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린이 주일로, 우리
교회학교 학생들이 함께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한 가정이 믿음안에서 하나님께 나와 함께 예배드린다는
것은 복된 일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아 ‘자녀가 잘 되는 법’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녀를 가진 부모들의 동일한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때로 아이들이
잘못해서 화가 난 부모가 아이에게 “이런 빌어 먹을 놈”이라고
해서, 정말 커서 다른 사람에게 빌어 먹는 거지가 되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부모는 자신은 못 먹고 못입을 지언정,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분입니다. 제가 아는 한 남자분은, 미국에
올 때 가진 돈이 없어서 수 많은 고생을 하면서 돈을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해서 얻은 첫 아들이
잘 되라고 그 이름을 ‘하버드’라고 지었습니다. 커서 하버드 대학에 보내고자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었고, 아이를 공부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셨을지는 알만합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래서 열심히 뒷바라지 하고, 자녀가 잘되는 것을 자신이 잘되는 것보다 더 기쁘게 여기는 것이 부모님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육신의 부모님만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각 가정의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분은, 그
자녀들을 그 가정에 보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가 잘 되기를 그 어떤 부모보다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래서 자녀가 잘 되는 법도 알려 주셨습니다. 육신의 부모는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지만 그 방법을 알지 못해서 실패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자녀가 잘 되는 길인지를 명시하고 계시고, 그것을 분명한 약속으로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은 비단 어린 자녀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도 자녀가 잘되기를 원하고, 우리
자녀들도 자신들이 잘 되기를 원치 않겠습니까? “나는 대충 막 살 거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자녀가 잘 되는 법,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잘되는 법은 무엇인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자녀가 잘 되는 법은, 하나님이 우리의 진정한 아버지라는 믿음을 가질 때입니다. 요한복음 1: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권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은, 자신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과 한 가족을 꾸미시고자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향해서 “너,
내 가족하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실, 사람을 처음 만드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자신의 자녀로 삼고 한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자녀가 그 부모를 닮아서 태어나듯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담아서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잘됨을 경험하는 자녀는,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깨닫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1200년대에 이탈리아서
활동했던 성자 프란치스코에 대한 일화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화려한 옷을 입고, 부유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세상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삶의 허무함이 곧 찾아오게 되었고 영적인 방황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1205년에 페루자 정복을 위해 한 백작의 군대를 모집했는데, 그 군대에 자원 입대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하고 집이 있는 아시시로 돌아왔습니다. 은혜를 받은 프란치스코는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들을 하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그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큰 부자고 포목상 주인이었는데, 아들이 자신의 사업을 이어받아
잘 되기를 바랬는데, 아들이 그러한 생각은 안하고, 날마다
다니며 전도하고 기도하는 것을 용납하기 힘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옷감을 팔아서 성당을 수리하는데 사용하는
아들을 보고 몹시 화가 났습니다. 결국 아버지, 피에트로는
프란치스코의 마음을 자극하기 위해서, 자신의 재산 상속권을 프란치스코에게 주지 않겠다는 재판을 주교
앞에서 열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주교가 행하는 재판석에 선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부터 저는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만을 아버지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상속권은 물론 부친과의 관계마저 포기한다고 선언하고, 대중 앞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 뿐만 아니라,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고 아버지께 돌려 주었다고 합니다.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오늘날
많은 가정들이 자신들의 진정한 아버지를 잊어 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육신의 부모의 자녀이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하시고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자녀된 자들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방법을 따라 살아갈 때에 잘 되는
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2. 육신의 부모는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라지만,
어떻게 해야 잘 되는 일인지를 알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자가 되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명성을 가지는 것이 잘 되는 일이라고 여기고, 그 일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수고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녀가 잘 되는 두가지 법을 분명히 말씀해 주십니다. 먼저,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실
때에 특별히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에는 그에 따르는 약속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다른 계명은 무엇을 “하라”거나 “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마쳐집니다. 그런데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자녀에게는 약속을 주셨는데,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가 잘 되는 법으로, 부모 공경의 방법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 사회에 보면 사람들로부터 공경을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공경의 기준을 보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이
