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1/2017 - 어린 아이 같은 어른 [마태복음 18:1-5]

by Rejoice posted May 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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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의 우화에는황소와 개구리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린 개구리들이 연못가에서 놀고 있었는데, 마침 황소 한 마리가 물을 마시러 연못에 왔습니다. 황소를 처음 보고 놀란 어린 개구리들은 집으로 부리나케 도망을 와서, 아버지게 호들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 연못가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괴물을 보았어요아빠 개구리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합니다. “너희들이 본 것은 황소란다. 그리고 아빠도 황소처럼 크게 될 수 있단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숨을 들이 마셔서 배를 불룩하게 만들었습니다. “황소가 이만 하더냐?””아기 개구리들은 그것보다 훨씬 크다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아빠 개구리는 바람을 더 집어넣어서 배를 부풀립니다. 아기 개구리들은 훨씬 더 켜야 된다고 말하고, 아버지는 그 때마다 배에 바람을 불어 넣어서, 크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렇게 몇 번을 하다가, 그만 배가 터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커 보이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풍자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좀 더 나아 보이고, 커 보이고자 하는 성향들이 있습니다.이러한 모습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에, 얼마 후면 사람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서 매우 근심을 합니다.

그리고, 갈릴리를 떠나 가버나움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말씀을 듣고서 그들에게 생긴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질문합니다. "예수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제자들의 관심은 천국에서 어떤 자가 큰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34절에 보면, 가버나움으로 오는 길에서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크냐"하고 쟁론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이 땅에서나, 천국에서나 다른 이들보다 크게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자들만의 관심만은 아닐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이보다 우월하고 큰 존재, 주목받는 존재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존재감을 다른 이들에게 드러내고 과시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질문을 받으신 예수님은 그들의 관심을 큰 자가 되는 것에서 작은 자가 되는 것으로 돌리십니다. 예수님은 한 어린 아이를 부르셔서, 제자들 가운데 세우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천국에서 가장 큰 사람은, 이 어린아이와 같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것을 전제로 해서 질문을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서 큰 사람이 되기는 커녕,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를 쓰고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어린 아이의 모습을 버리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신앙적으로도 성숙하게 되면, 어린 아이와 같은 미성숙한 모습을 버리게 되고 장성한 믿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는 합당한 사람을 살기위해서는 어른이 되면서도 버리지 말아야 할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낮아짐의 상태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버리지 말아야 할, 어린아이와 같은 낮아짐의 모습은 무엇인지를 한번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많은 이들이 어른이 되어가면서, 낮아짐의 모습을 점점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이 천국을 상실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니 제발 높아지려고 하는 모습에서 돌이켜서 어린아이와 같이 낮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일반적인 사람들의 관심거리는 어떡하면 다른 이들보다 커지고, 높아질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낮아질 것에 대해서 가르쳐 주신 이후에도, 20:22절에 보면, 세배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절하며 부탁드리기를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부탁을 드립니다.

