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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엘리야 선지자가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민감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처음 미국에 온 것은 1997, 어학연수를 위해서였습니다. 한국을 출발해서 일본을 거쳐, 거의 24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휴스턴에 도착했던 것 같습니다. 비행기에서 두 세번 식사를 한 것 같은데, 제가 주문한 식사 메뉴는 똑같았습니다. “치킨이었습니다. 치킨을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승무원이 주문을 받으려고 올 때부터 얼마나 긴장이 됐는지 모릅니다. 승무원이 무엇을 먹을 것인지 그 메뉴를 말하는데,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메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독치킨이라는 단어만이 크고 청명하게 제대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비행기 안에서 치킨만 먹고,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일 년 동안 어학연수를 하면서, 말을 알아듣게 되니까 "치킨"말고 다른 음식도 주문해서 먹을 수 있게 되더라구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갈 때에, 필수적인 과제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과 소통하면서 살아가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무수히 말씀을 하십니다. 이 땅의 자연을 통해서 이 자연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고,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책을 통하여서 말씀을 하십니다. 선교사와 전도자들, 목회자들을 통하여서 말씀을 하십니다. 이웃의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수시로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살아가면, 영적으로는 길을 잃은 사람과 같이 방황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엘리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지 못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구약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능력의 선지자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할 때의 왕은 아합이었고, 왕비는 이세벨이었습니다. 둘 다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핍박하고 잡아서 죽였습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목숨을 바쳐서 아합왕도 맞섰던 선지자가 엘리야입니다. 정말 대단한 선지자입니다

선지자 엘리야가 행했던 위대할 일 중에서 하나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겨루어서 이긴 사건입니다. 엘리야선지자가 아합왕과 이세벨에게 도전장을 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참신인지, 바알과 아세라가 참신인지 갈멜산에 모여서 그것을 가리자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갈멜산 위에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엘리야가 맞서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의 신을 위해서 제단을 쌓고서 자신의 신에게 부르짖을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 제단의 제물을 불로 태우는 신이 참 신인 것으로 확증하기로 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는 선지자 850명이 자신들의 신에게 하루 종일 불을 내려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그 제단에 불이 붙지 않습니다. 이제 저녁이 되어서 엘리야가 하늘을 향해서 하나님께 간구할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엘리야가 쌓은 제단의 제물을 태워버립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참신인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게 되고, 엘리야의 명령에 따라서 갈멜산 위의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을 모두 칼로 쳐 죽입니다. 이렇게 해서 엘리야는 큰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그런데, 그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에 엘리야에게 최대의 위기가 찾아 옵니다.

왕비 이세벨이 자신의 선지자 850명이 엘리야의 칼에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엘리야도 똑같이 죽이겠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 뒤로 엘리야는 이세벨의 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혼신을 다합니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도망을 갑니다. 천사를 통해서 물과 먹을 것을 공급받은 후에 힘을 차린 후에도 엘리야는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사십주야를 도망갑니다. 그리고 호렙산에 있는 동굴에서 지내게 됩니다.

엘리야에게 있어서 진짜 위기는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로 인해서 이세벨의 말은 크게 들리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한데 있는 것입니다.

 

1.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의 진짜 위기는, 세상의 이런저런 소리는 잘 들리는데, 정작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절망 가운데 빠진 것은, 자신을 죽이겠다는 이세벨의 소리가 엘리야 선지자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세벨의 말 한마디로 인하여서 엘리야는 절망하며 도망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절망가운데 빠지니까 엘리야가 하나님께 뭐라고 간구하는지 아십니까?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합니다. 죽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이세벨의 말이지,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그렇게 말씀하신 적도 없으십니다. 그런데 이세벨의 말에 지배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과는 단절되게 되니까, 이세벨의 말대로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 가운데 엘리야 선지자와 같은 이러한 위기를 맞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과 단절되고, 세상의 소리에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고 모함하는 소리의 지배를 받아 절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의 허황된 소리에 지배를 받으면서 헛된 것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리치료사인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어릴 때에 평생 자신을 지배하는 한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녀가 열두살 때에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귀신이 자신을 쫓아오는 악몽이었습니다. 그 꿈이 얼마나 생생했는지 잠에서 깨어서도 귀신을 피해 비몽사몽간에 뛰어 도망을 갔다고 합니다. 잠자던 딸이 갑자기 일어나 어디로 뛰어가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깜짝 놀라서 딸을 잡으러 함께 뜁니다. 그런 사이에 그녀는 쫓아오는 귀신을 피해 도망가다가 한강으로 뛰어 들었다고 합니다. 물이 허리쯤에 올라오는 깊이에서 엄마가 붙잡아서 겨우 살아났습니다. 그 일이 심상치 않다고 여긴 집에서는 무당을 불러와서 궂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이후에 온 가족이 다 함께 물놀이를 갔는데, 그만 세 살 아래인 자신의 남동생이 물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그 가족에게는 묘한 분위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귀신을 피해서 살아났기 때문에, 자신의 남동생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작 자기 자신도 자신이 죽었어야지 남동생이 죽지 않았을텐데라는 죄책감과 절망에 사로 잡혀서 살아왔다고 합니다.

우리 각자에게도 우리를 지배하는 세상의 강한 소리를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엘리야와 같이 이세벨의 미움과 증오의 말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스스로 살 가치가 없다는 좌절의 소리에 지배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지금하고 있는 일들이 곧 망하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의 소리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고통받고 있는 질병과 아픔으로부터 나을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낙망의 소리에 지배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일들이 잘 안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소리들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리인 것입니다.

잠언 19:21절에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고 했습니다.

아무리 세상의 소리가 강하고, 내 스스로도 그 소리에 사로잡혀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아무것도 성취될 것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서는 줄로 믿습니다.

