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5/2014 - 되살아 난 군대 [에스겔 37:1-10]
할로윈이
다가오면서, 동네들 마다 집 마당의 장식이 점차 바뀌고 있습니다. 상점들도 저마다 할로윈 상품을 팔기 위해서
여기저기 거미줄 모양의 그물을 쳐 놓기도 하고, 상품을 진열해 놓습니다. 할로윈의 대표적인 장식물 중에서 하나가 사람의 뼈 장식입니다. 근래에 한 가게에 들어갔는데,
옆에서 뭔가 달그닥, 달그닥하면서 부딪히는 소리가 계속 나길래 봤더니,
사람의 모양을 한 해골과 뼈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 저로서는 별로 유쾌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문화라고 하지만, 왜 저런 혐오스러운 것들을 보고서 즐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런 비슷한 장면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에스겔을 골짜기 가운데로 데리고 가셨는데,
그 골짜기에는 뼈가 가득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셨는데
그 뼈들을 보니 심히 많고 아주 말라 있는 상태였습니다. 마른
뼈들이 가득 쌓여 있는 골짜기를 다닌다고 생각만 해도 음산하고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이러한 곳으로 이끄신 것은
할로윈 파티를 하시려는 것도 아니고, 에스겔을 겁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마른 뼈들 가운데 서 있는 에스겔에게
말씀하시기를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상태는 마른 뼈와 같이 생명도 없고, 소망도 없고, 죽어서 무덤에 갇혀 있는 마른 뼈들과 같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충격적인 일입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서 오랜 포로생활을 지내면서 그럭저럭 적응해서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관심하시고 보여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그들의 영적인 상태였습니다.
이방인의 땅인,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아가면서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육신적으로는 잘
적응해서 자리를 잡고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영적인 삶은 곤고해지고 소망 없는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럴 때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오랜 시간을 살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이 생기고 적응하면서 잘 사는 것 같은데,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제대로 점검하지도 돌보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칫 메마르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성도라는 타이틀 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 상태를 한번 돌아보시면서, 그 마른 뼈들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더욱 소생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우리의 영혼의 상태에 관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믿는 성도들의 관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살아있다고 해서 우리가 온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여기면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육신의 생명도 주셨지만,
영적인 생명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 영광에 참여할 생명은 썩어진 육신의 생명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이 있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그 육신은 건강하고,
아무 탈없이 사는 것 같지만, 영적인 상태는 마른 뼈들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는 암담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 자체로는 소망이 없는 삶을 살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의 영적인 상태를 본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우리 교회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신다면 어떠한 모습이겠습니까?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는 생명력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겨우 연명하는 상태입니까? 아니면 이미 죽어서 마른 뼈로 말라 있는 그러한 상태는 아닙니까?
어느
날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마른 뼈다귀를 보여주시면서, 지금 너의 모습이 이 마른 뼈와 같다고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끔찍하고 절망적이겠습니까? 우리는
육신적으로 건강하고 풍요하게 사니까 우리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 관심하지 못하고 살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적인 필요가 있으면
그것을 위해서 수고하지만 영적인 빈곤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적인 삶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메마른 뼈와 같은 영적인 상태에 있다고 한다면,
기꺼이 살려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러한 마른 뼈를 보여주시는 것도 그것을 보고 낙심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이 마른 뼈들이 살아나겠으니 절망이 아니라
소망 가운데서, 무기력이 아니라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마른 뼈들을
어떻게 살리고자 하십니까? 우리의 영혼은 어떻게 소성될 수가 있겠습니까? 2.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도록 하십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라고 합니다. 마른 뼈가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계속 말하게 하십니다.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하십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 할 때에 그 뼈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뼈가 서로 들어 맞고, 뼈들이 서로 연락을 합니다. 그래서 흩어졌던 뼈들이 자기 위치를 찾아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였습니다. 그래서 전에는 아무 생명도 없는 마른 뼈였는데, 이제는 그 뼈들이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말씀이 아닙니다.
죽은 말은 아무리 말해도,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 죽은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말씀하시면 그 말씀이 살아서 그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말씀을 듣고 믿고 따라가는 사람들도,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이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그 영혼은 죽습니다.
