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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 주님의 날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버지의 날이기도 합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부양하시기 위해서 애쓰고 계시는 아버지들을 기억하면서 감사를 전하는 날입니다. 우리 이곳에 계신 남자 성도님들을 향해서 한번 인사하시죠, “Happy, Father’s Day!!!”

부모님들이 하시는 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그러기에 힘든 일 중에 하나가 자녀들을 양육하는 일일 것입니다.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는 널리 인정받고 능력도 있는 아버지, 어머니가 집에 들어오면 사정이 달라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권위와 능력이 집안에서는 안 통한다는 것입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아이들이 부모님의 말씀을 소홀하게 여기더니 거역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자녀에 대한 책임이 부모에게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가정안에서 부모가 공경을 받아야 하고, 그 권위가 세워져야 할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만약 자식이 부모를 친다거나, 부모를 저주하면 그 자녀는 돌로 쳐서 죽이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자녀들도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은 그 정도로 가정안에서 부모의 권위와 공경이 지켜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럴 때에 그 가정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정으로 제대로 설 수가 있고, 하나님의 가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마음대로 안 되는 일 중에서 하나가 자녀를 양육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성경에서도 보면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이 때로 그 자식들 때문에 얼마나 고민했을까 싶었던 이야기를 볼 수가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 같은 경우도 아들 때문에 속을 썩였는데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둘이 엘리제사장을 힘들게 했습니다. 아버지가 제사장이면 아들도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이 하는 가장 귀한 일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엘리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를 제대로 드리기는커녕, 사무엘상 2:12절에 보면,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으니 그 두 아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제대로 드리지 않고, 또한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장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에 엘리제사장이 두 아들을 불러서 책망을 합니다.

사무엘상 2:24절에,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그런데 그 두 아들이 아버지의 말씀을 우습게 여깁니다. 두 아들들이 그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악한 일을 지속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전쟁에 나갔다가 두 아들이 한꺼번에 죽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로 사무엘처럼 훌륭한 일을 감당한 사람은 드뭅니다. 엘리 제사장 가문이 그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할 때에 사무엘이 나타나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해 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였고,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영적인 지도자였습니다. 이제 사무엘이 늙어서 이스라엘을 이끌 재판관, 사사를 자신의 아들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이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도리어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백성들이 당신의 아들과 같은 사사, 재판관은 필요 없이니 우리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사무엘이 자신의 아들들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사실, 이러한 아픔과 안타까움을 가지고서 자녀들을 양육해야 하는 책임이 부모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그 권위를 허락하셨고 유지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의 권위가 가장 인정받기 힘든 곳이 가정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엘리선지자나 사무엘 선지자가 사람들을 대할 때에 얼마나 권위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가정에서 그 자녀들에게 그 권위가 인정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부모가 공경받아야 되고, 그 권위가 인정받아야 하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부모들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그 자녀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품고 아파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녀들의 영적인 성장을 책임지는 부모로서 어떠한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서 부모의 영적 권위를 가지고 그 일들을 할 수 있지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옴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이 땅에 많은 권위들이 있지만 이 모든 권위는 스스로 가진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 의해서 부여된 것입니다. 대통령에게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권위와 권세는 백성들로부터 나옵니다. 백성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그 권세를 부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 나라를 움직이는 권세도, 한 가정을 운영하는 권세도 궁극적으로 모든 세상의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로마서 13:1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 땅에 모든 권위와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하나님 만이 스스로 그 권위를 입으신 분입니다.

시편 93:1,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하였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부모의 권위를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자녀들을 잘 양육하도록 권위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영적인 권위를 부여해 주신 것이고, 이러한 부모의 영적인 권위가 잘 세워질 때에 가정이 온전히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 안에서 먼저 세워질 권위와 권세는 하나님의 권위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때로 부모들이 그 권위를 자녀로부터 인정받고자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가 부모의 권위의 근거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 권위를 가지고 가정을 치리하며, 자녀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를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권위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부모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권위가 인정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일찍이 시편 119:105-106편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다윗은 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등과 빛으로 삼아서 걸어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로 맹세하고 정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함으로 먼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할 때에, 하나님의 권위가 부모에게 나타나고 그 권위로 자녀가 양육되고 가정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부모 스스로부터 나오는 권위도 아니요, 자녀들이 인정해줘야 세워지는 권위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위가 그 가정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권위가 무너졌다면 그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하며 간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위가 부모에게 흘러가고, 또한 부모에 허락하신 부모의 영적인 권위를 인정하는 가정으로 세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또한 부모는 자녀들이 영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으로서 부모로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잠언 4:4절에 보면,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이것은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말을 기록한 것입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요청한 것은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는 것입니다. 내 명령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이 다윗의 개인적인 말이 압니다.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에게 가르친 말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 아들 솔로몬에게도 똑같이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르쳐 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산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육신적으로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양육받지 않아도 육신적으로 사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도리어 잘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명령으로 주고 지키라고 했던 것입니다.

