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에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전하셨던 메시지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은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까이는 왔는데 그 하나님의
나라가 내 가정과 삶 속에 임하지 않고, 여전히 가까이 있는 상태라면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는 나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이제 회개하고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다스림 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 하나님의 나라가 누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모하며 바라보기만 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불순종했던 나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감으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그 나라가 우리 가정과 직장과 삶 속에서 매일매일
누려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또한 하셨던 일이 있으셨는데 그것은 제자들을 찾아서 나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지역에서 복음을 선포하시다가, 갈릴리 해변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어부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른 사람이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후에 예수님의 제자, Disciple
이라고 불립니다. '제자'는 헬라어로는 "마데테스"라는 단어를 쓰는데, 일반적인 의미로는 "배우는 사람, 학생"을 말합니다. 스승을
통하여 지식이나 행할 것을 배우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볼 때에, 예수님의 제자는 단순히 배우는
것으로 그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 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어부들을 만나셔서 그들을 제자로 부르시면서 하신 말씀은 "나를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갔을 때에, 그들을 제자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과 그가 살아가셨던 그 삶과 행동을 따라가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셨을 때에 "나를 따라 오라"는 부르심은 저와 여러분에게 낯선 소리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곳에 있게 된 계기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이곳에 온 것입니다. 제자들이 고기를 잡다가 해변가에서 부르심을 받아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과 같이, 어떤 분들은 학창시절 친구를 통해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분도 계실 것이고,
어떤 분은 결혼해서 남편을 통해서 부르심을 깨닫고 오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여러가지
모습으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르심을 받아서 제자되었는데 때로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제자의 도리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살아갑니다. 그래서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고 주저하는 믿음의 모습들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고, 또한 어떠한 결단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제자의 삶은
내 삶의 주도권과 목적이 예수님께 있음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자신을 가르쳐 줄 스승, 랍비를 찾아서 나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 말은 곧 제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자신의 목적과 필요를 만족시켜 줄 만한, 자기에게 맞는 스승을 찾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반대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도권을 가지시고 제자들을
찾아서 그들을 부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갈릴리 해변으로 가셔서 고기를 잡고 있는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도 제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있는 것입니다. 제자는 내 삶의 주도권과 목표를 예수님께
드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부들을 부르시는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러니 나를 따라 오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평생 고기를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서 살아왔지 결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서
살아 본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부들은 예수님께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그 말씀을 듣고서 그렇게 해 보겠다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어부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시겠다는데 그 의미도 제대로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갑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자신들은 잘 이해할 수 없지만,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복되고 가치가 있는 일임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자신을 부르신 예수님의 목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믿고서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자신들을 맡겼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곳에 있는 것은 우연도 아니요,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예수님을 선택해서 나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나에게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목적을 이룰 다른 존재를 찾아서
가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목적에 의해서 그분의 부르심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제자된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의 목적과 그 가르침에 관심하고 경청하며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는 목적이 있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의 목적에 귀를 기울이며, 그 목적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제자인 것입니다. 내 삶의 목적과 주도권을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 해서 꼭 필요한 것은 바로 내가 그 동안 따라갔던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부들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신 것은, 곧 그들의 이전의 삶은,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따라서 살아가던 삶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그
어부들도 무엇인가를 열심히 좇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부였으니 날마다 바다를 좇아 다녔을 것입니다. 물고기가 많은 곳을 좇아서 다녔을 것입니다. 그렇게 물고기를 많이
잡아서 좀 잘 살아봐야겠다는 목적을 가지고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좇아서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보니까 배도 장만할 수 있었고 나름대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은, 그들의 삶의 방향을 돌려 놓습니다. 자신들이
따라 살았던 것들을 바로 버려 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그 길로 예수님을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버림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버리고 끊어버릴 때에 예수님을 따라 갈 수가 있는 것이지 그렇지 못하면 과거의 삶에 얽매여서 주님을 따라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르시고, 그리고 그 부르심을 들은 제자들이 버린 것들이 무엇인지가 나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을 듣고 그 즉시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물은
어부들에게는 생계와 관련된 물건입니다. 그 동안 그물을 의지해서 살아왔습니다. 더군다나 지금 베드로와 안드레가 버린 그물은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아십니까?
고기가 가득 잡혀서 찢어질 정도로 뭐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실 때의 모습을 좀더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하고 빈 그물로 있던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그 말씀에 순종해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립니다. 그랬더니 고기가 그물 가득히 잡혔는데, 잡힌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빈 그물을 버린 것이 아니라, 물고기로 풍성한 그 그물을 버렸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따르고자 할 때에 빈 그물과 같은 상태에 있으면 예수님을
따르기가 쉽습니다. 고기잡는 것이 벌이도 안되고 시원찮으면 다른 거라도 해서 살아봐야지 하면서, 시험 삼아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버리고서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저와 한번 사업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기보다는 나와 함께 머물러서 나를 부요케 해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동안 자신과 그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줄 그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 다음에 만난 야고보와 그 형제인 요한은 더 심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에,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어부들의 판단과
행동이 무지하고 무모하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배우지 못한 어부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라고 이해하려고
해도 지나치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보다 지혜롭고 분별력이 있으니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어부들은 지혜롭고 결단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취해야 할지를 아는 지혜있는 사람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무엇을 버려야 할지를 알고 행하는 결단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부들은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라"고 부르실 때에, 예수님이라는 분은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 수 있는 가치가 있는 분임을 즉각 깨달아 알았던 것입니다.
