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상고하는 사순절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의 내용을, 사도신경을 주축으로 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설교를 전하고 있습니다.
지난
두 주간, 우리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살펴 보았고,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도신경에서
나타난, 우리의 두 번째 믿음의 대상은 예수님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도신경에서 나타난 예수님에 대한 고백은,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여기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과도 같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가이사라 빌립보에 제자들과 함께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때 제자들이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요한, 엘리야, 또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은 꽤 알려진 유명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사와 이적들로 인해서 예수님이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사람인 것을 사람들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안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헷갈려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약에서 활동하던 선지자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유대의
분봉왕이었던 헤롯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생각하기를, ‘예수는 자신이 목 잘라서 죽인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막 6:14).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지만, 정작 예수님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오해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세 종교가 있습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입니다.
이 세 종교는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그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한 언약이 성취됨을 믿습니다. 단지
유대교와 기독교는 그 언약이 이삭을 통해서 이어졌다고 생각하고, 이슬람교는 그 언약이 이스마엘을 통해서 이어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세 종교의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유대교에서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고 아직도 구세주는 오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이슬람교에서는 좀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알라가 보내신
선지자요, 구세주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아니하였고,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대답들은,
예수님 당시나 오늘날이나 예수님에 대한 제대로 된 고백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러 추측의 말을 들으신 다음, 이번에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그
때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대답을 들으시고는 베드로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게 한 것은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의 생각에서 난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참된 예수님에 대한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바로 베드로의 고백과 같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로 알게 하신,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는 믿습니다."라는 고백속에 담긴 의미를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라고 고백할 때에,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같은 신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사실, 지난 주일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심에 대해서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는 많은 자녀들이 있으실 텐데, 성경은 예수님을 많은 자녀들 중에
한 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외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유일한 외아들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본질상 같은 하나님, 신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창조된 인간으로서 하나님께서 양자를 삼으셔서 자녀가
되었지만, 예수님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같으신 신으로서의 참 아드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초대교회의 신앙인들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기독교인의 상징물 중에서 물고기가 있습니다. 물고기 스티커를 자동차나, 교회와 관련된 물건 등에 문양으로 넣습니다. 오늘날, 그 물고기를 생선파는 표시로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물고기가 기독교인의 상징물로 사용되었냐하면,
예수님 당시에 사용되었던 언어인 그리스어의 '물고기'라는 단어가, 초대교인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고백하는, 그 고백의 첫 글자를 합한 글자와 같기 때문입니다. 초대교인들은
예수님을,
"이에수스, 크리스토스, 테우,
희오스, 쏘테르 (Ιησους Χριστος θεου Υιος Σωτηρ) , 곧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고 믿고
고백을 했는데, 그 고백의 첫 글자인, 이오타/키/세타/윕실론/시그마 를 합해 보니까, 익투스, 곧 물고기라는 단어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초대교인들은 물고기 모양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표시했고,
자신들이 기독교인임을 다른 기독교인들에게 알리는 비밀스러운 표식으로 사용했습니다. 곧
초대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구세주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 신앙의 고백으로 인해서 유대인과 로마인들로부터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시면서,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 유대인들의 반응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5:18절에,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인간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이라고 여겨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호와증인이 그렇습니다. 여호와 증인은 예수님을 하나님과 한 본질로 보지를 않습니다.
