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가치있는 존재이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필요로 할 때에, 자신이 가치있는 존재라고 느낍니다. “당신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당신이 우리 회사를 위해서 일해 주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라는
소리를 들으면 살아가는 것이 즐겁고, 큰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반면에 “당신은 아무데도 쓸모 없는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듣는다면 사람들은
슬퍼하며 낙망해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 사용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합니다. 사람들은
똑똑해지면 사람들이 자신을 필요로 할까해서 열심이 공부하여 학력도 높입니다. 기술이 많으면 사람들이
자신을 써줄까해서 자격증도 이것저것 따놓습니다. 그런데도 취직이 안되고, 자신을 불러주는 사람이나 회사가 없으면 자신이 필요없는 존재처럼 여겨져서 낙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가장 가치있는 삶을 살아갈 때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쓰임받는 존재가 되었을 때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존재의 가치는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존재가 된다면 그 어떤 사람보다 가치있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바쁘게 사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사용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 삶은 궁극적으로 무가치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사용받는 것은 잠깐의 유익이 있습니다. 이 땅에 있을 동안에는 인기와 명예를 누리며 좋겠지만,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드신
분임을 믿고,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상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땅의 어떤 사람의 사용을 받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목적이 있으셔서 만드셨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고도 하나님의 계획없이 우연하게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해서 만드셨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든지 간에,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으로 기쁨과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존재가 되는 것을 가장 큰 존재의 이유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
또한 다음 주일이면 창립 37주년을 맞습니다. 우리교회가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교회로 존재한다면 그것으로 가치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필요하셔서 만드셨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들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쓰시고자 원하지만 준비되어 있지않으면 사용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사람으로서 최고의 가치를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 우리를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만드실 때에는 하나님의 쓰시고자 하시는 용도에 맞게끔 지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를 큰 집에 있는 그릇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큰 집에는 여러가지 그릇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 용도가 있어서 그 다양한 것들이 존재합니다.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와
질그릇도 있습니다. 귀히 쓰이기도 하고 편하게 쓰이는 것도 있습니다.
심방을 가보면
종종 유리 진열장에 예쁘고 값져 보이는 그릇과 접시들을 모아 놓은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안에
있는 그릇들이 값져 보인다고 해서 늘상 그것들만을 사용하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각 그릇들마다 용도가
있습니다. 진열장에 있는 값진 그릇들은 특별한 손님이나 행사때에 사용됩니다. 그리고 평상시에 주인의 밥상에서 사용받는 것은 평범한 스테인레스트 나 유리그릇들이 사용됩니다. 크기도 그렇습니다. 무조건 크다고 잘 사용받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간장종지를 보면서 그것이 너무 작아서 필요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양념간장을
담기 위해서는 커다란 대접이 아니라, 작은 간장종지와 같은 그릇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필요가 있으셔서 사용하시려고 서로 다른 모양으로 만드셨습니다. 똑똑함의 차이가 나도록
만드셨습니다. 건강에 차이도 납니다. 외모적인 차이도 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교회도 있고 작은 교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필요에 따라 사용하시려고 사람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가 커다란 금그릇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자 원하셔서 만드신 그 모습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서 “쓸모가 있네, 없네”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지금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모든 그릇을 다 사용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사용하시고자 만드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지 않으시는 그릇이 있습니다. 그것은
더러운 그릇입니다. 그릇 안에 더러운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금과 은으로 만든 값진 그릇이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 더러운 것이 있으면, 그것이
깨끗해지기 전까지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식사를
한 후에는 자연스럽게 싱크대에 더러운 그릇들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대로 내버려 두면 접시에서
썩은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냥 놔두면 썩은 냄새가 나고, 벌레가 모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냄새가 나고 벌레가 꼬인 더러운
그릇을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그릇을 다시 쓰기 위해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접시를 다시
닦은 후에 그릇을 사용하기 마련입니다. 21절에 보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라고 말씀하십니다. 귀히 쓰는 그릇은 그 그릇을
어떤 재료로 만들었고, 크기가 어떠한 것인가에 상관없이 없습니다.
깨끗하여서 하나님께 사용받는다면 그 자체가 귀한 그릇, 가치있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청년의 정욕(evil desires) 을 피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욕(Evil desires)이라는 것은 세상적인 욕망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곧 세상적인 욕망이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욕은 청년들만 더럽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것이 세상적인 욕망, 욕심들입니다. 우리 안에는
죄의 습성이 있고, 죄악으로 물든 세상과 접하여서 살아가기 때문에 정욕으로 인해 더러워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죄의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자신의 악함을 고백하는 것은 좋은 일을 위한 시작이다.”
Confessing bad works is beginning good works ”라고 했습니다.