신명기 6:6-9절에, 이스라엘이 그 자손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자녀들에게 그 말씀을 강론하라고 했습니다.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특정한 때에만 강론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입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아주 배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일년에 한 두번씩, 휴스턴에 있는 작은 집에 가서 며칠 지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갈 때마다 작은 어머니께서 자녀를 말씀으로 가르치기 위해서 얼마나 애쓰시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작은 어머니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는데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함께 지금까지 믿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때로는 신앙적으로 해이해 질 때도 있고, 믿음생활을 뒷전으로 할 때도 있었음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늘 교회안에서 그 믿음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머니의 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집에 가면 여기저기에 성경구절이 적힌 종이가 여기저기에 붙어 있습니다. 어머님께서 손수 사인펜으로 성경구절을 쓰셔서 식탁의 벽에도 붙여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보기 가장 좋은 곳이 화장실입니다. 변기에 앉아있으면 그 앞의 벽이 말씀을 적은 종이쪽지들이 한 가득 있어서 눈길이 저절로 갑니다. 때로는 출근하는 아들의 구두 위에다가 성경구절을 적어서 올려 놓으면 아들은 그 말씀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 말씀은 그 자녀들이 그 말씀대로 하나님의 자녀로 잘 살라는 육신의 부모의 간절한 마음인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직장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고 순종하라고 주시는 어머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권위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있는 말씀을 권위있게 전할 수 있고 그 말씀대로 양육할 수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그 자손에게 소개할 때에 그 조상의 이름을 써서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만한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그 아들 이삭이 모리아산에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 만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이삭이 만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야곱은 벧엘에서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이 만난 하나님을 그 아들들이 만나게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부모의 역할은 자신의 하나님이 자신의 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녀들의 하나님이 되심을 믿는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고,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 부모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 만남을 간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중고등부 학생들이 콜럼버스에서 열리는 디스커버리 캠프를 다녀왔습니다. 이번 년도의 주제는 “EYEWITNESS”입니다. “눈으로 직접 본 증인이 이번 캠프의 주제였습니다.

요한일서 1:1절의 말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다른 사람이 들려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 직접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의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서 그곳에 있는 천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캠프가 진행되는 Hall의 무대의 옆면을 하얀 벽으로 만들어 놨는데 그 하얀 벽은 자신들이 캠프를 통해서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서 그 간증을 쓰는 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무릎이 다쳐서 제대로 걷지 못했는데 다리가 나어서 점프하며 찬양했던 간증, 자살과 자괴감의 생각에서 하나님의 치유하심을 경험하며 하나님께 헌신하는 이야기들이 간증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교회 아이들도 영적으로 깊은 영적인 체험을 했습니다. 거기에서 들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함께 끌어 안고 기도하고, 방언과 입신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하나님이심을 경험할 수 있고 고백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고 그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를 허락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데에 여러가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부모 자체가 장애물이 돼지 말아야 하고, 또한 그러한 장애물이 있으면 부모가 제거해 주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부모의 하나님이 곧 자신들의 하나님이 될 수 있도록 신앙의 영향력을 끼치는 부모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날 이 사회는 권위가 인정되지 않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 지켜져야 할 권위까지도 인정하지 않아서 위험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는 모든 세대, 모든 지역을 통해서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권위가 지켜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영적인 권위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단순히 자녀를 육신적으로 잘 양육하라는 이유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가르치라고 주신 권위입니다. 가정안에 영적인 권위가 제대로 세워질 때에 가정이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가 하나님의 권위 가운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모 스스로가 권위를 세우려고 하면 문제가 됩니다. 부모도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권위로 자녀들에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세워주신 것은 자신의 말로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사람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몫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녀가 하나님이 자녀의 하나님이 될 수 있도록 주님과의 만남을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은혜에 자리에 갈 수 있도록 후원해야 합니다. 부모의 하나님이, 바로 내 자녀의 하나님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크리스챤 부모는 적어도 자녀들의 영적인 양육과 성장을 중요하고 우선시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세워주신 부모의 권위로 자녀들을 말씀으로 양육함으로, 자녀들의 영이 살고 하나님의 자녀로 날마다 성장하는 아름다운 변화가 있고, 가정이 든든하게 서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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