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연합감리교회에서 제정한 평신도 주일(Laity Sunday) 입니다. ‘평신도(Laity)’라는 말은
‘목회자(Clergy)’라는 말과 상대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로 교회안에서 목회자의 지도력이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목회자가
평신도보다 우월하고 중심적인 인물로 부각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평신도의 사역의 중요성을 간과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감리교회에서는 일찍부터 평신도의 사역을 중요하게 여겼고, 그러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강조하기 위해서 평신도주일을 제정하고 지켜왔습니다. 1929년에 “Methodist Episcopal Church”에서 “Laymen’s Day 평신도의 날”이라고
해서 시작된 것이 평신도 주일이 유래가 되어서, 지금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기독교 역사 중에는, 평신도 사역의 중요함을 깨닫지 못하고, 목회자가 평신도 위에 군림해서 다스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중세시대, 유럽의 카톨릭교회에서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엄격했습니다. 성직자인 신부들은, 구약의 제사장들과 같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거룩한
사람으로 여겨졌고, 평신도들은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상대할 수 없는 세속적인 사람들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도 평신도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성직자인
교황과 신부들만이 성경책을 소유하였고, 그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평신도들은 죄에 대한 회개도 하나님께 직접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지은 죄를 신부에게 고해성사하고, 신부가 중간에서 하나님께
중보기도함으로 죄가 용서함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평신도는 하나님께 직접나아갈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는 세속적이고 무능한 사람들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패러다임이 바뀌는 영적인 각성이 마틴루터를 통해서 시작됩니다.
당시 카톨릭 신부였던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대학에서 성서학교수로서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카톨릭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가지 일들이 전혀 성서적이지 못함을 깨닫게 되고 이를 카톨릭 교회
안에서 개혁하려고 힘을 쓰게 됩니다.
마틴 루터는1520년에 “독일
기독교 귀족들에게 고함”이라는 글을 쓰는데, 그 책에는 “모든 신자들은 그가 성직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며
교제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서 인용한 말씀 중에 하나가 베드로전서 2:9절의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셨습니다.
마틴루터가 주장한, “모든 사람이 제사장들이다.”라는 말은, 카톨릭 교회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고, 이외에도 마틴 루터의 여러가지 주장이 카톨릭교회와 맞지 않아 결국 마틴 루터는 카톨릭교회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개신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2: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셔서, 우리 모두를 왕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곧 저와 여러분이 이곳에 평신도로 와있든, 목회자로 와있던지 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함으로, 하나님의 덕을 세상에 선포하라고 부르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제자들을 부르셨고, 세상으로 파송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주시는 말씀이,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 만민을 구원하라는 선교의 사명을 제자들에게 주십니다. 선교의 사명은 평신도나 목회자나 상관할 것 없이, 예수님의 제자된
자들이면 누구나 받들어야 할 명령인 것입니다. 비록 평신도나 목회자나 맡겨진 역할은 다르지만, 그 목적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또한 세상 사람들을
제자로 삼는데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사람들을 제자로 삼는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1. 먼저, 제자를 삼기 위해서 모든 민족에게로 가야 합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기 위해서는, 제자될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열두제자를 부르실 때에 직접 찾아가셔서 그들을 제자삼으셨습니다. 어부를
제자로 삼기 위해서 직접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는 그들을 찾아가셨고, 세리를 제자로 삼으시기 위해서 직접
세관에 가셔서 세리를 부르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증인된
제자를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예수님을 알게하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는 사람은 세상으로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감리교회를 창시한 존 웨슬리 목사님 같은 경우에도 복음을 들고서 영국의 전지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미국까지 와서 복음을 전했던 분입니다. 존 웨슬리는 교회로 찾아오는
사람만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나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당시 영국 성공회 신부로서 지켜야 할 법까지도
넘어섰습니다.
웨슬리 당시, 영국의 국교는 성공회였고 존 웨슬리는 성공회 신부였습니다. 성공회의 신부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역의 영역인 교구(Parish)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맡겨진 교회안에서 예배하고 사역할 수 있었지, 교회
밖인 옥외에서는 설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존 웨슬리 목사님이 감리교 운동을 하면서 이를 어기게 됩니다. 존
웨슬리가 모라비안교도들과 같이 페터레인 신도회(Fetter Lane Society)를 조직해서 매주
수요일마다 모여서 신앙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찬양하고 기도하는 모임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모임이 점차 커져서 1739년에는 60여명이 되고 모이는 장소가 협소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웨슬리는
건물 안이 아닌, 야외로 가서 집회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영국 성공회 주교가 교회 밖에서
설교하는 존 웨슬리에게 “왜 교회의 법을 어기냐?”고 책망을
했습니다. 그 때 웨슬리는 말합니다. “나는 어느 교구에
소속된 사제가 아니고,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로 임명받은 사제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기를 “세계는 나의 교구다 (The world is my
parish).” 라고 말을 합니다. 자신은 성공회에서 정해 놓은 목회지역을 넘어, 세계를 교구로 삼아서 사역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웨슬리 목사님은 더욱 더 활발하게 사람들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교회가
없는 지역을 찾아가고, 빈민가나 탄광촌 등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50년 동안 말을
타고 지구 10바퀴 이상의 거리를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존 웨슬리 목사님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과 같이 사역하는 평신도들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은 평신도를 훈련시켜서 평신도 설교가
(Lay-preachers)를 세우고, 그들로 한 곳에만 머물러서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각 마을을 다니면서 설교를 하도록 했습니다. 평신도 설교가들도 존
웨슬레처럼 말을 타고, 교회가 없고 외진 곳을 찾아다니며 설교를 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날 모든 민족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할 사명은 거룩한 무리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인 줄로
믿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교회안에 모여 있지만, 이제
곧 있으면 우리는 이제 뿔뿔히 흩어져서 세상 깊숙한 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나의 가족이나 이웃들이
내가 제자로 삼을 모든 민족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학교나 직장, 이웃들이
우리가 선교해야 할 선교의 장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는,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람들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찾아가서 만나서
제자를 삼는 자인 줄로 믿습니다.