 

2. 그렇다면, 세상의 거짓된 소리가 자신을 엄습하고 그것의 지배를 받을 때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조용히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의 소리를 듣고, 자신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이라고 여겨서 절대적인 절망 가운데 있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려주시기 위해서 그를 굴 밖으로 이끌어 내셔서 산에 서도록 하십니다.

산 앞에 서 있는 엘리야를 향해서,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숴버릴 만큼 크고 강한 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 강력한 바람 가운데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바람이 지나간 후 곧이어 땅이 흔들리는 강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지진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안 계셨습니다. 곧 이어 그 산에 강한 불길이 솟아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 불길 가운데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바람과 지진과 뜨거운 불길이 일어났을 때에, 엘리야는 그 강력한 힘을 온 몸으로 느꼈지만 그곳에는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이 다 지나간 후에, 세미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소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조용하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세미하다.”라는 말은, 히브리 어로다크 데마마라고 합니다. ‘낮은, 고은이라는다크침묵, 고요라는데마마가 합성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세한 음성으로 침묵 가운데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눈 앞에 보이는 바위를 부수는 바람과 지진과 불길과 같은 문제와 위기가운데서 절망하고 낙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에 마음을 빼앗겨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세미하게 나에게 말씀하시는 그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적인 채널을 하나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수한 전파가 오고 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예배당에도 수 많은 라디오 주파수, 무선 인터넷 전파, 휴대폰 전파 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 전파를 받을 수 있는 라디오, 휴대폰과 연결이 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전파는 소리도 되고, 그림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지금 이곳에는 그 어떠한 전파보다 강력한 하나님의 소리가 있음을 믿습니다. 육신적인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곳에 가득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적인 감각을 열어서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수신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듣기 위해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휴대폰이 처음 나왔을 때에 기지국이 많지 않아서 전파 잡기가 힘들었습니다. 전파가 약하면 전파를 잘 받기 위해서 높이 전화를 들어보기도 하고, 집밖에도 나가보고, 좀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좀 더 또렷하게 말을 들으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서, 우리는 이러한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주변의 잡다한 세상의 소리로부터 멀리 떠나서, 하늘을 향해 영적인 귀를 열고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62: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 도다

다윗은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던 사람입니다. 사울왕과 군대로부터, 그리고 많은 대적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만한 위기의 소리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영혼이 그러한 시끄럽고 어지러운 상황에 묻혀있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리에 반응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에, 한 성도님과 인사를 나누면서 이러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요즘 많이 바쁘고 힘들긴 한데, 자꾸만 교회에 빠지면 안될 것 같고, 한 두 번 계속 빠지면 습관이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나왔어요그리고,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뭔가 불안하고, 일들이 뭔가 잘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이러한 작은 음성들과 싸인들을 마음에 들려 주십니다. 좋지 못한 일들을 할 때에 "그렇게 하면 되겠니?" 말씀하시기도 하십니다. "저 사람을 좀 도와 주면 어떻겠니?" "그 사람의 말을 좀 들어봐" "힘들지,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해도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야" "걱정마, 내가 너와 함께 한단다."

이러한 마음의 감동과 깨달음을 그냥 넘겨서는 안됩니다. 때로는 세상의 큰 소리와 내 감정에 소리에 묻혀서 듣지 못할 때가 많은데,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이런저런 형태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반응해야 합니다.

휴스턴에 있는 렉우드 쳐지의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아버지에게 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죠엘 오스틴 목사님의 아버지도 목사님이십니다. 아버지 목사님이 모임에 가야 하는데 시간이 늦어서 과속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참을 가다가 코너를 돌려고 할 때에, 그 마음에서 불현듯 들리는 소리가코너를 돌면 경찰이 있으니까 속도를 줄여라하는 마음이 들더랍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쓸데 없는 괜한 생각이라고 여기고, 그냥 코너를 돌았는데, 정말 경찰이 있었고, 목사님을 잡았습니다. 이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미리 경고하셨다는 이 사실이 너무나 은혜가 되어서 자신을 잡은 경찰관에게 말하기를당신이 믿지 못할지 모르지만, 제가 이 코너를 돌면, 당신이 있을 거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이 경찰관이 이상하게 보더랍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그 기록 사항을 보고서 목사인줄을 알고 면허증을 주면서 하는 말이목사님,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하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작 들으며 살아야 할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 소리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생활이 바빠지고 분주해 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내 심령에 들려주시는 세미한 음성에 민감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겠다는 소리를 바위를 깨는 바람소리와 같이, 지진과 강력한 불길의 소리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소리 가운데는 하나님이 안 계셨습니다. 이세벨이 아무리 강력한 소리를 냈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소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엘리사에게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작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또 다른 사명을 주십니다. 그 말씀은 곧 너는 죽을 것이 아니라, 살아서 내 일을 감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당신의 품으로 부르실 때에 불마가 이끄는 불병거를 엘리야에게 보내주셔서, 죽지 아니하고 산채로 하늘에 들려 올리셨습니다. 그래서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겠다는 말이 얼마나 거짓된 소리인가를 명확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요즘 여러분들을 사로 잡고 있는 소리는 어디로부터 오고 있습니까? 이런 저런 세상의 일과 소리로 인하여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고 정신은 없지 않습니까? 낙망과 절망가운데 있지는 않습니까? 이것 저것에 떠밀려서 정신없이 지내고 계씨지는 않습니까?

그럴 때에 하나님께 잠잠히 나오셔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영적인 채널을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맞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잠잠히 앉아있기만 해도 그게 은혜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시고자 우리 마음속에 주시는 작은 하나님의 소리들을 지나치지 말고, 분별하여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더 잘 들을 수 있고, 인도하심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한 주간,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한 주간, 그리고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위로와 평안과 사랑의 음성을 듣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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