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료품 가게에 가면 진열장에 수 많은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 상품마다 레이블이 붙어 있습니다. 그 상품에 대한 정보입니다. 그 레이블을 보면, 어디에서 누가,
무엇을 가지고 그 물건을 만들었는지 알수 있고, 그것을 얼마에 살 수 있는지 그 가치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상품에 레이블이 붙여 있지 않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아마 가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물건을 찾고자 하는 소비자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레이블이 없는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또한
잘못된 레이블도 문제가 됩니다. 한국 농촌에서 잡초를 죽이는 제초제를 실수로 먹고 죽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농부들이 쓰고 남은 농약을 물병이나 음료수병에 담아 놨다가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물이나 음료수인지 알고, 농약을 마셨다가 죽는 경우라고 합니다.
엉뚱한 레이블을 붙이고 있는 상품도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람들처럼
엉뚱한 레이블을 붙이고서 살아가는 존재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의 레이블을 붙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레이블을 붙이고 있기도 합니다. 내 자신은 나를 이런 사람이라고
레이블을 붙이는데, 또 보는 사람들마다 각각 다른 레이블을 붙이기도 합니다. 1. 오늘 말씀을
보면, 엉뚱한 레이블을 붙이고 살아가던 한 사람, 삭개오를
보게 됩니다.. 삭개오에게도 그를 나타내는 레이블이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그를 ‘세리이며 부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삭개오를 향해서 사람들은 죄인이라는 레이블을 또 하나 붙여 주었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
아래에 있었고, 로마제국은 식민지 사람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삭개오도 로마의 세리로서, 동족으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로마에 상납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 중에 세리들은 더 많은 금액을 거두어서 자신의 재산을 늘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삭개오가 부자라고 언급된 것도 아마 그러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삭개오와 같은 세리들은, 이스라엘을
배반한 로마의 앞잡이로 여겨지게 되고,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이라고 레이블을 붙여 놓고, 함께 어울리면 안되는 더럽고 악한 존재로 취급했습니다. 그리고, 삭개오도 사람들이 붙여
준 그 레이블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았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그는
재물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며 자신의 부를 쌓는 사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삭개오가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들이 그에게 붙여준 삭개오라는 이름의 뜻은 ‘상종못할 죄인’이 아닙니다. 삭개오라는
이름은 ‘의, 정결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롭고 정결한 사람으로 살라고 부모님께서 이름을 붙여 주셨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보다 불의를 행하며 부정한 사람으로, 그 레이블에
합당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삭개오의 레이블이 바뀌게 되는 사건이 생깁니다. 바로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자신의 마을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사모함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주변에 사람들이 워낙 많이 있었고, 또 삭개오는 키가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보고 싶어서 예수님이 지나가시기 될 길에 서 있는 돌무화과나무, 옛날에는 뽕나무로 번역된 그 나무에 올라갑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이
그 길로 오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나무를 지나쳐서 가시는 것이 아니라, 나무 아래에 멈추셔서 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를 올려다 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 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는 너무 기뻐서 나무에서
급히 내려 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님을
보면서 수근거립니다.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여전히
삭개오는 죄인이었고, 사람들은 그를 죄인으로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한 삭개오에게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 결단의 말을 올립니다. “예수님, 이제 제소유의 절반은 가난한 자에게 주고, 누구를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 동안 죄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모아 두었던 그 재물들을 이제는 가난한 사람에게 거져 주고, 빼앗은 사람에게는 보상해서
갚아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모실 때에 자신의 집에만 모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자신의 마음 중심에 모셨습니다. 앞으로 사람들이 붙여 놓은
레이블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살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믿고 살아갈 것을 결심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그분을 진정으로 믿고, 영접하게 되면, 사람들이 변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게 되고, 삶에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시고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선언하십니다.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고,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붙어 있는 ‘구원받지
못한 죄인’이라는 레이블을 떼 주시고,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레이블을 붙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사람과 같이 취급되었던 그에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해
주시면서,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라고 레이블을 붙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고 영접하는 자들에게 하시는 일은, 그들이 마땅히 붙이고 살아가야 할 레이블을 붙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각자 자신의 참된 모습을 깨닫게 해 주시고, 자기 자신이 붙인 레이블이 아니라, 사람들이 말하는 레이블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레이블을
붙여주시는 것입니다. 2. 사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 새로운 존재로 레이블을 받은 것과 같이,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님을 믿게 된 후에 모두 새로운 존재로
레이블을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2:10절,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서 선한 일을 하는 존재로 새롭게 지으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선한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셔서 우리로 행하게 하려고 했던 그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은
이 땅에서 선한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었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1:26절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모습속에 그를 만드신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면서 선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Image)’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안에 넣어주신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면서 살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의 악을 따라서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버리게 되니까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악을 따라서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버리고,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결국 어떠한 레이블이 붙여지는지 아십니까? “사망, 죽음”입니다. “사람들은 죄로 인해서 영원히 죽을 존재입니다.”라는 레이블이 붙여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을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구세주로 믿을 때에, 우리의 존재가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에게 “구원받은
