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1031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이제,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일 주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집안에 어떤 사람이 임신을 하게 되면, 태어날 아이를 맞이 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출산을 기쁨으로 맞으며 축복하게 됩니다. 이제, 성탄이 가까이 오는 이 때에, 저와 여러분들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잘 준비하고 있는지를 한번 살펴 보았으면 합니다.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서 우리가 점검해야 할 모습은 어떠한 것이 있는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시던 때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육신적인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살던 곳은 베들레헴이 아니라, 갈릴리 나사렛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편하게 출산한 것이 아니라, 90마일 정도 떨어진 베들레헴에 어렵게 가서 원정 출산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베들레헴에 마리아의 친정이 있기 때문도 아니고, 출산하기 좋은 곳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당신의 로마 황제였던 '가이사 아구스도'가 모든 사람들은 호적을 해야 한다고 명령을 했기 때문입니다. 호적을 하게 하는 주된 목적은 효과적으로 세금을 징수하려는데 있습니다. 혹시나 세금을 징수하는데 누락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인구조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요셉은 다윗의 집 족속이기 때문에 그의 조상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가서 호적하기 위해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기 예수님을 출산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까지 가셔서 출생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탄생이 보통 사람의 탄생이 아니라, 메시야의 탄생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입니다. 미가 5:2절에 보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라고 했습니다. 곧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가 탄생할 것이라는 예언인데, 이것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사야 11:1절에는 메시야의 혈통까지 나타나 있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새' '다윗 왕'의 아버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적으로 베들레헴에서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셨음을 통해,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이, 이 땅을 구원할 메시야의 탄생을 예언한 구약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통해서 메시야 예언이 성취된 것 이외에, 출산과 관계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누일 여관에 방이 없어서, 아기 예수님을 강보에 쌓아서 구유에 뉘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만삭이 된 아내를 데리고 간신히 베들레헴에 도착을 했지만 아내와 함께 쉴 방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요셉은 방을 구하기 위해서 여러 곳을 다녔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들려 오는 말은 "방이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 보라"는 말만 들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같으면, 인테넷으로 여관 방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미리 예약을 하고, 편안하게 출산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가 도착했을 때에는, 먼저 온 사람들로 인해서 그들이 들어갈 방을 다 찼기 때문에, 요셉으로서는 산모와 곧 태어날 아기 예수님을 위해 방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에게는 방을 구하는 일이 불가능했겠지만, 그렇다고 하나님 아버지에게도 불가능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의 탄생을 몇 백 년 전부터 예언하고 준비해 오셨습니다. 아들의 길을 예비하라고 세례 요한도 미리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에는 동방박사와 목자들을 준비하셨다가 아기 예수님을 보고, 경배하게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탄생하실 방을 능력이 없어서 준비해 놓지 못하신 하나님은 아니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셨다면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를 맞춰서, 베들레헴에 유명한 건축업자가 나타나서, 가장 좋은 여관을 만들게 하시고, 그곳의 가장 좋은 VIP 방을 비워두게 하셨다가, 요셉과 마리아를 맞게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말씀도 성취하고, 예수님도 보기 좋게 탄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방이 없으셔서 마굿간에 누우신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깨닫게 됩니다.

 

1. 먼저, 예수님을 위한 방이 없다는 것은, 구세주의 오심을 맞아들이지 못하는 그 당시의 사람들의 모습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여관의 방이 없다고 할지라도, 곧 출산할 임산부가 방을 찾는데 방이 없다고 다른 곳에 가보라고 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못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방이라도 내어서 임산부에게 주어야 할 상황일 것입니다. 하지만 만삭의 마리아를 보았던 여관 주인도, 먼저 여관에 투숙했던 손님들도 자신의 방을 대신 쓰라고 양보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을 거부하고, 맞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헤롯왕의 모습을 보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로부터 '유다의 왕이 탄생했다.'는 말을 들은 헤롯 왕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 놓고,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냐" 고 묻습니다. 그리고 "유대 베들레헴"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헤롯이 한 일은 베들레헴과 그 주변 지역에 있는 두 살 아래의 아이들은 모두 죽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종교지도자들도 그리스도가 탄생했다는 말을 듣고도, 예수님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헤롯과 함께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일에 함께 동조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장성하신 이후에도 이러한 일들은 지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나를 구원하시는 메시야로 영접하기를 거부하고, 끝내는 십자가로 죽이기까지 예수님을 몰아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마굿간에 누우신 예수님의 모습은, 죄인된 사람들을 구하려고 오신 예수님의 찾아오심을 거부하였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살려주시기 위해서 오신 주님을 방치해 놓은 것입니다.

내 자신의 편의를 고집하려고 하면 베들레헴의 사람들처럼 예수님께 방을 내어 드리지 못합니다. 내 자신의 유익을 고집하려고 하면 헤롯처럼 예수님께 방을 내어 드리지 못합니다.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기 위해서 양보할 만한 방이 없었던 것입니다.

