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목요일 밤부터 멕시코만 주변에 있는 텍사스의 해변도로는
그 지역을 벗어나려고 하는 차량으로 인해 소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며칠 전부터 불어 닥친 허리케인 Harvey 때문에 그렇습니다. 허리캐인 하비는 시속 130마일의 강풍과 심한 비를 가진 카테고리 4에 해당하는 강한 폭풍이었습니다. 방송에서는 연일 허리캐인 하비가 생명을 위협할 만한 비바람을 동반할 것이라고 보도 했고, 허리캐인 하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사람들은 소동했습니다. 식료품의
물은 바닥이 났고, 주유소마다 기름을 넣으려는 차들로 가득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많은 가족들이 허리캐인 뉴스를 보시고 걱정하며 안부를 전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온 미국이 허리캐인
하비로 인해서 소란스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소란스럽고 하시는 것은 허리캐인 만을 통해서만이 아닙니다. 교회의 속성에도 허리캐인과 같은 속성이 있습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세상을 어지럽히고 변화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과 그 일행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이르게 됩니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수도로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큰 도시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도시에 도착한 후에,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그곳에 있는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일로 인해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잡으려고 소란을 피우면서 바울의 일행을 일컬어 하는 말이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을 잡으려고 했던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기독교인들이
천하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공격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이것이 곧 교회와 기독교인의 속성입니다. 기독교인이 있는 곳에는 어지러움이 있어야 되고, 기독교인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변화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은 숫자로는 많지 않았지만, 천하를, 땅과 하늘을 어지럽게 할 만한 거친 영향력을 미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천하를 어지럽게 한다는 사도바울을 향한 이 말은,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에게
신앙적으로 커다란 도전을 주는 말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결코 이 세상 안에서 결코 얌전하거나 조용한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교회를 세우셨고 저와 여러분을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자’로 부르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어떠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영향력을 미치면서 살아갈지, 말씀을
통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기독교인이
세상을 소란스럽게 할 원동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있습니다.
오늘날에 세상을 소란스럽게 하는 사건을 일으키는 교회들과 성도들이 종종 나타납니다. 좋고 선한 일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교회도 있는 반면에, 교회
안에 분쟁이 있거나, 거룩해야 할 성도들이 불의하고 불경건한 일들을 행함으로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
내리며, 사회를 어지럽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소란스럽게 하라고 우리에게 주신 것은 분쟁이나, 불의한
일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세상을 어지럽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교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셨습니다.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서 한 일은 다른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관례대로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강론하고 뜻을 풀어 주었습니다. 세 안식일이라고
했으니까 3주간 그곳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 것입니다. 회당에
오는 유대인들은 이미 구약의 모세오경과 선지자들의 말씀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구약의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풀어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구약의 말씀을 풀 때에 사용한 열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남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고,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에 나타난 구원자, 곧 메시야임을 선포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다른 일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서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경건한 유대인과 귀부인들은 데살로니가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로 여겨집니다. 그들이
변화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들음으로 인한 것입니다. 복음을 통해서 사람들이 변하게 되고, 그 지역을 소란스럽게 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변화시킬 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부터 시작됨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성도에게 그 복음을 전할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귀한 복음의 메시지를 주셨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증거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연합샘터 모임에서 단기 선교팀들의 선교보고가 있었습니다. 지난 7월에 우리교회에서는 과테말라와 코스타리카로 두 팀의 단기선교를 보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합심해서 선교팀들을 파송한 것은 오직 한가지 이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 땅에 전하라는
것입니다. 선교팀들도 그 사명을 받고 복음이 전해져야 할 오지의 사람들을 찾아서 만났습니다. 그들을 대상으로 의료활동을 하고, 인형극을 하고, 집을 고쳐주며, 사람들의 머리를 깎아주는 여러가지 일들을 하면서도, 한가지로 초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어지럽게 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여러가지 일들로 분주하다가 복음을 잃어 버리면 안됩니다. 그러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적 과제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교회와 성도는 늘 그리스도의 복음 증거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그리고 깨닫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요동시켜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도 하지만,
반대로 그 복음의 말씀에 반대해서 대적하는 사람들도 요동을 시키게 마련입니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사람들’이라는 말은 바울 일행이 자신들을 가리켜서
한 말이 아닙니다. 유대인들 중에서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해서 시기하면서 바울을 대적한 사람들이
사람들을 선동할 목적으로 사용했던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적하는 그들은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떼를 지어서 성을 소동하게 하고, 기독교인인 야손의 집에서 사도바울 일행을 찾아 끌어 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찾지 못하니까, 야손과 또 다른 믿는 사람들을 데리고서
사람들 앞에 가서 그들을 정죄하고 곤란을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4:1-9절에도 보면, 사도바울이
로마의 법정에 고발을 당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사람들을 소란스럽게 하니까,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사도 바울을 고발해서 법정에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더둘로라는 사람이 벨릭스 총독에게, 사도바울이 어떠한 자로 고발을 당했는지를 이야기 합니다.
