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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가복음 9:30-37, “누가 크냐?

한자성어에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병에 걸린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와는 반대의 의미로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이불을 덮고 자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것입니다. 공간적으로는 같이 있지만, 생각과 관심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한다고 했지만, 동변상련의 마음을 가지기 보다는, 동상이몽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닌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과 함께 하는 예수님의 관심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이었습니다. 벌써 두번씩이나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삼일후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에 대해서 관심하시며 이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제자들에게도 예고하는 것은 제자들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준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대책회의라도 열어서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어떤 의미로 말씀하셨는지, 그리고 자신들은 그 때에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의논도 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토론을 하기는 하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관한 대책토론이 아니라, 자기들 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라는 논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서로 크다고 논쟁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안타까우셨을 것입니다. 스승의 죽음 앞에서 자신들의 서열을 따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안타까우셨을 것이고, 또한 정말로 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들의 무지로 인해서 안타까우셨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 땅에서 정말 큰자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우리는 주님보시기에 큰 자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1.        먼저, 제자들과 같이 누가 크냐라고 하는 관심은, 제자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일 것입니다.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큰가 논쟁하는 것을,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셔서 안 계실 때에, 누가 그 그룹을 이끌 것인가와 관련된 논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대신할 서열 일위는 그 누구보다 크고 으뜸인 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서로 자신이 크다고 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만의 관심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다른 이들보다 크고, 첫째로 인정받기 위해서 열심을 냅니다. 큰자가 된다는 것은 첫째가 되어서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이유는, 크고 첫째가 되어야지, 다른 이들보다 우선적으로 대우를 받고, 유익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은 크고 으뜸인 사람이 되고자 경쟁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그 안에 다툼과 시기, 상처가 일어나기 일쑤입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 많은 선수들이 나와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선수들마다 4년동안 올림픽을 준비했는데, 이는 다른 선수들을 제치고 일등을 되어서 더 높은 시상대 위에 오르려고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때로 이러한 바람이 너무 커서 불의한 일을 행하기도 합니다. 이번 올림픽 경기에,  국제 올림픽 위원회 IOC 는 러시아 선수단의 평창동계올림픽 출전을 금지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러시아 국가가 주도해서 도핑조작을 했던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대표 선수들에게 금지 약물을 투여하고, 그리고 도핑 사실이 적발되지 않도록 샘플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일등이 되기 위해서 국가까지 동원돼서 불법을 행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채찍질을 맞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 때 세대배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예수님께 데려와서 절하며 구합니다.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합니다.

그 어머니의 관심은 다른 제자들보다 자신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는 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열 제자가 이를 듣고 그 두형제에 대해서 분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첫째가 되고, 큰자가 되고자 하는 일들이 이 사회를 대표하는 가치가 되었습니다. 서로 높아지고 으뜸이 되기 위해 경쟁하게 되고, 그 경쟁이 과도해서 이제는 대립과 갈등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제자들에게도 이러한 논쟁속에서 대립과 갈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길에서 어떤 토론을 했냐고 물을 때에, 그들이 서로 잠잠했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길가에서 서로 크다고 토론하고 쟁론했다고 했습니다. 상대방이 크다고 높여준 것이 아니라, 자신이 크고, 다른 이들보다 서열이 높다고 말하며 다투었던 것입니다. 논쟁할 때에는 그렇게 시끄럽더니, 이제 예수님이 물으시니까 한마디도 못하고 잠잠합니다. 스스로 서로 크다고 다투는 자신들의 모습이 정당하지 못했기에 잠잠했습니다.

내가 크고 우선이라고 주장할 때에 다툼이 일어나게 되고, 시기하게 되고 분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자들 뿐만 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논쟁의 내용을 잘 아시고, 야단 치시기 보다는 그들에게 누가 정말 크고 첫째 된 자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크고 첫째되는 것과는 정반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크고 첫째되는 것이 섬기는 것과 관련있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서로 크다고 주장했던 이유는, 다른 사람들 위에서 다른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존재가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나중이 되어야 하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섬김을 받는 사람을 크다고 하지만,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을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첫번째로 섬김을 받는 VIP로 불리는 사람을 첫째로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섬기기에 첫째가 되고, 자기 자신을 가장 마지막으로 두는 사람을 첫째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면서, 크고 으뜸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37절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영접하다는 ‘데코마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어린 아이를 환영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어린아이를 자신의 섬김의 대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큰자나 첫째된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인물입니다. 예수님 당시나 오늘이나 아이들은 작고 나중된 존재입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 별 볼일 없는 존재입니다. 육신적인 힘도 없고, 사회적인 지위도 없었습니다. 힘있는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불의하게 취급하더라도 항거할 수 없는 가장 작고, 나중된 존재입니다.

