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7/2014 - 두 번째 부르심 [요한복음 21:15-19]
지난, 부활 주일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찾아 가셨던 말씀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흔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몸에 난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보고서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흔적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를 확인하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지만, 더 이상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들은 더 이상 예수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몸의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볼 때에 그 마음이 더욱 아팠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실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노라’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베드로는 몇 명의 제자들과 함께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갈릴리 바다로 돌아왔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3년 전에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서 예수님을 쫓았던 곳입니다. 그물과 배도 버리고, 가족들도 뒤로한 채 예수님을 따라 갔는데, 이제 다시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온 것입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고기를 잡겠다고 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밤을 새며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물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이 때에 한 젊은 남자가 나타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고 합니다. 제자들이 그 말씀에 순종해서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물을 들어보니 물고기가 아주 많이 잡혀서 그물을 들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한 제자가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했던 젊은 사람이 예수님인 것을 알아챘습니다. 베드로는 그 젊은 남자가 예수님이라는 말을 듣자 바다에 뛰어 들어 육지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잡은 고기를 달라고 하시고 그것을 구우시고, 떡을 가지고 오셔서 그들에게 아침을 마련해 주십니다.
오늘모습을 보면, 예수님께서 처음 베드로와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를 연상하게 합니다. 처음에 베드로를 부르실 때에도 그 날 밤에 그들은 고기 한마디도 못 잡았다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는 똑 같은 곳에 나타나셔서 다시 한번 그들을 부르십니다.
오늘 우리는 실패한 제자들을 두 번째 부르시는 그들을 통하여서 다시 한번 우리를 제자로 부르시는 주님의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우리는 실패한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으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베드로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인생의 실패자의 모습입니다. 베드로는 누구보다 예수님에게 충성했던 사람이었고, 끝까지 따를 것을 장담했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다 도망갈 것이라고 예언하였을 때에 “다른 사람은 다 예수님을 버려도 나는 죽기까지 따르겠습니다.”라고 했는데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이제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버렸던 가족에게로 왔고, 다시 그물을 잡고 고기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베드로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온전히 살기로 수시로 결심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닥칩니다.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데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데 실패하기도 하고, 세상의 쾌락에 빠지다 보니까 예수님이 아니라 세상을 따라서 살아가게도 됩니다. 이럴 때에 베드로와 같이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고 체념하면서 그럭저럭 믿음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그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고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포기했지만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사회에서는 베드로와 같이 실패한 사람을 다시 찾지 않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제자를 불러 실패했으니, 좀 더 제자로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서 부르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실패하고 낙망한 사람을 찾아나서는 것이 예수님이십니다. 그것을 더욱 마음 아파하시며 찾아와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9: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은 한시도 잊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더욱 긍휼히 여겨주시고 찾아와 주셔서 세워주시는 분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먼저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낙망한 그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시면서 위로하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과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결코 저와 여러분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절망의 상황에서도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며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여야 합니다.
식사를 한 후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와 대화가 시작이 됩니다. 과연 여러분들이 예수님이라고 한다면 무엇을 물으시겠습니까? 아마 이렇게 물으시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나를 죽기까지 따른다고 하더니 그때 왜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도망갔냐?" "내가 그럴 줄 알고 세번 부인할 것이라고 예언하지 않았느냐?" 하며 책망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것 묻지 않으십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말씀을 묻습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세 번씩이나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는데,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냐고 세 번을 물으십니다.