 

2. 그런데, 하나님은 달랐습니다. 구유에 누어 있는 아기 예수님의 모습은, 당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방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을 보면서 메시야를 거부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뿐만 아니라, 그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한 방을 만들어 주셨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왕들의 왕이요, 주들의 주가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탄생하시기에 가장 합당한 곳은 왕궁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왕궁에서 태어나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위대한 이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따라오면서, 왕궁에서 왕자가 태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헤롯왕에 왕궁을 찾아가서, "유대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경배하러 왔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왕들 중의 왕인 예수님을 왕궁에서 태어나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갈릴리 나사렛의 평범한 목수의 집에 아들로 임신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먼 베들레헴까지 가게 하셔서 원정 출산을 하게 하셨는데, 그것도 좋은 곳이 아니라 마굿간에서 겨우 출산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마굿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곳은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사람이면 모두 와서 주님을 만나고 경배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과 같이 이방 사람도 올 수 있고, 높은 지위의 사람들도 올 수 있는 곳입니다. 목자들과 같이 그 당시 가장 천대받고 고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올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서 방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왕궁에서 태어나셨다면,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탄생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맞이할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낮추셨습니다. 영광을 버리셨습니다 세상의 왕궁의 영광이 하늘의 영광에 견줄 만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를 용납하시고 만나기 위해서 마굿간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 스스로 낮아져서 우리에게 오시지 않으면 우리는 감히 그 분께로 갈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마굿간에서 태어나셨고, 사람들이 그를 만나고 경배할 수 있도록 방을 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을 만나고 예배할 수 있도록 방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금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시면서, 언제나 우리를 맞이하실 방을 마련해 놓으시고, 우리를 초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마굿간에 태어나신 주님을 보면서, 우리를 맞이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됩니다.

 

3. 그런데 이 성탄의 계절에 깨닫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를 향하여서, "당신에게는 내가 거할 방이 있습니까?"라고 묻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소아시아의 있는 일곱 교회 중에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기독교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랑은, 자신들은 부요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책망하시기를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 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시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을 했지만, 정작 예수님은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문 밖에 서서 문 열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 함께 먹고 마실 사람이 없어서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문을 두드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셔서 인격적으로 그들과 만나며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을 변화시키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맞을 방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삶이 주님으로 인해서 간섭 받고, 불편해 지는 것이 싫었습니다. 지금 있는 세상의 부요함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알고 누리면 됐지, 굳이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삶을 지배하도록 그들의 삶에 모시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두드리십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여관집 주인과 같이, 그곳에 투숙했던 사람들과 같이, 우리의 삶을 주님께 내어드리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탄절에 잘 알려진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 어느 작은 마을에 '윌리'라는 9세 소년이 있었다. 4학년에 해당되었지만 지적 능력이 다 소 떨어져 2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그 해 성탄절에 주일학교에서 성극을 하게 되었는데 윌 리가 맡은 역은 여관집 주인역이었다. 예배당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연극이 진행되던 중 요셉과 마리아가 여관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주인역할을 하는 윌리가 나와방이 다 찼으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다.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는 간절히 사정했다.

"우리는 너무 멀리에서 왔습니다. 아내는 금방 출산할 것 같습니다. 제발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여관 주인으로 분장한 윌리는 말을 잊은 채 마리아를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무대 뒤 에서 대사를 읽어 주던 선생님은 윌 리가 대사를 까먹은 줄 알고 자꾸 읽어 주었다. 한동안 서 있던 윌리는 선생님이 크게 읽어 주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안돼요. 방이 없다니까요. 가세요.!" 결국 요셉과 마리아는 슬픈 얼굴로 돌아섰다.

바로 이때였다. 각본대로 이제 방문을 딛고 들어가야 할 윌 리가 돌아가는 요셉의 가족을 걱정스러운 듯이 눈물을 흘리며 지켜보다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요셉, 마리아! 가지 말아요. 마리아를 데리고 들어와요!" 물론 각본에 없는 대사였다. "내 안방을 쓰세요. 내 방에 어서 들어가란 말이예요!"