더둘로는 바울에 대해서 말하기를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용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을 가리켜 전염병 같고, 유대인들을 다 소요케 하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렇습니다. 천하를 어지럽히는 전염병과 같은 존재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 전염병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두려운 병이었습니다. 전염병을
치료할 백신이 없기 때문에, 지역에 전염병이 한 번 발생하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는 무서운 병입니다. 그런데 바울을 전염병과 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적하는 이들에게는 기독교인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이는 전염병이라고 여겨지지만,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영생의 복을 전염시키는 자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오기 전에 빌립보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예언하는 귀신들린 여자를 고쳐주었다가, 그 여인을 통하여 돈벌이를 하던 주인에게 고소를 당해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감옥에서도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문이 다 열리고, 죄수들의 발에 채워진 차꼬가 다 벗겨졌습니다. 간수가
그 모습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알았습니다. 죄수들이
도망갔으니 그 책임으로 인해 죽을 것이 뻔하기에 스스로 죽으려고 칼을 뺴어듭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큰 소리로 죄수를 향해, "우리가 여기 있으니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바울의 이 모습을 본 간수는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냐"고 묻습니다. 그 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되고, 그 간수와 그
가족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감옥에서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염시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제 작년 도미니카 공화국에 한인연합감리교회 선교대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도 150여명의 한인연합감리교회 교회들이 연합해서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4박5일간 머물면서 의료선교, 건물보수, 어린이사역 등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 지역을 소동케 했습니다. 지역에 있는 방송국에서 이 선교활동을 촬영해서 텔레비젼에 상영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선교팀들의 사역이 지역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교팀들은 일정을 마치고 미국에 있는 자신들이
섬기는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의 그들의 선교가 그 지역에 요동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초에 우리교회를 방문한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오신 Eliezer Mejia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선교팀들이 다녀간 이후에 그 지역에 교회에 대한 좋은 소문이 나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세상을 요란케 하며, 전염시켜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인 줄로 믿습니다.
3. 그런데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복음으로 요동시키기 위해서 교회를 세우시고, 성도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가장 우선적이고 본질적인 변화되어야 할 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많은 수고를 하지만, 도리어
세상은 교회를 향해서 변화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교회가,
세상 사람들과 성도들의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우리가 먼저 잠식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한 어지러움이 있어야 하고,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지하묘지에 한 영국 성공회 주교의 무덤 앞에 다음과 같은 그의 기도문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원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만액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며,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우리는 다른 사람이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정에 누군가가 변화되기를
원하고, 우리 교회의 누군가가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직장의
사람이 변화되고, 이 사회가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다른 것들을 변화시키고자 애를 쓰지만, 사실 가장 먼저 그리스도의
복음과 말씀으로 가장 먼저 소동되어야 할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천하를 어지럽게 만들고, 전염병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복음의 메시지를 통해서 자신이 떨리고 변화되는 영적인 역사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도 그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뜨거운 사명과 신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을 죽이러 다메섹까지 가면서, 그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에, 그의 영혼과 몸에 커다란 어지러움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에게 전염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그의 삶의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내 자신이 변화될
때에, 비로소 세상을 어지럽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염시킬
사람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지으신 천하를 소란스럽게 하실 존재를 필요로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염병과 같이 세상에 퍼트려서 사람을 살릴 수 있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셨고,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가운데 내 자신이 전염되었을 때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전염되었다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적당하게 살아가려고 하니까 문제가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서 내 마음에 어지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적인
삶에서 영적인 삶으로 변화하는 소란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 소란함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이제는 우리 가족과 사회와 이 땅을 변화시키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세상이 전쟁과 테러, 차별과 갈등 등의 문제로 소란스럽습니다. 이럴 때에 이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 시키는 사도바울과 같은 소란함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교회와 성도가 필요합니다. 우리 가정에, 우리 학교에, 우리 교회와 사회와 이 땅에, 그러한 존재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음을 다시 한번 깨닫고, 천하를 소란스럽게 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염시키는 자들로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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