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시는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예수님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평지에 내려오셨을 때에,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 주변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병고침을 받으려고 유대사방과 예루살렘, 그리고 두로와 시돈과 같이 해안에 있는 지역에서도 왔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유대지역을 벗어나 두로와 시돈같이 먼 곳까지도 퍼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병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좀 만져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능력이 예수님께로부터 나와 모든 사람들을 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지에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마태복음에는 5장에도 유사한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위에 오르실 때에 역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오게 되고,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산에서 가르치셨다고 해서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평지에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이를 ‘평지설교’라고 합니다.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이나 내용상에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주시는 것이 ‘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복이 있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은 이에 덧붙여서 화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알고 이를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복을 진정한 복으로 알고 이를 추구하다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나는 지지리도 복이 없다고 여기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진정한 복은 무엇이고, 어떻게 이를 누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향해서,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고 하십니다. 그리고 “부요한 자는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그렇다고 가난한 자는 무조건 복이 있고, 부요한 자들은 무조건 화가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를 희랍어로 ‘프토코스’라는 단어를 쓰는데, ‘웅크린 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가진 것없고 사회적으로도 내세울 것이 없으니 자신을 웅크린 것과 같은 위축된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하셨는데, 누가복음에서 말하는 가난한 자들은 심령이 가난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물질이 없어서 굶주리고 울음이 나오는 상황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서 복되다고 하신 이유는, 가난 자체가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저희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세상적으로 없는 것이 많지만,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왕으로 모시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다보니,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복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중에서는 시대적으로 이러한 때를 경험하신 분도 계십니다. 일제식민지 때 일본이 식량을 수탈해가고, 그리고 그 이후 한국전쟁으로 인해서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수두룩했습니다. 그 때에 그것을 복으로 여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기독교가 들어오게 되고,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비록 물질이 없고, 사회적인 능력과 명성은 없지만, 하나님의 다스림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이것이 한국에는 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있을 때에, 굶주리던 자들이 배부르게 되고, 울음이 변하여 웃음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자가 배부르고 웃을 수 있는 복의 사람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품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33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기에 기독교인은 세살적인 부요함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고자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그 삶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책임져 주심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2. 그런데 반대로, 화를 받을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부요한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화’가 있다고 할 때에 희랍어로, ‘우아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는 ‘슬프도다. 안타깝도다.’라는 뜻의 탄식을 나타내는 감탄사입니다.
곧 예수님은 부요한 사람들을 향해서, 참 안타깝고 불쌍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그들은 이미 위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부요한 자들은 세상적인 시각에서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쌍해 보이지 않습니다. 부요한 자들은 세상 기준으로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삶속에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의 나라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요한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 것으로 자신들의 위로를 삼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위로를 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물질들을 쌓아 놓고 그것으로 의지하고 위로를 삼으면서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위로자로 삼지 않고, 세상의 것들을 위로자로 삼는 것도 불쌍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엇을 우리의 삶의 위로로 삼고 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또한 그들이 불쌍한 것은 그들이 위로 받았던 것들이 도리어 그들을 슬프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부요한 사람들이 더 이상 배부르지 않고 주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동안 웃으며 지냈는데 애통하여 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요함을 주셨지만 그것을 빼앗아 불쌍한 지경으로 만드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요케 하신 이유를 알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부요한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서 살아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법을 주셔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그 때에 희년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희년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너무 부하거나 너무 가난하지 않도록 평준화 시키는 제도였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사람들이 살다가 보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땅을 팔기도 하고 자신을 종으로 팔기도 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절망하지 않은 것은 50년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희년에는 이 모든 것을 돌려주도록 했습니다. 토지를 돌려주고, 그리고 종에게도 자립할 구 있는 재물을 주어서 자유케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너무 부하거나 너무 가난해서 살아가지 않고 살아가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요케 하신 이유도, 부요함을 통해서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며 상대방을 세우고 부요케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복된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자신에게 주신 복을 가지고 자신만을 부요케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에 주셨던 복이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고, 다른 모든 민족들이 아브라함으로 인해서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만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으로 인해서 다른 이들이 복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가난하게 하신 분이 있는데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고린도후서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스스로 가난하게 해 주셔서, 사람들을 부요케 하셨던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법을 잃어버렸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배고파서 우는 상태에서 벗어나지를 못했고, 부요한 자들은 가난한 이들의 처지를 외면하고 자신들만 배부르며, 그것을 기쁨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부요한 이들이 자신의 것을 움켜쥐고 있음으로 그냥 부요한 사람으로 남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그것을 가난하고 필요한 이들에게 흘려 보냄으로 부요한 사람들이 복의 사람으로 바뀌어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부요한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며 그 부요함을 유지하기 위해 움켜 쥐고 살아가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부요한 자가 부요한 자로 남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베품으로 복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3. 그리고 정말 복된 자들은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받을 소망을 가진 자입니다.
23절에 보면 가난하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 이들을 향하여서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그들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그날에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큰 기쁨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뛰어 놀지 않고는 못 버틸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지만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께 상급받을 것을 소망하며 준비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복된 사람입니다.
반대로 불쌍한 사람은, 하늘에는 상급이 없고 이 땅에서만 칭찬받으면 살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같이 했다고 했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은 간사한 말로 칭찬을 받기 위해서 거짓을 말하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조상들도 거짓 선지자들로부터 잘하고 있다는 거짓 칭찬을 들으며 기뻐했습니다. 결국 거짓 교사와 그 조상들은 사람들의 칭찬은 받았지만, 하나님의 상급을 받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 힘을 씁니다. 공부 잘하고 칭찬받고 박수 받으며 상 받고 싶어합니다. 직장에서나 어디서나 칭찬받고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진정으로 복있는 사람은, 이 땅에서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칭찬받고 상급을 받기 위해서 이 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보니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사람들의 미움도 받고, 욕도 먹고, 악하다고 악평도 듣고 심지어 버림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다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그것을 가지고 시험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왜 이러한 일을 당해야 하냐고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하나님께 받을 상을 쌓아 놓는 일이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통치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 땅에서 더 배고파지고, 울어야 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님께 칭찬받고 상급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기에 도리어 그 삶이 복된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세상에서 말하는 복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복받은 자로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복있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의 통치를 받고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물질을 쌓놓고 그것을 자신의 위로와 소망으로 품는 자들은 화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요함을 흘려보내는 것이 복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부요한 자가 복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흘려 보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부요함을 통해서 이 땅에 가난하고, 배고프고, 우는 이들에게 흘려 보내 한나님 나라를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부요한 사람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복된 자로서 남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칭찬을 받고 상급받을 자가 복된 자입니다. 이 땅에서 사람에게 칭찬받고, 그 능력을 인정받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것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주시는 상급을 놓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다가 사람들로부터 미움도 받고, 욕도 먹고, 악하다는 말도 듣고, 심지어 버림받는 것까지 받는다고 할지라도 이것을 복되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하던 부요하던, 배고프던 배부르던, 웃음의 상황가운데있던, 울음의 상황가운데 있던지, 그 때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에 있는자가 복된 자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어느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잃지 마시고, 하나님을 우리의 위로자로 삼으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복된 성도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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