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4/2016 - 우리의 힘이 되는 기쁨 [느헤미야 8:8-12]

by Rejoice posted Jan 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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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정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냐고 여쭈었더니, 본인이 관심하면서 즐겁게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한참 말씀에 해 주셨습니다. 그러더니 저를 보시면서 물으시기를 "그런데, 목사님은 무슨 재미로 사시나요?"라고 물으셨습니다.

분명 사람들마다 재미있어 하는 일들이 다릅니다. 어떤 분들은 아이 보는 재미로 산다는 분도 있고, 어떤 분들은 돈 버는 재미로 밤낮으로 열심히 사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어떤 분들은 죽지 못해 산다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무엇이 그들의 슬픔이고 기쁨인지를 깨닫는 귀중한 사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진정으로 기뻐할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듣게 됩니다.

우리에게 많은 기쁨과 즐거움의 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도 그렇게 지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으로 기쁨의 근원으로 삼고 힘써서 살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커다란 기쁨 가운데서 모임을 가집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을 모아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상태였고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것이 그들의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특별히 느헤미야서는 성벽건축에 관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로가 힘을 합해서 성벽을 재건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높고 길었지만, 사람들마다 자신들이 세워야 할 성벽의 구역을 정해 놓고 힘써서 성벽을 쌓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루살렘 성벽을 52일 만에 완공한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업적이고 축하할 만한 기쁜 일입니다.

이제 성벽 재건을 마친 이스라엘 사람들이, 며칠 후에 7 1, 나팔절을 맞이하여,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성회에 모인 것입니다. ‘나팔절’The feast of trumpets’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그 은혜에 감사드리는 날입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보다도 기쁨이 되는 것은, 자신들의 집이 보호받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성벽이 건축된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기쁨으로 힘을 내어서 그 일을 했습니다. 이들이 다시 모였을 때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무너졌던 집을 다시 세우실 수 있도록 힘을 주신 것에 대해서 기뻐하면서 그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보는 것은 달랐습니다. 뭔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외형적인 예루살렘이 건축이 된다고 할지라도 더욱 본질적인 것이 유대인들에게 세워져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에스라를 부릅니다. 에스라는 학자이면서 제사장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이 제대로 재건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외적인 성벽과 성전이 세워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루살렘이 세워지고 사람들이 세워지는 것이 필요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외형적으로 무엇인가를 세우고 업적을 남기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잘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예루살렘보다 더 튼튼하고 높은 성을 쌓을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점령했던 여리고 성을 쌓았었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참 크고 견고한 성을 쌓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대적하다가 결국 그 성이 무너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예루살렘 성도 무너졌던 것입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을 그들 앞에서 낭독을 합니다. 아마 당시에 모세 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말씀을 읽었을 것입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석하여서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나옵니다. 9절을 보니까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합니다. 성벽을 다 쌓은 기쁨과 감격가운데서 모인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울음바다가 된 것입니다.

