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8/2015 - 산돌을 취한 자의 삶 [베드로전서 2:4-10]

by Rejoice posted Oct 18,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연합감리교회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전통 중에 하나가 평신도와 목회자가 주의 사역을 위해서 동역자로서의 관계를 잘 형성하고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감리교회에서는 평신도주일을 재정하고 지킴으로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된 동역자임을 재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는 매년 평신도주일에는 모든 분들이 서로를 부를 때에 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목회자나 평신도나 상관없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신 거룩한 호칭이 "성도, 거룩한 무리"입니다. 성도라는 호칭을 서로 부름으로,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르신 거룩한 한 무리임을 다시 상기하며 주의 사역에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일컫는 독특한 표현이 나옵니다. 그것은 "산 돌(Living Stone)", "살아 있는 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을 살아있다고 말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돌은 무생물이고 당연히 죽은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산 돌이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보배로운 산 돌이라고 했습니다. 보배로운 돌을 일컬어 보석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 살아있는 보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배로운 산 돌로 택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택하신 것은 그를 산 돌로 해서 모퉁이 돌을 삼아 신령한 집을 짓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예수님만을 산돌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산 돌 같이 되어져서 집으로 세움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의 돌로 해서, 우리로 하나님의 신령한 집을 짓고자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신령한 집은 또한 하나님의 교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저와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신령한 집을 짓고자 원하시는 계획을 깨닫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 무엇인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1.오늘 말씀을 볼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배로운 산 돌로 하여서 취한 자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를 모퉁이 돌로 해서 산돌과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6절에 보면,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시온에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택해서 두시겠다."는 말씀을 구약에서 인용합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28:16절에 있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 구절입니다. 그리고 보배로운 모퉁이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모퉁이 돌은 집을 건축할 때에 꼭 필요한 돌입니다. 벽과 벽의 연결지점에 놓인 중요한 기초가 되는 돌이 모퉁이 돌입니다. 그러니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취하여서 모퉁잇돌로 삼고 그 집을 지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대하는 사람들의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어떠한 이들은 이 모퉁이돌을 취하지 아니하고 버리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 없다고 여기고서 버렸습니다.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때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믿지 않고 그를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보배로운 산 돌로 주셨는데 그들은 그 가치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여기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들의 믿음의 주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되심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들은 건축자들이 필요없다고 버린 돌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도리어 부딪치는 돌이고 걸려 넘어지는 바위와 같은 존재입니다. 얼마나 귀찮은 존재입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보배롭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도리어 부딪치고 걸려 넘어지는 돌과 같이, 삶을 불편하게 만들고 여러가지로 제약하는 존재와 같이, 별로 유익할 것이 없는 버려야 할 존재로서 여겨졌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뭐가 있어, 안 믿어도 잘 살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취하지 않고, 버린 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취한 자들이 있습니다. 7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가치를 아는 자들에게는 귀한 보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16절에,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구원이 있고, 영생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얼마나 귀한 살아있는 보배이십니까?

그리고 예수님 만이 살아 있는 돌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들도 산 돌이 되어져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신령한 집이 되어진다고 했습니다. 성도가 곧 신령한 집을 이루는 산돌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20-21절에 보면,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기초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모퉁이 돌이 되어지고, 우리가 그와 연결된 돌이 되어져서 지어지는 것입니다. 곧 저와 여러분이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살아있는 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2.이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해서 성도들로 신령한 집을 지으셨는데,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으십니다. 그것은 우리들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받고자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5절에 보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신령한 집에서, 신령한 제사가 드려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신령한 집으로 세우고자 하시는 것은 신령한 제사를 받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거룩한 제사장이 필요합니다. 5절에도, 너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하셨고, 9절에도,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이유가 있습니다. 신령한 집인 교회를 이루게 하시고,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도록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신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의 이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할 자들을 엄격하게 구분해 놓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지도자였던 모세의 형인 아론이 있었는데, 제사장은 바로 그 아론의 자손들만이 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거룩한 제사를 감당하여야 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보다 더욱 엄격한 법에 의해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결혼도 함부로 할 수 없었고,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들도 제사장들은 삼가하고 자신을 더럽히거나 부정하게 만들지 말아야 했습니다. 정결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말하기를, 율법에 기록한 법에 의한 제사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신들도 그렇게 거룩한 제사장이 된다고 하니 놀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유대인들도 아닌 이방인인 저와 여러분도 제사장으로 불림을 받은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거룩한 제사장으로 세우신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제사를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에 수 없이 많은 제사들이 하나님께 드려졌지만, 모든 제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는 아닙니다.

말라기 1:10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 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구약시대에 제사는 성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드리는 그 제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제사드리는 것을 보면 화가 날 정도였습니다. 원래 제사에 쓸 속죄짐승을 드릴 때에는 다른 짐승들과 구분된 흠이 없고 깨끗한 짐승을 드려야 하는데,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병든 것, 저는 것, 눈먼 짐승을 제사하면서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차라리 그런 제사는 원치도 않으니 누군가가 그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와 예배를 통하여서 영광 받으시고 기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만 모두 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5절 말씀에, 하나님은 신령한 제사, 곧 영적인 예배를 받으시기를 원하시는데 그것은 거룩한 제사장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4:24절의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였습니다. 세상과 구분된 거룩한 제사장, 예배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가 드려지길 원하시고, 그러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 그리고 그러한 예배를 드리는 참된 예배자를 찾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드리는 이 예배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집을 세우시고, 그 안에서 거룩한 제사장, 예배자로 불러 주신 이유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3.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로 신령한 집을 세우신 후에, 또한 우리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선포자로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셨습니다.

