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2편은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다윗은 스스로 자신에게 말하기를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라고 합니다. 언뜻 듣기에는 다윗이 평온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보며 묵상하고
있는 것과 같이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4절에 보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볼 만한 평안한 상태가 아니라 도리어 자신을 죽이려고 일제히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는 긴박한 상황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을 요동하게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시선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도리어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자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이
시를 써 내려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 언제보다 다사다난한 분주한 시간을 보내면서 잠잠한 시간을 가지기가 힘이 듭니다. 가정을 돌보는 일들은 하면
할수록 신경 쓸 일이 더 많아집니다. 직장과 사업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스를 보면 날마다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납니다. 잠잠할 날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의 시선을 사로 잡는 것들도 너무 많이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 그 시선이 스마트 폰에 꽂혀 있는 것을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통해서 텔레비전도 보고, 쇼핑도 하고, 필요한
정보도 보면서 스마트폰에 아주 사로 잡혀 있습니다. 없으면 불안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놀이동산에
가면 가끔 가다가 부모를 잃어 버린 아이를 찾는 방송이 나오기도 합니다. 놀이 동산에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다가 보니까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서 정작 놓치지 말아야 할 부모님을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는 일들 주에서 하나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을 일들을 만들어 버립니다.
이런 저런 사건들을 일으켜서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해서, 미아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러할 때일수록 요동치는 마음을 잠잠히 하며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확실히 믿는 것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일제히 공격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소망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옴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어떠한 것을 바라보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바로 나의 구원이요, 소망임을 확실히 드러내는
태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위대한 성경의 인물들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을 것 같은 그 때에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의 문화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도록 방해한다고 할지라도 그럴 수록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고 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성도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 수 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방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하나가 사람들입니다. 다윗에게도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적들이 있었습니다.
한 두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일제히 다윗을 공격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 사람들을 묘사하기를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동안 다윗의 담이 되고 울타리가 되어서 다윗을 보호해 줄
것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담과 울타리가 흔들리고 넘어지면서 다윗을 덮쳐서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했던 일들은 높은 자리에 있는 다윗을 떨어뜨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동안
자신을 지지하고 보호해 주었던 사람들이 도리어 자신을 흔들어 떨어뜨리려는 사람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윗을 높은 데서 떨어뜨리기 위해서 거짓을 사용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말을 맞추어서 거짓말로 다윗을 모함하고
억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으로는 축복을 빌지만 속으로는 저주를 하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르게 외식하면서 사람들을 속였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럴 때에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러한 일들을 당하게 되면 잠잠하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 것입니다. 억울함에
대해서 호소하고 자신을 변호하는 일에 같이 흥분하며 사람들과 대적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때에 먼저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성경에서
보면 이러한 거짓말 속에서 억울한 시간을 보냈던 사람이 있는데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것이 형들의 시기를 받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시 시기해서 요셉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동생의 담과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할 형들이 도리어 그를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형들이 요셉을 죽이는 것보다 그를 노예로 팔아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바꾸어서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버립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동물이 요셉을 죽인 것처럼 거짓말로 보고합니다. 속으로는 동생이
없어진 것을 좋아하면서도, 아버지 앞에서는 거짓으로 동생의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는 척합니다.