“고백하다.” 의 헬라어 단어는 ‘호모로게오(Homologeo)’입니다. 이 말은 “똑같다, 일치하다”라는 ‘호모’와 “말하다”라는 뜻의 “로게오”가
결합된 합성어 입니다. 곧 하나님께 고백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일하게 말한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이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하지 못하게 살았던 것을 죄로 여기고, 이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해서 살아갈 것을
말하는 것이 고백입니다. 이러한 죄의 고백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깨끗케 해 주십니다. 요한일서 1:9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다윗도 한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 하지 못하는 더러운 죄가 있었지만, 고백하지 않고 그 더러움을 품고 살았던
때가 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한가하게 궁전지붕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목욕중이던 밧세바라는 여인을 보고 육신의 정욕을 품고 간음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 장군을 전쟁터에서 죽게 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가 출산하기까지 적어도 아홉달 동안 자신의 악행을 부인하고, 그 안에 더러운 죄악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것을 보다
못한 하나님께서 마침내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셔서 다윗의 죄를 폭로했습니다. 그 때서야 다윗은
늦긴 했지만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자복하였습니다. 그 때의 상황은 다윗은 시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편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 우리의 성품과
삶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죄의 내용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죄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가 고백할 할 때에 우리를 깨끗케 해 주시고, 사용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조급해하기 보다는, 우리를 쓰실 수 있도록 우리속에 있는 더러운
죄의 마음과 삶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2. 그리고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정결하게 했으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삶을 성별해야 합니다. 성별(Consecration)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구별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자기를
더러운 것으로부터 깨끗하게 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으로 쓰실 수 있도록 준비된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해야 할 일로,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고 했습니다. 깨끗하게
씻은 받은 사람은, 이제 더러운 것을 좇아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와 믿음과 사랑, 화평”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성별하며 좇아가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된 이들은, 불의한 세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살아가기로 성별해야합니다. 불신앙의 세대가운데서도 믿음을 가고 살아가기로 성별해야 합니다. 미움이
있는 세상에서도 서로 사랑하며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별된 사람은 불화가
많은 이 세상에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도록 성별해서
내어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성막에서 쓰는 도구들은 사용되기 전에 모두 기름을 부어 성별하였습니다. 출애굽기 40:9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관유를 취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막과 그안에 있는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발라서 거룩하게 하라고 합니다.
번제단도 사용되기 전에 성별되었습니다. 물두멍과 그 받침대도 사용되기 전에 성별되었습니다. 물건 뿐만
아니라 제사장도 성별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은 물로 몸을 씻고, 제사장
옷을 입은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음으로 성별되어서, 비로서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성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사용될 수 있습니다. 로마서 6:13절에,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의의 병기로 쓰시고자 하시기 때문에 불의한 것으로부터 성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우리의 몸과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몸뿐만
아니라, 우리가 소유한 것들을 하나님께 성별해서 사용하도록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집을 하나님께서 쓰시라고 성별하시기도 합니다. 자신의 집을 교회의 모임이나, 잠시 머물러 갈 것이 필요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내 놓습니다. 어떤
분은 차를 성별하여서 차가 없는 분들을 위해 봉사하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어떤 분은 결혼생활을
하나님께 성별하여서 부부가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결단하기도 합니다. 시간을 성별해서
드리기도 합니다. 옛날 한국의 신앙인들 중에는 날연보를 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기도하면서 한 달에 몇 날을 정해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그
날 수를 적어 헌금함에 넣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세속적인 일이 아닌 주님의 일에 종사했는데, 주로 전도하거나 교회 봉사하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날을 성별해서
드린 것입니다. 학생들은 공부하는 것을 하나님께 성별해야 합니다. 이
공부를 통해서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 열심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우리를 정결하게 한 후에, 우리를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도록 성별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고, 우리의 삶을 가장 가치있는
삶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인생이
가장 가치있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 사용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께 사용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를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시고자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있던지 간에 상관없습니다. 뭘로 만들어졌던, 어떠한 크기이던,
어떠한 강도를 가지고 있던지 간에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사용하지
않으시는 것이 있으십니다. 더러운 그릇은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용받기 위해서는 우리를 정결케 해야 합니다. 우리의 더러운 것들을 깨닫고 그것을 하나님께 고백해야며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옳다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동의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고자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케 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깨끗한 마음으로 우리의 삶을 성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들어서 써 주십니다. 우리가 속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직장, 가정, 우리가 가진 재능들을 말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우리가 사용하게 되면
썩어질 정욕을 위해서 가치없게 사용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성별되어 드려진다면,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가치로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시는 줄로 믿습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 개인이 또한 교회가 세상과 성별되어 하나님께 쓰임받음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는
최고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