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4/2014 -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누가복음 23:26-31]
한국에서 오월이 되면,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습니다. 그게 언제인 줄 아십니까? 바로 5월 5일 어린이 날입니다. 이
날은 공휴일이라서 아이들도 부모님들도 함께 쉽니다. 부모님들은 그 날만큼은 아이들을 기쁘게 해 주고자
선물도 사 주시고, 아이들이 즐겁게 놀만한 곳을 데리고 가십니다. 그래서
어린이날, 전국의 놀이 동산은 만원입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며, 온 가족이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올해 한국의 어린이날 분위기는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4월 16일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의 단원 고등학교 학생들이
탄 여객선이 침몰했습니다. 그 이후 배에 갇힌 학생들을 구조하려고 여러 가지로 애를 썼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 사이 배는 뒤집혀서 바다 밑으로 더욱 가라 앉았고, 배 안에
갇혀서 살고자 몸부림치던 학생들도 물에 수장되었습니다. 온 국민이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들으면서 슬퍼하며
애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든 일들을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분노하며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부모님들입니다. 수학여행 잘 다녀오라고 축복하며 보냈을 텐데, 그렇게 어이없게 먼저 간 자식들을 보면서 울음 밖에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들로 인해서 우는 일들이 많지만, 이러한 사건을 만났을 때에 그 만큼 사랑했기
때문에 숨이 막힐 정도로 울면서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 부모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그러한 부모의 마음을 가지시고 예루살렘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누가복음 19:41-42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면서 우십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이 멸망할 때에 예루살렘 사람들이 겪을 그 끔직한 아픔과 고통을 생각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우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울면서 따라오는 여인들을 향하여서,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십자가의 길에서 여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자의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 왔습니다. 그 여인들은 가슴을 치며 슬퍼 울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 여인들의 울음소리를 예수님이 들으시고, 몸을
돌이켜서 그들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하셨습니다.
지금 나를 위해서 울 때가 아니라, 너희
자신과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서 울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지는 수치와
고통보다는, 앞으로 예루살렘 여인들과 그 자녀들을 당할 고통을 생각하시면서 아파하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로마에 의해서 망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지배하는 로마제국에 대항해서 지속적으로 항쟁을
합니다. 그러다가 로마에서는 70년에 티투스 장군을 보내서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우고 완전히 파괴해 버립니다. 이때 로마 군인들은 아이들을 땅에
던져서 죽이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남자들은 무참하게 살육을
당합니다. 이 일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살 땅을 잃어 버리게 되고, 로마제국의
전역으로 흩어져서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때를 바라보시면서,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서 울라고 하셨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면서 할 수 있는 소중한 일 중에서 하나는, 그들의 자녀들을 위하여서 울어주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삶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며, 자녀들 가운데 있는 상처와 아픔을 보면서 그 자녀들을 위하여서 울어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믿음의 부모들은 세상의 부모와는 다르게 영적인 양육도 더불어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믿지 않는 세상의 부모보다 더 눈물로 자녀들을 양육할 각오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부모는 자녀를 위하여서 기꺼이 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 먼저 믿음의 부모는 자녀들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울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부모들이 어린 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제자들은 그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지 못하도록 꾸짖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복음 18:17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할 때에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 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 됩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 버립니다. 어릴 때에는 믿음으로 잘 성장하는 것 같은데, 커가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 버립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세상에 빠져서 이 땅의 사람으로 변해가는 슬픈 일을 당합니다.
2009년 5월에 출간된 “Already gone” 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는 문제에 대해 다룬 책입니다. 그 책에는 1000명의 20대 청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그 천명은 이전에 교회에 정기적으로 잘 다녔지만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는 청년들인데, 언제 교회를 떠나게 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40%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갈 때에 교회를 떠났고, 44%는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를 가면서 교회에 더 이상
출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1%도 대학교 초반까지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다가 교회를 떠났다고 합니다. 그 나머지 청년들은 그 이후에 교회를 떠났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학년이 올라가고, 좋은 대학교에는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반대로 많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학교와 사회적 성공을 위하여서, 하나님을 포기하고 교회를 떠나도록 하는 것이 오늘날의 문화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점차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미국 사회 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 자녀의 아픈 현실이기도
합니다. 부모는 이러한 자녀들을 위하여서 울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어거스틴이라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성자로 불리었고, 그의
영성과 신학은 후대 신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칩니다. 그런데 어거스틴이 처음부터 그러한 성자는 아니었습니다. 그 반대였습니다. 어거스틴은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태어났습니다. 기독교인인 어머니 모니카에 의해서 기독교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거스틴이 17살 때에 고향을
떠나 칼타고에 가서 10년 동안 머물면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 버렸습니다. 정욕에 이끌려서, 결혼도 하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와 동거를
합니다. 그리고 페르시아의 종교인 마니교를 따르는 이단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출세를 위하여서 칼타고를 떠나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린 타락한 죄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자식을 보는 어머니 모니카의 심정은 절망과 고통이었습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들을 위하여 눈물로 울면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모니카는 아들을 위하여서 눈물로 기도했고 그렇게 삼십여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거스틴이 밀라노의
한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에, 담너머로 들려 오는 아이들의 노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노래가 이상했습니다. 아이들은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라는 가사를 반복하면서 노래했습니다. 어거스틴은 그것이 성경책을 펴서
읽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성경책을 들어 폈습니다. 그리고 어거스틴의 눈에 한 성경구절이
들어 왔습니다. 그것은 로마서 13:13-14절의 말씀이었습니다.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일을 계기로 어거스틴은 회심하게 되고, 그
동안 긴 방황의 시간을 마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성자가 되기까지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살아갔습니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책 ‘고백록’에서 자신의 개종이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부모는 자녀들의 영혼을 위해서 울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나라를 늘 받들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며,
훈육하며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육적이고 세상적인 성장에는 관심하며
이를 위해 울지만, 믿음의 부모는 무엇보다 자녀들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울 수 있어야 합니다.