공경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경할 사람은 적어도 공경할 만한 업적을 가진, 위인전에 나올 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공경할 대상에 대해서 세상의 권세자나 부한 자와
같은 업적을 이룬 사람을 공경하라고 하지 않고, 단순히 “네
부모를 공경하라” 고 하십니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할 조건으로
부모의 어떠한 업적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가난하던지 부하던지, 높은 지위에 있던지 그렇지 않던지 상관없이 부모라는 그 자체로 공경할 것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때로 부모를 보면서, 공경할
만한 내용이 없어서 부모공경의 계명을 부당하게 여겨 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부모님보다 자기 부모님이
좀 못나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부자인 부모의 집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께서 명령하실 때, 부모 공경은
부모가 어떤 분이고, 나에게 어떻게 해 주었냐라는 것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자녀라면 부모님에게 가져야 할 태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에 그 부모가 나를 잘되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 부모를 공경하는 나를 보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로 잘 되도록
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나의 잘됨은 부모로 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3. 그리고 하나님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십니다. 부모에 대한 공경은 곧 부모님에 대한 순종으로 연결됩니다.부모에 대해서 공경할 때에 순종이 있게 됩니다. 1700년대 영국의 시인이며, 평론가인
사무엘 존슨(Sammuel Johnson)이, 어느 여름날
비가 막 쏟아질 때에 복잡한 장터에서 홀로 몇 시간이고 서 있었습니다. 사람이 지나가면서 인사를 해도
인사도 받지 않고, 말을 걸어도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서서 눈물만 흘립니다. 그렇게 서 있는 모습을 지켜 보던 제자들이 대체 왜 그렇게 서 있느냐고 물어보자 그 이유를 말합니다. "사실은 50년 전, 우리
아버지가 바로 이 자리에서 낡은 책을 사고 파는 헌 책 장사를 하셨었지, 그런데 한 손님과 어느 날
어떤 책을 갖다주기로 약속하셨던 모양이야. 그런데 그 책을 손님에게 전달해 주기로 약속한 날, 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시다며, 아버지 대신 그 손님에게 그 책을
갖다 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구. 그런데 나는 발끈해서 아버지께 이렇게 대들었지, ‘헌 책 장사하시는 것도 창피스러운데 내가 그런 심부름까지 해야 되요?’ 내
말을 들으시고, 아버지는 아픈 몸으로 장터에 가셨고, 그
날 이후 몸이 약해져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 지금에 와서야
지난날 내가 아버지께 순종하지 못한 것, 아버지를 존경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네, 그리고 아무리 후회해도 그것만 가지고는 안되겠기에 내가 나를 벌주기 위해서 여기 서 있는 것이네." 순종할 부모가 계시다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잘됨을 경험하게 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부모님께서 계실 때에 힘써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부모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주안에서 순종하라”고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에 대해서 공경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 말씀에 순종함에 있어서 앞서는 것은 “주안에서”입니다. 주안에 있지 않은 부모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불순종할 여지도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말씀을 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하고 불의한 것들, 거짓된 것들,
다른 이들을 해하고 미워하는 것들을 자녀에게 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하고, 의롭고 진실되고,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기에 자녀가 잘 되게 하고자 할 때에,
부모의 신앙적인 책임도 큽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갈등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4절에 아비에게 주는 말씀이 있는데 자녀를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라고 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계명은,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주입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부모가 하나님의 대언자가 되어서,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잘 양육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자녀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부모님들은
여러가지 수고를 하지만, 무엇보다도 수고해야 할 일은, 부모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기에 힘쓰고, 그것을 자녀들에게 잘 가르쳐서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다가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세상의 부모들이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세상에 자녀들을 잘 되게 하려고 수 많은 노력을 합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 키워보겠다고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자녀를 양육합니다. 좋은 학교를 보내기 위해 이사를 하고, 아이들의 스케쥴에 마쳐서 부모의 스케쥴을 조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자녀를 주신 하나님은 자녀들이 잘 될 수 있는 방법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할 때에 그 자녀가 잘 될 것이고 장수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그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잘 되기를 원하신다면 부모를 공경하는 법을 가르치십시오. 그리고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십니다. 그렇게 되면 자녀들이 잘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이 아이들이 잘 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물으실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자녀들의
잘됨은 육신의 부모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잘 되게 해 주실 때에 가능합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여기에 있는 모든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잘됨의 축복이 임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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