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한국 속담이 있습니다. 그 만큼 사람의 삶이 바뀐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갑자기 바뀌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있는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까지 합니다. 한 무뚝뚝한 남편이 있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렇게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의 집에 갔는데, 그 친구는 아내가 차에서 오르고 내릴
때마다 문을 열어주고 닫아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다정하고 좋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아내한테 꼭 그렇게 해 주어야 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어느 날 그
무뚝뚝한 남편이 아내가 차를 탈 때에 앞서가서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내가 남편을 보면서 하는
말이 "여보, 불편하게 왜 이래,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곧 죽는데... 당신 빨리 죽고 싶어? 그냥 하던 대로 해..." 사람이 스스로 바뀌는 것도 쉽지 않고,
그 바뀐 사람에게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성도들의 존재와 삶에 확실한 변화가 있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에는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롭게 변화될 수 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삭개오라는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 인생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과거에 자신을 죄짓게 했던 삶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충만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삭개오와 같은
예수님을 만나는 감격과 기쁨을 회복하는 성도의 삶을 살 수 있을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을 때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삭개오를 소개하기를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곧 삭개오가 그다지 좋은 평판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래 삭개오라는 이름의 뜻은 '정결한 자, 의'입니다. 어떻게 보면 세금과 관련된 일을 하는 세리장
삭개오에게 딱 맞는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국세청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무엇보다도 정직하고 공정해야 하듯이,
삭개오도 그 이름처럼 정결하고 의롭게 세금과 관련된 일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세리들은 그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으로부터 가능하면 많은 세금을 거두어서, 로마정부에 바칠 것은
바치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챙겼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세리들을 싫어했고 그들을 죄인으로 여겼습니다.
더군다나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세리들 가운데서도 우두머리였고,
또한 부자라고 했습니다. 삭개오의 이름은 '정결하고 의로운 자'를 의미하지만, 그는 확실히 부정했고
죄인 된 삶을 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삭개오 처럼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좋은 사람이 되라고 고민하시고 연구하시면서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이름 값을 하지 못하면서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믿음생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불러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요 성도라는 귀한 이름을 주셨습니다. 거룩한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는데, 도리어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보더라도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의 이러한 삶을 변화시킬
마음의 한 열정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여리고로 예수라는 사람이 지나간다는데, 그 예수를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마을에 찾아오신 것에
대해서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고, 도리어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사모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의 명성을 들었을 때에 자신은 그 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이지만 그래도 그분을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사모하는 마음이 죄인된 삭개오를 예수님께로 이끌게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떠한 사모함이 있습니까?
누구를 보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갑니까? 예수님을 만날 만한 자리를 자모하시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교회에서 이번 여름에 두 가지 중요한 행사가 있습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열리는 단기선교 대회에 다녀오는 것이고, 또 중고등부 학생들
10여명 정도가 Discovery Camp 라는 청소년 부흥 집회에 참석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에 동참하기 위해서 은혜를 사모하며
은혜의 장소를 찾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마태복음 13: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늘 소망하는 자들에게는 천국의 삶이 더해집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것을 빼앗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사람에게는 주님을
만나는 은혜가 주어지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 믿음도 시들해 지고 주신 은혜도 빼앗기기 쉽습니다.
일주일을 살아가면서 예수님에 대한 사모함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 일에는 정신없이 분주하게 바쁘고, 이 사람 만나고 저 사람만 만나려고 애쓰고
수고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구하며 살아가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그 때와 장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만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예배드리며, 기도하며, 말씀을
보는 데에 힘을 써야 합니다. 믿음의 모임, 은혜의 시간을 사모하며
힘써 모여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도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사람만 만나고 돌아간다면 많은 유익이
없습니다. 이 시간에 주님을 사모함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의 자리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예수님을 사모하며 만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것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것은 쉬운 결단이 아닙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모여 있어서, 사람들을 뚫고서 예수님께 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사람들도 삭개오를 보고 길을 내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도리어 삭개오가 자신과 함께 있다는 것조차 불쾌하게 생각하고 삭개오를 밀어냈을 것입니다. 삭개오가
사람만을 바라보았다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를 사모하게 되니까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그리고 그 사람들을 피해 뽕나무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비슷한 이야기가 오늘 말씀 전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성에서 삭개오를 만나시기 전에, 길에 한 소경이 있었습니다.