2. 또한 부모는 자녀의 아픔에
함께 동참하며 그 아픔의 치유를 위해서 함께 울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들에게도 자녀들을 양육하고 가정을 돌보기 위해서 힘듬과 아픔이 있지만, 자녀들에게도 그들이 가지는 커다란 아픔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 딸의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저희
가족이 이곳에 와서 제 딸인 하연이가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그러한 일이 없었는데, 학교 가는 것을 싫어하고 잘 적응하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한 반에 있는 좀 몸집이 큰 여자 아이를 중심으로 몇 명 아이가 하연이를 좀 힘들게
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딸 아이를 밀친다던지, 무시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담임 선생님을 만나서 상담도 했습니다. 그 이후 선생님께서 특별히
아이를 격려해 주시고, 딸 아이도 모범적인 학교 생활을 하면서 점차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그러한
아픔의 시간들이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에 부모로서 아이에게 있는 슬픔과 상처를 보면서 많이 마음이
아팠고 이것을 놓고 샘터 가족들과 함께 기도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2007년 4월 16일에 버지니아 텍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에 한국인 조승희씨가
범인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고 문제가 없는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온갖 상처와 아픔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것이
끔찍한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지난 4월 16일, 웨슬리안 대학교 1학년생인
캠브리 체임벌린이 학교 동아리 모임에서 자신을 성폭행한 남학생과 사교클럽을 연방법원에 고소했습니다. 자신의
성폭력 당한 사실을 일년 전에 경찰에 신고하고 진단서도 제출을 했지만 이 사건을 두고 숨기려고만 하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와 같은 또 다른 피해자가 있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공개적으로 이 일을 처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백악관 여성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대학에서 각종 유형의 성폭력을
경험하는 여학생이 5명 중 1명 꼴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피해를 신고하는 비율은 12%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많은 딸들이 이러한 피해와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4일에 서 아프리카에 있는 나이지리아에서는 여자중학생 234명이
집단으로 납치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슬람 테러조직 ‘보코하람’의 소행이라고 여겨지는데 그 조직은 ‘서구식 교육을 죄악’으로 여기는 단체입니다. 그래서 서구식으로 옷을 입거나 교육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고 연관된 사람들을 테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납치된 학생들 중 몇몇은 주변국으로
넘겨져 남자들에게 팔려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땅에 있는 많은 우리 자녀들에게는 부모들이 모르는 아픔과 힘듦이 있습니다. 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죄들의 희생양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녀들의 마음속에 있을 만한 그 상처를 살피는 것도 지혜로운 일입니다.
오늘날에는 부모와 자녀 간의 세대차가 그 어느 때보다 심합니다. 또한 한인가정에서는 언어의 장벽이 있어서 자녀의 형편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자녀들의 아픔을 감지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한 가족이라고 하지만, 그 어디보다 말이 통하지 않고 답답한 곳이 가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야 할 이 세대는 육신적으로는 배부르고 편안할지 모르지만, 도리어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더욱 악하고 타락한 세대를 살아갑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받은 상처와 아픔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싸 안으며 그것을 치유할 역할이 또한 부모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시편 127:3절에는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하였습니다.
자녀는 부모가 노력해서 얻은 기업, 재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상급입니다. 그래서 자녀를 통하여서 평생 큰 기쁨을 얻으면서 부모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주신 기업과 상급을 주님의 뜻대로 양육하기 위해서 그들을 위한
눈물이 빠질 수가 없습니다.
자녀의 육신을 양육할 때에도,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먹이고 입히며 돌봅니다. 다른 자녀들보다 더 잘 해주기 위해서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수고와 돌봄이 자녀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천국을 받들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가 없다고 하셨는데, 육신이 자라나면서 영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자녀들입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계속 받들 수 있도록 믿음으로 양육하며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있는 아픔과 상처를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것이 부모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부모로 인하여서 가정에서 더욱 상처받고 밖에서
위로 받고자 하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자녀의 슬픔을 볼 수 있는 부모가 지혜 있는 부모입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자녀의 아픔을 돌아보고 함께 울며, 자녀들이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하여서 함께 울며, 믿음의
자녀로 잘 양육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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