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난 주일, 창립기념주일을 준비하면서 부흥성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고, 함께 은혜를 받고자 힘썼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시들했던 영이 다시 소성케 되고 힘을 얻는 은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은혜를 받고서,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할 때에 항상 인식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시험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시험은 선택의 과정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치러야
하는 과정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야고보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말하기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믿는 것은 좋은데,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하니까 시험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 시험도 한두가지가 아니라,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시시때때로 시험을 당하는 일들을 볼 때에는 이상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험을 잘 극복하는 사람들은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 동안 받았던 은혜도 다 쏟아버리고, 더 큰 회의와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어떠한 태도로 시험을 바라보고 대해야 할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믿음생활 가운데서 반드시 따르는 여러가지 시험을
당할 때에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믿음의 사람들은
시험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특별히 시련, 고난에서 오는 시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고난을 겪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과 몸이 상하게 되고 그 시련에 눌리게 됩니다. 그래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게 되고 불안과 염려에 사로 잡히게 됩니다. 그러니
주변을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도 좋지 않게 되어서, 그 시련의 상황들이 더욱 더 악화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그러한 시련이
있어도 그것에 억눌리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초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시련의 시험을 그렇게 어렵지 않게 지나가는 분들도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에게 있어서 시련을 통한 시험은 자신을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의 믿음을 확인케 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됨을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 시련의
시험을 당하는 분들에게 그 시험으로 인해서 기쁘게 여기시라고 말씀을 드린다면 그 말씀 자체가 또 시험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닥친 시련들을 믿음으로 잘 대하게 된다면 도리어 믿음에 큰 유익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시련을 그냥 시련이 아니라, “믿음의 시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시련을 바라볼 때에 믿음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대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당하는 여러가지 시련,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건강의 시련도 있을 것이고, 경제적인 시련, 관계적인 어려움, 영적인 어려움,
가정안에서의 어려움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오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욥과 같은 경우는 여러가지 시험을 한꺼번에 당한 대표적인 사람일 것입니다. 자녀가
죽고, 물질도 다 잃어 버렸습니다. 아내도 떠나가고 자기의
육신적인 건강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극기야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러가지 어려움들이 들이 닥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련들을 경험할 때에 그것을 믿음의 시험으로 보아야 합니다. 건강이나
물질, 가족 등의 시련이기 이전에 우리의 믿음을 연약하게 만들고, 흔들어서
무너뜨리려고 하는 믿음의 시험으로 접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비록 시련의 형태가 건강이나 물질, 가정과 자녀, 결혼생활, 관계의 문제 등으로 여러가지게 있겠지만, 어떠한 시련이 있다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시련이라
여기고, 그러한 여러가지 시련으로 인해서 믿음이 흔들리고, 시험에
빠지는 일은 없도록 다른 것들은 다 잃어도 믿음만은 지키겠다는 각오로 그 시련을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시련 중에서도 믿음의 성숙과 온전함을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시련으로 인해서 도리어 인내하게 되고, 그렇게
인내하다가 보니까 우리의 믿음이 온전해 지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위인들을 보면, 그들이 믿음이 좋다고 해서 시련의
시험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들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그러한 시련을 당할 때에
증명되었고, 그 믿음이 더욱 더 온전케 된 것입니다. 시련의
시험이 없으면 우리의 신앙이 온전한지 어떤지 알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시련의 시험을 통해서
믿음의 면연력이 생기고, 왠만한 시련들은 은혜로 넘기는 성숙함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리어 시험이 유익이 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지난 8월에 연합샘터가 교육관에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샘터에 꼭 나오시던 집사님 한 분이 나오지를 않으셔서 왜 그러신가 궁금했는데, 예방주사를 맞으신 후에 몸이 아프셔서 못나오셨던 것입니다. 집사님께는
아프리카에서 일하고 계시는 따님을 방문하시기 위해서 비자를 받으려고 하니까 먼저 필요한 예방주사를 맞은 기록이 있어야 된다고 해서 그 나라에서
요구하는 예방주사를 맞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방주사를 맞으면 때로는 몸에 열이 나고 아프다고 하는데
그 증상이 집사님께 제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백도가 넘는 고열과 온 몸의 마디마디가 쑤시는 아픔을 경험하면서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시고 밤을 지내셨습니다. 그렇게 시련의 시간이 지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픔 이후에 집사님의 몸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이제는
아프리카에서 그러한 병균이 몸에 들어와서도 그것을 이길 수 있는 몸으로 더욱 강해진 것입니다. 때로는
힘든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미리 예방을 하면서 더 큰 시련을 이길 준비를 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들을 보면, 사실 어떤 이들에게는 시험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아무런 것도 아닙니다. 시험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성숙의 단계에 따라서 다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들이 있을 때에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기쁨인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를 더욱 성숙시키시고, 인내하게 하시고, 또한 온전케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서 그것을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방주사를
맞는 심정을 가지고 기쁨으로 그 시련을 상대할 때에 그것이 신앙의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말하듯이
시험이 올 때에 기뻐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2. 그리고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시험을 감당할 만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사람이 시험을 당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오는 시련이나 유혹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이 시험이 됩니다. 만약 충분히 그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면
그것을 굳이 시험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험을 당할 때에 그것을 감당할 만한 지혜와 능력이 부족할 때에 가장 먼저 우리가 관심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야고보는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십니다. 나의 지혜와
능력으로 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 시험이요, 그럴 때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구하는 가장 적절한
때입니다.
