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7/2018 - 직분맡은 성도 [디모데전서 1:12-17]

by Rejoice posted Jul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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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을 때에 나타나는 변화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가지는 내가 누구를 위해서 살아야하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궁극적으로 나를 위해 살았다고 한다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에 나의 삶은 예수님을 위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사도바울이 예수님께 감사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직분을 맡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직분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헬라어로디아코니아라고 해서, ‘봉사, 섬김를 의미합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에 대한 근본적인 감사 이외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섬길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진정한 변화는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서 살아갈 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해서, 나를 위해서 살아간다고 한다면 제대로 된 기독교인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썩어져 없어질 죄 많은 자신의 육신을 위해서 살아가다가 멸망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통치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직분을 잘 감당하다가 영생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편지의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도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이러한 바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맡기신 직분들을 잘 감당하는 사역자로 성장하기를 원했습니다.

디모데는 사도바울이 두번째 선교여행을 갔을 때에 루스드라에서 만난 사람입니다.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와 외할머니로부터 신앙교육을 받아서 어릴 때부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만난 뒤 예수님을 믿고 그의 사역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자신의 믿음의 아들로 두었고, 또한 그에게 교회의 사역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를 양육하며 격려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무엇보다 예수님이 맡겨주신 직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소중한 직분이라고 할지라도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면, 그것은 하찮은 일이 되고 소홀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자신의 봉사가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그에게 말해 줌으로 예수님을 잘 섬기기를 기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봉사하는 직분을 맡아서 살아가는 사람은 바울이나 디모데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서로 다양한 모습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직분자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은 어떠한 의미가 있고, 어떻게 잘 감당할 수 있을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 모두가 주님로부터 직분을 부여받은 직분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직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하심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지음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고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바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을 봉사할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떠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섬기면서 살아갑니다. 자신의 계획과 생각들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어떠한 대단한 존재를 섬기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깨달아 예수님의 직분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들이 이 땅에 아무리 대단한 인물을 섬긴다고 할지라도 그 유익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직분자의 삶을 살아갈 때에 하늘의 영원한 상급과 유익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예수님을 섬길 직분을 허락하셨습니다. 교회안에서도 각자에게 주어진 섬김의 다양한 형태들이 있습니다. 주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예배자의 직분을 감당하기도 합니다. 설교와 찬양,기도, 통역의 봉사를 하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음식을 준비하고, 교회 청소를 하시며, 차량을 운행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단순히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직분이기에 이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섬김의 직분은 교회안에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마르다가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 오셨을 때에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디아코니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곧 마르다는 예수님께 식사를 대접해 드림으로 섬김의 직분을 감당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섬기는 직분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우리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부모나 자녀의 역할을 감당할 때에 그것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가정이 되기 위해서 힘쓰고 애쓴다 하면 우리는 직분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직장과 사업이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이 되기를 위해서 힘쓴다고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맡겨주신 직분을 감당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러한 직분이 예수님의 긍휼하심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일은 그 섬김을 받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실 때에 가능한 일입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직분을 생각할 때에 감사한 것은, 그가 예수님을 섬길만한 어떠한 자격도 없는데, 그 귀한 직분을 맡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주님께서 직분을 맡기시기에는 너무 자격이 없는 존재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그 동안 예수님과 그 믿는 자들을 비방, 박해, 폭행하는 일들을 저질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 무지한 가운데서 그러한 일들을 행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직분자로 삼으시기를 원했는데,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자로 살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비방하고, 박해하고 폭행하는 일을 한 것은, 그의 원래 성품이 고약하고 폭력적이어서가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께 충성하기 전에 율법에 충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신이 의롭다고 여기고, 그렇지 못한 이들을 죄인으로 여기며 정죄하고 핍박하는, 어긋난 열심이 바울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게 된 후에 그가 깨닫게 된 것은, 자신이 그렇게 조롱하고 핍박하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주신 진정한 구원의 방법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무슨 염치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섬길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죄로 따지면 이미 죽어 마땅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의 죽음을 종용하고, 예수 믿는 이들을 잡아 핍박하고 죽이려고 하는 자신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때에, 도리어 자신을 예수님을 섬기는 충성된 사람으로 삼아주신 것을 감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길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감당하는 일들에 대해서 자만하지 않으며, 오로지 주님의 긍휼하심을 감사하는 직분자가 되어야 합니다.

 

2.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섬기는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와 사랑을 받았는지를 늘 깨달으며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의 맡겨주신 직분을 누구보다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는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이어서 고백하기를,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했습니다. 단순히 죄인이라고 말해도 되는데, 그는 그 죄인들 중에서도 괴수, 최고의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 객관적으로 따지고 보면, 사도바울보다 더 큰 죄인들도 많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롯 유다와 같은 사람은 자신을 그토록 사랑했던 스승을 판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바울보다 더 큰 죄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음모했던 대제사장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께 사형선고를 내린 빌라도 총독도 누구보다 더 큰 죄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죄인중의 괴수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이 자신을 죄인중의 괴수라고 말하는 것은, 그 만큼 그에게 자신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있었음을 말합니다.