이스라엘이 메마른 뼈와 같이 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바로왕의 손에서 건져 주시면서, 그들에게 주신 것이 하나님의 말씀, 율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세상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예배하지 아니하고 다른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기 스스로 영적으로
죽을 길을 택한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선지자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였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들을 살리고자 하는 말씀인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말,
세상의 말을 듣고 살다가 결국 포로로 잡혀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포로생활의 불행은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도,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영적인 상태는 더욱 마른 뼈와 같이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과 고집에 사로 잡히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고 듣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그 영이 시들해 집니다. 내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저와 여러분이 사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순종할 때에 그 영과 육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말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의 말씀이고,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으로 천지를 만드셨고, 이 땅의 생명을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죽은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나사로야 나오너라”라고 부르셨고, 나사로도 그 말씀을 듣고 무덤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일 주일을 살면서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셨고, 들으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까?
내 영혼은 괜찮겠지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그 말씀과 상관없이 내 생각과 뜻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실제로 내 영혼의 상태가 심히 위험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메마른 뼈의 상태에서 헤어나오기 힘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에
나를 살리는 말씀임을 기억하며, 그 말씀대로 순종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생령이 되기 위해서는 또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생기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뼈들이
서로 들어 맞고, 힘줄과 살과 가죽이 생기면서 겉모양은 사람의 모양을 갖추었지만 아직까지는 움직이지 못하는 시체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시체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다시 한번 에스겔에게 대언케 하십니다. 에스겔은 생기를 향하여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고 합니다. 그랬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살아나서,
극히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마른
뼈를 살게 한 이 생기가 무엇입니까?
히브리말로 ‘루아흐’입니다.
‘바람, 호흡’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루아흐’는 하나님께서 맨 처음 사람인
아담을 흙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불어 넣어주셨던 생기와 동일합니다. 창세기 2: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했습니다. 비로서 살아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호흡이 사람들에게
들어갈 때에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헬라어로는 ‘프뉴마’입니다. 이는 곧 성령을 말합니다. 마른 뼈가 살아나게
된 것은 육신적인 호흡이 들어가서 산 것이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의 호흡인 성령님의 들어가심이 있었기 때문에
산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많던 죽어 메말랐던 뼈들이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살아난 사람들이 큰 군대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일컫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군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이스라엘이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날마다 살리시는 분인데,
왜 살리시냐하면 군대로 쓰시기 위해서 살리시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3-4절에는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군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를 부르신 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순종함으로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군인이라고
한다면 제일 우선적인 관심이 상사의 명령입니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것이 군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을 살려주시고,
우리로 군대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세상의 불의를 물리치며,
하나님의 승리를 확장해 나갈 영적인 군사들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메마른 뼈가 되어서 쌓여 있는 군대는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살아있는 성도를
하나님은 원하시고, 그래서 우리의 육신과 영혼을 하나님의 군사로서 살라고 날마다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다윗은
시편
119:25절에서,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의 상태에 늘 관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이 늘 살아있기를 위해서 주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에 붙잡혀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관심 중에서 하나가,
나의 영적인 건강상태를 늘 점검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영혼이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당신의 군대로 사용하시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군사된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따라서 부르신 자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육신의 삶은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살아가지만, 주님의 군사된 영적인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리고 그 들은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능력을 주실 때에, 우리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군사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메마른 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아있는 하나님의 군대로서 살리실 때에,
에스겔로 대언케 하셨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하실 수도 있을 텐데, 꼭 에스겔을 통해서 하셨고, 다른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대언하는 존재로 불러 주셨습니다. 내
안에 메마른 심령, 영적인 곤고함이 있습니까?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 안에 성령님께서 임하시고 살아있는 생령으로,
군사된 자로 살아갈 줄로 믿습니다.” 우리
가정안에 영적으로 메마른 시간들이 있습니다.
나의 사역안에서도 그러한 일들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무엇을 주저하십니까?
에스겔과 같이 대언하십니다. 우리 교회안에도 성령의 바람이 불어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할 살아있는 군대로서 사용하여 주십시오. 에스겔과 같이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적인 호흡과 형통에만 관심하다가,
영적으로 메마른 뼈와 같은 존재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살리는 영이요,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어딘가 말라가는 부분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며, 그 가운데 하나님의 생기가 우리
가운데 역사하심을 우리가 믿고, 그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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