신앙의 연단을 많이 받으시고 시련을 많이 겪으신 분들을 보면, 어떻게
그 시련과 시험을 감당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지혜가 있습니다. 그 동안 기도하며 애쓰면서 그러한 신앙의
지혜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지혜가 없으면 시험에서 나오지 못하고, 시험에 빠져서 이리저리
끌려 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부흥 전도사 로랜드 힐 목사가 어느 날 거리를 지나가다 희안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여러 마리의 돼지가 지나가는데 마치 양이 목자를 따라가듯, 맨 앞에
있는 사람을 따라서 줄줄이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힐 목사님이 그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신도 그 뒤를 따라가는데, 앞에선 사람이 그 돼지들을 도살장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랍니다. 힐 목사님은 그 모습이 참 희안했습니다. 아무리 짐승이라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들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느끼고 도살장으로 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이 상식인데 그 돼지들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힐 목사님은 너무 궁금해서 “어떻게 해서 이렇게 쉽게 돼지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오셨습니까?”라고 묻자 그 사람이 말합니다. “간단합니다. 바구니에 완두콩을 충분히 담아가지고 와서, 돼지들 앞에 계속 완두콩을
흘려 주면서 데리고 오면 됩니다.”라고 말을 하더랍니다. 그
말을 들은 힐 목사님은 이것이 바로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는 방법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시험과 유혹을 간파하고 이길 만한 지혜가 있다면 세상에 시험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제대로 된 지혜를 가지지 못하게
되고 왜곡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잘못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1:14절에는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때로는 욕심에 사로 잡혀서 지혜롭지 못하게 판단함으로 오는 시험들도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와 같은 곳을 여행하다가 보면 야생으로 살고 있는 원숭이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때로는 원숭이가 사람이 사는 집까지 와서 먹을 것을 훔쳐 달아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원숭이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원숭이들이 좋아하는
바나나를 몸통은 크고, 목은 좁은 조롱박에다가 넣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원숭이들이 그 바나나가 조롱박안에 있는 것을 알고서 몰래 와서 바나나를 훔치려고 그 조롱박에 손을 넣고서 바나나를 움켜 쥐고 꺼내려고 한답니다. 그런데 나오는 목이 좁아서 바나나를 손에 쥐고서는 조롱박에서 손을 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사람이 자기를 잡으러 와도 그 바나나를 포기하지 못하고 꼭 쥐고 있다가 그만 사람에게 잡힌다고 합니다.
사람이 시련의 시험과 욕심의 시험에 사로 잡히게 되면 무지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뭔가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애를 씁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뭔가를
해결해 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시험 가운데서 인정해야 할 것은,
우리는 그다지 지혜롭지 못하고, 능력이 많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야고보는 이러한 시험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고 합니다.
열왕기상 3장는 솔로몬이 왕으로 임명된 후 일천번제를 쌓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이 몰려 왔습니다. 그 때에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번의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솔로몬이 뭔가를 구하고 있음을 아시고, 꿈에 나타나시어서 "너의
구하는 것을 줄 테니 말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솔로몬이 구한 것은 자신 개인의 욕심을 위해서 돈과 명예, 건강을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백성들을 잘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를 위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 가운데에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은, 내가 원하는데로
문제가 해결해 주기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때에는 도리어 더 큰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능력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차원에서 그 시험을 감당할 만한 지혜와 능력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여러가지 시험이 없어지던지, 아니면 여전히 존재하던지
간에, 그 시험을 감당할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시험이 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3. 그리고 또 한가지 하나님께 구할 때에는 오직 믿음으로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시련과 시험을 당하던지 간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 시험을 통해서 정금과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의심하지 말고 구하며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성도로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하나님만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면서 살아가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6절의 말씀과 같이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다.”고 했습니다. 바람에
요동하는 물결 같은 인생을 산다고 한다면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바다에 떠 있는 배를 타고 정신없이
멀미를 하는 분들도 많으신데, 바람에 요동하는 물결과 같다면 그 인생이 편할 날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변의 상황이 변하는 데로 늘 시험에 들고 어려움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 그 마음을 온전히 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이러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시험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것을 마음에 정하고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시험을 감당하고 이길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시는데, 그렇지
못하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정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할 때인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기쁘게 보시고, 여러가지 시험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의 믿음을 더욱 온전케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번 성회를 통해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은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에게 집중해서 그분에게 우리의 마음을 정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이러한 저런 일들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후차적으로 미룰 때가 많았는데,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합하여 드리고, 집중하게 되니까 그것 자체가 또한 은혜가 되었습니다.
일단 하나님께 집중하고 의지하기로 결단하고 마음을 하나님께 정하게 되니까, 평소에
고민하고 시험거리가 되었던 일들도 은혜로 넘어가게 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시험은 늘상 있는 과정입니다. 시험을 당할 때에 지혜로운
성도는 그 시험을 통해서 주시는 유익을 기대합니다. 시험을 통해서 인내가 생기고, 그래서 그 믿음이 성숙하고 온전해 짐을 알기 때문에 그 시험을 기쁘게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시험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지혜를 구하는 자들에게 그 시험을 감당할 지혜와 능력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 사실을 의심하고 바람에 요동이는 물결과 같이 늘 요동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 마음을 정하고, 시험에 때에 도리어 우리의 믿음을 주심께
보여 드리고, 그 믿음이 더욱 온전케 되어지는 유익이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샘터질문
1. 야고보는 성도가 여러가지시험을 말하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여러가지 시험은 어떠한 것들이 있습니까?
2. 평소, 자신에게 시험이
온다고 깨달아졌을 때에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그 시험을 맞이하십니까?
3. 당신은 어떤 시험에 강하고, 어떤 시험에 약합니까?
4. 시험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믿음이 흔들렸던 적이 언제 있었습니까?
5. 시험을 잘 이기는 시험 중에 터득한 지혜는 무엇입니까?
5. 왜 우리가 시험을 당하며, 시험을 당할 때에 어떠한 유익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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