제자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어머니의 관심도 그랬습니다. 자신의 두 아들이, 다른 제자들보다 높은 자리에 앉고, 큰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마치 우리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가지고 있는 마음과도 같다고 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다른 이들보다 좀 더 크고, 높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사람들은 더 커지고자 하는데 관심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커지고 높아지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리어 낮아지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들이 천국에 합당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비롯해서 세상 사람들이 지금의 높고 커지고자 하는 상태에서 돌이킬 것을 바라십니다. 크고자 하고, 높아지고자 하는 삶에서 돌이켜서, 낮아지는 삶으로 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11절에 세례 요한을 말씀하시면서, 큰자가 누구인지를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이 땅에서 세례 요한과 같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고, 메시야의 길을 예비한 엄청난 일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자와 비교할 때에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국의 참된 가치는 커지고, 높아짐에서 돌이켜서, 작아지고 낮아짐을 추구할 때에 얻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낮아지고 작아지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천국을 맛보지 못할 것 같다고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도리어 천국은 높고 큰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아지고 낮아진 사람에게 있고, 그곳에서 우리는 천국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돌이켜서 어린아이와 같이 낮아질 것을 당신을 따르는 제자된 저와 여러분들에게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자기를 낮춘다는 것은 인격적으로 겸손한 성격을 말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와 권력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기독교인 중에 사회적으로 훌륭한 분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영향력있는 정치인, 경제인, 문화, 교육인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적인 지위가 높아지면서도 천국을 잃어 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국은 사회적인 지위가 높던, 낮던지 간에 모든 이들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춘다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자신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천국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그렇기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다스림과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어린아이와 같이 낮아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과 다스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어린 아이들은 스스로의 주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의 주권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어린 아이는 부모 밑에서 자신을 낮추고, 부모님의 말씀과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어린 아이들이 부모님의 다스림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은, 자신의 부모님이 자신보도 크고 높고, 능력이 있음을 믿고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앞에서 낮아지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돌이킨다는 것은, 비록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하나님 보시기에는 연약하고, 무지하다는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 말로어린이라는 말은 '어리다.'라는 동사로부터 나온 말입니다. 그런데어리다라는 말의 원래의 의미는어리석다.’입니다. ‘어리석다라는 단어가 생기기 전에는, ‘어리다.’라고 말하면어리석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어른들이 어린이를 볼 때에, 참 어리석고 보잘것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아이가 똑똑하다고 하더라도, 어른이 보기에는 어리석습니다. 아무리 아이가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어른이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은 자신의 보잘것없는 상태를 알기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부끄럼없이 어른께 묻고, 할 수 없는 일들을  부모님께 부탁하며, 부모를 의지하고 그 말에 순종하면서 낮아진 상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어린 아이와 같은 모습이 어른에게도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덧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경험하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모든 사람에게 어리석고 연약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스스로 낮아질 때에, 하나님의 통치를 바다들일 수 있고, 천국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가면서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은 잃어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평가하고, 대적하는 일까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에,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힘들게 하고 괴롭혔던 사람들은 무지하고 능력이 없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도리어, 스스로 많이 알고 있고, 능력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는 이들은 낮은 마음을 가지고서 예수님께 말씀을 구하고, 그 말씀을 받아서 돌아갔는데, 똑똑하고 능력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그래서 천국의 복음까지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천국의 기쁨도 그들이 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5절에,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있다고 말하는 자들에게는 당신의 말씀을 숨기셨다고 했는데, 사실, 그들에게 숨기신 것이 아니라, 그들은 그 말씀을 듣고도 받아들이지 않아서, 하나님의 말씀이 숨겨진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에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말씀에 다스림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무지함과 연약함을 깨닫고 나를 낮추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다스림을 전적으로 순종할 때에 천국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러기에, 우리가 천국의 백성으로서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높이는 교만인 것입니다. 교만으로 인해서 많은 이들이 하나님과 충돌하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신명기 8:2-3절에는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 곧 바로 들어가게 하지 아니하시고,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게 하시는지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광야생활을 하도록 하신 것은, 그들을 낮추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을 낮추시고자 일,이년도 아니고 사십년을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을 낮추셔서 그들에게 깨닫게 하시고자 하셨던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로 낮추셔서, 사람이 떡이나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떡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순종하며 사는 것을 훈련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할 당시에 낮출 만한 상태에 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노예였습니다. 사회적으로 지극히 낮고 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예보다 더 낮은 존재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사람들의 명령에는 꼼짝도 못했습니다. 벽돌을 구우라면 구워야 했고, 볏짚을 주지 않고, 구해서 구으라고 하면 울며 겨자먹기로 그 일을 했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아들을 낳으면 강에 던져 죽이라는 명령이 잔인하지만 그렇게 해야 했던 가장 낮은 층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지극히 낮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높아지고 교만해 짐을 걱정하셨고 이를 훈련시키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떡과 먹을 것을 주는 애굽 주인들에게는 자신을 낮추었는데, 그들에게 참 생명의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께는 그렇게 낮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불평하고 대적하며 교만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낮아지지 못하고 불순종했던 세대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밟지 못하는 슬픔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통치를 주셔도 그것을 받지 못하는 교만함이 문제인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들로 하여금,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높아지라고 유혹하고 시험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세상의 높은 곳에 두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대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결국 교만한 이들은 하나님의 천국을 맛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스스로 크고자 하고 높아지고자 한다면, 이를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4.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하면, 작은 자를 영접하는 삶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와 같이 낮아져야 한다고 말씀을 하신 후, 어린 아이와 같은 이들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런 어린 아이같은 하나를 영접하면,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낮아짐은 어린아이와 같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천시하지 않고 도리어 예수님을 영접하듯이 받아들이고, 섬기는 자인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에,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을 소홀하게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린아이들, 병자들, 죄인들과 같은 사회적으로 작고 작은 자들, 소외된 자들을 영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그들을 배타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영접하시고 섬기는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분의 위대함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나고자 원합니다. 높은 곳에서 주님을 만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곳은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의 높고 큰 곳에서는 인간의 죄성과 욕심을 만난다고 한다면, 이 땅의 작고 낮은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보다 작고 낮다고 생각하는 그들을 영접함으로, 우리는 주님을 영접하고 만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계신 그곳에서 천국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결코 다른 이들보다 높아지고 큰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도리어 낮아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서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천국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낮추어서 예수님과 같이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크고 높은 것에 관심하고, 그러한 삶을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로 높아지게 하고 커지도록 부추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회적인 위치가 높고, 나이가 많고, 직장이 좋고, 물질이 많고, 권력과 인기가 많은 것들을 볼 때에, 이 세상은 그 사람을 크고, 높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세상의 높임에서 돌이켜서, 낮아져야 합니다. 세상적으로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더욱 낮아지고 낮아지는 수고를 해야 하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와 같이 낮아진 모습을 유지하여서, 나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깨닫고, 늘 하나님의 통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맛보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내 마음을 겸손하고 낮은 곳에 두게 되면, 하나님의 통치가 들어오게 됩니다. 크고자 하는 욕심, 높아지고자 하는 욕심, 내 세우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가난하게 비우게 되면,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고, 그 통치하심에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하나님의 천국이 이루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면서 높아지고 커지고자 할 때에 천국을 잃어 버립니다. 내가 자꾸 커지고 높아지려는 것에 마음을 둔다면 그 마음을 돌이키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어린아이와 같이 낮아지는 삶을 통해서, 낮은 곳에서 주님을 만나고, 천국을 회복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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