9절에 보면,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나라들이 자신의 나라를 세계나라에 홍보하기 위한 일들을 합니다. 그런데 지난 2013년에 인터넷 검색 1위 기업이었던 구글(Google)이 한국의 한글과 한복 등의 한국 문화를 알리기에 나서기로 결정해서 화재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그렇게 결정한 이유 중에 하나를 말하기를,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게 된 취지를 들었습니다. 세종대왕은 "백성이 배우고 쓰기 쉬운 문자를 만들고자 했던 취지로" 한글을 만들었는데, 그 취지 속에 IT 기업 생존의 핵심인 '혁신'의 정신이 있었고, 이러한 가치를 높이사서 특별히 한글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국인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인류기업이 한국 홍보에 나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하신 아름다운 일들을 선전하고 세상에 선포하기 위해서 세우신 사람들이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일"입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어 죽음에 이르렀을 때의 상태를 어둠의 상태로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그 어둠의 상태에서 불러 내셔서 기이한 빛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들어간 그 기이한 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시요, 진리의 빛이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의 빛으로 들어갈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 가운데 비쳐져서 죄와 죽음의 어두움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어두움으로부터 구원을 받아, 영생에 이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그 빛을 가지고 세상에 비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아름다운 소식을 선포하는 것이 성도들의 사역이 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어서 이러한 일들을 하게 되지만, 원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러한 사명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2:3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시조인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와 그 자손들에게 하신 언약의 말씀이 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그들만을 복받게 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땅의 모든 족속이 그들로 인해서 복을 받을 것을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하나님께 택함받은 것만을 복으로 여기고 그것에 얽매여 다른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께서 복되신 자라는 것을 증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름다운 일들을 증거할 자들로서, 교회를 세우시고 성도들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기를 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일년에 한 번 있는 여선교회 야드세일이 어제 있었습니다. 토요일 있을 야드 세일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 금요일 오전에 모여서 물건들을 창고에서 꺼내서 한 곳에 모아 놓고 정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지나가던 히스패닉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물건들을 기웃거리며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있어서 인지 아이들 용품에 관심을 보이면서 이것저것 물건 가격을 다른 분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제가 있는 곳으로 오더니 제 옆에 있는 자동차 모양의 패달이 달린 자전거가 가격을 묻는 것입니다. 그 자전거에는 이미 3달러라고 붙여져 있는데, 그건 누가 보아도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이는 못 부르고, 5달러를 달라고 했습니다. 사고자 하는 관심은 있는 것 같은데 5달러라고 하니까 사지 않고 주저하더니 그냥 가시더라구요. 그러고 있는 사이에 옆에서 한 성도님께서, "그냥 주시죠, 그냥 지역 봉사차원에서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교회 거라지 세일은, 선교기금을 조성해서 선교사역을 잘 감당하고자 하는 뜻도 있지만, 또한 우리 주변에 있는 이웃들을 섬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1, 2 달러가 필요하다고 하면 내 주머니에서 그 돈을 채워주기라도 하는 것이 마땅한데, 몇 푼 더 받겠다고 했던 제 행동이 참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내일 거라지 세일에 그분들이 오면, 내 돈이라고 들여서라도 그분들에게 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분들은 오시지 않고, 다른 분이 얼른 사가서 그 기회도 놓쳤습니다.

정말 제 모습이 하나님이 행하신 아름다운 일들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는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왜곡시키지는 않았는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아름다운 일들을 알지를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에 이르게 될 것에 대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오로지 이 땅에 세우신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해서 그것이 이 땅에 증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일들을 증거하라고 우리를 세우셨고, 하나님 보실 때에 이러한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누구보다 아름다운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아름다운 일을 증거하라고 했으니 그 일들을 하면서 우리의 입술이 아름다워지고, 우리의 행실이 아름다워지고, 우리의 삶이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택함을 받아서 거룩해 지고, 신령해 질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동참하는 존귀한 자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로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세우시고자 하는 신령한 집이 있습니다. 그 집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배로운 산돌임을 깨닫고, 그 산돌을 모퉁이 돌로 취해서 지어진 당신의 몸된 교회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몸된 교회의 산돌로서 교회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통하여서 신령한 집을 세우시고, 우리가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 예배가 드려지기를 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보통 사람으로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신령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제사장은, 거룩한 제사장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모습으로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일들이 세상에 선포되기를 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때로 우리들의 죄성과 실수로 인하여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왜곡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땅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일들을 증거할 곳은 교회요 성도 밖에 없고, 그 일을 위해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셨습니다.

교회와 성도가 아름다운 것은 우리 개인이 아름다와서 라기 보다는 우리가 가진 복음이 아름답기에, 그 복을 전하는 입술이 아름답고, 그 복음을 전하는 발이 아름답고 우리가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모습이 늘 거룩한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는 예배자가 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보시는 삶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샘터질문 (모든 질문을 다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샘터를 진행하시면서 필요하다고 여기시는 부분만을 질문하시고, 만약 다른 질문이 도움이 된다고 여기시면 다른 질문을 하셔도 됩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보배로운 산돌(살아있는 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 어떠한 느낌이 들었습니까?

* 하나님께서 산돌로 지어진 신령한 집에서 어떠한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까?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준비되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당신은 언제 내가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생각을 하십니까? 

* 하나님이 행하신 아름다운 덕이 무엇이고, 당신은 언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세상에 선포하셨습니까? 

*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Articles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샌안토니오 한인 감리교회 Korean Global Methodist Church of San Antonio Tel: 210-341-8706 / Add: 5705 Blanco Rd. San Antonio TX 78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