그들이 울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보니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통해서 왜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자신들의 조상들이 포로로 잡혀갔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전철을 밟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자신들이 성벽을 재건하는 기쁨이 현재 있지만, 이대로 살아가게 되면 언제 또한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울어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는 사람들이 많이 없습니다. 그것은 울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니, 자신들이 죄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슬퍼하고 근심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이스라엘과 같은 통곡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진정한 토회의 울음이 언제 가능하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그것이 깨달아 질 때입니다.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대에 울어야 하는 말씀을 들을 때에는 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울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삶이 그리고 이 땅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영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근심하며 울어야 하는 것입니다. 높이 지어놓은 성벽을 보고서 스스로 대단한 일을 했다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집과 큰 교회를 지어 놓고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그 일들을 감당할 수 있었다고 즐거워하는 것 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근심하고 슬퍼하는 일들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은 얼마나 주님의 말씀으로 세워졌고 그 말씀대로 다스려지고 있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은 과연 이 땅을 살아갈 만한 충분한 말씀으로 양육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제대로 이 땅을 주의 뜻대로 살아갈 만한 말씀으로 제대로 세워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2. 이러한 울음이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경외함으로 대하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5절에 보면,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일어서서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함을 가지고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읽을 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그 말씀을 직접 듣는 자세를 가지고 그 말씀을 대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왕조시대의 역사를 보게 되면, 왕이 명령을 내릴 때에 직접 당사자들에게 가서 하달하지 않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도승지라고 하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 이 역할을 맡아서 왕의 명령을 받아 적고, 그것을 적어서 교지를 만들어 당사자들에게 알립니다. 그 때에 어명을 적은 교지를 가지고서 신하가 가서 그 당사자에게 말합니다. "어명이요, 어명을 받드시오"하면, 그 당사자는 바닥에 엎드려 왕이 있는 곳을 향하여서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하면서 왕의 명령을 받들게 됩니다. 어떨 때는 자신을 죽이는 교지라고 할지라도 땅에 엎드려서 전적으로 왕의 명령에 순종하는 태도로 그 교지를 받들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낭독할 때에 사람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6절에 보니까 여호와를 경축할 때에 백성들이 손을 들어 "아멘, 아멘"으로 응답하고 곧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듣지 않고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말씀으로 여기면서 경외함으로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그 말씀을 받들 때에 자신들의 죄가 깨달아지고, 그로 인해서 울음이 터지는 진실함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그리고 경외함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세워지게 되고, 그 말씀으로 우리의 영적인 삶이 바로 서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3. 그런데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이 우는 모습을 보고서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오늘은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선포합니다. 그러면서 말하는 것이 10절에,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며 힘을 내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의 죄로 인하여 슬픔가운데서 애통해 할 때에, 역설적으로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할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죄된 모습을 보면 근심되고 슬픈 일이지만,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는 그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힘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들에게 여러가지 힘든 일이 있어도 잘 커가고 있는 자녀들을 볼 때에 그들로 인해서 기뻐하고 힘이 됩니다. 한국에는 아이들을 부모님, 특별히 아빠가 힘내시라고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무리 힘들도 어려워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기쁘고, 그리고 그 기쁨이 힘이 되어서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기쁨과 힘은 서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기쁜 일을 할 때에 힘이 납니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시키지 않아도 그 일들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겨서 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우리로서는 그 일들이 힘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의 믿음의 생활에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슬퍼하며 근심했지만, 에스라는 하나님은 그러한 분이 아니라 그분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힘을 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볼 때에 그들에게 기쁨이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포로생활에서 이제 구해주셨습니다. 죄인이지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돌려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성을 지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힘이 되어서 또한 하나님의 더욱 기쁘시게 하는 말씀을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말하기를, 이제는 여호와로 인하여서 기뻐하고 힘을 내자고 말을 합니다. 이날은 우리의 죄로 인해서 슬퍼 근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보면서 기뻐하며 힘있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그렇게 말하자 사람들이 바뀝니다. 자신들을 생각할 때에 슬픔과 울음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니까 기쁨이 되고 그것이 그들의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했다고 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알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것을 결단하게 되니 힘이 솟고 기쁨이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죄 된 모습과 세상의 악한 모습을 볼 때에는 근심과 슬픔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구원을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을 볼 때, 그분으로 인해서 기뻐할 수 있고 힘을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근심되고 슬픈 일이 있을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뻐하며 힘을 내어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성도들의 지혜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쁨의 근원을 세상의 것으로 삼고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자들이 기뻐해야 할 것은 여호와로 인하여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하는 것으로 우리의 기쁨으로 삼으면서 살아갈 때에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힘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즐거워하는 일이라도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사도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사용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께서 공급하신 힘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같은 힘을 쓰더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에 쓸 때에 그것이 진정한 가치가 있고, 그 일을 행하는 자들도 능력 가운데서 그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할 때에 그 일을 행할 수 있는 힘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우리의 기쁨이 되심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쁨이 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해 주시고 그 사랑을 확증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지금도 죄가 많은 이 세상에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셔서, 구원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외형적인 삶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삶도 관심하시고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끄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올 한해 무엇보다도 어느 누구 보다도 여호와로 인해서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성벽이 무너지고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다시 세워주시는 하나님, 죄가 많지만, 다시 기회를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과 학교, 일터 위에서 일어나는 기쁜 일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인한 것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 안에서 그분이 나의 힘이심을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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