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4/2015 - 부르심의 상을 좇아가자 [빌립보서 3:10-14]
지난 주일에 초대교인들의 변화된 삶을 보면서 우리의 도전으로 삼았습니다.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더니 갑자기 달라졌습니다.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자신이 믿는 예수님을 배우기에 힘쓰고, 기도하기에 힘을 씁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변화되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형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보다는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관심하고 그들을 돕는 일에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팔아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다른 사람에게도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고, 초대교회 성도와 교회는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할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로 그의 삶의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향하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이제는 돌이켜 박해하던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평생 살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볼 때에, 사도 바울의 변화는 그의 푯대가 달라졌기
때문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했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니까 예수님께 시선이 꽂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부름의 상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상을 받기 위해서 좇아가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이 있음을 믿고 그것을 좇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각 학교마다 방학을 하기 전, 한 학년을 마치면서 학생들에게 상을
주었습니다. 저도 아이들이 상을 받는 자리에 참석했었습니다. 상받을
아이들이 일렬로 줄을 서 있고, 선생님 한 분이 그 아이가 무슨 상을 받는지를 알려 줍니다. 그러면 교장선생님이 그 아이와 악수하면서 그 상장을 수여합니다. 그런데
상의 종류가 참 많더라구요. 개근상, All ‘A’상, Outstanding performance,
UIL, 교장상 등이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한 사람이 열 개 정도의 상을 받는 아이가
있어서 무슨 상을 받는지 소개하는 동안 지루하리만큼 교장선생님과 악수를 하더라구요. 그런데 어떤 아이는
달랑 하나만 받아서 교장선생님께 상받으러 가기도 전에 상을 소개하는 것이 마쳐지더라구요. 그런데 그
자리에 모든 학생이 참여할 것이 아닙니다. 상을 받지 못하는 학생은 그곳에 초대받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똑같이 일년 동안 학교생활을 하고 마쳤지만 받을 상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학생이 상을 받을 만한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학생들이 상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이 땅에서의 삶에 합당한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상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상을 받을 만한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도 하나님께 상 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 애쓴 사람입니다. 그리고 상 받기에 딱 좋은 환경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 순수
혈통에서 태어났고, 최고의 랍비의 제자로 율법에 최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최고의 철학자들과 겨룰 정도로 최고의 학문을 배웠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서 얼마나 사도바울이 힘을 썼는지는 알만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와 교회를
핍박했던 것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했던 열심으로 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까 그에게 있어서 커다란 충격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의 하나님의 아들을 핍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한 그 동안의 업적이 상 받을 만한 일이 아니라, 천벌받을 만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전에 있던
것은 아무 가치가 없다고 여겼기에 그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고 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상급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있음을 사도바울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지 않으면 상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을 때에 이 땅에서의 상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없이 이 땅에서
받는 상과 영광은 하나님의 상급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깨달은 사도바울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상급을 받고자 그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을 받기 위해서 살았던 사도바울의삶을 보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을 받기 위한 믿음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1. 하나님의 상을 받는 것은 영광된 일이지만,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상들이 있지만 모두가 다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가치있는 상은 그 상을 위해서 고난의 시간을 참고 견딘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상을 위해서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릴 때의 그 모든 수고와 고난에 대한 인정함이 상인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영광을 받기 위해서, 그
전에 그리스도 고난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에 사도 바울은 이 땅에 살면서
영광의 상을 받을 것을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고난을 받을 것을 예상했었고,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고난이, 하늘에서의 상급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한 목사님께서 군대 신병대에 이러한 경험을 하셨다고 합니다. 목사님께서는
신학교를 다니시다가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친 후에 부대를 배치 받았습니다. 배치를 받은 후 첫 주일이 되었을 때에 교회에 갈 사람 나오라고 해서 그 목사님을 포함해 25명의 신병들이 군인교회를 갔다가 왔습니다. 너무 감격이 되어서
눈물을 쏟으며 예배를 드리고 내무반에 왔습니다. 그런데 당직 사관이 관물대를 검사한다고 하더니 교회에
갔다 온 25명만을 지적해서 연변장을 돌도록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치로 알았습니다. 지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다음 주일에 또 교회에 갈 사람은 나오라고 했는데 눈치 빠른 다른 신병들은 빠지고 10명만 나오더랍니다. 10명이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내무반에 왔는데 당직 사관이 이번에는 총기검사를 한다고 하더니 또 교회에 다녀온 10명만 트집을 잡아서 또 얼차려를 심하게 시키더랍니다. 그렇게 또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교회에 갈 사람은 나오라고 하는데 이제 겨우 5명만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당직 사관이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서 교회에
다녀온 다섯 명의 신병만 골라서 또 괴롭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네 번째 주일이 되었고 교회에
갈 사람은 나오라고 하니까 겨우 그 신학생과 다른 한 명만이 나왔습니다. 그 둘은 교회에 갔다가 와서
고생을 할 것을 각오를 하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왔습니다. 그 둘은 그 날도 얼차려를 받을 각오하고
내무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도 아니나 다를까 당직사관이 교회에 다녀온 그 두 신병만을
불러 냅니다. 또 걸렸구나 하는 마음으로 얼차려를 받을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당직 사관이 다른 신병들에게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앞으로 이 두 사람은 주일날 교회에서 저녁예배까지 다녀와도 된다. 이 두 사람은 진짜고, 나머지는 다 가짜다.”라고 말을 하더랍니다.