한국어와 영어 성경에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할 때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모두 같지만, 헬라어 성경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가페 사랑과 필레오 사랑이 쓰이고 있습니다. 아가페 사랑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십자가의 사랑이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필레오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은 친구들끼리 사랑하는 우정과 같은 사랑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보시면서 “네가 나를 아가페 하느냐?” 물으십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사랑한다고 하지만, 아가페의 사랑을 대답하지 못하고, 필레오의 사랑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네가 나를 아가페 하느냐”라고 물으시고, 베드로는 “제가 주님을 필레오 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감히 예수님께 아가페의 사랑을 고백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전에 내가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다시 제자로 부르시기 위해서 그에게 물으시는 것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다른 것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비록 예수님과 같이 아가페의 사랑을 할 수 없는 연약함이 있지만 그래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리고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만한 성품을 갖추고, 재능을 가지고 있느냐 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느냐에 더욱 관심하셨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면서 수시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랑 없이 그냥 따르고 있는가를 늘 점검하며, 주님을 향한 사랑을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의 양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답을 들어서가 아닙니다. 그 중심을 아시기 때문에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명령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돌보라 그리고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편하게 두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사역을 맡기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맡겨주시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양들을 돌보고 먹이기를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실 때에는 이렇게 묻지 않으셨습니다. “나를 따르면 그러면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에게 사랑을 물으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내 양을 치고 먹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부르실 때에 그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이 땅 가운데서는 먹이고 돌보아야 할 예수님의 양들이 수두룩 합니다. 베드로에게 그들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처음에 내 양을 먹이라고 했을 때에 그 때의 양은 어린양(Lamb) 입니다. 이 땅에는 어린양과 같이 젖을 먹어야 할 영적인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양을 치라, 돌보라고 했을 때에는 어린양을 벗어난 양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양을 돌보고 먹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예수님의 양들을 돌보고 먹임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양들은 목자가 먹이지 않으면 자신들이 먹을 꼴을 찾지 못해 굶주리고, 목자의 돌봄이 없으면 맹수들에게 잡혀서 죽게 되는 존재입니다. 목자를 잃어 버리고 방황하는 양들을 먹이고 돌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양들의 모습이 바로 누구의 모습입니까? 바로 베드로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목자 되신 예수님을 떠나서 갈릴리 바다에서 방황하던 양이 베드로 자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베드로와 같은 양들을 찾아서 먹이고 돌보라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은 베드로에게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목자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들을 찾아가라고 하십니다. 때로는 목자를 잃고 실의가운데 방황하는 자들을 돌보라고 하십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먹이고 양육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과 같이 찾아가서 그들을 위로하며 세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제자에게 맡기신 그 양들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의 교우요, 가족들이요, 우리의 이웃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양이고,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양들이 아니겠습니까?
베드로에게 주신 사명이 목회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명은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당신의 양을 먹이고, 돌보고 먹을 것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베드로에게 자신의 양을 맡기신 주님은, 18절과 19절에 어떻게 베드로가 죽음을 당할 지에 대해서 예언을 하십니다. 바로 예수님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자신의 뜻이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베드로가 죽기까지 할 것이라고 예언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베드로를 향해서 "너가 나를 세번 부인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는데, 이제 두번째 부르시고 사명을 주실 때에는 "이제는 네가 나를 위하여서 다른 사람에게 의해서 죽게 될 것이라"고 순교의 예언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위해서 아가페의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와 대화를 마치신 예수님은, 최종적으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두번째 부르심을 감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렇게 해서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를 베드로의 두번째 제자의 길이 시작되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제자들을 두번째 찾아오셔서 부르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포기하고 원래의 예수님께서 부르시기 전의 자리로 왔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실패한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세워주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어떠한 신앙의 위기와 낙망함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때로 믿음생활이 뒤로 쳐지고 낙오되어져서, 믿음생활하는 것이 자신없어 질 때에도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 곁에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옆에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질문에 늘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랑의 고백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연약하고 부족해서 실수도 많고, 불순종도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예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의 양을 먹이고 돌보라고 하십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은 주님의 맡겨주신 양들을 먹이고 돌봄으로 나타납니다.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주님의 양입니다. 또한 주님을 알지만 아직도 부족하고 연약한 자들도 다 주님의 양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베드로 자신도 예수님의 양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양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먹이고 돌보며 양육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사람들을 향하여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먹이고 돌보아야 하는 영적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은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하는 사역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에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 또한 맡겨주신 양들을 내가 받은 목자의 사랑으로 양육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 맡겨주신 가정, 교회, 이웃들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양들과도 같습니다. 사랑으로 먹이고 돌보고 섬김으로 예수님의 부르심에 충성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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