2. 그리고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를 삼기 위해 세례를 베풀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세례를 베푼다.”고
했을 때에,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세례를 줄 수 없습니다. 세례를
베풀기 위해서는, 세례받는 사람이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그
죄를 사함받기 위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믿을 때에, 세례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더러운 죄인임을 깨닫는데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세상이 죄 가운데 죽어가고 있음을 알리고, 생명으로
돌이키는 일에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굴뚝을 청소하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굴뚝을 청소하는데 한
사람은 굴뚝 위로 들어가서 굴뚝 안에 붙은 재를 긁어서 밑으로 내려 보내고, 밑에 있는 사람은 그 재들을
모아서 버렸습니다. 그렇게 굴뚝청소 작업을 마치고서 만났는데, 굴뚝
안에서 재를 긁어 내린 사람은 비교적 얼굴이 깨끗한데, 밑에서 재를 받았던 사람은 얼굴이 재로 온통
더러워졌습니다. 그런데 먼저 얼굴을 닦으러 간 사람은 누구인줄 아십니까? 얼굴이 깨끗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의 얼굴에 검은 재가 묻은
것을 보고서 자신도 더럽혀졌을 것이라고 여겨서 얼굴을 먼저 닦으러 간 것입니다. 얼굴에 재가 묻은 사람은
자신의 얼굴이 더러워졌는지 모르고 가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굴이 더러운 사람도 곧 이어서 세수를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얼굴을 닦고 온 사람이 그 사람에게 얼굴이 더럽다는 것을 알려 주어서 그 사람도
얼굴을 닦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더럽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만이 더러운 것을 씻게 마련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더러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죄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 그리스도의 죄사함의 보혈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사함의 세례를 받게 됩니다.
제자된 성도는 이 세상이 하나님보시기에 얼마나 큰 죄에 빠져 있는지를 증거하는 사람들이고, 세례를 베품으로 세상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베풀 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을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더럽고 추한 죄 가운데
있었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고백할 때에, 모든
죄라도 깨끗하게 씻김받는 은혜와 능력이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모든 민족에게 세례를 베품으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됩니다.
3. 마지막으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진정한 제자는 단순히 예수님 믿고 세례받는 것으로 마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를
베푸는 것은 아이를 낳아 놓은 것과도 같습니다. 아이를 낳아 놓은 후에 그냥 방치하면 죽듯이, 세례받은 이들을 영적으로 돌보지 않으면 영적으로 죽게 됩니다. 그러기에
세례를 베푼 후에는 더 길고 힘든 양육의 과정이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수님께서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기 전에 가졌던 세상적인 생각과 습관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세례받은
사람을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세례받은 이들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을 제자로 만드는 일들을 감당하라고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에베소서 4:11-12절에 보면,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각자의 믿음의 역할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복음 전파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역할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할들은 궁극적으로 성도를 온전케 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도를 온전케 하며”라고 할 때에,
“온전케 하다.”라는 말은 “카타르티스모스”라는 헬라어를 쓰는데, 그 뜻은 사람의 뼈가 부러졌을 때에 이를 제대로
맞추거나, 찢어진 그물을 수리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의 영적으로 병들고, 찢어진 그물과
같은 상처들이 치유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온전한 성도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온전히 세워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한스 큉이라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목사가 교회를 향해 파송된 성직자라면, 평신도는 세상을 향해 파송된
성직자”라고 말합니다. 목사나 평신도나 모두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파송하신 거룩한 성직자입니다.
목사는 교회로 하나님의 파송을 받아, 하나님을 예배하며,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서 제자를 만들어 세상으로 파송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리고 목사로부터 양육받은 평신도는 세상에 파송되어서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세상의 성직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교회안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에 전파되고 구현되는 것은 사실 평신도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각 가정의 성직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파송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학교와 직장에서 성직자로서 파송을 받은 자들입니다.
목회자나 평신도가 하는 역할은 다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을 이루고, 이 땅을 거룩하게 하는 성도의 사명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자 하는 성도와 교회에 주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주님의 맡겨주신 제자를 삼는 사명을 감당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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