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에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에 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이 땅에서 사십일간을 머무르시다가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재림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지시하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님께서 오실 테니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님을 기다리라고 지시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예수님이 안 계심에도 불구하고, 흩어지지 않고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립니다. 오순절이 이르렀을 때에 예수님을 따르던 120명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오순절은 유대교의 3대 절기 중에 하나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과 말씀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갑자기 하늘에서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 같은 것이 있어 모인 집에 가득하더니,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하였습니다. 바로 성령님이 바람과 불의
형태로 그곳에 오셔서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일일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교회의 시작을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으로 보는 것은, 바로 성령님의 임재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일을 성령강림주일이라고 합니다. 오순절 날 임하신 성령님의
임재를 통해서 교회가 시작되었음을 기념하면서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에게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는지, 그리고 성도의 삶 속에서
성령님은 어떠한 일들을 하시는지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성령님의 특성은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교회가 성령님의 능력, 힘 가운데 있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헬라어로 권능을
‘두나미스’라고 합니다. ‘다이너마이트’라는 단어도 이 말에서 나왔습니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할 당시에 그토록 힘있는 폭발물은 없었습니다.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것이 다이너마이트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에게 필요한 힘은,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강력한
성령의 힘인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수 많은 힘들이 존재합니다. 돈에서 나오는 경제력도 있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정치력도 있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군사력도 필요합니다.
학업을 통해서 지력을 얻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힘들을 얻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합니다. 그런데 교회와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힘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인 줄로 믿습니다.
성령님은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죽도록 믿고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자신이 핍박을 받고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을 때에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3:37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말씀을 들으시고, 도리어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였습니다 (38절).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에게 큰 시험과 낙담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보셨을 때에 그 결심은 가상하지만 그것을 지킬만한 능력은 없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정말로 죽을 것을 각오했지만, 막상 예수님 때문에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그 때가 오니까 베드로는 자신이 살기 위하여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도 정말 힘이 듭니다.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내 목숨 버리는 것은 고사하고, 자존심
하나 버리지 못해서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지 못할 때가 비일비재한 것이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하지만, 성령님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게 됩니다.
무엇보다 주님께 순종하며 따라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됩니다. 성령을 받기
전의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능력을 받고 난 후에 베드로는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다가 순교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셨던 그 길을 제대로 순종하면서 따라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시고 능력을 주시면, 사람의 힘으로가 아니라 성령님의 힘으로 주님을
죽기까지 따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가 회복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성령의
권능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능력은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서 나타나는데, 많은 교회들이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세속적인 힘을 의지하다가 영적인 힘을 잃어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돈이 있고,
사회적으로 권력이 있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힘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와 성도가 능력있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줄로 믿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은 선천적으로 앉은뱅이 된 사람을 고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앉은뱅이는 제자들을 향하여서 물질을 얻을 것을 기대했지만, 베드로는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그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앉은뱅이가 그토록 원하는 재력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성령님이
임재하시니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온전케 되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능력을 행했던 것입니다.
‘CEO가 된 택시기사’라는 책을 쓰신 한재섭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책에는 그 분이 목사가 되기 전 집사님이었을
때에 경험한 성령의 능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재섭 집사님은 전에 택시기사였습니다. 택시에 타는 승객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도 거리전도를 하셨습니다.