예수님은 첫번째 하나님의 창조물이라고 말합니다. 아담이 아니라, 예수님이 첫번째 창조물이고, 천사와 같은 영적인 피조물이지, 하나님과 같은 신은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영적으로 경험했던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2:6-7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모양이지만, 원래 하나님과 동등하신
신의 본체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믿음 고백속에는, 이천년전 이 땅에서 사셨던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질을 가지신 신이였음을 고백하는 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참 하나님이시요, 참 인간인 줄로 믿습니다. 2.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는 고백속에는,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임을 믿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희랍어로 "큐리오스"이고 이는 자신을
다스리시는 유일한 주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해서 초대교회 교인들은 로마사람으로부터 박해를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당시 세상의 최고 권력자였던 로마제국의 황제에게
"큐리오스"라고 고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로마가
큰 제국을 이루면서 많은 나라를 속국으로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문화와 종교가 다른 나라와 평화스러운 관계를
맺는 것이 시급했고, 로마황제는 속국의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단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로마제국에게 조공을 바쳐야 하고, 그리고 로마의 왕,
황제가 주인이라는 ‘큐리오스’라는 고백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로마에 속국이 된 나라의 사람들은 황제를 자신들의 주인, 큐리오스라고 고백하고, 그리고 자신들이 그 동안 섬겼던 신들을 자유롭게 섬겼습니다. 그래서 로마황제는 모든 로마시민의 주인이 되었고, 마치 신과 같은 절대 통치자로 인식되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은 한사코 로마의 황제를 자신들의 '주'라고 고백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유일한 주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의 박해의 대상이 되었고, 그 박해를 피해 땅에 굴을 파고 들어가 그곳에서 집단생활을 하기도 하고, 로마사람들에게 잡혔을
때에는 원형경기장에 끌려가 사자의 밥이 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는 믿음은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고수했었던 심각한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기독교인은 예수님을 나의
유일한 주님으로 섬기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예수님 이외에 다른 것을 주인으로 섬기고 의지하고자
하는 유혹속에서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24절에, "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나 오늘날이나, 물질을 주인으로 삼아서, 그것을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재물은 사람이 편의를 위해서 사용하는 수단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주인이고, 물질은 그러한 사람을 섬겨야 할 목적으로 만들어 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거꾸로 되어서 도리어 사람이 재물에게 종노릇하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돈을 얻기 위한 일이라며 사람이 무슨 일이라고 합니다. 물질을 벌기 위해서, 하나님 섬기는 것을 소홀히 하거나 포기합니다. 세상의 재물을 많이 모시기 위해 밤낮으로 시간과
힘을 투자하면서 살아갑니다. 돈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돈을 주인 삼아서
그토록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의 고백속에서는 우리의 주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인된
예수님의 자리에 세상의 많은 거짓된 주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성도는 예수님이 모든
인류의 주인되심을 믿고, 그 자리를 예수님께 돌려 드리고, 주인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는 고백속에는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적으로 볼 때 이천 년 전,
역사속에 있었던 갈릴리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예수라는 이름은 아주
흔한 남자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지칭할 때에, 갈릴리 예수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을 갈릴리에서 살고 있는 예수라고 좀 구체적으로 해야지, 다른 예수의 이름과 혼돈을 그래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더 이상 예수님을 갈릴리에 사는 목수의 아들 예수로 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자신을 구하러
오신,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구원자, 구세주'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예수님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들을 구원하실 분임을 깨닫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고백을 당시 유대교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
한 때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기독교인들을 박해 하고, 잡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게 되니까 비로서 예수님이 자신의 구세주임을 고백하며, 그것을 전하기 위해서 선교를 다녔습니다. 네로 황제에 의해 순교를 당할 때까지 바울은 예수님이
자신의 구세주요, 유일한 주인임을 고백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4:12절에 보면 베드로가
성령 충만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할 자로,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는데 그 분이 예수님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4:6절에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구원은 무엇입니까? 구원은 이 세상에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나 환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에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이 세상의 환난과 고난에서 능히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구원은,
죄의 결과인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구원입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서 영원한 천국을 상속 받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면 그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아서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은,
지금 천국에서 누릴 영생의 구원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구원에 관해서 세상 사람들
중에서는 예수님 외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고,
모든 종교는 하나님께로 통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궁극적으로는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유일한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여러가지 말들을 합니다.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은 가상의 인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이지, 그 이상의 존재는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유대인의 랍비와
같이 성경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고백한 베드로는
"예수님,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믿고 살았습니다. 초대교인들도
이 믿음의 고백으로 인해 박해와 죽음을 당했지만, 그 믿음을 고수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유일하신 구세주임을 믿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를 구원할 다른 사람과 믿음,
물질들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는 예수님만이 참된 구원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인이라면 내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가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인해서,
그분이 나의 주인되심을 보여드리고, 증거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세상에
여러가지 거짓된 믿음과 풍조가 많지만,
예수님 안에서 참 구원을 누리며, 늘 주님을 온전히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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