있어도 미각이
없으면 그 맛을 알 수가 없습니다. 후각이 있어야 향기로운 향수를 뿌렸을 때에 그 냄새를 즐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아무리 좋은 향수를 뿌린다고
하더라도 감각이 없으면 그것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또 다른 감각에 민감해야 합니다.
영적인 감각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감각을 열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를 참된 예배로 이끄시는 성령님의 운행하심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감각이 열리면 성령 안에서 반응할 수가 있습니다. 찬양을 드릴 때에 예술적인 아름다움과 감동이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찬양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세상의 사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은혜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하여서 하나님과 내가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교통하고 있음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참된 예배로 이끄십니다.
우리가 드려야 할 진리 된 예배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할 때가 오는데 바로 이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것은 최고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만이, 구속 받은 자들만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특권으로 드리는 예배지만,
때로는 영이신 하나님을 성령안에서 예배하지 못하고, 몸만 왔다가 돌아가는 일들도
있습니다. 예배에는 참석했지만 하나님과의 교통이 없는 예배를 드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기 원하시는 예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
곧 성령과 진리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원하십니다. 육신의 만족과 심리적인 만족과
위로를 받기 위한 것이 예배가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드려서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이 하신
일을 찬양하며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예배를 드리기 위한 사모함이 있으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성령과 진리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 우리의 몸과 영혼이 주님께 온전히 드려지는 예배가 지속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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