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등산객이 등산을 하다가 그만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아무리 길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정신 없이
길을 찾아 헤매는데,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자기 앞에 커다란 곰이 나타났습니다. 너무 놀라 소리도 나오지 않고, 도망가려고 해도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등산객은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눈을 감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만약에
하나님께서 계신다면 이 곰도 하나님을 믿고 착한 마음을 가지게 해 주세요" 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서 눈을 떠보니 그 무서운 곰이 얌전하게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더랍니다. 등산객은 너무 신기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 군요. 이렇게 빨리 응답해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하늘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 곰이 무릎을 꿇고 무엇을
하나 보니까 갑자기 손을 모으더니 이렇게 기도하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일용한 양식을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
믿음생활을 하면서 가장 행복할 때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체험할 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봐주시고, 돌봐주심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들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 참 사는 것이
행복하고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를 알지 못하면서 믿음생활을 하려고 하면 그것처럼 힘든 것이 없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시고, 안 계신 것과 같은 상황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좋지
않은 상황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아무리 기도를 해도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정말 하나님께서
계신 것인지 아닌지 의심이 들기까지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야곱이 이러한 상황을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계신다면 벌어지지 말아야 할 좋지 않은 상황들이 자신에게 일어납니다. 가정 안에 문제가 생기고, 그 가족을 떠나서 외톨이가 되면서 하나님이
어디에 계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확증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지금
나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며, 그 하나님께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를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간절히 원하며 살지만, 도리어 하나님이 안 계신 것과 같은 낙망의 자리에 빠지게도 됩니다.
우리는 야곱에 관한 부정적인 시각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부터도
그렇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발뒤꿈치를 잡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야곱은 에서와 쌍둥이입니다. 자신의 쌍둥이 형인 에서가 먼저 나올 때에, 야곱도 먼저 나오려고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서 나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야곱이라는 이름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거짓말쟁이, 교활함”이라는 부정적인 뜻이 있습니다.
야곱은 그의 이름과 같이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권을 가로채기도 했습니다. 야곱은
형이 가진 장자의 명분을 부러워했습니다. 비록 쌍둥이로 거의 동시에 태어났지만, 첫째로 태어났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 가문의 대표자가 되는
것입니다. 유산도 훨씬 더 많이 물려 받을 뿐만 아니라, 가족을
축복하는 축복권도 주어집니다. 이를 부러워하던 야곱은, 어느
날, 사냥에서 돌아와 배고파 하는 형에게 제의하기를, 자신에게
장자의 명분을 판다면 단팥죽 한그릇을 주겠다고 합니다. 형 에서는 아무 생각도 없이, “지금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그깟 장자의 명분이 뭐가 필요하냐”며 단팥죽 한 그룻과 장자의 명분을 바꿉니다. 야곱은 이렇게 장자의
명분을 형으로부터 가져 옵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의 아버지도 거짓말로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가로챕니다. 아버지 이삭이 임종할 때가 되었을 때에 각각 아들에게 축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눈이 어두워 잘 못 보는 아버지의 눈을 속여, 자신이 형인 것처럼 변장을 하고, 아버지 이삭에게 가서 형이 받아야 할 장자의 축복을 자신이 모두 받습니다.
그렇다고 야곱이 그 즉시로 축복의 삶을 살았냐 하면 그렇지 못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장자로서의 축복을 받았는데, 야곱은 이 일로 인해서 커다란 곤욕을 치릅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것이 들통나는 바람에, 형
에서는 야곱을 죽이겠다고 벼릅니다. 그 일로 인해서 야곱은 자신의 집에 더 있지 못하고, 부모와 형을 떠나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이렇게까지 아버지와 형을 속인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자신이
꼭 받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축복을 가로채고, 가족끼리 불화를 자초하기도
했는데, 그 일로 인해서 축복은 커녕 저주와 같은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형을 피해 도망가는 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통스럽고 암울한 때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사모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복을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며, 복을 받기 위해서 살아가지만, 때로는 복이 아니라, 저주와 같은 일들을 경험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생각도 안 들 정도로 낙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의문하게 되고 믿음의 약해지기가 쉽습니다.
2. 그런데, 하나님은
그 고독의 자리에서 야곱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야곱이 홀로 된 상황 가운데서 함께 하심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혼자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갑니다. 집을
떠나서 혼자 가는 길이니 완전히 나그네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주변에 없었습니다. 낮이 되면 걷고, 밤이 되면 아무 곳에서나 되는 대로 잠을 청했습니다. 어느 날, 밤이 되어서 야곱은 여느 때와 같이 돌을 베개로 하고
밖에서 잠을 청합니다. 그렇게 혼자서 들판에서 돌 베개를 베고 자니 얼마나 고독하고 처량하겠습니까?
