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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사순절 기간 동안, 사도신경에 나타난 우리의 믿음의 고백을 살펴 보았습니다. 이 번 주일은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도신경에서 성령에 대한 고백은 간단하게 나와 있습니다. '성령을 믿사오며'. 비록 짧은 믿음의 고백이지만, 성도들의 믿음의 삶에 긴시간 동안, 커다란 변화와 영향을 끼치시는 분은 성령님이 되십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성령님의 오실 것을 예언하시면서, 그 분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려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예수님의 뒤를 이어서 오시는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혜사'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 '파라 클레토스''파라''칼레오'라는 말이 합성된 말입니다. '파라'(곁에서) '칼레오'(부르다, 간청하다, 위로 격려하다) 라는 여러 의미를 가졌습니다. 그러니까 파라 클레토스는, 곁에서 함께 있으면서, 필요하면 대신 말해 주시도 하시고, 위로도 해 주시면서, 도와 주시는 분을 의미합니다. 사람을 돕는 역할을 하시는 분이 바로 보혜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예수님이 먼저 우리의 보혜사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인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사람들 곁에 계시면서, 사람들의 영과 육의 필요를 돕기 위해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대신해서 고난 당하셨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이어서, 사람들의 "파라 클레토스"가 되실 또 다른 보혜사를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이 말씀을 볼 때에, 사람이라는 존재는 보혜사 없이는 살아 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더라도 보혜사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없이 영생을 살 수 없듯이, 또한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예수님께서 이루신 그 구원을 이룰 수 없는 존재가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셨고, 우리는 지금 우리 곁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성령을 믿사오며"라는 짧은 믿음의 고백속에 나타난 성령님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우리가 성령을 믿는다고 하면, 성령님이 존재하며,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임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성령님을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존재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교통하시는 분입니다.

로마서 8:9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나, 그리스도의 영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성령님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사도행전  5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나니아가 사도 베드로에게 거짓말을 했을 때에, 베드로가 꾸짖으면서 말을 합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라고 아나니아가 성령을 속였다고 꾸짖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4절에 보면,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속인 것이 곧 하나님께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곧 성령님이 하나님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에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되는 신적인 존재가 세 분 계십니다.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입니다. 이 세 하나님은 각각 독립적인 인격을 가지신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세 분은 또한 하나의 모습으로 존재하십니다. 이 존재의 형태가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지만, 성경에서는 세분이 존재하심을 말하고 있고, 또한 그분들이 본질적으로는 하나된 모습으로 관계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신학적인 용어로는 삼위일체라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성자 하나님,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께서 이 땅에 오실 텐데,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은 본질적으로 예수님이 하시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 하나님이시고, 한 본질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8: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항상 함께 하리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실 것이라는 약속은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에 성령님이 오시면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때로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그리고 성령의 모습으로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또한 영원히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성부, 성자 하나님과 동일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2. 또한 우리가 성령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령의 하시는 일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사역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연장선 상에 있습니다. 그분들은 같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질적이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사역들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 곁에서 어떻게 도와 주시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까?

 

1) 먼저, 성령님은 사람들도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 천년 전에 이루어졌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이,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역사임을 증거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하여 고백한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말을 들으시고 칭찬하시면서,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지혜와 경험을 가지고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2:3절 말씀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도, 사람의 지혜와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는 자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면서, 자신의 죄로 저주를 받아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보혜사 성령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사람들이 보기에 저주받아 죽은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의 주님이시고, 그가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성령을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2) 그리고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 있으십니다. 그것은 곧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은 성령님을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사람들에게 참 진리를 가르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이 땅에 거짓을 가지고 왔습니다. 사탄은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이라고 아담과 하와에게 거짓말로 유혹을 합니다.

"하와야, 하나님께서 이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어? 아니야, 거짓말이야, 이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아질까봐 하나님께서 너희한테 거짓말 하신 거야? 그러지 말고 한번 먹어봐. 그러면 알거아냐?"

