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세상의 사람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한 번 태어납니다. 요즘은 제왕절개를 하시는 분이 많아서 아기를 엄마 뱃속에서 꺼냈다고 말하기도 하더라고요. 어떤 분은 호적에 생일을 잘못 올려서 실제생일이 있고, 호적에 올린 생일 두 개가 있다고 말합니다. 뱃속에서 꺼냈던, 생일을 두 개를 가지고 있던지 간에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한번 태어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예수님께서는 두번째 태어남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기독교인들은 바로 거듭난 사람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났다.'는 것이 무슨 뜻이고, 또한 두 번째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함께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가시는 곧 마다 사람들이 많이 따라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부분은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예수님을 찾아 온 '니고데모'라는 사람은 좀 달랐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고,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그 당시 종교 지도자급의 사람들로서 모세의 율법에 능통하고 그 말씀대로 지키면서 사는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유대인 사회에서 최고의 결정기관인 산헤드린 공의회의 회원입니다. 그러니까 사회적으로도 권세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까 걱정이 되었는지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하는 말이,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께로 오신 선생인 줄 압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만나시기 전에, 가나라는 동네에서 열린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고서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라고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모하는 마음과 겸손한 태도로 예수님께 온 것입니다. 우리는 니고데모의 모습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모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사회적인 위치가 높다라고 할지라도 겸손한 태도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1. 이러한 니고데모를 향하여서 예수님께서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이 말씀은 곧, “지금 내게 정말 중요한 말씀을 전하려고 하니까 잘 들어” 하고 니고데모가 집중해서 들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니고데모야, 정말 잘 들어봐,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어”
예수님은 지금 니고데모의 관심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음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를 본다고 했을 때에 쓰인, ‘본다’라는 헬라어 동사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경험하다, 참여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볼 뿐만 아니라, 그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비밀은 바로 '거듭남'에 있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은 니고데모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이 땅에 살면서 천국을 누리다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 관심하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귀중한 말씀을 니고데모에게 주셨는데,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잘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이런 말씀은 전에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시 묻기를 “거듭난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어머니 뱃속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날 수가 있겠습니까?” 하며 혼란스러워합니다. 니고데모로서는 두 번 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듭남은, 육신으로 두 번 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육적인 태어남이 아니라, 영적인 태어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보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어머니 뱃속에 있다가 육으로 한번 태어나서 이 세상을 보았듯이, 이제 영으로 한번 더 태어나야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영적인 거듭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말씀을 육적인 시각에서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와 같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 위해서는 육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조건이라고 여겼는데 예수님께서 영적인 말씀을 하시니까 이해를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육적인 관심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영적인 거듭남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영적인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관심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까 하는 육의 생각은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영의 생각에는 무관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육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부를 가지고 권력이 있다고 해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돈 많고 권세있는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그들은 그 힘을 가지고 못하는 것이 없고, 못 가는 곳이 없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최고의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단 한곳 갈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육의 사람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육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던지 간에 모두 흙으로 재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아무리 보 잘 것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영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2. 그러면 영적으로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니고데모야, 정말 중요하니까 잘 들어봐,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단다.”
육신의 태어남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지만, 영의 태어남은 성령 안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물과 성령으로 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1) 먼저 성령님은 우리를 거듭날 수 있도록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도하십니다.
사람이 육신의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에, 어머니가 고통을 당하며 피를 흘림으로 아이가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육신의 사람이 영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고난과 보혈을 흘리셨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통하여서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게 되고, 영적 거듭남에 이르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2:3절에는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된 것도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신 은혜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깨달을 수 있는 지혜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성령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니까 아무리 똑똑하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깨닫게 해 주셨고, 그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에 이르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는 자로 우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2) 이제 성령으로 거듭났으니, 우리는 성령 안에서 거듭남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그 아이를 그냥 방치해서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잘 먹이고 돌봐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성령님을 통해 영적으로 거듭나는 일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곧 성령님 안에서 우리의 영적인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공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7:37-39절에 보면, “…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보통 사람들은 육신적으로 목마른 것은 너무나 쉽게 압니다. 춥고 배고픈 것은 민감해서 견디지를 못해합니다. 물을 마셔야 하고 먹을 것으로 배를 채워야 만족해 합니다.
하지만 거듭난 사람의 삶은 다릅니다. 내 육신의 갈증이 아니라 내 영의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입니다. 내 심령의 메마름과 차가움을 염려하며 성령님의 공급하심을 받는 자들입니다.
우리 영혼에도 목마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목말라하는 이에게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서 생수의 강이 흘러가는데 그것은 곧 성령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의 갈함을 채우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받아 마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도요한은 요한삼서 1:2절에 교인들을 향하여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였습니다. 이것이 또한 예수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난 육신의 사람들은, 육신의 삶이 잘 되어지는 것을 관심하면서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육신의 삶 밖에 모르기 때문에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영으로 거듭난 사람은 육신이 아니라 영혼이 잘 되기를 위해서 관심하며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건강하고 잘 성장해야 범사의 모든 일들이 잘되는 비결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다스려주시는 삶을 살아갈 때에 영이 살고, 육의 삶이 제대로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한번 옆의 분들께 이렇게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기를 바랍니다."
3. 이제 성령안에서 성장하는 이들은 성령님의 불어 오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성령의 운행하심을 간과할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영적인 거듭남이나 성장과 열매를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말했듯이, 거듭남이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오듯이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령님의 역사를 바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왔다가 가는지를 알지를 못합니다. 눈으로는 그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바람의 움직임과 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그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듭니다. 악기에 불어질 때는 소리를 나게 합니다. 풍차를 돌립니다. 때로는 강하게 불어서 나무를 꺾어 버리고 집을 날려 버립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바람과 같이 우리 가운데 불어오게 되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해 주시고, 이제는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가도록 우리를 바꾸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한 성령의 바람이 우리 가운데 불어오기를 사모하며 간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제2의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거듭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성령의 바람으로 불어 주십니다. 썩어져 흙으로 돌아갈 육신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서 사용될 수 있도록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의 영혼이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서도 바라보며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거듭남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아직도 육신의 삶에 얽매여서 영적인 성장을 게을리 할 때가 있습니다. 영이 살아야 육의 삶도 제대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육신의 삶을 다스리면 멸망을 받지만, 그 육신이 성령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거듭남의 삶을 살아가면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의 목마름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원합니다. 찬송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먹으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 사순절의 기간은 우리의 영적인 여정이 되어야 합니다. 육신적인 삶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목마른 내 영혼이 성령으로 채움을 받고,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기간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님 안에 더욱 거하며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바라보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와 이 땅 가운데 불고 있는 성령님의 운행하심을 놓치지 아니하며, 그 안에서 우리의 영혼이 강건해 지고, 허락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들어가서 누리는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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