 

2018 1월에, 한 부부가 자녀들을 감금하고 고문한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그 부부는 만 2세인 아이로부터 29세가된 성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13명의 자녀를 데리고 있었는데 그 자녀들을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오랜 시간 학대했다고 합니다. 부부는 아이들을 침대나 가구에 묶어두고 아이들을 통제했습니다. 아이들은 샤워를 하지 못해서 몸은 더러웠고, 심지어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하게 해서, 아이들의 방은 오물들로 인해 지저분하고 악취가 났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미성년 자녀를 상대로 음란행위를 하고, 먹을 것을 주지 않아 심한 영양실조로 성장이 지체된 아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크고, 첫째된 사람으로, 자기들을 우선하며 아이들 위에 군림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아니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들의 행동은, 그 어떤 작은 자의 모습보다도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진정으로 큰 사람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어린아이와 같이 연약한 이들로 자신을 섬기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가진 것들을 가지고, 어린아이와 같이 연약하고 부족한 이들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은, 아이와 같이 작은 자를 섬기기 위해서는, 때로 그 사람보다 더 낮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섬김은 낮아짐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작고 연약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먼저 하셔야 했던 일은, 스스로를 낮추시는 일이었습니다. 스스로를 낮추셔서 사람의 모습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더 낮아지셔서 사람들 손에 잡혀 죽임을 당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셨을 때, 사람들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죽기까지 사람들은 섬기신 것은, 예수님이 원래 힘이 없고 약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크고 첫째되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분은 큰 자이고 으뜸인 존재인데, 주님은 다른 이를 섬기고 낮아짐으로, 주님이 크고 첫째임을 확증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더 높아지고, 더 커지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스스로를 낮추고, 자신을 나중으로 여기며 다른 이들을 섬기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크고 으뜸되는 삶을 살아가기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주님과 같이 낮추고, 다른 이들을 섬기기 위해 자신을 나중에 둠으로, 우리가 크고 으뜸된 자임을 드러내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예수님은, 우리가 스스로를 낮추며,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을 영접하고 섬기는 일이 얼마나 큰 일인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일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이고, 나아가서 하나님을 영접하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영접하고 섬기는 일보다 더 큰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을 어린아이와 같이 낮고 연약한 자와 동일시 하셨고, 우리는 그들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을 영접하고 섬기는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화가 있습니다. 로마에 크리스챤 군인이 하나 있었습니다. 뚜르 지방에서 온 마틴이라는 군인인데 어느 추운 겨울, 거리를 지나다가 황량한 거리에서 추위에 떨고 이는 거지를 보았습니다. 마틴을 본 거지는 손을 내밀면서 구걸을 합니다. “군인 아저씨, 돈 한푼만 주세요” 마틴은 주머니를 뒤져 보았지만, 한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추위에 떨고 있는 그 거지가 너무 불쌍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입고 있는 낡고 해진 군인 외투를 벗어서 그것을 반쪽으로 찢었습니다. 그리고 한 쪽을 추위에 떨고 있는 거지에게 감아 주면서 말합니다.

“미안합니다. 도와 주고 싶지만 이것 밖에 없네요”

그날 밤 마틴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로마 군인의 군복, 반쪽을 입고 서 계셨습니다. 이를 본 천사 하나가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왜 그 거지같은 로마 군복을 입고 계십니까?” 그러자 주님이 말합니다. “이것은 나의 종 마틴이 나에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이다.

예수 그리스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더 크고 우선하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영접하고 섬기는 일은, 작고, 낮고 연약한 자들위에 군림하지 않고, 도리어 그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잘 받아들이고, 섬길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크냐라고 했던 논쟁은, 오늘날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사회적으로 크고, 첫째가 되어서, 작고 뒤처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섬김을 받고자 하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때로 이것이 과도해서 시기와 갈등과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크게 보이는 사람들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보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보는 사람은, 스스로 나중이 되어서, 작고 연약한 자를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가난해 지고, 꼴찌가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크고 첫째가 되는 것을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정말로 크고 첫째가 되기 위한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높아지고 커지기 위해 서로 다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큰 것을 가지고, 으뜸인 것을 가지고서, 다른 이들을 영접하고 섬기는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가장 크고, 으뜸인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크고 높으신 분입니다. 그분과 그 위치에 대해서 견줄만한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낮고 연약한 우리들을 영접하시고, 섬겨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죽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그래서 갈등과 다툼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들이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말하는 크고 첫째가 되기 위해, 다른 이들과 경쟁하고, 다투는 사회가 되었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정말 크고 첫째된 것이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섬김과 대접을 받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과 같이 다른 이들을 섬기고 우대하는 것이 크고 으뜸된 일임을 드러내야 합니다. 서로 경쟁하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연약함을 채워줌으로 서로를 온전케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화목을 드러내는 큰 삶을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다가 우리 하나님을 영접하는 영광이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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