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아는 동화 중에, 안데르센이
지은 미운 오리새끼(The ugly duckling) 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어미 오리 한 마리가 알들을 낳고 열심히 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서 그 알들이 부화해서 예쁜 오리 새끼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예쁜 오리새끼들 중에, 유달리 한 마리는 못생긴데다 몸도 컸습니다. 다른
오리들은 그 오리를 따 돌리고 구박했습니다. 그 오리는 미운 오리새끼가 된 것입니다. 미운 오리새끼는 결국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느 할머니집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할머니 사랑을 독차지 하는 백조를 보고, 먼저
그 집에 살고 있던 고양이와 닭이 너무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집에서도 나와서 방황을 합니다. 그러다가 한 큰 호수가에 도착합니다. 미운 오리새끼는 그 호수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백조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백조였으면 하는 부러움에 싸입니다. 그러다가 눈이 내리고 미운 오리새끼는 추위와 허기에 지쳐 쓰러졌는데
나무꾼이 이를 발견하고 구해줍니다. 그렇게 한 동안 나무꾼의 집에서 살았는데, 나무꾼에게 오해를 받아 나무꾼의 집에서도 쫓겨 납니다. 미운 오리는
호숫가 근처 바위틈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습니다. 그런데 미운 오리의 날개밑이 근질거렸습니다. 그래서 날개짓을 했더니
미운 오리가 날기 시작했습니다. 미운 오리는 호숫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신은 오리가 아니라 백조였던 것이었습니다. 미운 오리새끼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채 주변의 오리들이 말하는 데로 미운 오리새끼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그에 어울리는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옆에 분에게 한번 물어 보세요.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한번 이 질문에 답해 보세요. “나는
누구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내가 누구다.’라는 정체성을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얻으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떠한 존재로 대해 주는지에 따라 우리의 정체성이 형성이 됩니다. 백조인데도 주변에서 ‘너는 오리야’ 라고 말하며, 그렇게
대해 주니까 오리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대답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얻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만난 후 자신이 누군지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의 양을 치는 목자의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양을 치면서 살다가
80세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모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양을 몰고서 한 산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3:10절에,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이 말을 들은 후에 모세는 당황을 합니다.
초면에 하나님께서 뭔가 실수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그러한 일들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질문하기를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질문합니다. 모세는 한번도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겠다는 계획을 해 본적도 없고, 또한 그럴 만한 능력도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양을 치는 늙은 목자에게 오셔서 그러한 것들을 말씀하시니 당연히, “내가 누구관대…” 라며 반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모세는 , 모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나 심지어 모세 자신이 생각하는 지금까지의 모세와는 전혀 다른 존재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갈 때에, 우리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변화도 반듯이 있어야 합니다. 그 전에는 나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의해서 내 자신을
정의했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떠한 사람으로 보시는지를 관심하며,
하나님께서 정의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모세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우리를 어떠한 사람으로 여겨주시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계획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획속에서 존재하고, 곧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중에 내가 태어나기로 계획하고 태어난 분이 없습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태어나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때로 부모가 자녀를 계획하지 않았는데 실수로 아이가 태어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실수나 우연으로 아이가 태어났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 우리를 계획하시고 태어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태어난 것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평생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호렙산에서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하시는 말씀이,
“너는 애굽으로 가서 내 백성을 애굽에서부터 인도하여 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세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이러한 계획은 모세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서 명령하십니다. 모세는
그러한 계획을 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은 모세에 대한 계획을 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모세는 그 동안 주변의 상황이나 사람들이 정해 놓은 삶을 따라서 살도록
강요 받았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때에도 모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죽어야 할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히브리 남자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죽어한다고
정해 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세가 바로왕의
딸인 공주에 의해서 구출되고, 애굽 궁궐에서 왕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궁궐에 살면서 애굽의 왕자로서 불려지며, 사람들이 원하는 왕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애굽 사람을 죽인 후에
이것이 발각되어, 더 이상 궁궐에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로왕의 노여움을 피해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왔다가 그곳에서 십보라라는 여인과 결혼도 하고, 장인의 양을
치는 목자로 살았습니다. 그 동안 모세는 사람들이 정해 놓은 틀에서 살아보려고 많은 애를 쓰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떠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지는 관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한 계획이 있으시고, 자신은 하나님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존재인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모세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들이 있습니다. 맡겨주신 일들은 모든 사람이 다 다릅니다. 모든 사람들이 모세와 같은 일을 부여 받지 않았지만 모세와 동일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향하신 계획이 있고, 이제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삶을 살아가더라도 세상 사람들이 정해놓은 부모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부모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고, 학생의 삶을
살아가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학생의 모습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직장에서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직장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그것을 나의 성공과 자랑을 위한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도록 지음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지금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에 관심하며, 그 뜻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참다운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또 다시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내가
누구이관대’라는 질문을 했을 때에 하나님은 “너는 내가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응답해 주십니다. 모세는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들을 때에 더욱 마음이 심란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하나님의 계획을 알았어도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그 일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자신을 보았을 때에 바로와 비교하면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습니다. 바로왕이 노예로 잡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을 그의 손에서 데리고 나오라고 하는데 사실, 모세에게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바로는 막강한 군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세에게 있는 것은 자신이 치고 있는 양떼, 그것도 장인의
양떼 밖에 없었습니다. 그 양떼들을 데리고 바로와 맞서서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러니 모세에게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게 나오도록 하는게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모세는 사람앞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말도 잘 못하고, 나이는 많고, 능력도
없는데 어떻게 그 일을 할 수가 있겠냐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러한 자신을 보면서,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질문에 대답하시기를 12절에,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하십니다. “모세야 너는 어떤 사람이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시각을 바꾸기를 원하셨습니다. 모세 더 이상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관심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와
함께 하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관심하고 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바로와 맞설 수 있는 군대가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모세의
군대가 되어서 바로와 맞서겠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말을 제대로 못하지만 형 아론을 주셔서 형이 아우
모세를 신과 같이 여기며, 모세의 말을 전하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기적이 필요하면 모세가 기적을 일으키도록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내
연약함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감당케 해 주십니다. 80세의 능력없는 목자를 사용하신 것은, 그것이
사람의 힘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임을 확실히 증명하시는 방법이었습니다. 모세가 그 이후에 바로 앞에 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땅에서
인도해 냅니다. 이 모든 것은 모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능력의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가지는 최고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3. 이제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사람들은, 그 관심이 나로부터 하나님께로 향하게 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또 다른 질문이 생겼습니다. “하나님, 이스라엘 자손들이 당신의 이름을 묻는다면 뭐라고 해야
합니까?”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주관하시기 때문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계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하나님을 지은 것도 아니고, 도와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피조물의 목적을 정하신 분이고, 그 목적을 가능하도록 도우시는 분인 것입니다. 우리가 내 자신에게
초점할 때에 나의 죄성과 연약함으로 인해서 실망하지만,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출 때에
힘과 담대함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맡겨주신 일들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처음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주저하였지만, 그 이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애굽으로 가서 바로의 손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구해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합니다. 이러한 대단한 일을 모세가 한 것 같지만,
사실 모세가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순간순간을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일들을 다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자신을 제대로 알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정의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떠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대하는가에 따라서 내가 누구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라는 대답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만드신 하나님으로부터 찾아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때에,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지만, 참된 나는, 나를 만드신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갈 때에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누구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비록 우리는 무지하고 연약하여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우리를 통해서 이루시는 줄로 믿습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는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원하시는 모습대로 살아가고있는지를 늘 관심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를 늘 질문하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럴 때에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하며, 우리의 지음받은 목적을 이루는, 가장 나다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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