물론 연극은 엉망이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그 장면을 지켜보던 많은 교인들은 "내 생애에 있어서 이렇게 감동적인 성탄극은 처음 보았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방을 찾으실 때에 그 방을 내어 드려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여전이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 놓고,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하는 일이 바빠서 안될 것 같고, 좀 한가해 지면 그 때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미루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가겠다고 하지만, 아직도 나를 위해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실 때에, 우리와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배우자와 같이, 자녀와 같이, 이웃과 같이 함께 대화하며, 우리의 삶의 고민을 들어 주시고, 함께 기뻐해 주시고, 우리의 삶을 지도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집밖에서 잠깐 대화하다가 떠나가는 세일즈맨이 아닙니다. 잠깐 초대받아서 왔다가 용무 마치고 돌아가는 손님이 아니라,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함께 먹고 살면서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의 꽉 찬 것들을 비워드려야 합니다. 내 자신의 시간, 계획들, 하던 일들을 비우지 못하면 주님을 모셔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금씩이라도 주님께 내 시간을 드리십시오. 좀 더 기도하며 주님과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리십니다. 말씀을 읽으며 주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내 드리십시오. 내 계획을 드리십시오. 이제는 내 생각과 뜻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뭘 원하시는지 관심하시고, 내 생각과 생활 방식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조금씩 드리십니다. 내 생각과 마음과 생활 속에 예수님께서 들어오실 수 있도록 조금씩 내 자신을 비워 가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주님께 내어 드리십시오.

그러다가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들어와서 함께 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주님께서 나를 점차 지배하시고 이끌어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만삭이 된 마리아에게 방이 없다고 외면한 베들레헴 사람들의 매정한 모습을 봅니다. 두 살 아래의 아기들을 죽이라는 헤롯의 잔혹함도 봅니다.

하지만 그러한 외면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구유에 누우셔서 사람들을 맞고 만나주시는 주님을 보게 됩니다. 여전히 우리의 삶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면서, 우리의 삶을 품어 주시고, 이끌어 주시고자 시간과 열정을 쏟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성탄의 계절을 통하여서 우리의 방을 조금이라도 주님께 내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대화하기 위해 기도의 시간을 좀 더 내어 드리고, 말씀을 듣기 위해 시간을 내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조금 더 주님을 더 알아가고, 주님과 더욱 가까와 질 수 있는 시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실시간 인터넷 예배 접속 Rejoice 2020.03.21 7765
194 02/12/2017 - 선하신 부르심 [로마서 8:28-30] Rejoice 2017.02.16 7243
193 02/05/2017 -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할 기회 [갈라디아서 6:1-5] Rejoice 2017.02.07 7044
192 01/29/2017 - 의로운 재판장에게 받을 상 [디모데후서 4:6-8] Rejoice 2017.01.31 8426
191 01/22/2017 - Honey from the Rock [Judges 14:5-9] - Pastor Eliezer Majia Rejoice 2017.01.24 6277
190 01/15/2017 - 얍복강에서의 축복 [창세기 32:22-31] Rejoice 2017.01.20 10189
189 01/08/2017 - 어린양을 보라 [요한복음 1:29-34] Rejoice 2017.01.09 9426
188 01/01/2017 -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1-2] Rejoice 2017.01.05 11056
187 12/25/2016 - 가장 좋은 선물 [요한복음 3:16-17] Rejoice 2016.12.30 11406
» 12/18/2016 - 예수님의 방 [누가복음 2:1-7] Rejoice 2016.12.22 10311
185 12/11/2016 - 충만한 은혜와 진리의 오심 [요한복음 1:9-14] Rejoice 2016.12.15 8625
184 12/04/2016 - 주님의 두 이름 [마태복음 1:21-23] Rejoice 2016.12.09 7633
183 11/27/2016 - 아브람에게 임하신 하나님 [창세기 12:1-5] Rejoice 2016.11.28 8158
182 11/20/2016 - 감사와 감사 사이 [시편 136:1,9-14] Rejoice 2016.11.28 12031
181 11/13/2016 - 내 거룩한 산 [이사야 11:6-9]-야외예배 Rejoice 2016.11.15 6780
180 11/06/2016 - 말씀을 통한 개혁 [열왕기하 23:1-3] Rejoice 2016.11.09 9388
179 10/30/2016 - 위대한 믿음 [마태복음 15:21-28] 조종건 장로 Rejoice 2016.11.09 7571
178 10/23/2016 - The Elusive Virtue [Luke 18:9-14] Rev. Carl Rohlfs (Superintendent) Rejoice 2016.11.09 111943
177 10/16/2016 - 위엣 것을 찾으라 [골로새서 3:1-5] Rejoice 2016.10.19 11016
176 10/09/2016 - 걸림돌을 두지 마라 [로마서 14:13-18] Rejoice 2016.10.12 9859
175 01/02/2016 - 나를 먹고 마셔라 [요한복음 6:52-59] Rejoice 2016.10.04 9923
Board Pagination ‹ Prev 1 ...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 30 Next ›
/ 3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샌안토니오 한인연합감리교회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of San Antonio

Tel: 210-341-8706 / Add: 5705 Blanco Rd. San Antonio TX 78216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샌안토니오 한인 감리교회 Korean Global Methodist Church of San Antonio Tel: 210-341-8706 / Add: 5705 Blanco Rd. San Antonio TX 78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