자”라는 레이블을 붙여 주셨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에게도
그러한 레이블을 붙여 주십니다. “이 사람은 내 대속의 피로 구원함을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누가 우리를 만들었는지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We are God’s workmanship, handiwork.” 레이블에 꼭 표기되어야
할, 누가 나를 만드셨는지를 비로소 심각하게 깨닫게 됩니다. 때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지으심을 받았음을 잊고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Made by God”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레이블을 붙이고 나를 만들어가도록 그냥 내버려 둘 때가 있습니다. 내가 내 자신을 만든
것처럼 내가 원하는데로 내 자신을 만들고자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내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작품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목적에 맞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야곱의 아들
요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셉은 어릴 때부터 주위의 사람들에 의해 여러가지 다른 레이블을 붙이고
살았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너무 사랑해서 색동옷을 지어주면서,
“내 목숨과도 같은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레이블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형들은 요셉이 그들을 해하는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동생
요셉을 시기하여서 “죽여 없애야 할 동생”으로 레이블을 붙이고
요셉을 괴롭혔습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이집트의 보디발 장군의 집에 팔려 갔을 때에 그의 주인 보디발
장군은 보디발 장군은, 요셉의 능력과 신실함을 보고 집안의 모든 것을 맡길 만한 충성스러운 종이라는
레이블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주인은 요셉이 자신과 동침하지 않는다고 원한을 품고 충성스러운
종이 아니라, 여주인을 간음하려고 했던 악한 종으로 레이블을 붙여서 감옥에 넣어 버립니다. 감옥에 죄수로 있을 때에 요셉은 꿈을 해몽하는 용한 사람으로 레이블을 붙입니다. 그 이후에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해 주게 되고, 요셉은 애굽의 2인자라는 레이블을 붙이게 됩니다. 요셉은 그가 살아오면서 여러 사람에 의해서 수많은 레이블을 붙였다가 떼었다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결코, 그 사람들에 의해서 붙여진
그 레이블에 따라서 자기 자신을 정의하거나 그대로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그 레이블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 것임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만드심을 따라 살아 갔던 사람입니다. 3.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이제
세상 사람들이 붙여 놓은 레이블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붙여 주신 그 레이블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에
수고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위해서 지음받고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 붙여주신 레이블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새롭게 지은 받은 존재가 된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께서 구원하시고, 선한 일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로마서 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예수님께서 새롭게 붙여 주신 나에 대한 레이블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요, 하나님의
선하신 일들을 감당하라고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붙여주신 레이블을 보기 위해서는,
내가 사람들에게 붙여 놓은 레이블을 떼어 놓아야 합니다. 나다니엘 호손 (Nathaniel
Hawthorne)이라는 사람이 쓴 ‘주홍글씨 (The
Scarlet Letter)’라는 책을 아실 겁니다. 그 책은 1640년대,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미국 보스턴에 이주해 온 청교도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청교도
마을에 헤스터 프린(Hester Prynne)이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그녀의 이웃들은 헤스터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임신은 그 마을에 커다란 소동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남편은 아직 유럽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간음한 것은 커다란 죄라며 임신한 헤스터를
감옥에 가둡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나온 이후에도 사람들은 그녀가 입는 모든 옷에 알파벳 A 를 주홍글씨로 수 놓아 다니도록 합니다. 주홍글씨 ‘A’는 Adultery 간음이라는 단어의 첫글자였습니다. 그 이후에 레스터는 그 주홍글씨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지만, 그녀는
그 사람들이 붙인 레이블에 얽매이지 않고, 여전히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선하게 살아갑니다. 헤스터의 선한 모습을 마을 사람들이 보면서, 그녀에게 새겨진 주홍글씨가
마땅하지 않다고 여기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주홍글씨 A 를
떼어낼 것에 대해서는 주저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며 레이블을 쉽게 붙이는데, 그 레이블을 떼 주는데는 인색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리에게 붙여졌던 주홍글씨를 아낌없이 떼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너는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그 레이블대로 선하게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바라볼 때에 주님께서 붙여 주신 그 레이블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그것을 확인시켜 주고, 격려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붙여 놓은, 정죄와 편견의 레이블을 떼어 내십시오. 미움과 차별의 레이블을 떼어 내십시오. 내가 붙인 레이블이 하나님이
주님께서 붙여 놓으신 레이블을 가리거나 앞서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서로에게
붙여주신 레이블로 서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한 사람이요,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 일들을 위해서 다시 지음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붙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레이블을 확인시켜 주며, 그 레이블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며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삭개오와 같이 잘못된 레이블을 붙이고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삭개오를 찾아 오셔서 어떠한 존재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구원을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 곧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이들이 깨닫는 레이블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판단하며 여러가지 레이블을 붙일지 모르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나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셔서, 하나님의 선하신 일들을 위해서 불러 주신 줄로
믿습니다. 날마다
예수님께서 붙여 주신 레이블을 확인하고 고백하며 사십시오. “나는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던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이고 구원받은 사람이야.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정도로 나를 사랑하셨어. 이제 나도 그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사랑하며, 주의 뜻대로 살아
갈 거야” 세상 사람들이 붙이는 레이블로 만들어지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붙이신 그 레이블에 합당한, 주님의 뜻과 말씀을 이루는
선한 삶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또한 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주님께서 붙이신 레이블이 있음을 알리고, 격려하여서, 함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나가는 믿음의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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