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9/2016 - 걸림돌을 두지 마라 [로마서 14:13-18]

by Rejoice posted Oct 1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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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이들이 좀 어렸을 때에 가족들과 함께 자전거 하이킹을 종종 다니곤 했습니다. 보통 자전거 도로는 포장이 잘 되어 있어서 달리기가 편했는데, 그 날 간 곳은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돌과 잡초들 위에 난 자전거 길이었습니다. 산악 자전거를 위해서 난 길 같았는데, 가까운 거리를 가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자전거는 덜컹거리고, 수시로 자전거 바퀴는 돌에 막혀서 서기 때문에,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가기 십상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제대로 타지 못하고 거의 끌다시피 해서 그 길을 돌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 다시 그곳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여정 가운데서도 길의 돌과 같이 우리와 부딪치며 넘어뜨리려는 방해물들을 수 없이 경험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사도바울은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의 부딪치는 것과 걸리는 것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합니다. 누가 다른 사람의 걸림돌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하지만 주의하지 않으면 이러한 일들이 종종 있고,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자신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예언하셨을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꾸짖듯이 말합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하십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서 자신을 넘어지게 하는 존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사도바울이 말한 '걸리는 것'과 같은 단어인, '스칸달론'을 쓰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 충성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때로는 예수님을 걸려 넘어뜨리게 하는 실수를 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의 말씀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부딪치게 만드는 걸림돌과 같은 것들이 무엇이며, 걸림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신앙을 격려하고 유익하게 위해서 우리가 관심하며,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1. 먼저 우리는 서로를 비판함으로 형제 앞에 걸림돌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로마교회에서 발견한 걸림돌 중에 하나는 서로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그 당시 비판의 내용은 음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가에 대해 교인들 간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종교적인 이유로 해서 특정한 음식을 먹지 않기도 합니다. 불교의 승려 같은 경우는 육식을 하지 않고,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금지합니다. 그런데 로마교회 교인들 중에는 육식을 금하고 채식만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레위기에 나오는 부정한 짐승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시중에 파는 고기를 사 먹는 것도 금했습니다. 왜냐하면 시중에 파는 고기 중에는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서 시장에 나온 고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생각없이 시장에서 고기를 사서 먹게 되면, 우상에게 드려진 부정한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아예 고기 먹기를 포기하고 채식만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부정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고기를 먹지 않는 교인들도 있었고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고기든 채소든 상관없이 먹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음식을 정결케 만드셨으니, 무슨 음식이든지 그냥 감사함으로 먹으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기를, 어느 음식이나 감사함으로 먹으면 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속된 것, 곧 부정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4:4절에 "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특정 음식을 부정하게 여기냐 하면, 사람들이 그것을 속되다고, 부정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실 사도바울에게는 어떤 음식을 먹던지 간에 신앙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사도바울이,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며, 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칫 비판하게 되면, 그들의 믿음에 어떠한 유익도 없이 걸림돌이 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서로의 음식에 대한 차이로 인해서 서로 비판하지 말고, 좀 더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도록 그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2. 먼저 사도바울은 다른 이들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의 행동이 형제를 사랑하는 동기를 가지고 하는지를 보라고 했습니다. 만약 음식에 관해 비판적으로 말함으로 상대방을 근심케 만든다고 하면, 이는 사랑의 행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판보다 사랑이 앞서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레위기 19:14절에 하나님께서는 명령하시기를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하셨습니다. 상대방의 연약함에 대해서 돌보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을 흉을 보며, 걸림돌을 놓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같지가 않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너머 가던지, 아니면 돌아가던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그럴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거친 것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봐야 합니다. 상대방과 같은 입장에 있어 보면, 그 때서야 그 사람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는 상대방이 예수님께 어떠한 존재인지를 깨달을 때에 함부로 비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비판하며 근심하게 만드는 그 사람도, 예수님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나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듯이, 내가 비판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예수님께서 죽으실 정도로 존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존귀한 사람을, 단지 음식먹는 문제로 인해서 실족하게 해서 망하게 한다면 그것은 주님 보시기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리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실 때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주고서 바꿀 정도로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러니 상대방을 대할 때에 상대방이 실족하여서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 그 영혼이 망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고 선하다고 주장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사람이 상처받고, 실족을 하고,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이제, 사도바울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므로 걸림돌이 되는 대신에 우리가 관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사도바울은 서로 비판함으로, 서로에게 부딪치는 것이나 걸리는 것이 되지 말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상대방을 통해 비판거리를 찾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안에서 이룰 것인가에 대해서 더 관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가져야 할 궁극적인 관심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곧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기독교인 조차도 하나님의 나라가 먹고 마시는 것에 관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교인 중에 교회를 나오는 이유도, 세상을 풍요롭게 잘 살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두면서 신앙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신앙의 걸림돌이 됩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기를 먹고 안 먹는 것으로 논쟁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것인가를 두고서 힘쓰는 것이 더욱 본질적인 신앙의 과제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도록 관심하고 도우며 디딤돌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이루어지기를 관심하며, 도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1) 먼저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성도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공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불의한 일들이 세상 곳곳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자기 기준을 가지고 의롭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의로움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 때의 하나님의 나라의 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인종차별로 인한 불의한 일들이 문제입니다. 경찰들이 흑인들에 대해 무자비한 공권력을 행사함으로 사람이 죽는 일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이러한 불의에 대해서 항쟁을 하지만, 이에 맞서는 경찰들은 그것이 정당한 처사라며 자신들이 의롭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태도에 분노하며 올해 달라스에서는 경찰에게 총기를 발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2015 6,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있는 한 흑인교회에 21세의 젊은 백인 한 명이 총을 들고 들어와서,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 교인 9명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불의한 일에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일은, 자녀들을 어이없이 잃은 유가족들이 그 불의함에 대해 취한 태도입니다. 죽은 자녀들의 어머니들은 자신의 자녀를 죽인 그 청년을 찾아가서, 그 살인자를 저주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의 소중한 이들을 앗아갔지만, 당신을 용서한다고 눈물로 그들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 유가족들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의가 아니라, 성경에서 기록된, 사랑과 용서를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의로움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누릴 수 있는 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이루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우리는 성령 안에 있는 평강을 이룸으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내가 비판하는 것이 옳다고 할지라도, 그 비판으로 인해서 형제를 근심하게 하고, 서로의 평강을 잃어 버린다면 그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로마교회안에서도 서로 자신의 신앙이 옳다고 주장함으로 인해서 그 평강을 잃어 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평강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다툼과 분열이 있다고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하나님과 사람들을 화평케 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아가는 성도들 또한 화평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9,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사람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신앙의 디딤돌을 놓아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들로 인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 있는 희락이라고 하셨습니다.

