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메가 처치라고 해서 초대형
교회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들을 보면 모든 것이 풍성해 보입니다. 풍성한 자원을 가지고 좋은 시설을 마련하고,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굵직한 사역들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교회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반면에 미자립교회라고 불리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들은 외부적으로 도움이 없으면 교회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로, 풍성한 모습을 가지기 보다는 빈약한 모습으로 비춰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볼 때에 사도바울의 관심도 에베소교회가 풍성함을 경험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는 풍성함은 외형적으로
보이는 형태의 풍성함이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교회가 가져야 할 보다 본질적인 풍성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인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존재 자체가 영광스러운 존재인데, 하나님을 온전히 드러내는 교회가 사실
하나님의 영광이 풍성한 교회인 것입니다. 고전 10:31절에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 풍성하게 먹고 마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풍성하게 먹고 마실 수도 있고, 어떨 때는 먹고 마시지 못해서 저절로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먹고 마시는 것의 풍요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풍성하게 드러나는 삶을 살고 있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때로
성도의 삶이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교회가 외형적으로 커졌다고 할지라도 때로는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고 도리어 그 영광을 가리는 경우가 있는데,
무엇보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으로 교회가 채워지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과테말라 단기선교를 통해서 선교팀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하신 많은 일들의 기억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선교사역 마지막 날,
산밑에 있는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동네의 아들과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조그마한 학교
마당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율동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함께 한 찬양 중에서 "글로리아"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찬양을 하다가 클라이막스에서 "그리스도"를 외치면서 쪼그리고 앉아있다가 하늘을 향해 점프를 하고, 또다시 이어서
"글로리아"하면서 하늘을 향해서 점프를 하면서 찬양하는 곡입니다.
"그리스도","글로리아"라는 "곧 그리스도 주님, 영광을 받으세요"
소리를 반복해서 외치면서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이들과 우리 선교팀,
그리고 그곳에 모인 부모들도 함께 하늘을 향해 점프를 하면서 "그리스도여,
영광을 받으세요"하면서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몸이 지치도록 여러번 반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온 몸으로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역을
마치고 자리를 정리하는데, 하준이가 우연이 하늘을 보았는데, 하늘에
태양 주변으로 무지개가 동그랗게 떠 있는데 마치 우리를 내려다 보는 눈동자와 같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무지개를 신기하게 보고 있는데, 김선희 성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모두가 열심히 그리스도의 영광을 부르며 찬양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찬양을 받아주셨다."고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찬양을 영광으로 받아주셨음을 무지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사인으로 보여주셨다고 믿으며 참 행복해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은, 사도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으로 교회가 채워지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때에 우리 또한 영광된 존재로 세상에 드러나며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언제 경험할 수 있는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은, 성령께서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케 해 주실 때에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람의 존재를 말할 때에 자주 겉사람과 속사람을 나누어서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4:16절,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겉사람은
육신을 중심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의 모습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겉사람입니다. 육신이 건강하고, 육신의 원하는대로 즐겁고 편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육신의 소욕만을 따라서 살아가다가 보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 영광이 풍성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육신의 원하는대로 살아갈 때에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겉사람은 강건하기도 하지만 후에는 후패하기 마련입니다.
늙고 병들게 되는 것이 겉사람의 모습입니다. 그 겉사람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게 되면
결국 실망과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속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속사람을 강건케 해 주시면, 우리의 마음과 영은 날마다 새로워져 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생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16절에 보면,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져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착한 행실을 할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생활을 하면서 속사람과
겉사람이 갈등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실제의 모습입니다. 사도바울도
이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22-24절,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애통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속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원하지만, 겉
사람은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가기 보다는 육신의 편함과 즐거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서 살아가도록 유혹하니
그것 때문에 속상해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더욱 간구해야 할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입니다. 우리의 속사람은 우리의 힘으로 강건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때에,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실, 성도는 성령님께서 머무시면서
속사람이 강건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 3:16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성령이 우리 안에서 거하실 때에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 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육신의 소욕이 아니라, 성령님의 소욕,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성전과
같이 거룩한 사람,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경험하는 삶이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영광이 풍성한 교회는 성령님의 거하심이 있는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2. 그리고 하나님의 풍성함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경험할 수가 입니다. 성령으로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사도바울은 이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마음에 계시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우리의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 자신은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살아계셔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실 때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있음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드러내는 일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이것이 교회안에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왜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을 알고,
그 일을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알고 그것을 고백하며 예배하며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풍성함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늘 깨달으며 살아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어머니의 사랑에 관한 실화가 있습니다.
1865년 추운 겨울 밤, 영국의 사우스 웨일즈라는 곳에 한 아이 엄마가 아기를
가슴에 감싸 안고 눈보라치는 언덕을 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두움과 눈보라 속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아이 엄마는 그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면서도 그 아이가 잘못 될까봐 꼭 품에 앉고 놓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눈보라 속에서 얼어 죽었습니다. 눈보라가 그친 다음
날 아침, 그 길을 지나던 행인이 그 아이 엄마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아이를 꼭 끌어 안은 채 웅크리고 죽었는데 벌거벗은 알몸으로 죽어 있었습니다. 추위 속에서 안고
있는 아기가 얼어 죽을까봐 자신의 옷을 하나씩 벗어서 아기를 감싸주고 자신은 알몸이 되어서 동사한 것입니다. 그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입양이 되어서 자라게 되었고, 그 후에 그 아이는 성장해서 세계
1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국의 수상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신을 위해서 알몸으로 죽으신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랑을 늘 기억하면서 평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잘 알고 풍성히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19절에,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고 높고 깊은지를 깨달아 아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하신 영광된 일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너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죄인까지도 사랑하시는 너비가 있으십니다.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는 길이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끝까지 영원히 사랑하시는 사랑이십니다. 잠시 사랑하고 관두시는
것이 아니라 길이 길이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에는 높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낮고 천한 사람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높이 존귀하게 높여주시는 사랑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에는 깊이가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낮은 이 땅에
내려 오신 사랑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깨달으며 살아갈 때에 주님의 영광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사랑의 감격속에서 있다가 잊어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4절에 보면,
에베소교회에 대한 책망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그토록 에베소서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깨닫는 것이 충만해 지기를 기도했는데, 어느 순간엔가 자기들도 모르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잊어 버리고서 살았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러한 상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법이 없습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이를 늘 기억하며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경험되는 것입니다. 3.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실 때에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기를 원한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실 때에 우리 또한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실 때에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같이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점점 자라나서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점점
없어지게 되고, 잠시 사랑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은 철저하게 낮아지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높이며 존귀하게 여기는 사랑으로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이 드러나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랑에
뿌리가 박히고, 그 터 위에 세워진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주
만물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만한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으신데, 세상의 많은 존재들이 스스로 영광을 받고자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분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교회이고, 이것이
우리 교회에 주시는 영광된 일입니다. 성도와
교회가 이 세상에 드러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인 것입니다. 세상적인 것이 풍성한 것을 자랑하고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1. 그러기 위해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강건케 하셔서 우리의 속사람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육신의 소욕을 따라서 즐거움을 따라서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과 사랑이 충만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지식과 지혜가 풍성함을 자랑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 사랑을 깨닫고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영광된 것은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과 그 사랑이 풍성할 때에 영광스러운 것이지, 세상의 지식과 세상적인 방법이
있다고 영광스러운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는 실천으로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보기만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풍성함을 세상 사람들이 깨닫게 되고 경험하게 된다면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리는 풍성한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교회가
무엇으로 풍성해 지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풍성하게 드러나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성도의 삶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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