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 두어 사람이 와서 당시에 유대, 갈릴리지역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전합니다.
당시 총독이었던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을 죽여서 그 피를 가지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에게 드릴 제물에다가
섞었다는 것입니다. 빌라도의 엽기적인 행동과 갈릴리 사람들의 이러한 비참한 죽음은 당시 유다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여기에 보태어서 또 다른 사건을 말씀해
주십니다.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서 열여덟명의 사람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소식들이 끊임없이 들려 오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악한 사람들에 의해서 잔인하게 죽고, 여러가지 재난과 사고로 인해서 뜻하지 않는 어려움과 죽음을 당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즘 일어나는 재난들을 보면 그 규모와 피해가 대단합니다. 올해 8월부터 중동에 살던 사람들이 ISIS의 폭정과 시리아 내전을 피해서 대규모로 유럽으로 탈출하고 있습니다. 배로
지중해를 건너다가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북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서 육백채
가량의 가옥이 불타고 사람들이 피난을 가지만 몇 주째 진압을 하지 못하고 피해만 늘어가고 있습니다. 칠레에서도
지난 9월 16일, 수도
산티아고 인근에서 발생한 강진과 그로 인한 쓰나미로 인해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사람들이 큰 재난을 당하고 사고를 당하는 일들은 사회적인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답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도
이러한 사건과 사고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르치시는 메시지가 있음을 알고 신앙의 유익으로 삼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어떻게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는지를 통해서, 이러한 일이 있을 때에 신앙인들이 어떠한 시각에서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반응해야
할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1. 먼저 예수님은 이러한 사건을 죄와 연관되어서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재난을 당한 피해자들이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이나 예루살렘의 사람들보다 죄가 더 있기 때문에 당한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도리어 너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아셨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당하지 않는 재난을 당하는 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더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죄를 짓게 됨으로 이 땅에 악이 들어와서 역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생각하기를 죄가 많으면 심한 벌을 받고, 죄가 적으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죽은 후에도 그 피가 우상의
부정한 제물에 섞여서 우상에게 드려지는 끔직하고 저주받을 일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끔찍한 일을
당한 것은 그들에게 특별한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실로암 망대에가 무너져서 치어 죽은 열 여덟 명의 사람도 그렇습니다. 왜
하필 그 시간 그곳에서 있다가 무너지는 망대에 치어서 죽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가 다른 이들보다
더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당하지 않는 끔찍한 일을 당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이렇게 죽임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은 죄가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따진다면 사실 하나님의 백성인 갈릴리 사람을 죽인 총독 빌라도가 죄가 더 있을 것이요, 열 여덟명을 죽게 한 망대의 책임자의 죄가 더 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죄의
많고 적음으로 죽는다면 먼저 죽어야 할 사람이 더 많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재난과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단순히 다른 이들보다 죄가 많아서 그럴 것이라고 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십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죄의 경중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들이 죄로 인해서 망할 존재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도, 빌라도에게 죽어간 갈릴리사람이나,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치어죽은 열 여덟명의 예루살렘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는, 죽어도 말 못할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어떠한 재난과 어려움을 당할 때에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그들의 죄로 인해서 그렇게 된 것이고 그러한 재난들이 마땅할 수 있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렇게 된 죄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따져 보고 싶고, 정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런데 그전에 우리 모두가 그렇게 죽을 수 있는 마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지적하십니다.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지만 그런 일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마땅한 죄인인 것입니다.
결혼하기 전 휴스턴에 있는 교회에 출석하면서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교통경찰한테 딱지를 떼었다면서, 그 때의 상황을 말해주었습니다. 하이웨이에서 과속을 하는데 경찰차가 불빛을 밝히면서 오길래 길 옆에다가 차를 세웠다고 합니다. 경찰이 자신에게 와서 법금을 부과하려고 하길래, 친구가 경찰한테
말하기를, 자신은 학생이고, 그리고 처음으로 교통위반 티켓을
받는 건데 잘 좀 봐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경찰이 하는 말이, “당신이 처음 경찰한테 걸렸다고 해서, 당신이 그 동안 교통법규를
잘 지켜서 안 걸린 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 동안 법을 어겼어도 안 잡혔던 것이니까 그렇게 억울해 하지
말라”고 하더니 티켓을 떼더랍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친구가
더 이상 말도 못하고 그냥 벌금티켓을 받아서 온 것입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지은 죄들도 있고, 또한 법을 몰라서 무지가운데
짓고 있는 죄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다 열거하자면 죄인 아닌 사람이 한 명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로마서
3: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하셨습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기 때문에 죄로 인해서 죽지 않을
사람은 세상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가 있고, 이런
저런 형태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때로는 육신의 질병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가정의 위기와
어려움이 있는 분들도 계십니다. 크고 작은 재난속에서 우리가 모두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당하지 않은 어려움들을 당하는 이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볼 때에 다른 사람이 죄가 더 많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정죄하는 시각은 곧 내가 그들보다는 죄가
없다는 자기 의에서 나오는 교만입니다.
누가복음 18:11절에 보면 바리새인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다 같은 죄인이요 모든 사람들이 그 멸망을 당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들의 재난과 어려움을 보면서, 그 사람이 뭔가 더
큰 잘못을 하고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정죄할 만한 존재가 사람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자신도 망할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 그러한 사건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에 합한 자세인 것입니다.
