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보면,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게 당부하기를, “영을 다 믿지 말고,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살아갈 때에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에 대한 관심은 드뭅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어떤 영적인 영향력속에 있다고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영적인 존재들이 존재하고, 사람이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사람의 독립적인 의지나 생각에 근거한
것이라기 보다는, 외부의 영적인 존재에 의해서 영향력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드셨고, 사람의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어 주셔서 영적인 존재로, 하나님과 교감하며 살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의 영향력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영들도 존재하여서 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여러 영적인 존재들을 두가지로 분류합니다. 6절에 보면,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 입니다. 진리의
영의 영향력속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속해서 진리를 따라 살아가지만, 미혹의 영의 영향력속에 있는
사람들은, 미혹의 영에 속아서, 거짓을 좇아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이 세상에
어떠한 영적인 존재가 있고,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하나님의 영의 다스림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도 요한이 이 편지를 받는 기독교인들에게 영의 분별에 대해서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거짓된 영의 영향력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4절에 보면,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거짓을 말하는 거짓 선지자도 자신들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혹의 영에 속아서 거짓을 진리인것처럼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요한 당시에 거짓된 가르침 중에 대표적인 것이 영지주의였습니다.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참신이지만 인간의 몸을 입으신 참 인간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아무 죄가 없고 흠이
없으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속죄제물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참신이신 것은 맞는데, 참 인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짓된 선지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더러운 인간의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실 수 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사람됨을 부인합니다. 지상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육신적인 모습은 실제 사람의 몸이 아니라, 환상과
같은 것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그럴듯하게 들리는지 모르지만, 이러한 가르침이 문제가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진짜가 아니라 가짜이고, 그렇다면 예수님이 진짜 속죄의 제물로 사람들의 죄를 구할 만한 일들을 하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의 역사까지도 부인하는 격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거짓선지자들의 말을 따랐다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들을 거짓선지자라고 하고,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미혹의 영에 사로 잡혔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3년 동안 함께 먹고 자면서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열두제자 중에서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하나님의 특별한 애제자여서 가깝게 지내서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은 하나님이라는 말씀에 놀랐지, 사람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었습니다. 요한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사건을 통해서 성령님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알고 증거하는데, 이제 예수님을 경험하지도 못했던 거짓 선지자들이 엉뚱한 영에 사로 잡혀서 예수님을 왜곡되게 전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속에서도 나를 지배하는 영을 제대로 분별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미혹의 영속에 사로 잡혀서 거짓에 잡혀 살아가기 쉽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12절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죄를 들어오게 한 한 사람은 아담을 말합니다. 아담은 미혹의 영을 분별하지 못해서 이 땅에 죄를 처음 시작한 사람입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죄를 지으려고 작정했던 것이 아닙니다. 뱀의 형상으로 나타난 사탄에게 속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불순종해서
죄가 들어왔습니다. 사탄이라는 미혹의 영이 아담과 하와를 주장했고 이를 잘 분별하지 못해서 결국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담과는 정반대로
미혹의 영을 분별해서 참 생명을 가져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도 사탄은 예수님께
접근해서 미혹의 영이 되어 거짓으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사탄의 거짓을 분별해서
이를 물리칩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서 하나가, 성령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받으실 때에 임했던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광야로도 이끄셨고, 사탄의 시험의 자리로도 이끄셨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니, 미혹의 영을 분별하고, 이를 물리쳤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7절에, 예수님은 성령님을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들이 진리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도 성령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 진리의 성령님이신지, 아니면 미혹의 영들에 의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성도들이 올바른 믿음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영적인 분별입니다. 디모데후서 2:15절에,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진리의 말씀인지, 아니면 거짓인지를
분별하는 것은 믿음생활에 중요한 부분입니다. 올바로 분별하지 않으면,
거짓에 속아 허망한 것을 좇아 열심을 내다가 멸망의 길로 빠지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영 분별을 성령의 은사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영분별의 은사를 받은 사람만, 진리와 미혹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이들에게 주시는 영 분별의 기준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진리의 영가운데 있는지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과 판단이 성경 말씀에 근거한 것인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입니다. 그러기에 성령님의 영향력속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진리와 거짓을 구별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올해 5월 16일에 방영된 추적 60분에서 ‘귀신쫓는
하나님’ 이라는 제목하에 ‘피복음교회’라는 사이비 종교에 대해서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피복음 교회에 속한
교인들 중, 선택받은 100여명의 사람들이, 특별한 훈련을 받기 위해 매달 한번씩 기도원에 모입니다. 그런데
훈련을 위해서 모인 사람들은 자신을 훈련시키는 사람을 ‘주님’이라고
부르며, 밤새도록 그의 지시에 따라 훈련을 받습니다. ‘주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사이비
단체의 교주인 샘입니다. 모인 사람들은 교주로부터 귀신을 쫓는 주문과 동작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들은 교주의 지시에 따라서 이혼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정을 끊어야 된다는 교주의 말을 따라 함께 기도원에 온 부부가 이혼을 합니다. 그리고, 기존에 찬송가는 오염되서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고 하여 동요를 부르면서 모임을 갖기도 합니다.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를 부르면서 교육을 받습니다. 피복음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영적 분별을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없는 말을 교주가 주장해도, 그 말을 분별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다가 미혹의 영에 사로 잡힌 것입니다. 다른 이단들도 보면 성경말씀 보다는 교주들이 쓴 글을 진정한 계시라고 말하면서