로마서 5:20절에,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가를 깨닫는 자는 자신의 죄에 대해서 철저하게 회개하고, 예수님의 더 큰 은혜를 경험하며 직분을 감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산다면, 주님께서 주신 직분이 얼마나 귀한지도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내 자신의 죄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평가할 때가 있습니다. 나도 죄인이긴 하지만, 다른 심각한 죄를 지은 사람들에 비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의를 의지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직분자들은 자신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철저히 회개할 때에 도리어 그 죄를 사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헤가 더욱 충만케 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그 직분을 감당할 때에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감사함으로 주의 사역을 감당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3. 이제 성도들에게 맡겨진 일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직분에 충성을 다하는 일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겨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실 사도바울이 예수님께 충성된 존재는 아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직분을 그에게 주실 때에 그에게 충성된 존재로 인정하시고 그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직분자는 충성자가 되어야 합니다.

 

1983 11 15, 뉴욕타임즈지에, ‘한 장군이 부상당한 해병대원에게 자신의 별을 주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General Gives His Stars to a Wounded Marine)  그 기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1980년대 미국은 레바논의 평화 유지를 목적으로 미군 해병을 레바논 수도인 베이루트에 주둔시켰고, 무슬림 세력에 의한 테러의 위험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83 10 23일에, TNT 폭탄을 싫은 트럭 한대가 미해병대가 있는 막사로 돌격해 와서 폭파됨으로 274명의 젊은 해병대원이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폭파로 부상당한 미해병대원들은 치료를 받기 위해 서독, 프랑크 푸르트에 있는 미공군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 해병대 사령관이었던 Kelly 장군은 부상을 당해 누워있는 해병대 병사들에게 훈장(Purple Heart)을 수여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켈리 장군이 내쉬톤 상등병 (Nashton Corporal)에게 훈장을 수여하려고 그가 누워있는 침대에 멈췄습니다. 내쉬톤 상등병은 폐가 파손되고, 팔다리의 뼈가 부서지고, 머리뼈가 부서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눈은 콘크리트 먼지 덮여져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켈리 장군이 그의 침대 옆에 가서 자기가 사령관 켈리 장군이라고 했더니 앞을 못 보는 그 해병은 손을 뻗어 장군의 어깨를 더듬어 계급장의 별을 하나씩 만져서 정말 장군인가 확인을 합니다. 그리고 확인을 마친 내쉬톤 상등병은 종이와 연필을 달라고 해서, 종이 위에다 다음과 같은 글씨를 썼습니다. “Semper Fi” , 이 말은 “Semper Fidelis!”라는 라틴어 말로서, “Semper항상 always, Fidelis 충성된, faithful” “끝까지 충성하자!” 라는 해병대의 구호였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장군은 병원을 나오면서, 자신이 달고 있는 별은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이곳의 해병들에게 속한 것이라며 자신의 어깨에 있는 장군 별을 떼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겨드리면서 인용하는 성경구절 중에 하나가 요한계시록 2:10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여러가지 섬김의 일들이 있는데 그 섬김의 궁극적인 대상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직분을 주셨을 때에 요구하시는 것은 충성입니다. 다른 어떠한 존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그것도 나의 유익이 될 때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힘들고 심지어 죽음이 온다고 할지라도 충성하는 것입니다. “Semper Fidelis” 해병대보다 더한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충성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충성스럽게 감당할 수 있도록 그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예수님께서 맡기신 그 직분들을 잘 감당하였지만, 이를 자신의 힘으로 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12절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충성스럽게 그 일을 감당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신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전에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자신의 노력과 열심으로 모든 일을 했다고 여겼고, 그래서 자신의 의와 능력만을 나타내고, 그것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게 되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직분은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해야 함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령의 주장하심을 늘 의지합니다. 성령님이 원하시면 자신의 계획을 바꿉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가운데서, 모든 위험, 생명의 위험 속에서도 그 일들을 감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사역을 하는데 드러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섬기는 성도에게도, 자신의 힘으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직분 감당했다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을 섬기도록 직분을 맡은 직분자들입니다.

이러한 직분은 교회안에서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 모든 우리 삶의 영역속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직분을 주시면서, “이제는 너를 위해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살아가는 인생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특권입니다. 죄인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은 예수님의 긍휼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섬길 때에 내가 어떤 자격이 되어서 하는 것처럼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늘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겸손하게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직분자로 살아갈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가운데서 그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섬길 수 있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기에 늘 주님 앞에 나와 주님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늘 성령님의 능력을 구하며 그 능력가운데서 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의로움과 공로를 앞세워서 나는 드러나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사라지게 만들기 십상입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 예수님께 직분을 맡은 자의 마땅한 자세인 줄로 믿습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오늘 우리의 모든 판단과 행동의 근거가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한 것이기를 바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 능력을 드러내는 직분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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