그래서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거짓된 말을 믿고, 하나님의 진리에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이 땅에 죄가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람들을 거짓으로 속여서 멸망의 길을 성공의 길이라고 말하고, 사망의 길을 생명의 길이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진리를 분별하는 것은 성령님을 통해서 입니다.

예수님은 성령님께서 요한복음 16:13절에,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사탄의 거짓된 시험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사탄이 와서 아무리 거짓으로 유혹한다고 할지라도, 유혹당해서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의 아비, 사탄아 물러가라"하면서 담대하게 대적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지혜로워도 진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에 거짓을 분별하며, 참된 구원과 풍요의 삶을 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3. 그리고 성령님은 능력의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능력의 하나님이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알아도,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에는 무력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몰라서 죄를 짓는 것도 있지만, 알면서도 죄를 짓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님과 같이, 그리스도 예수를 전하다가 돌에 맞는다고 할지라도, 성령께서 함께 계시니까 그 죽음을 영광중에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할 때에, 여러가지로 힘들고 고난의 일들이 있을 때에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면 우리는 그 능력으로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4. 사도바울은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람은 곧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이 거하실 때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9절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바꾸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령님이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람입니까? 우리는 이 질문에 담대하게 '아멘'이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저주받아 죽은 죄인이라고 여기지 않고, 나를 구원하신 구세주로 믿는다고 하면, 이것은 성령님께서 내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성령님의 역사하심입니다.

갈라디아서 4:6절에,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하나님을 향하여서 나의 아버지라고 고백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상속받을 것을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 안에 이미 성령님이 거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성도의 과제는 우리가 성령님으로 더욱 충만케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나를 완전히 다스리실 수 있도록 내 자신을 비워드려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5:18절에서,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성령충만을 술취하는 것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게 되면, 술에 의해서 지배를 받게 됩니다.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그런 것입니다.

마태복음 10:19절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총독이나 임금들 앞에 끌려갈 때에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성령님께서 무슨 말을 할 것인지를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충만이 거하신다고 하면, 우리의 말과 행동이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따라 행하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의 삶이 자연스럽게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동원 목사님의 회개행전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강원도 예수원에서 사역하셨던 대천덕 신부님은 성공회 신부님이신데, 그분 할아버지인 R. A. 토레이 목사님의 글에는 성령 충만이 자주 강조됩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한다. ‘하나님! 성령 충만하게 도와주십시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 나는 너무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제가 성령 충만하다고 느끼지 못할 때 함부로 말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말하면 실언이 되기 쉽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제가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저의 결정은 잘못될 가능성이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R. A. 토레이 목사님께서 성령 충만을 사모했던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주장하시면, 우리의 죄된 성품을 극복하고, 더 이상 죄에게 끌려다니는 종된 죄인이 아니라, 성령안에서 자유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가 주님을 닮은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충만한 상태인 술취함의 상태가 아니라, 성령님으로 충만한 성령 충만을 구하면서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도움 없이는,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도 없고, 영생에 이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도우시겠다고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보혜사로 오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죄인된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을 믿도록 도와 주셨고, 그분의 말씀을 진리로 깨닫고 분별하고 의지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제 그 구원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내 힘으로 믿을 생활을 할 때에,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님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의 선물, 성령님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께서 좋은 것, 곧 성령님을 구할 때에 주시지 않겠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그분이 존재하시고 하시는 일을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임재를 사모하고, 위해서 간구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곁에서 보혜사 되시고자 하시는 그 분이, 우리의 심령 가운데 있음을 믿고,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는 진리를 경험하고, 그분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성령님이 임하게 되니까 성령이 말하게 하시고, 행하게 하시는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고백, "성령을 믿사오며"라는 고백속에는 이제 그분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그분에게서 역사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늘 성령님의 임재와 거주하심을 사모하고, 구하심으로 인해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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