그렇게 잠이 들었는데, 야곱은 처음 보는 이상한 꿈을 꾸게 됩니다. 사닥다리 하나가 놓여있는데, 그 사닥다리의 끝이 하늘까지 닿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닥다리를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한번 자세히 사닥다리 끝을 보니 그곳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나는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야곱은 인생의 가장 어두운 상황, 하나님 조차도 자신과 함께 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바라는 하나님의 복을 자신만 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으로 인해서 자손들도 복 받고, 그 자손들로
인해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토록 바라는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확증을 받은 것입니다. 얼마나 신이 납니까? 나뿐만 아니라, 나로 인하여서 다른 사람이 복을 받는다고 하니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야곱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상황에서 즐겁고 기쁘기 보다는, 두려웠습니다. 그가 잠에서 깨어 한 말이 뭔지 압니까?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그것으로
인해서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곳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로다.”하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자, 그
존재를 진정으로 체험하는 자에게는 기쁨도 있지만 동시에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거룩함이 두려움으로 엄습해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어디에 든 계시다는 것입니다. 비록
야곱이 루스라고 하는 지역에서 하나님이 계신지를 알지 못하다가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가 여기있다고 나타내심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지만, 그가 깨닫던지 안 그렇던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그곳에도 계셨고 다른 곳에도 계셨던 것입니다.
당시의 이방신들은 제한적인 능력을 행사했습니다. 지역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나라를 지켜주는 신입니다. 그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릅니다. 15절에,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야곱과 늘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약속을 다 이루기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약속은 기독교인에게도 동일합니다. “세상 끝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는 마태복음 28장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그의 뜻을 이루고자 함께 동행하실 것을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전인 벧엘은 저 멀리 이스라엘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에 하나님께서 역시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이 없을
것 같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도 역시 하나님은 그곳에 계신 것입니다.
3. 성도는 하나님이 온 우주에 편만히 계심, 모든 곳에 계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함께 하심을 믿는다고 한다면, 우리의 삶은 예배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야곱이 깨닫게 된 것은, 자신이 자던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 계시고, 하나님의 전이고, 하늘의 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곳에 곧 땅과 하늘이 교통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깨닫고서 비로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습니다. 야곱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했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곳이
하나님을 예배할 하나님의 집이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비단 팔레스틴 땅에 있는 벧엘만이 하나님의 전이 있고, 하나님과 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모든 곳 가운데 계십니다. 우리 가정, 학교, 교회, 심지어
야곱과 같이 내가 철저하게 혼자라고 느끼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곳에 계심을 발견하는 순간, 바로 내가 서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는 이들은 어디에 가든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예배를 드립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주치의였던 김승학 집사의 간증을 보면, 사우디
아라비아에 사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예배드리는지를 말해 줍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슬람 나라들의
종주국입니다. 이슬람교도들의 신앙의 중심인 메카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기 때문에 전세계의 무슬림들이 메카가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를 향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러기에 그곳에서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외국인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다가 잡히면 감옥에 가고, 자신의 국민
중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다가 잡히면 공개적으로 처형을 합니다. 그래도 한국 기독교인들은 몰래 숨어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주일 날이면 생일 케잌을 들고 모이기도 한답니다. 생일축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배 중에 경찰들이 오면 케잌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이고 생일 축하노래를 부르며 생일축하하러 모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찬송가도
크게 하지 못하고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적당히 조정하면서 찬양을 부른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는 이슬람 나라에서도,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계심을 그곳에 계심을 믿기 때문에 위험 가운데서도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믿는 사람들의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모든 삶은 예배가 됩니다. 우리가 주일에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오서 예배를 성별하여서 드렸습니다. 그러면 그 예배의 삶이 끝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뿔뿔이 흩어져서도 그곳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며, 들려주신 그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만이 내가 순종해야
할 유일한 신임을 고백하며 생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는 모든 곳, 모든 상황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때로 믿음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모를 것 같은
상황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다윗과 같은 경우에도 그러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시편 42:9-10절에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내가 생각해도 하나님이 나를 잊으셔서 안 계신 것 같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며 조롱을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도 눈물을 흘리며 주님을
찾지만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매일 하나님의 존재를 체험하면서 살아가면 참 좋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습니다. 야곱도 하나님이 안 계실 것 같은 상황에 있었지만, 하지만 하나님이 그곳에 계심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그곳에 하나님께서는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은 나의 감정이나 느낌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어디에 있던지, 그리고 어느 형편에 처하던지 간에,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모르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확실히 믿고,처해진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며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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