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텔레비젼
방송에서는 무더운 여름이면 남량특집이라면서 공포영화를 방영하곤 했습니다. 한국 여름이 워낙 더우니까
아마 무서운 영화를 보면서 더위를 잊으라고 보여주는 것 같은데, 시원한 건 모르겠고 무섭기만 합니다. 그때 대표적으로 보여줬던 영화가 구미호(Nine-tailed Fox)입니다. 구미호는 꼬리가 다섯개 달린 여우라는 말입니다. 구미호는 평소에
아홉개의 꼬리를 감추고 예쁜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가 밤이 되면 하얀 소복을 입고서 어디론가 갑니다. 그리고서
어딘가에 주저앉아서 무엇인가를 먹습니다. 화면에는 구미호가 뭘 먹는지 보여주지 않고 구미호의 등만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시청자들은 궁금해서 더 집중해서 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구미호가 뒤를 돌아다 보는데 그때 사람들은 핏줄이 뻘겋게 선 구미호의 눈과 마주치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게 됩니다. 구미호가 입에 피를 묻히고서 사람의 간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서양에도
짐승을 소재로한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서양에는 여우보다는 늑대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늑대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특대인간은 보통 때는 인간으로
있다가 보름달이 되면 늑대로 변해서 늑대의 울음소리를 내며, 사람들을 해치는 짐승의 일들을 합니다. 구미호든
늑대인간이든 겉모습은 사람일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짐승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늑대나 여우와 같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을 합니다. 사람의
간을 빼먹고, 사람을 괴롭힙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한 사람의 마음을 짐승의 마음으로 바꾸십니다. 짐승의 마음을 받은 그 사람은 사람이 살던 곳에서 나와 짐승과 같이 들판에 가서 이슬을 맞으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소처럼 풀을 먹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습니다. 짐승의 마음을 받은 사람은 가장
초라하고 낮은 자의 모습으로 짐승들과 같이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짐승의 마음을 준 사람은 바벨론 제국의 왕이 느부갓네살이었습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왕이 짐승과 같이
살기에는 너무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 당시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부하고, 높은 위치에 있던 사람이 느부갓네살 왕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왕
때에 바벨론은 최강의 나라였습니다. 당시 최강이었던 앗수르를 물리치고 팔레스틴 지역을 재패했습니다. 남유다왕국도 바벨론에게 멸망당했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남유다를 멸망시키고
유대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렇다고 바벨론이 힘만가지고 전쟁만 하는 미개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바벨론은
문명 국가였습니다. 지금은 파괴되었지만 세계의 7개 불가사이중
하나로 꼽히는 정원이 느부갓네살이 만든 공중정원(The Hanging Garden)입니다. 느부갓네살왕은 아내 아마티스를 위해 정원을 만들었는데, 25미터나
되는 구조물을 짓고, 그곳을 흙으로 채우고 온갖 식물을 심어서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매우 큰 정원이었고, 멀리서 보면 흡사 정원이 공중에 매달려 있는
듯이 보여서, 공중정원이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꿈을 보여주시면서, 그의 마음이 짐승의 마음이 되어서, 왕궁에서 쫓겨나 짐승과 같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짐승의 마음을 주어 벌하신 것은 그가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느부갓네살도
나중에 이러한 벌이 자신이 교만해서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가 짐승으로 살다가 다시 사람의
마음으로 돌아온 후에 다니엘 4:37절에 이러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의 교만한 마음을 낮추시기를 짐승과 같이 되게 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부요함으로 인해서 교만해졌습니다. 만약 그가 그토록 부자가 되거나 강한 왕이 되지 않았으면 교만해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짐승과 같이 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잠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대부분 교만은
어렵고 힘들때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으로 볼 때에 뭔가 드러낼 만한 것이 있는 삶을 살아갈 때에
생기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셨는데, 도리어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그 삶이 망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느부갓네살에게 있던 교만을 보기를 원합니다. 교만한 마음이 어떠한 죄로 이끌지를 보면서, 어떻게 겸손하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1.먼저 교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자신이 한 일처럼 여기고
자신이 영광을 받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을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특별하게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강하게 하셨고 부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느브갓네살왕이
유다를 멸망시킨 후 유대의 똑똑한 젊은 인재를 훈련시켜서 바벨론의 관리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
느부갓네살왕에게 그 능력을 인정받아 바벨론의 2인자가 된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이 꾼 꿈을 알아 맞히고 그 꿈을 해석해 줍니다. 그
꿈을 해석해 주면서 하나님께서 앞으로 있을 일을 왕에게 알려 주셨다고 하며, 역사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느부갓네살왕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사건들을 경험합니다. 느부갓네살왕은, 자신이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불구덩이에 넣습니다. 그런데 불구덩이에 들어간
세명이 털끝하나 상하지 않고 불에 있다가 나온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일을 본 왕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보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 아니라, 교만해 져서 그 영광을
자신이 가로챘다는 것입니다. 4:30절에 보면,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과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라고 말합니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이 세워진 것이 자신의 능력과 권세로 된 것이고, 그러기에 자신이 이 일로 영광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동안 느부갓네살에게 보여주셨던 것은,
바벨론이 이렇게 세워지게 된 것은 느부갓네살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알려 주셨는데, 이를 깨닫지 못하고 마치 자신이 한 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뭔가 잘한 일이 있으면 자신이 했다고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잘된 것이
있으면 자신이 잘해서 된 것이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조상을 탓합니다.