그러던 2007년 2월에 분당 미금역 사거리에서
노방전도를 하던 중 선천적으로 말을 못하는 초등학생을 만났습니다. 그 때에 성령님의 감동이 한재섭 집사님께
왔습니다. 그래서 그 소년을 붙들고 위해서 기도하게 됩니다. 그때 일어난
일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주여!’를 두세 번 외치면서 그 아이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배를 움켜잡고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방언기도로 악한 영과 귀신을 물리치던 중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아저씨 됐어요, 아저씨 됐어요.” 하면서 펄쩍펄쩍 뛰고
울며 고함을 쳤습니다. 선천적 벙어리 아이가 말을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교회와 성도가 가져야 할 진정한 능력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부여
받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믿는 거룩한 성도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힘은 다른 것보다도
성령의 능력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세상의 권력과 재력 등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다가 교회와 성도에게
주신 성령의 능력, 영적인 능력을 많이 잃어 버렸습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의 어떠한 능력보다, 성령의 능력 가운데 거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성령이 임하시게 되면, 그 힘을 증인된 삶에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 받으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그 능력을 행하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드러내는 증인으로 살아갈 때에 제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1884년 알렌, 아펜젤러,
언더우드와 같은 미국 선교사들이, 그 당시에 미지의 땅인 조선에 와서 복음을 증거한
후 커다란 부흥이 한국에 도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을 비롯해서 아시아 지역에 수 많은 젊은 미국의
선교사들이 선교에 헌신하게 된 것은 아주 작은 기도모임에서 시작이 됩니다. 그 기도운동을 ‘건초더미 기도운동(Haystack
Prayer Meeting)’이라고 말합니다. 1800년대 초에 메사추세츠의 윌리암스 대학에 다니는
다섯 명의 학생들은 윌리암스 마을과 대학 안에 영적 부흥운동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1806년 8월초, 어느 토요일에 사무엘 밀즈를 비롯한 다섯 명의 학생들이 후식(Hoosic) 강변에 모여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와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소나기를 피해 근초에 있는 건초더미
(Haystack)속으로 몸을 피했고, 그들의 기도는 그 건초더미 아래에서 지속되었습니다.
이 때에 기도를 인도하던 사무엘 밀즈가 성령님께서 주시는 영감을 받게 됩니다. 성령님은
기도하는 밀즈에게 세계 선교에 대한 비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모인 다섯명의 학생들은 성령님께서 주신
비젼을 가지고서 함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에 성령님께서는 밀즈에게 다음과 같은 강한 확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다 (We can do this if
we will)” 그들이 해외선교를 위해서 순종하고 헌신할 때에 성령님께서 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실 것을 그들은 그
기도모임에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다섯 명은 해외선교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형제단 헌약” (The Constitution
of the Brother)을 하게 됩니다. 이들은 윌리암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주변에 있는 신학교와 다른 대학에 재입학해서 세계선교에 헌신할 학생들을 모집하기도 하고, “미국교회선교위원회 The 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 가 만들어 질 수 있도록 요청을 하기도 합니다. 그 이후 수 십년
동안 이들 선교형제단을 통해서 많은 대학생들이 아시아를 비롯해서 세계로 복음을 들고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됩니다.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도 '건초더미 기도운동'에서 나타난
성령님의 선교비젼을 이어받은 증인들이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임재하시면 단순히 성령받고 믿음생활 잘하다가 혼자 구원에 이르는 것에만
관심이 머무르지 않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이어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바로, 이곳! 가정,
직장 그리고 이 도시와 나라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땅끝 선교지라는 자각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고, 전도하는 성도, 선교하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교회와 교회의 지체된 성도들은 성령님의 임재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님이 임하실 때에 능력있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탄의 음부의 권세를 무찌르며,
죽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믿음생활을 나의 힘으로 하고, 세상이 말하는 힘으로 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도리어 우리의 영적인 힘과 믿음을 약하게 만들고, 시험에 빠지게 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싶고,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살고 싶은데 잘 안 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내 힘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내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성령님의 주장하심에
내어 맡기십시오. 성령님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다스려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참된 구원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또한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임하시게 되면, 선교적인 사명,
증인의 삶을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의 임재와 능력이 있을 때에, 우리 교회가 주님께서 맡겨주신
영혼 구원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임재가 없는 성도와 교회는, 영적인 영양실조에 걸려 힘이
없어 쓰러져 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만이 교회를 새롭게 하며, 주님의 뜻대로 살고 죽는 능력있는 성도로 변화시키는 줄로 믿습니다. 이제 성령님의 임재를 더욱 사모하며 간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어떠한
일을 하기 전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님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을 받지 못하면 제대로 된 제자로, 성도로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성령님을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1:9절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그렇게 구해야 하는지를 13절에 말씀하셨는데,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성령님은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구하고 찾고 문 두드리는
자가 만날 수 있고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마가의 다락방과 같이 바람과 불과 같은
성령의 임재와 능력이 나타나서, 성도의 믿음의 날마다 강건해지고,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의 삶을 감당하는 능력있는 교회와 성도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