요셉은 그 이후에도 거짓말로 어려움을 당합니다. 요셉이 보디발 장군에 팔렸을 때에
워낙 충성스럽게 일하므로 집을 관리하는 총무가 됩니다. 그런데 요셉에게 시험거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요셉에게 반해서 자꾸 유혹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주인의 아내의 유혹을 거부합니다. 그러니까 보디발
장군의 아내는 요셉을 도리어 모함해서 자신을 범하려고 했다고 해서 감옥에 가둡니다. 거짓으로 요셉을 끌어
내리는 것입니다. 이 때에 요셉의 마음이 얼마나 요동을 했겠습니까? 하지만
요셉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사람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하실지 구체적으로는 몰랐지만, 자신의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옴을 신실하게 믿고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들어서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우시고, 사람들을 기근에서 구원하는 사람으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나를 보호해 주고 응원해 줄 것 같은 사람이 도리어 나를 깎아 내리려고 모함하며 마음을 힘들게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가지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흔들어 놓을 만한 일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과 사건에 우리의 시선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때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과 소망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다윗도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람들에게 경고하기를, 이러할 때에
의지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것은 바로 포악입니다. 10절에 보면,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때로 사람들이 포악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포악은 ‘오쉐크’라고 해서 폭력이나 속임수를 말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힘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무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다윗
같은 경우에는 그가 왕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권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사울왕이 자신의 충성심을
왜곡하고 죽이려고 했을 때에도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다윗과 대적하여 왕권을 차지하려고
할 때에도 도망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도망가는 도중에 시므이라는 베냐민 지파의 사람이 다윗을 저주하며 돌을
던집니다. 다윗은 자신의 군대를 동원해서 쉽게 그를 죽일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소망을 걸었던 것입니다. 스스로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지하기 쉬운 것이 자기의 힘입니다. 이 정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 힘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포악을 사용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힘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은 잠잠히 하나님의 뜻에 맞게끔 자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또한
다윗은 포악을 의지하지 말고,
또한 재물을 의지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10절에 보면,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 지지 말고,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라고 합니다.
오늘날
재물을 의지하며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재물을 탈취하면서 까지 물질을 모으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물을 탈취한 것이든지 아니면 정상적으로 쌓은 것이든지 간에 재물을 의지하는 것도 위험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24절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언뜻 생각하기에 사람이 재물의 주인이 되어서 재물이 사람을 섬기는데 사용된다고 여기지만, 예수님은
도리어 재물이 사람의 주인이 되어서 사람이 재물을 바라보며 섬기게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재물을 주인으로 삼고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윗은
오늘날 사람들이 의지하고자 하는 두 가지 권력과 재물에 대해서 그것은 의지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윗은 권력도 있었고
물질도 있는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권력과 물질에는 구원이나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3. 다윗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라볼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눈에 권력이 보이고,
재물이 보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윗은 8절에 보면,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권력을 의지하고 물질을 의지하려고 하지만,
다윗은 시시로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했습니다. 시시로는 때마다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필요하다고 여길 때 만이 아니라,
늘 의지해야 할 분인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힘과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옴을 믿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고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것도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의지할 분이 오로지 하나님인 것을 확신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 앞에 너희 마음을 토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하나님께 토로하며 아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정말로 누구를 의지하느냐를 알기 위해서는 누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는가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붙잡고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면서 메어 달린다고 하면 그 사람은 그 사람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붙잡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 주기를 원하고 동정해 주기를 원하지만 그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마음을 토로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아시고 체휼하시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그 마음을 토로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르셔서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며 그 마음을 토로함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시고 소망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때로 하나님의 구원을 참고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시편 37편 7절에는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한다고 할지라도 당장
변화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도리어 나를 해하려고 하는 악한 자들의 꾀가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 앞에 내 자신을 복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처분을 바라보면서 내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잠잠케 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날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의 감정을 흔들어 놓고 불안하게 만들어서 우리의
시선을 빼앗아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권력과 물질을 의지하기 위해서 시선을 빼앗길 때도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는 일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엉뚱한 세상 것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그렇게 시험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에서 40일간 기도하신 후에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리고 주린 예수님을 떡으로 유혹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떡으로 배를 채우라고 떡을 바라보게 유혹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경배해야 하는데 자신에게 절하며 경배하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주겠다고 세상의 것을 바라보게 유혹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영혼은 무엇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우리가 관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도는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시고 소망이심을 믿고,
어떠한 요동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오늘도
세상의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더 잠잠히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삶이 요동이 많고,
세상의 것이 눈이 보일 때에 그 때에는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보아야 될 시간인 줄로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우리의 흔들리던 믿음이 견고하게 서고, 하나님의 구원과 평강을 경험하는 성도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샘터질문 (적당한 질문을 골라서 함께 나누십시오.) 1. 당신의 생활과 믿음을 흔들어 놓을 만한 사건을 언제 경험하셨습니까? 무엇이 그렇게 했습니까? 2. 주로 어려움이 있을 때에 내가 가장 의지하게 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3. 당신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4.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시간이 언제 있었습니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