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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에, 선하신 목자되신 예수님의 양들을 향한 사랑을 보았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목자가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은, 양들의 목숨이 목자의 목숨보다 가치가 있어서 대신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목자 예수님은 양된 사람들이 대신 죽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도 아시고 우리의 더러운 죄악들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러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 죽으신 것은, 그 양들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은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충만하게 드러나야 할 사랑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죽으심에 관한 또 다른 의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목자 예수께서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 것은 화목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화평을 원하지만, 오늘날 세상에는 화평보다는 갈등과 불화의 소식들이 더 많이 들려 옵니다. 지난 6 28,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국제공항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폭발물로 무장한 조끼를 입은 세 사람이 공항에 흩어져 들어가서 경찰과 총격전을 하고, 각자 자폭을 했습니다. 그 테러로 인해서 36명의 사람이 숨지고, 147명 이상의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세계의 사람들이 이 사건을 보면서 언제 이러한 사건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몰라서 불안해 합니다. 이 일로 미국도 공항의 안전을 더욱 강화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조치들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과 민족, 나라간의 관계가 화목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들의 과거의 삶이 하나님과 불화한 관계였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21절에 보니까, 전에는 악한 행실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서,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골로새 교인들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속에서 살아가면서, 그로 인해서 죽음의 댓가를 치러야 할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더 이상 그러한 불안과 염려 속에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와 화목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면서, 우리 또한 어떻게 화목을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은 사람과의 화목의 관계에 관심하시며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런데 이에 비해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에 별로 관심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수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람이 태어난 것도 부모의 관계속에서 태어나게 되고, 평생을 살아가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떠나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설령 상대방에게 무관심하다고 해서 관계가 없는 게 아닙니다. 무관심의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 관계들이 좋을 때는 행복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 어느 때보다 상심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중요한 관계일 수록 상대방으로부터 받는 영향이 큽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누구보다 우선하고 중요하게 관심해야 할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사람들끼리 좀 불편해지면 피차간에 좀 떨어지거나 안 보고서 살아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화해도 하고 관계를 회복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불화하면 문제가 커집니다. 왜냐하면 구원과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불화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죄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창조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들어와서, 사람들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으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시험합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과 갈라 놓은 사탄은, 그 이후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불화케 하는데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과 불화하면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과 사람과의 불화의 관계를 다시 원래 상태로 회복시키고자 먼저 주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어느 관계보다도 죄인된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화목한 관계를 가지시기 위해서, 자신의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받아야 할 죄의 댓가인 죽음을 대신 당하시고, 사람들을 죄로부터 자유케 해 주셨습니다.

 

'돈 리처드슨이라는 캐나다 선교사가 쓴, '화해의 아이'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돈 리처드슨이 아프리카 밀림 지역에 복음을 증거하러 갔습니다. 사위부족이라는 부족이 사는 지역에 갔는데 이들은 식인종들이었습니다. 거짓말과 사기를 일삼고, 사람을 잡아 먹는 미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아무리 복음을 전하려 해도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어느 날 아침, 가방을 싸 가지고 그 동네를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가까이에 있는 해남부족과의 갈등으로 인해 전쟁을 치러야 할 위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의 상대인 해남부족은 워낙 강한 부족이기 때문에 싸워봤자 질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사위부족은 싸움을 포기하고, 서로 화해의 의식을 채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 화해를 위해서 아주 놀라운 방법을 사용합니다.

사위 부족 추장에게는 6개월 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남부족과의 화해를 위해서 추장의 6개월 된 아들을 해남 부족 추장에게 바칩니다. 그리고 그 해남부족의 추장이 사위부족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게 되면 두 부족간에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 부족에게 바쳐진 아이를 "Peace Child, 화해의 아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의 화목의 관계를 가로 막는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화해의 아들과 같이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자로 믿으면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사람들과의 불화는 자신의 아들을 죽이시면서까지 해결하셔야 할 심각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과의 화목의 관계를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 희생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과의 관계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렇게 여기지 않고 소홀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과의 화목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는 하나님께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때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기도 하고 포기하면서 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예배, 기도,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화목의 관계로 회복시키고 유지시켜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관계를 귀하게 여기셔서 그 아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던 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이를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믿는 자를 의롭다 여기시고 화목의 관계로 이끄십니다.