성경보다 더 위에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에게 속한, 진리의
영에 의한 일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미혹의 영에 속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의 말, 세상적인 말에 빠져서 진리를 외면하면서
살아갑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이나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우선에 두고 살아가라고 하는 미혹의
영에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미혹의 영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감정과 욕심에 빠져 살아가도록 거짓된 소리를 합니다. 한 죄수가 있었습니다. 젊었을
때에 저지른 실수로 인해서 장기수로 복역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아내가 후두암 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쩔 줄 몰라합니다. 다행히 간수에게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허락을 받아서 교도소 사무실에 있는 전화로 아내와 통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통화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무실에 들어온 한 상관이 이 모습을 보더니, 크게 화를 내며 “죄수가 어떻게 사무실 전화를 쓸 수 있느냐”며 소리를 질러대고 나갔습니다. 그 순간 그 죄수는 그 상관에게 너무
화가 나서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습니다. 감방으로 돌아왔지만 분노가 식지 않아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 때 그의 눈에 한 책의 제목이 들어왔습니다. “용서하는 대로
용서 받으리라” 자기도 모르게 그 책을 읽으면서 그 죄수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나의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어렸을 때 읽었던 성경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갑자기
두렵고 무서운 생각이 들자 무릎을 꿇고, 그 상관에 대해 품었던 분노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그 상관을 용서하고 사랑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그는 지체하지 않고 사무실로 가서 좀전의 그 상관을 용서한다며 사랑의 마음을 건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그의 마음을 덮었습니다. 미혹의 영은 ‘분노하라’고 부추깁니다.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은 너가 아니라 그 상관이다.’ 라고 부추깁니다. ‘상대방은 사랑받지 못할 존재다.’ 라고 미혹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진리의 말씀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사람을 용서하고, 분노를 오래 품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의 생각과 행동이 진리 가운데 있는지, 미혹의 영 가운데 있는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사도 요한같은 경우에도 ‘진리의
영’이 아닌 ‘미혹의 영’에
사로 잡혔을 때가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면서 생긴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일행이 사마리아 지역의 한 마을을 지날 때에, 그곳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행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요한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 사람들을 멸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는
식의 과격한 말을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닌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지 않으니 세상적인 영에 사로 잡혀서 그러한 무서운 말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을 만날 때에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 근거해서 행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감정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따르게 하는 미혹의 영에 근거한 것인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나를 지배하는 영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을 분별할 만한 능력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은행의 직원들이 입사하게 되면 훈련받는 것 중에 하나가 위조지폐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조지폐를 분별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위조
지폐가 이닌 진짜 지폐를 제대로 아는 일입니다. 그래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분별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를 모르면서 가짜를 분별할 수 없는 것이 상식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도록 읽게 하시고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알아가면서, 우리를 주장하고 있는 거짓의 영을 분별하며, 더욱
더 진리의 영의 다스림을 받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3. 그리고, 영 분별을 하기 위해서, 내 삶의 모습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고자 하십니다. 성령이 우리안에 거하시게 되면 우리의 삶의 자세가 바뀝니다. 우리의
세상적인 욕심을 따라가지 않고, 성령의 지시에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24-26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미혹의 영에 있는 속한 사람은, 육체와
정욕과 탐심을 위해서 삽니다. 내가 원하는 세상적인 것들을 취하는 것을 기뻐하며, 세상의 헛된 영광을 얻고자 서로 다투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성령의 영안에 있으면 삶이 변화됩니다. 갈라디아서 5:22-23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진리의 영에 거하시게 되면, 세상의
것을 취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풍성히 맺어가는 것을 기뻐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 지를 볼 때에 또한 성령의 내주 하심 가운데서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4:5절에 보면,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 진리의
영의 말씀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열매를 맺는 삶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지” 라고
도전을 주고 자극하는 것이 거룩한 영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힘들고 어려워도, 나에게 손해가 되고, 억울해도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지” 라고 격려하시고 도전을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삶의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에 이끌림을 받는지, 나와 다른 이들을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 세상의 많은 부분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에 속해 있고, 진리의 영보다는 미혹의 영에 의해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보다는
악한 영의 거짓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영적인 혼란이 더해질 것입니다. 미혹의 영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부터 더욱 무관심하게 하고 멀어지게 만들것입니다. 성령의 소욕이 아니라 육신의 소욕과 영광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참되다고 미혹의 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거짓으로
속삭일 것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사도요한의 권면과 같이,
무엇이 하나님께 속한 진리의 영인지를 늘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관심하며 귀기울이게
하십니다. 그리고 나의 소욕과 영광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도록 도전하시고 능력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떨어뜨리려는 미혹의 영을 잘 분별하시고, 날마다 성령님의 지배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열매로
맺어나갈 수 있는, 하나님께 속한 자들의 삶을 충성스럽게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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