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하나님을 경험한 수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인정하신 사람이 있는데 바로 다윗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독 다윗을 자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3:22절에,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깨달아서 따르는 것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셨는데,
다윗을 만났더니 너무 좋으셨던 것입니다. 다윗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모두 다
이루고자 하실 만큼,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았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끼리도
이러한 사람을 만나면 정말 행복합니다.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간에 마음이 합하며 정말 행복한 가정입니다. 고용인과 고용주가 서로 마음을 합한다면
정말 행복한 직장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오해할만한 것도 그 마음의 뜻과 진심을 알기 때문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고 아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 보다는, 외형적인
행동을 보고 자신의 입장에서 비판하며 평가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나의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에
합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행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다윗을 만났을 때에 딱 그러한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그 동안 출애굽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참 고단하게 했던 사람들입니다. 기회될 때마다 하나님을 향해서 불평하며 불순종했던 사람들입니다. 사울 같은 경우는 기껏 왕으로
세우시고 당신의 일을 맡기셨는데 너무 마음이 통하지 않으셔서 얼마나 답답해 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다윗은
달랐던 것입니다. 마음이 통한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어떻게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살수 있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양이 되는 것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분별해서 목자를 따르면 되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목자되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목자의 심정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왕이 되기 전까지 어려서부터 양을 치는
목자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양을 치면서 목자가 어떠한 존재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았습니다. 비록
하나님이 목자가 되고, 자신은 양이지만 다윗의 마음은 보통 양의 무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목자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지혜로운 양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윗이 어떻게 그토록 목자의 마음에 합한 양의 삶을 살았는지, 왜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하신 것을 이루고자 하셨는지, 과연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양의 모습은 무엇인지를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족함이 없는 분임을 확신했습니다. 다윗이
믿는 목자는 양들이 필요한 것을 양들보다 더 잘 알고, 그것을 부족함 없이 채워주는 존재였습니다.
양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먹을 것을 해결하고, 그들의 안전을 해결합니다.
자기 자신은 추위 가운데서 떨고 고단하더라도 양들을 위하여서 밤을 새며 돌보는 것이 목자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목자와 함께 하면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설령 부족함이 있다고 여겨지더라도 그
부족함은 내가 스스로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목자로부터 채워지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참된 목자이십니다.
자신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다윗이 참 위대한 것은 자신이 필요한 것이 육신적인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다윗은
목자되신 여호와께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목자가 양을 이끄는 곳은 푸른 초장이고,
쉴만한 물가입니다. 우리의 육적인 필요를 채우시는 것도 목자되신 하나님의 관심 중에서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40년간 광야생활로 이끄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하루 어떻게 먹고 물을 마실까 대책이 서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침마다 그들의 먹을 것을 공급하시고, 마실 물을 공급하셨던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여호와는 내게 부족함이 없으신 분임을 알고 믿고 기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께 육신적인 필요만을 채워주심만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목자되신 하나님은 자신의 영혼의 필요까지도 채우심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신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육신적으로 왕이 되고, 권력을 가지고, 풍요로운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영혼이 죽으면 그 인생은 껍데기인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
영이 살아야 하나님의 의의 길을 걸을 수가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는 온전한 양이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서 인정하지 않고 따르지 않는 것은 육신의 필요만을 구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이유도
무엇을 먹고 마실까 걱정하며 육신의 필요를 따라 살아갈 때가 많지만, 영혼의 필요를 알고 그 필요를 채우고자
하나님을 따라가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참
목자가 되시는 것은 그 양들의 진정한 필요를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적인 필요와 영적인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이 세상의 어떠한 존재도 우리의 영혼의 필요를 채울
만한 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우리 하나님 만이 우리의 영혼의 굶주림과 목마름에 관심하시고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으며, 우리의 육신의 필요만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의 필요까지도 아시고 채워주시는 목자되신 주님을 신뢰하며 따라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또한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의 보호하심을 믿었습니다. 목자가
양들을 인도할 때에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면 양들이 잘 따라올 것입니다. 하지만 목자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자신을 데리고
간다면 긴장하게 되고, 두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한다면, 그것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골짜기입니다. 그 골짜기는 들어가면
죽을 것 같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어떤 잔인한 맹수가 그곳에 있는지 모릅니다. 성도들이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간다고 하지만 따라가기를 주저하고, 포기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때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죽을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육신의 병듦으로 인해서, 여러가지 가정과 직장의 문제로 인하여서 죽을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교회의 사역을 하면서도 그렇습니다. 정말 도망가고 싶으실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의 목자되신 주님을 떠나기가 가장 쉬운 위기의 때입니다.
목자를 떠나서 내가 생각하는 살길을 찾아서 가고 싶은 유혹이 듭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그러한 순간에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실 것을 믿었기 대문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자기 자신을 지켜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도
이러한 일들이 없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끄실 때에 좋은 곳으로만 이끄시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처럼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를 헤매고 다녔던 사람도 드뭅니다. 다윗처럼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긴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특별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려움을 많이 당했습니다. 골리앗 상대로 승리해서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했을 때에 자신의 왕인 사울이 이를 시기하고, 왕권이 다윗에게로 갈 것을
두려워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서도 여전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왕권을 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해서 왕궁을
떠나 피난을 가기도 했습니다. 왕이 되어서 수 많은 대적들과 싸우면서 이스라엘을 지켰습니다.
다윗은 죽을 것 같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수 없이 다녔습니다. 목자되신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자기를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것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것입니다. 그곳을
다닐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오직 한가지 이유는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시기 때문입니다.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괴롭히는 원수들을 치시고, 나를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극기야는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셨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잔을 넘치게 주셨습니다. 다윗을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자리,
잔치의 자리에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하시고,
이제는 그를 해하려고 하는 그들 앞에서 다윗을 지극히 높여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양들이
있는 곳에 함께 따라다니는 것은 양들을 노략하려는 맹수들입니다. 호시탐탐 양을 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양들이 그 맹수들, 원수들 앞에서 풀을 뜯으며 평안을 얻는 것은 목자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자신들을 안위하시고 지켜 주시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베푸신 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주변에 원수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지만 목자가 지켜 주시기에,
영접해 주시기에 그 앞에서 그 베풀어주신 음식을 먹으며, 기름부음을 받고,
그 잔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있고,
원수들이 나를 해하려고 한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목자되신 주님
안에 있을 때에 그분의 강하신 팔로 저와 여러분들을 지켜 주시는 줄 믿습니다. 구원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 다윗은
목자되신 하나님이 얼마나 선한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게 되는 순간도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선하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변의 상황을 보고서 하나님이
선하시다 선하지 않다라고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목자되신 하나님이 얼마나 인자하신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양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다윗은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요한일서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하나님이 인자하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이것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윗과 같이 믿고 따르는 목자이신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참 목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0:11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하였습니다.
그리고 10:15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육신의 삶과 영적인 삶에 부족함이 없는 분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로 다닐지라도
우리를 안위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우리를 당신의 영원한 집으로 인도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은 목자되신 하나님의 양이었지만, 자신의 목자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양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양을 쳤던 목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같은 목자는 아니지만,
그 목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얼마나
그 양들을 풍요케 하기 위해서 애쓰고 수고하는지를 알고 있었고, 헤아리고 있었고, 감사해 했던 것입니다.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양이지만,
목자되신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보다 이루어드릴 수 있는 착하고 신실한 양이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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