믿음생활을 할 때에는 고난이 반드시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고난이 도리어 상을 받을 근거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5:11-12절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 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이 받은 하늘의
상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욕을 먹고, 핍박을 받고, 악한 말을 들을 때인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받은 고난이 곧 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들은 믿음으로 살다가 오는 고난이 있으면, “아… 이것이 상 받을 일이구나”라고 여기고서 준비된 마음으로 그 고난과
맞서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18절에, “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하였습니다.
우리가 장차 받을 영광과 상은 이 땅에서의 고난과는 비할 바가 아닌 줄로 믿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영광도 없는 법입니다. 고난이 다가올 때에 그것이
더 큰 상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시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또한 그 푯대를 이미 잡았다고 여기지 않고, 그 푯대를 잡기 위해서 평생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하늘의 부르심의 상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마라토너와도 같습니다. 마라토너가
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 출발점을 떠난 것으로 상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마라톤 트랙을 달리고 있는
것으로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 앞에 있는 모든 트랙을 달리고 마지막 결승선을
끊을 때에 비로서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기 전까지 우리는 푯대를 잡았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로운 믿음의 출발을 한다고 하늘의 부르심의 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생활을 하면서 많은 고난을
받고 견딘다고 해서 그 상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늘의 부르심의 상급은 이 세상의
모든 수고를 다 한 후 하나님 앞에 갈 때에 받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0:12절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제대로 섰다고 생각했을 때에 그 때를 조심해야 합니다. 사도바울과
같은 믿음의 사람도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연약함과 죄성이
있기 때문에 교만하지 않으며 늘 겸손히 자신을 살피면서 예수님을 따라 살았던 것입니다.
또한 넘어졌다고 여길 때에도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푯대를
향해서 달려가다가 넘어졌을 때에 그것이 최종적인 것이 아닙니다. 좌절하여서 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예수 그리스도라는 푯대를 바라보면서 일어나서 좇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오직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간다고 했습니다.
과거의 넘어짐이 사도바울은 잡아 둘 수가 없습니다. 사도바울 같은
경우에 예수님 믿기 전에 교회를 핍박했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했을 때에 사람들은
그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고 두려워하기까지 했습니다. 사도바울도 이를 잘 알았습니다. 그도 자기 자신을 괴수 중에 괴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것에 얽매여서 부르심의 상을 좇아가는데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랑할 만한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사도바울은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에게는 부끄러운 죄의 모습도 있었고, 자랑할 만한 업적도 많이 있었지만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갔습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에게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고 날마다 가까이 하는
하루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부르심의 상을 이미 받았다고 여길 것도
아니고, 못 받았다고 여길 것도 아닙니다. 날마다 좇아가는
삶이 것입니다. 오늘도 하루를 주셨으니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부르심의 상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 곳에 있는 우리 모두는 가장 지존하신 분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푯대를 삼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가는 사람에게 그 부르심의 상을 준비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 땅에 수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상을 주시기 위해서 불러주신 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상급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따르는 것이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에 영광이 아니라 고난을 받으셨고, 마침내
부활하셔서 하늘의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성도들도 고난을 통하여서 부활의 영광이 있고 하늘의 상급이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상급을 기대하는 자들은 고난을 당할 때에 그것으로 인해서 좌절하고 낙망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고난이 큰 만큼 하늘의 상급도
큼을 깨닫고 기대하며 맞이하는 사람입니다. 현재 고난 중에서 힘들어 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하늘에서 당신의 상이 큽니다.
또한 우리가 이 땅에서 살 때에는 푯대를 잡았다고 자만할 것도 아니고, 푯대를
놓쳤다고 좌절할 것도 없습니다.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고,
하루하루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가는 것이 상 받을 자의 자세인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가면 어떠한 상이 준비되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분에게는 기도의 상이 있을 것입니다. 매일 새벽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이에게 준비하신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이나 선교사님들과 같이
복음 전도를 위해서 고난을 감당하신 분들께는 선교사의 상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믿음의 본이 되었다고 한다면 모범상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많이 사랑한 분에게는 사랑상도 있을 것입니다.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신 분에게는 예배개근상도 있을 것이고, 전도를
많이 한 분들께는 전도상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적이 있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 상이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경험하는 모든 기쁨과 슬픔, 고난들은 하늘의 상급을 위한 것임을 기억하면서 우리 모두가 끝까지 주안에서
부르심에 합당한 상을 받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샘터 질문
1. 그 동안 받았던 상 중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상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상은 어떠한 사람에게 준다고 생각합니까?
3.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자신이 받고 싶은 부르심의 상은 무엇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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