만약 자식이 잘 난것이 있으면, “네가 날 닮아서 똑똑하고 잘 생겼다.”고 말하고, 못하는 게 있으면 “넌
대체 넌 누구를 닮아서 그러냐?”라고 말합니다. 그
때 말하는 ‘누구’에는 자신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뭔가 특별한 일을 하게 되면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자랑하면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권세와 능력은 내가 잘나서 스스로 획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내가 똑똑하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다른 이들보다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한국 속담에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라고 하는데 그 구르는 재주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의 영광과 자랑으로 삼는 것은 마치 짐승의 마음을 가진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과 부귀를 주셨다고 한다면, 그것을 가지고서 나 자신을 높이고 교만해지라고 주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고백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주신 것인 줄로 믿습니다. 내가 스스로를
자랑하고 높이려고 할 때를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한일에 대해서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에 우리의 마음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도리어 하나님께서 하셨음을 다시 상기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2. 그리고 교만한 이들이 범하기 쉬운 죄는,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의 교만함을 아시고서 그에게 꿈으로 경고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다음과 같은 꿈을 꿉니다. “하늘까지 닿는 크고 풍성한 나무가 있었습니다. 짐승들도 그 나무에 거하면서 살정도로
였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그 나무를 자르라는 명령이 내려지고, 그
명령에 따라 나무가 잘리고 나무 그루터기만 남아있게 되는 꿈”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그 꿈의 의미를 왕에게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무와 같은 왕을 자르시고자 재앙을 준비하셨음”을 전합니다. 그러면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이 혹시라도 재앙을 받지 않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왕에게 조언을 합니다. 그 조언은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라고 합니다. 그 말은
곧 느부갓네살이 교만에 빠져서 공의를 행하지 않는 죄를 범하였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다가 불의해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만한 자는 자신이
마치 신이 된 것처럼 자신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행하기에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느부갓네살왕은
대제국의 왕이었으니 자신이 말만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마치 자신이 신이 된
것처럼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하나님의 뜻에 관심하지 않게 되고, 결국 하나님을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불의를 행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하고 따르려고 하는 것보다, 내 생각과 주장이 강해진다면 내가 교만해지고 있을 지도 모름을
깨달아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집안에서 느부갓네살왕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기 보다는 내 뜻과 생각대로 하기를 원합니다. 직장과
교회가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자신의 생각과 뜻을 앞세우며 살아가게 되면 망하게됩니다. 가정이 망하고, 교회가 망하고, 직장이 망하게 됩니다. 그럴 때에 해야 할 일은 나의 생각과 판단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자신이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심에 관심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그리고 교만한 이들이 범하기 쉬운 죄는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왕에게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라고
합니다. 느부갓네살이 지은 죄 중에서 하나는 다른 이들에게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의
특징은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삶의 초점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형편을 관심하거나
살피지 않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불쌍한 형편을 살피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권세와 능력을 주셨을 때에는 그것을 가지고 권세없고 능력없는 자를 살피라고 하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주로 관심하는 사람들은 자신보다 강하고 권세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소외되어
있는 가난하고 연약한, 고아나, 과부, 나그네에 대해 관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부와 권세를 주시고 지혜를 주셨다면, 그것으로 자신의 유익만을 챙기며,
교만하게 살아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주신 지혜와 능력으로 그렇지 못한 이들을
돕기를 원하십니다. 가진 권세로 연약한 자를 일으켜 세우라고 주십니다.
부를 가지고 가난한 자들을 도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자기에게 초점 맞추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형편에 무관심하고, 자신에게만 집중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모습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짐승의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는 비록 느부갓네살이 교만하였지만, 그 교만으로 인한 죄에서 돌이켜
사함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꿈을 주시고 다니엘을 통해서 재앙받는 것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느부갓네살왕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가 다니엘의 조언을 듣고 돌이켜 회개하고 재앙을 면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라고 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자신이 신과 같은
존재라고 여기기에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날 느부갓네살이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면서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말이 마치기도 전에, 하늘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짐승의 마음을 주시니까 궁정에서 살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서 짐승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땅에서 풀을 뜯으며 땅만을 바라보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하늘을 우러러 보게 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총명을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세를 깨닫고 하나님께 찬양을 하게 됩니다. 땅을 바라보고 자신을 바라보고 살다가 짐승이 된
그가, 이제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람의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을 찬양케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높으심을 깨달아
감사할 수 있고, 하나님을 바라볼때 그 권세를 깨달아 겸손하게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 볼 때에 진정한 감사와 찬양이 흘러나오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날에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짐승과 같이 무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진 것이 많아지고, 지혜로워지고, 강해지면, 그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그것으로 자신의 유익을 삼으며 영광을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를 이뤄드리기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관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최고라고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됩니다. 그럴 때에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고 순종하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또한 교만한
사람은 사람에게도 관심하지 않기 쉽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부와 능력, 지혜가 있다면 그것이 업는 이들을 관심하고 돌보라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늘
내가 가진 것으로 다른 이들을 돌보고 돕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입니다. 로마서 12:16절에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있는 체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마음은 그 마음을 높은데 두어 교만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스스로 지혜있는
것처럼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모습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것들을 복으로 주셨다고 여길 때에, 늘 마음을 낮은 곳에 두며 겸손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 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공의를 이루고, 다른 이들을 잘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한
겸손한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교만으로 멸망당하는 것이 아니라,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화를 당하는 자가 아니라, 그 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