2.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죄로 인해서 망할 존재라고 하는
것만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멸망을 받을 죄인임을 말씀하신 예수님은, 그 이후에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해서 망할 존재이지만, 망하지 않을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곧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지만, 회개하면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육신적으로 악인에게 어려움을 당하고, 사고로 인해서 죽고 다치는 망함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육신적으로 망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 주시고자 했다면, 갈릴리 사람들과
같이 빌라도의 공격을 받지 않게 조심하도록 한다든지, 실로암 망대와 같이 위험한 곳에는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 살 방법이라고 알려 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망하지 않는 것은 회개를 통한 영적인 망함을 면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회개하지 않고도 육신적으로는 빌라도의 죽음을 피하고, 망대가
쓰러지는 것에 치어주지 않고 그럭저럭 살수 있겠지만, 회개가 없으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고 결국
지옥의 사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더욱 관심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육신적인 안타까움을 가지고 사람들을 바라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보시면서 안타까워하신 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재난과 멸망하는 모습을 볼 때에 그들의 죄를 정죄하려고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그것 만이 죄로 인해
죽을 사람이 살 수 있는 방법인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을
믿고,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회개는
자신이 사람에게 잘못한 것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회개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법대로 살지 않고 불순종하면서 살았음을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내가 가진 법을 가지고서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회개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을 삶의 법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회개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나의
법으로 받아들이고, 그 기준을 통해서 내가 잘못 살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회개할 때에 망하지 않고 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성경에서 망하는 자들은 죄로 인해서 망한다기 보다는, 사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아서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된 것도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의 죄를 깨달아 회개함으로 용서함을 받았기에 영생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죄인된 사람들에게 회개를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회개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회개를 말씀하시면서, 또한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를 비유를
통해서 알려 주십니다. 회개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내 죄에 대한 인정함과 고백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회개와 더불어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십니다. 세례요한도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말하기를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동일한 메시지를 주십니다. 비록 모든 사람이 망할 죄인이지만, 회개할 때에 망하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곧 이어서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 비유를 들려 주십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심은
주인이 와서 열매를 구하는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 때에 그 주인이 포도원지기에게 말하기를 “내가 삼 년을 와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모했으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합니다. 그 때 포도원지기가 주인에 간청합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만약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라고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있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맺고자 하시는 열매를 관심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열매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회개의 열매를 맺는 삶인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열매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이 살아간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그 존재의 가치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존재가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뭇가지가 많고, 보기가 좋습니다.
좋은 그늘을 만들 수도 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이 그 나무를 심은 것은 그 목적이
그것이 아닌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가치가 있고, 좋다고
말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심으신 목적에 부합되지 않으면, 그것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열매를 달라고 하시는데, 나뭇잎만 맺는데 힘쓴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땅에 심으시고, 주변을 두루 파고 거름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살아갈 필요한 일용할 것들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런데 죄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것들을 주인의 원하시는 열매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다른 것들을 맺으며 주인에게는 하나도 드릴 것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인은 말합니다.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하나님보시기에는 땅만 버리는 가치
없는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때로 하나님께 무익하고, 가치가 없는 죄된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래도 참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포도원지기가 더 좋은 것으로 주어서 열매를 맺도록 힘쓸 테니
비록 삼년 동안 같은 일을 했지만, 앞으로도 기다려 달라는 것입니다.
죄인된 자들이 하나님보시기에 열매맺지 못하고 땅만 버리는 무가치한 존재로 살아갈 때도 있지만, 망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그 합당한 열매를 맺고서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자들에게 그에 합당한 열매, 변화된 삶을 요구하십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얻기를 원하시는 열매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학교에서, 직장에서, 이
사회를 통해서 얻고자 하시는 열매가 있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통해서 그 열매를
맺어서 드린다고 하면 그 삶은 망하는 삶이 아니라, 흥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거름을 주시고, 힘과 생명을
허락하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재난들을 당할 때에 그것으로 여러가지 상황들을 판단하고자 합니다. 요즘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이제 종말을 말하며, 여러가지 위기들이 닥칠 것에 대해서 예언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경제적인 위기가 있고, 또한 의료적으로 베리칩이
짐승의 표니까 어떻게 대처하라고 하는 방향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살륙을 하려고 할 때
그 죽음을 피하고, 실로암 망대가 무너질 때에 해를 당하지 않도록 예비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들을 볼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것을 피하는 것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러한 일을 언제든지 맞이하지만, 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이 세상의 재난과 심지어 죽음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영원히 망하지 않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죽음은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 죄를 회개 하지 아니하고, 그 삶에 열매를
하나님을 위해서 맺고자 하지 않을 때인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열매를 맺는 회개의 열매를 맺는 삶을 기대하시면서 인내하고 계십니다. 지금 이 시간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나무잎을 뒤적거리시면서 열매를 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열매를 얻기 위해서 인내하시면서, 우리의 생명과 그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심을 믿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이 회개가 없어서 망하는 인생이 아니라, 오늘도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열매를 시시때때로 맺어서 드릴 수 있는, 우리를 창조하신 주님보시기에 가치가 있고, 기쁘시게 해 드리며, 또 많은 열매로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삶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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