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자신의 죽음과 관련해서 몇 번 예언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 실제로 부활하실 것이라고는 전혀 믿지도 못하고,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믿었다면,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제자들처럼 흥미있게 삼 일을 보내는 사람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벽에다가 날짜를 적고, 예수님 부활 삼일 전, 이틀 전, 드디어 예수님이 부활하실 오늘… 새벽부터 깨어서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들은 소망 가운데 손꼽아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소망이 아니라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이 자신들도 그렇게 할까봐 무서워서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 방안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떠셨겠습니까?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셨지만 소망가운데 돌아가셨습니다. 사망의 권세가 예수님을 집어 삼켰다고 할지라도, 이제 삼일 후면 부활할 것을 믿으셨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카운트 하셨을 것입니다. 부활 삼일 전, 이틀 전, 그리고 이제 바로 오늘…
예수님은 드디어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무덤에서 나오셨고, 그가 대속해서 구원하신 세상을 보신 것입니다. 그 전에 죄악 가운데 있던 세상이, 이제 당신의 죽으심으로 새롭게 태어난 이 땅의 사람들을 보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하셨겠습니까?
그리고, 이제 자신을 따르던 제자, 예수님께서 대속해 주신 그들을 만나러 제자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방문이 잠겨져 있는데 그 방문을 통과하셔서 방안으로 들어 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 하십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절망하는 그들에게 평강을 빌어 주십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서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보는 것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왜 보여 주십니까? 바로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던 너희들의 메시야 예수가 맞다는 것입니다. 바로 말씀하신 대로 죄인들의 손에 넘기워져 죽었다가 다시 부활해서 너희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한 제자가 예수님께서 찾아 오셨을 때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증거할 때에 그 제자는 이를 믿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했습니다.
우리 교회 학교 학생들, 그 제자의 이름이 무엇이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도마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여드레가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똑같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십니다.
도마도 그 손의 손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의 못자국과 허리의 창자국에 대한 언급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예수님도 그 십자가의 흔적을 보여주시고, 제자들도 그것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흔적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1. 그 흔적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대속해서 죽으신 용서와 사랑의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그 흔적은 부활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죄로 만들어진 흔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의 흔적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흔적을 볼 때에, 내가 죄인임을, 그리고 죄인 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의 흔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아이 때문에 늘 고생이었습니다. 아이는 가는 곳마다 친구들을 괴롭히고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아무리 타이르고 야단을 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십자가를 하나 만들어서 아들에게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 아들아, 이제부터 네가 잘못을 할 때마다 이 십자가에 못을 하나씩 박겠다.”고 했습니다. 그 아들은 별로 그 일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 문제아로 지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아이가 잘못된 일을 할 때마다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러다가 한 참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그 아들이 십자가 생각이 나서 십자가를 보니까 아이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십자가에는 이미 못을 박을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박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아버지가 오셔서, “아들아,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죄를 알고 깨닫게 되었으니 이제 이 못을 빼도 괜찮단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못을 깨끗하게 빼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못이 다 빠졌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여전히 웁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까 아이가 말합니다. “아버지, 십자가의 못 자국이 저를 너무 아프게 해요”
지난 성금요일에 성찬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 중에 우리는 우리의 죄를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작은 예식을 치렀습니다. 하얀 십자가에 나의 죄를 생각하면서 못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십자가의 못은 빼내었지만 여전히 그곳에는 못자국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못자국과 허리의 창자국은, 예수님 자신의 죄도 실수도 아닌, 바로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흔적임을 믿습니다. 용서의 흔적임을 믿습니다.
2.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지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갈라디아서 6:17절에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여러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의 표를 받은 예수님의 소유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마치 목장 주인이 자신의 소에 불로 달구어 자신의 이름을 새겨 놓듯이 자신은 예수님의 것이라는 명확한 고백을 말하기도 합니다.
또,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했을 때에 바로 주님을 향한 고난의 흔적을 가졌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서 그 십자가의 흔적을 가지셨던 것처럼, 이제 사도바울도 그 일을 위하여서 그 당하신 고난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사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수많은 어려운 고난을 겪습니다.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채찍에 맞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죽기 직전까지 돌로 맞기도 했습니다. 배가 파선되어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강도와 동족의 위험도 당했습니다. 사도바울의 몸을 보면, 그러한 고난의 흔적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당한 고난의 흔적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하다가 새겨진 것입니다.
골로새서 1:24절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사도바울은 예수님께서 지니신 고난과 죽음의 흔적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육체에 채운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만이 그 흔적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로 구속함을 받은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님과 같은 흔적들을 지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에 사도바울에게도 그 손에 못자국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허리에 창자국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한 흔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에 우리는 그를 따르는 흔적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같이 매일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셔서 그 십자가를 질 때에 자기 부인의 흔적이 생길 것입니다. 예수님이 걸으셨던 좁은 길을 걷고자 하니까 이래저래 손해보고 다치는 일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흔적을 기억하며, 우리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광 중에 만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십자가의 흔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흔적은 바로 우리 죄의 흔적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사랑의 흔적이 됩니다. 나를 구원하신 용서의 흔적이 됩니다. 우리가 그 은혜에 다시 한번 감격하는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또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주셨지만, 예수님을 따를 때에 우리에게 흔적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어떠한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어떠한 사랑의 흔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 부활의 흔적을 우리가 늘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 앞에 갔을 때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고, 예수님을 그토록 사랑했다라고 삶의 흔적들이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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