밤새 수고하면서 채우려고 했던 그 빈 그물에, 말씀 한마디로 그 바다의
수많은 물고기를 모으셔서 그 그물을 풍성케 채워주신 분이라면 자신의 인생을 보다 가치있고 풍성한 것으로 채울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는 지혜가
있었던 것입니다. 찢어질 듯한 물고기가 담긴 그물과 물고기를 취하기 보다는 그 그물을 가득케 하신 그
예수님을 취할 수 있는 지혜로운 자였던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분이라면 그분께서 제시하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라는 삶의 목표가 더 가치가 있고 추구해야 할 만한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3. 그러기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의 초점은 버리고 잃은 것이
아닙니다. 가장 좋은 것을 취하는 자가 제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들이 무엇인가 잃고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결심했던 어부들이 버렸던, 그물, 배, 가족과 같은 것에, 아직도
붙잡혀서 예수님을 취하고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주저하다가 거짓과 멸망의 길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내 과거의 삶의 가치와
기준들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며 그분의 삶을 취한다고 한다면, 참 진리요 생명의 길을 따라가게 된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진리와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따라오라고 하신 그 길을 걸어갈 때에 참 생명, 영생이
그 가운데 있는 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를 때에, 그 과거의
가치있던 것들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깨닫고 버렸던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3:7-8절에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라,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취하여서 따라가게 되니까, 자신의 삶 속에
있던 거짓과 죽음의 일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취하기 위해서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취하고 나니까 비로서 정말로 버리고 취하여야 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혈통적인
우월함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교육을 받았던 것들, 로마의
시민이었던 것도 취할 것이 아니라 버릴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취하고 따라가다가 보니까
무엇을 취해야 할 지를 알았습니다. 율법이 아니라 복음을 취해야 하고,
로마 시민권이 아니라 천국 시민권을 취해야 하고, 육신적인 생명을 취하기 보다는 영생을
취하여야 함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무리 수고해도 채울 수 없는 베드로의 빈 그물과 같은 그 삶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길과 진리와 생명된 것들을 채우시기 위한 주님의 부르심이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오라”고
하셨을 때에, 자신의 소중한 것을 모두 버리시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제자들은 무모하고 무지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따라오라고 하신 그 길과 삶이 가장 가치있고 고귀한 삶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내가 추구하고 걸어가는 모든 목적과 삶을 버려서라도 따라갈 만한 가치가 있는 진리와
생명의 길임을 믿기 때문에 따라 가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은 무모한 삶이 아닙니다. 가장 지혜로운 자입니다. 배설물과 같이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가장 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취하는 지혜로운 자가 제자인 것입니다.
“나를 따라 오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은, 예수님을 처음 믿고 예수님을 따랐던 그 때에만 부르셨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날마다, 매 순간마다 "나를 따라 오라"고 부르십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밤새도록 수고해도 아직도 빈 그물이야? 실망하지 말고 나를 따라와””물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서 나를 따라오는 것이 주저되니? 그래도
나를 따라와” “배와 그물을 버리는 것이 자꾸 맘에 걸리니? 그래도
나를 따라와” “가족들이 맘에 걸리니? 그래도 나를 따라와””공부하는게 바빠서 시간이 없니? 그래도 나를 따라와””일하는 게 제대로 안돼서 신경 쓸 것이 많니? 그래도 나를 따라와””집안에 문제가 있어서 나를 따라오기가 힘드니? 그래도 따라와” “나를 따른다고 나섰는데도, 눈에 보이는 확실한 뭔가가 없는 것
같으니? 그래도 나를 따라와”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가 어떠한 형편에 있던지 간에 우리를 매 순간 부르고 계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고 하십니다. 우리가
제자로서 주님께 보여 드릴 제자의 길은, 어떠한 형편에 있더라도 주님께서 먼저 가신 그 길을 따라서,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순절의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따라오라고 하셨던 그 길이 어떠한 길인지를 함께 가는 영적인
순례의 기간입니다. 특별히 주님이 따라오라는 그 길이 고난과 십자가의 길이라고 할지라도, 그 길이 포기할 수 없는 영생의 길이고 꼭 따라가야 할 길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교회가 “나를 따라오라”는 그 부르심에 늘 귀 기울이며, 날마다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 제자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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