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골로새 교인들을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우시고자, 육체의 죽음을 당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함을 믿을 때에 우리의 죄는 사함을 받고,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여김을 받습니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의롭게 되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데, 그렇다고 사람이 실제로 의로운 존재로 완벽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일서 1:8절에,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 자들도, 여전히 죄의 영향력 속에 살게 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화목하기 위해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서 완전히 새 사람으로 바뀐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롭다고 칭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실제로 의로운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기대하시면서 그 화목의 관계를 이루어 가십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알려주셨고, 그 율법을 다 지킬 때에 정말 의로운 자가 되어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의에 이를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모든 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의로움에 사람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도리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식적이고 의무적으로 변해갔습니다.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사람들과 화목의 관계를 만드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그 분을 믿을 때에 실제로 완벽한 의에 이르지 못하지만, 그래도 의롭다 여겨주시고 화목의 관계를 만들어 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할 만한 실제적인 의로움이나 거룩함은 완벽하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비록 부족하지만 하나님과 화목하고 의와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나의 공로가 아닌 것입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죄인된 우리가 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를 갖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3.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 화목된 자들로 세워진 곳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우리를 화목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한 곳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된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죄인들을 의롭게 하시고, 18절에 보니까, 그러한 사람들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롭다고 칭함을 받았지만, 아직도 죄의 영향력 속에 있고, 아직도 하나님과 화목하기에는 부족한 점들이 많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부르셔서 당신의 몸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화목할 수 없는 사람들을 자신의 몸으로 삼으시고 자신과 하나되게 하셔서 교회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케 하심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화목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하나님과 사람들만을 화목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도 화목케 하였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서로 화목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민족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의로운 민족으로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이방인들을 바라볼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법도 없이 자신들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불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이들과 화목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훼손하는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법으로 이방인들을 정죄하고, 저주받을 사람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제 율법으로 의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에 이르고, 그로 인해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분이 없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다 하나님과 화목을 이룰 수 있고, 모두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도 화목케 해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화목하고 평화하고자 합니다. 그럼에도 화목하지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의당 갈등과 불화가 있을 것을 전제합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다른 생각과 행동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기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에 우리는 죄인된 사람들을 의롭다 하시고, 자신의 몸으로 불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화목이라는 것은 상대방이 완벽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죄가 없이 완벽해야 만 나와 화목할 수 있다고 하셨다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완벽하신 하나님께서도 사람들과 화평하기 위해서, 사람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담당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화목하시기 위해서 치르신 일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화목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죄가 있지만 그 죄값도 스스로 치러주시고, 그리고 의롭다고 여겨주셔서 화목을 만들어 가신 하나님입니다. 사람 편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 스스로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화해의 아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그 화목의 관계속에서 구원의 삶을 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많은 관계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 우리와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화목하기를 원하십니다. 죄인된 사람과의 화목을 위해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님까지 대속물로 주실 정도로 우리와의 화목을 기뻐하십니다. 이 세상에 나와 화목하기 위해서 그러한 희생을 치르신 분은 없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또한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하게 하시고자, 대속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케 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 충만하게 채워져야 할 것 중에 하나가, 화목입니다. 우리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과의 화목이 누려져야 합니다. 늘 하나님과의 교재를 소중하게 여기며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화목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화목하기를 기뻐하셔서 살아가셨던 것처럼, 하나님과의 화목과 사람들과의 화목을 기뻐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죄인된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시고 화목하셨던 것처럼, 내가 상대방을 보기에 부족하고 만족이 안되지만, 그래도 화목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용납하며, 화목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 성도인 것입니다. 죄인된 우리에게 먼저 화목의 손길을 내미신 하나님과 같이, 우리도 또한 먼저 화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미움과 전쟁과 갈등이 많은 이 시대를 살아가지만, 우리 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화목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화목하심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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