2013년도에 조사한 자료로,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부탄이라고 하는 생소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히말라야 산맥의 동단부에 있는 인도의 보호국입니다. 국민소득은 1인당 6500달러니까 그리 넉넉한 형편의 나라는 아니지만 전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입니다. 불행은 가난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감사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희락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희락,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시고, 그 기쁨의 내용을 이미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셨습니다.

구원의 예수님을 주신 것에 대해서 기뻐하며,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에 대해서 기뻐하며, 나의 형편과 상황에 대해서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장미의 아름다운 꽃잎보고, 향기로운 장미향을 맡으며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또한 그 장미의 따가운 가시를 보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희락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이것을 빼앗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현재의 삶이 충분하지만, 이것에 대해서 부족하다고 여기게 하고, 불평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4절에,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서 기쁨의 근거를 찾지만, 성도들은 주안에서 기쁨이 있음을 깨닫고, 그로 인해서 기쁨을 누리는 자입니다.

우리는 사탄이 빼앗아간 하나님께서 주신 희락을 회복하고, 또한 다른 사람도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근심과 슬픔 가운데 있던 이들이, 나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의 기쁨, 희락을 맛볼 수 있도록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은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친밀함 가운데서 교통을 할 때에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게 하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위해 살아가도록 힘주시는 분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평화의 기도로 유명한 성 프란시스의 일화 중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 프란시스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40일간의 금식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제자가 제안하기를그냥 금식 기도를 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너무 흔하고 훈련도 덜 되니, 먹을 것을 앞에 놓고 유혹을 이기면서 금식기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할 때에 매일 기도처 앞에 죽을 쑤어다가 갖다 놓고 쳐다보면서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20일쯤 되자 한 제자가 그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숟가락을 들어서 죽을 한 숟가락 떠 먹었습니다. 그 때에 나머지 제자들이 죽을 먹은 제자를 향해 비판과 증오의 눈빛을 보내면서, 그 제자로 인해서 이번 금식훈련이 실패했다고 불평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성 프란시스는 제자가 먹다 남긴 그 죽그릇을 통체로 마셔버렸습니다. 제자들은 놀랐습니다.‘아니, 선생님께서 어떻게 이러한 행동을 하십니까?" 그러자 프란시스는 제자들을 향하여서 이렇게 말했습니다.‘금식을 하고 형제를 미워할 바에는 먹고 사랑하자.’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이루시고자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인데, 사람들은 서로의 생각과 행동을 비판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부딪치고 걸리는 것이 되곤 합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신앙을 평가하고 비판하기 전에, 나의 모습을 돌아 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위해서 죽기까지 사랑하셨는데, 나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모습이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 이루어지기를 꿈꾸며 행하고 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18절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며 살아가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나아가서는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를 증거하니 사람들이 그 사람을 칭찬하며 환영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 교회가 성령충만한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만들어 나가며,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증거하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고 칭찬받는 삶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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