그 소경은 예수님께서 길을 지나가신다는 말을 사람들로부터 듣고서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랬더니 사람들은 이 소경을 조용히 하라고 꾸짖습니다.
그랬더니 그 소경은 더욱 심히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더욱 소리를 지릅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이 소경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를 불러다가 눈을
뜨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때로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목회자가 그럴 수도 있고, 같은 교회의 교인들끼리도 예수님을 만나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도가 바라보아야 할 궁극적인 분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인 줄로 믿습니다.
그 시선이 어떤 사람에게 고정된다고 한다면 예수님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본래 연약하고 죄가 많은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바라보면서 믿음생활을 하게 되면 그 믿음이 성장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세상의 물질의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물질과 명예와 성공은
눈에 잘 보이는데, 그 너머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자신을 가로 막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 시선을 고정되었다면 도저히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사람들에 의해 실의에 빠져서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보기 위해
뽕나무로 올라갑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의 소망과 부르짖음을 예수님께서 모르실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뽕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를 보시고 내려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삭개오는 예수님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영접을 했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집을 열어서 예수님을 맞아들였고, 그의 심령을 열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던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일단 제대로 만나게 되면,
인생에서 가장 귀한 분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닫게 되고, 그 분과 함께 하기 위해서
그 동안 귀하게 여겼던 것을 포기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삭개오는 예수님께 말하기를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합니다." 확실히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의 삶에는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그전에 그렇게 가치있게 여기고 포기할 수 없는 그 물질을 하나도 아낌없이 포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욕과 저주를 들으면서 모았던 그 재산을 아깝지 않게 내려 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재산의 절반을 주고, 그 나머지도 자신이 불의하게 착복한 사람에게 네배나 갚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보상하는 것입니다. 부정하게 취한 것을 돌려
줄 때에는 오분의 일을 덧붙여서 돌려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한 도적질한 짐승에 대해서는 짐승의 종류에
따라 네배나 다섯배로 갚아야 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하나님의 법 아래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결단했습니다. 또한 가난한 자에게 재산의 절반을 주는 것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 자신이 자원하여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삭개오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아마 사람들은 삭개오를 말을 들으면서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데..." 이렇게 불편해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기쁨과 감사는 그 어느 것보다 바꿀 수 없기에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화는 구원의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를 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자신의 주로 결단할 때에, 예수님은 그의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삭개오는 그 동안 죄인으로 멸망의 삶을 살았지만,
예수님을 만남으로 진정한 구원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삭개오가 멸망의 사람에서
구원의 자녀로 변화된 역사가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한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영생의 문제가 그분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의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만나기를 사모하시며 그분께 날마다 열심히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 삶의 가치가 달라지고 진정한 기쁨과 감사로 충만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전에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던 세상의 가치와 소유물들도 삭개오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기쁨으로 포기하고,
예수님을 소유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할 때에 반드시 장애물이 있습니다.
사람이 장애물이 되고, 세상의 염려와 재리가 장애물이 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바라보시면서 삭개오가 나무를 오르는 그 심정으로 그 장애물들을 건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스포츠 달리기 종목 중에서 허들이 있습니다.
달리기 출발선과 도착점 중간에 장애물인 허들을 세워 놓고 그것을 넘어서 결승점에 도착하는 경기입니다. 얼마 전에 중학생 아이들이 허들 경기하는 것을 지켜본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이
허들을 넘다가 건드려서 넘어뜨렸습니다. 그리고 어떤 아이는 허들에 걸려서 자신이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허들을 넘어뜨려도 괜찮냐"고 물었더니, 허들을 넘어뜨리고, 자신이 넘어져도 경기에
실격되지 않고 끝까지 결승점까지 가면 된다고 하더라구요. 믿음의 결승점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그 장애물 앞에서 주저하며 포기하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이 더욱 예수님 만나기를 사모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 동안 버리지 못하고 얽매여져 살아왔던 세상의 짐들이 삭개오와 같이 가볍게 벗어지는 일들이 있기를 바라고,
이제는 주님을 따라는 참된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성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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